회복
<마가복음 3:1~6>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표준 새 번역 마가복음 3:1~6>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런데 거기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2 사람들은 예수를 고발하려고, 예수께서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지를 보려고, 예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3 예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4 그리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6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으로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
오늘 말씀은 <회복>입니다.
새 해는 우리의 믿음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의 신앙심이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3장의 말씀은 <회복>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5)
표준 새 번역 성경은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회복시켜 주셨다고 번역합니다.
<막3:5> 예수께서 노하셔서, 그들을 둘러보시고,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시면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 사람이 손을 내미니, 그의 손이 회복되었다.
1. <회복>의 지름길.....예수님을 만나라!
손이 오그라진 사람(손 마른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고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고 그게 최고의 기쁨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눈에 띄었고,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회복했습니다.
참 단순합니다. 이 단순함이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켰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눈에 띈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셨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내밀어라!> 순종하십시오! 그럼 회복합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손을 내밀라고 말씀하십니다. <손을 내밀어라!>
회당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는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2)
이 사람들은 손 마른 사람의 회복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3) "손을 내밀어라" (5)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순종했습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왔고 오그라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의 손이 회복되었습니다.(5)
예수님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은 회당 안에서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예수님의 부름과 손이 오그라든 사람의 순종으로 가능했습니다.
오늘도 우리 예수님은 이 성전에 오셔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너라"(3) "손을 내밀어라" (5)
망설이지 마십시오! 망설이지 마시고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주저하지 마십시오! 주저하지 마시고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진정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조금도 머뭇거리지 마시고 일어나서 가운데로 나오셔서 손을 내미시기 바랍니다.
그게 회복하는 지름길입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손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럼 된 것입니다. 그럼 모든 게 다 된 것입니다.
이 손 마른 사람에게는 그게 전부이고 그게 최고의 기쁨입니다.
손 마른 사람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한 가운데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 손 마른 사람은 지극히 수동적입니다.
예수님의 눈에 띄었고,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회복했습니다.
참 단순합니다. 그런데 이 단순함이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켰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이 단순한 기회가 손 마른 사람에게 찾아 왔습니다.
그 만남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그리고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이 손 마른 사람처럼 예수님의 눈에 띈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보셨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순종입니다. 그럼 회복입니다.
2. <회복>의 바른길....예수님에게 집중하라!
회당 안에 긴장이 있습니다.
본문은 <전형적인 논쟁대화>의 양식입니다.
손이 오그라진 사람은 회복이 필요합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고발할 건수만 찾습니다.
헤롯 당원들은 바리새인과 야합을 하여 예수를 죽일 모의를 합니다.
군중들은 그냥 보고만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긴장감이 팽팽한 상황에서 <죽음>을 개의치 않고 손이 오그라진 사람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죽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은 기꺼이 죽음의 길을 가십니다.
이 예수님에게 집중하면 회복됩니다.
손 마른 사람을 치유하는 이 기사에 참 많은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를 고발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2)
이 사람들은 시종일관 예수님을 논쟁의 자리로 끌어냅니다.
불트만과 그닐카는 이런 스타일을 논쟁대화의 양식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본문은 <전형적인 논쟁대화>의 양식입니다.
불트만은 복음서의 말씀들이 몇 개의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선언문을 담고 있는 아포프테그마, 논쟁대화, 사제대화, 나-말 형식 등입니다.
본문은 전형적인 논쟁대화의 양식이며 기적이야기 양식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선언을 선포하는 아포프테그마의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면서 기적을 행하십니다.
그리고 선언합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반문하는 설의법 형태이지만 예수님의 의도는 분명합니다.
안식일 일지라도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며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안식일 준수라는 율법이 가장 소중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에게 적대심을 가지고 논쟁을 벌입니다.
성경은 이들의 관심이 환우의 치료가 아니라 율법의 자구수호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에는 논쟁대화의 양식답게 논쟁자들이 등장합니다.
논쟁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건수를 찾으려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는 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2절)
그들이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안식일을 지키는 지 여부입니다.
손 마른 사람이 낫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간파하시고 그들에게 물었습니다.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그들은 잠잠하였다.
예수님은 노하셨습니다(5)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셨습니다.(5)
예수님은 사람의 치유에 관심이 있었는데 바리새인들은 문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악한 속셈이 간파당하자 바깥으로 나갑니다.(6)
그리고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님을 없앨 모의를 합니다.(6)
그리고 결국 예수는 훗날 이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는 이 대목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건수만 찾고 있었고 죽이려고 모의했습니다.
