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하나님의 한탄과 은혜(창6:5~8) 2013-1013 주일

우순(愚巡) 2013. 10. 12. 21:30

하나님의 한탄과 은혜

 

 

<창세기 6장 5절~8절>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표준 새 번역 창세기 6장 5절~8절> 5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7    주께서는 "내가 창조한 것이지만, 사람을 이 땅 위에서 쓸어 버리겠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과 땅 위를 기어다니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렇게 하겠다. 그것들을 만든 것이 후회되는구나" 하고 탄식하셨다.  8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께 은혜를 입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한탄과 은혜"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소재는 '노아'입니다.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은혜를 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지은신 것을 한탄하시는 중에도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함으로 구원받았고 새 세상의 거룩한 씨가 되어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노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고 믿음이 충만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다가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록된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화육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을 통하여, 선포되는 말씀인 설교를 통하여, 그리고 교통하시는 말씀인 기도의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는 믿음을 얻습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요 설교들 듣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가르칩니다. 설교를 듣는 자가 믿음을 얻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우리는 믿음을 얻습니다. 오늘도 설교를 들으시면서 믿음을 얻는 좋은 주일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나눌 말씀은 "하나님의 한탄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노아 시대에 이르러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시고 홍수를 일으키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 우리가 잘 아는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하나님의 한탄]

 

오늘 우리가 들으면서 묵상할 첫 번 째 말씀은 "하나님의 한탄"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죄악의 가득함과 계획의 악함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악과 악함을 보시고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5절,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습니다.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표준 새 번역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시고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하셨다고 번역합니다.

 

5절, 주께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 차고, 마음에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뿐임을 보시고서,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시며 마음 아파 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근심하시고 마음아파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고 한탄하시면서 홍수로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사람을 쓸어버리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는 하나님의 마음! 성경은 노아의 이야기를 통하여 홍수 이야기를 전하려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셨다! 이 말은 아주 역설적인 하나님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은 기대감과 희망입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 미래와 희망이다!

 

<렘29:11>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한탄은 하나님의 기대와 희망에 대한 반작용적인 표현입니다. 왜 한탄하셨느냐? 기대가 그 만큼 컸기 때문입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크고 후회가 컸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에 대하여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어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믿어주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를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면서 끝까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탄과 비슷한 이야기가 가롯유다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최측근이었습니다. 돈 궤를 맡은 재정담담 측근입니다. 예수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예수님의 신뢰를 한 몸에 받는 측근 중의 측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롯유다에 대한 기대를 갖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적시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과 가롯유다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님이 가롯유다에 대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음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가롯유다는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큰 실망감을 안겨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가롯유다에게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6:20~25>  20 저물 때에 예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앉으셨더니 21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22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2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그가 나를 팔리라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룟유다를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인자는 죽는다.  자기(예수)에 대하여 기록한 대로, 즉 성경에 예언한 대로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 네가 안죽여도 누군가에 의하여 죽는다. 그게 나의 삶이고 나의 운명이고 나의 십자가이다. 그렇지만 이 일이 너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니 참 안타깝다. 가룟유다야 너는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너 자신을 위하여서는 좋을 뻔 하였다. 주님은 가룟유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셨습니다. 왜? 너냐? 에수님은 가롯유다에 대하여 깊은 안타까움을 표현하십니다.

 

24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런데 가룟유다에 대한 이야기 가운데 더 큰 생각거리는 유다의 착각입니다. 가룟유다는 말합니다. "나는 아니지요?" 나는 아니지요?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먹으면서도 자기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대답하시되 네가 말하였도다 하시니라

 

가롯유다는 자기가 하는 일이 무슨 일인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지, 얼마나 잘 못된 일인지를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말하였도다" 가룟유다는 예수님도 몰랐고 자신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도 알지 못하였고, 예수님이 자신에 대하여 얼마나 안타까와 하시는지도 몰랐습니다.

 

 이런 마음은 가룟유다의 마음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축복이랄 수 있는 "사죄의 축복"을 보면 예수님을 죽이는 사람들도 자신들의 행위가 무슨 행위인지를 몰랐습니다.

 

<눅23: 33~34A> 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34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예수님을 죽이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용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이 예수님의 십자가 축복, 사죄의 축복, 자신을 죽이는 자들이 무엇을 하는 지도 모르면서 하나님의 아들을 죽인 죄인들을 끝까지 사랑하고 용서하신 사죄의 축복이 기독교신앙의 정수라고 믿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은 언제나 악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에 생각하는 계획이 언제나 악한 것을 보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후회하셨습니다. 성경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요?  결국은 인간의 본질을 돌아보는 자기 성찰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봅니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어떤 존재인가? 예수님이 보실 때 어떤 존재인가? 신앙의 유익은 자기를 돌아보는 자기성찰의 유익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거나 다른 사람들의 시각으로 우리를 돌아봅니다. 우리의 시각으로 우리를 바라보면 우리는 자기의 한계에 갖히거나 자기의 의로움에 천착합니다. 그 다음 다른 사람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인간의 판단에 따라 일희일비하면서 환호에는 흥분하고 비난에는 절망합니다. 이 모두 잘 못된 자기이해입니다.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면 우리는 죄악이 가득하고 언제나 악한 생각으로 계획을 짜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그럼 우리는 절망적입니까? 하나님의 한탄은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끝나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시고 한탄하셨으니 우리는 아무 쓸모도 없는 존재입니까? 성경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성경은 인간의 죄성을 고발하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설명하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

 

노아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노아의 의로움을 이야기 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잘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가 구원의 상징이 되고, 방주의 건조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깊은 묵상을 해야 합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노아의 의로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야기합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흔히 노아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과 동등한 절대적인 완전자가 아닙니다. 자식들 앞에서 벌거벗었던 연약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노아를 당대에 완전한 자라고 말씀합니다. ‘당대에는 그 시대를 말합니다. 노아는 그 시대에 일반인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의롭고 완전한 자였을 뿐입니다. 노아가 구원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가 구원받습니다.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습니다.(1:16~17) 은혜는 받을수록 좋습니다. 은혜 위에 은혜입니다. 부흥성회에 참여하여 은혜를 받읍시다.

 

 

여러분!

쉰들러리스트란 영화를 보셨지요?

왜 뜬금 없이 쉰들러리스트 영화 이야기를 하냐고요?

노아와 쉰들러를 비교하면 '의로움'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쉰들러 리스트의 원제는 쉰들러리스트(Schindler's List)가 아니라 쉰들러방주(Schindler's Ark)입니다. 이 영화는 2차 대전 말기를 배경으로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실화 -홀로코스트-를 배경을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주인공인 오스카 쉰들러는 폴란드에게 에나멜 무기 공장을 경영하다가 독일인의 만행을 보고 자기의 전 재산을 털어 유대인을 구해줍니다. 유대인들을 자기 공장에 취직시키는 방법으로 무려 1,100 여명이나 되는 유대인을 구해줍니다. 전쟁이 끝나고 목숨을 건진 유대인들은 쉰들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이 때 쉰들러는 스스로 자책하면서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하지 못한 것을 괴로워 합니다. 쉰들러는 말합니다. 자기의 승용차를 팔았더라면 10명은 더 구했을거라고, 시계나 결혼 반지를 팔았더라면 2명은 더 구했을 거라고 차책합니다.

 

성경의 노아는 의인이이었지만 영화의 쉰들러는 플레이보이였습니다.

성경의 노아는 자기 가족만 구원했지만 쉰들러는 1,100여명을 구원하였습니다.

성경의 노아는 이웃을 구하지 않았지만 쉰들러는 수많은 유대인 이웃을 구원했습니다.

성경의 노아는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지만 쉰들러는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였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성경의 노아는 영화의 오스카 쉰들러보다 의롭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더구나 노아는 말년에 술에 취하여 자식들 앞에서 하체를 드러내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자식들 앞에서 술에 취하여 하체를 드러내신 분이 계십니까? 노아는 우리들 보다도 의롭지 못한 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닌가요? 여러분 중에는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노아를 너무 폄하한다고 생각하시는 것이지요? 그렇지요? 그러실 것입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려고 합니다. 노아가 의인이요 완전한 자이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은례를 입었기 때문에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성경을 더 깊이 묵상해 볼까요?  창세기 6장 9절의 표현을 깊이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노아를 "당대에 의로운 자라"고 표현합니다. 

 

     <창세6: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당대에라는 말이 참 깊은 뜻이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처럼 완전한 존재가 아닙니다. 노아는 아무 흠결이 없는 완전한 존재도 아닙니다. 노아가 훗날 술에 취해서 벌거벗은 채로  잠들었던 사건을 아시지요? 더구나 아들들의 반응에 따라 함에게 저주를 내리는 장면도 아시지요? 노아는 절대적인 완전자가 아니라 당대에 완전한 자 곧 상대적인 완전자였습니다. 노아가 의로워도 하나님처럼 의로운 것은 아니고, 노아가 완전해도 하나님처럼 절대적으로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노아가 성경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것은 자신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묵상해볼까요? 히브리서는 노아를 믿음으로 산 사람이라고 설명합니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았을 때에 경회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노아는 믿음을 따라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노아가 의의 상속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당대의 사람들,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셨던 사람들에 비하여서 의로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꼐 은혜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은혜 입은 자의 순종]

 

노아 이야기의 절정은 순종입니다. 마른 날에 방주를 만드는 순종,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순종, 사람들의 반응에 개의치 않는 전적인 순종이 핵심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부름 받은 것보다 더 위대한 신앙은 순종으로 부름 받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꼐 은혜를 입은 사람이요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입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자꾸 마음에 떠오르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씀입니다. 노아는 절대적인 의로움을 가졌거나 절대적인 완전자였기 때문에 의의 상속자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살았기에 의의 상속자가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의 전에 예배하러 오신 성도 여러분!  지금 하나님께 예배하시면서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십니까?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십니까?  노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기 위하여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서 있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만이 새로운 세상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만이, 구원의 방주에 탑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노아의 위대함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마른 날임에도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순종합니다. 믿음의 진정성은 감사와 순종입니다. 언제나 범사에 감사하고, 언제나 말씀에 의지하여 순종하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꼐 나아가자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꼐 나아가야 합니다. 그게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진정한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한 믿음은 감사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는 감사하고, 하나님의 뜻에는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대감을 갖고 계십니다. 희망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지 않도록 하나님께 은혜를 입고 순종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하게 이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