더구나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헤롯 당원들과 야합을 했습니다.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어울릴 수 없고,
율법주의자들이 헤롯 당원들과 어울릴 수 없습니다.
이들과 장로들이 어울릴 수 없고 서기관들이 어울릴 수 없습니다.
더구나 민족주의자인 가롯 유다 같은 열심당이 이들과 손을 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일 때는 모두가 손을 잡았습니다. 더러운 야합입니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니 서슴없이 손을 잡았습니다. 야합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들 때문에 결국은 죽습니다.
누군가를 죽이려 하면 결국은 죽일 수 있는 게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죽이려들면 죽을 준비를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를 감동시키시는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참 바보이십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음의 길을 가신 바보입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그냥 두시면 올무에 걸리지도 않고 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환자 하나 못 본체 하고 지나치기만 하면 죽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 주님은 회당 한 가운데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불러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그라든 손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죽일 빌미를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는 논쟁자들을 피하지 않고 죽음의 길로 가셨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복하기를 원하시면 이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성을 가지고 회복하기를 원하면 이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휘둘릴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병원에 가보신 적이 있으시지요?참 여러 사람들이 드나듭니다.
병원에 가면 식당도 있고, 꽃집도 있습니다. 커피숍도 있습니다.
돈 받는 수납 창구도 있습니다. 의사를 기다리며 복도에 늘어선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간요법을 가르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환자들은 누구에게 관심을 갖고 있습니까?
담당의사입니다. 아무에게도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환자는 의사에게 관심을 집중합니다. 그래야 낫습니다.
믿음으로 사시기를 원하십니까?
믿음이 회복되고 신앙심이 회복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에게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에게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하는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오직 우리 주님에게만 집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회복됩니다.
3. <회복>의 주인공 ....내가 회복의 주인공입니다.
내가 회복의 주인공입니다. 내가 결단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실 준비까지 하셨습니다.
우리가 결단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주저 말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손 마른 사람은 회당 안에 머물러서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에 갇혀 회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헤롯 당원들과 야합을 하고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꾸미었습니다.
회복을 원하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손 마른 사람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회당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 가운데로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에게 <손을 내 밀었습니다>.
예수님에게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회복되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우리 자신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순종하면 회복됩니다.
우리는 어디에 속하여 있습니까?
우리는 누구입니까?
정말 우리는 믿음으로 살려는 의지가 있는 성도입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을 부르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아멘 하는 믿음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우리가 누구에게 속하여 있는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우리의 마침표는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회복의 열쇠는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가 회복의 주인공입니다.
우리 자신이 우리를 회복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최고의 적임자입니다.
우리가 심고 우리가 거둡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삶을 거두고 싶다면 아름다운 삶을 심으면 됩니다.
우리가 풍성한 열매를 거두고 싶다면 충실한 씨앗을 심으면 됩니다.
우리가 진정성을 가지고 믿음의 명가를 세우고 싶다면 우리가 믿음으로 살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됩니다.
이미 주님은 준비가 되셨고 죽을 줄 알면서도 손 마른 사람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 우리 예수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동을 받습니다.
성경말씀을 가만히 묵상해보십시오.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눈에 두 종류의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하나는 손 마른 사람입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을 고발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 때 예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갈등하셨을까요?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셨을까요?
예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사 회복시켜 주셨고,
자신을 죽이려는 바리새인들 앞에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 던지셨습니다.
분명 죽으실 줄 아시면서도 예수님은 기꺼이 죽으시는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이 예수님보다 더 귀하신 분이 있습니까?
이 예수님을 만나고 이 예수님에게 집중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이 있습니까?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예수님은 이미 준비가 끝났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자신을 죽이실 준비도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결단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됩니다.
이미 <회복이냐 고착이냐?>는 정해졌습니다.
주저 말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손 마른 사람은 회당 안에 머물러서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율법에 갇혀 회당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였습니다. 헤롯 당원들과 야합을 하고 예수님을 죽이었습니다.
회당 안에 머물렀던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회복을 경험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성전을 떠나지 말고 예수님을 만나서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회복을 원하십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손 마른 사람을 기억하시면 됩니다.
회당 안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한 가운데에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에게 손을 내 밀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회복되었습니다. 이게 전부입니다. 이게 회복의 지름길입니다.
2015년도에는 우리들 모두가 이 회복을 경험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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