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부흥회와 세미나 강론

주제: 존 웨슬리, 우직한 순례자

우순(愚巡) 2022. 5. 24. 14:06

 

<서대문지방 웨슬리 회심 284주년 기념 성회.....2022524~25>

 

주제: 존 웨슬리, 우직한 순례자

 

감 리 사 김영수 목사

선 교 부 총무 유종근 목사

아현중앙교회 이선균 목사

 

2022524() 84:5 존 웨슬리, 우직한 순례자

2022525() 119:15 존 웨슬리, 성경벌레 묵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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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524() 존 웨슬리, 우직한 순례자

 

(시편 84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코로나로 인하여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없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함께 모일 수 있으니 참 감사합니다.

 

서대문지방 웨슬리 회심 성회를 섬길 동대문교회 담임목사 서철입니다. 성회의 주제인 <존 웨슬리, 우직한 순례자>에 대하여 이틀 동안 말씀을 섬기겠습니다.

 

1. 하나님의 위로

 

1) 예배에 오신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서대문지방 웨슬리 회심 성회에 오신 목사님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는 예배가 참 그리웠습니다. 부흥회가 그리웠습니다. 공기가 있을 때는 소중한 것을 잊고 있다가, 산소 호흡기가 필요한 상황이 오면 공기가 생명인 것을 깨닫습니다. 성도에게 예배는 공기와 같습니다. 그동안 교회는 코로나로 인하여 예배의 자유와 기쁨을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영적 예배의 기쁨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예배의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잊고 살았습니다. 언제나 갈 수 있는 예배당, 내가 가면 갈 수 있는 예배당이었지만, 우리의 의지와는 다르게 예배당에 갈 수 없는 부자유를 경험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로 잊고 있었던 <예배의 자유와 예배의 기쁨>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예배를 소중하게 여기시고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먼저 그동안 예배를 그리워하셨던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은 위로자이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로하라고 선포하셨습니다.

 

2) 하나님은 스스로 위로하는 자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사야서 51:12] "너희를 위로하는 이는 나, 바로 내가 아니냐? 그런데 죽을 인간을 두려워하며, 한갓 풀에 지나지 않는 사람의 아들을 두려워하는, 너는 누구냐?“

 

하나님은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 우리를 위로할 자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상황이 극한 상황이 되면 사람의 위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마음으로는 위로하나 사람들은 자기의 형편 때문에 위로의 한계를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가 너희를 위로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은 끝까지 위로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이사야서 51:19] 전쟁으로 땅은 황폐해지고 백성은 굶주려 죽었다. 이 두 가지 재난이 너에게 닥쳤으나, 누가 너를 두고 슬퍼하겠느냐? 폐허와 파괴, 기근과 칼뿐이니, 누가 너를 위로하겠느냐?

 

[이사야서 52:9] 너희 예루살렘의 황폐한 곳들아, 함성을 터뜨려라. 함께 기뻐 외쳐라.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로하셨고, 예루살렘을 속량하셨다.

 

[스가랴서 1:17] 너는 또 외쳐라. '나 만군의 주가 말한다. 내 성읍마다 좋은 것들로 다시 풍성하게 될 것이다. 나 주가 다시 한번 시온을 위로하겠다. 예루살렘은 다시 내가 택한 내 도성이 될 것이다.'“

 

3)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서 40:1]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성경학자들은 흔히 이사야를 둘로 구분합니다. 1 이사야서와 제2 이사야서입니다. 이사야 66권 중에 1장에서 39장까지는 구약적인 내용을 담은 제1 이사야라고 하고, 40장부터 66장까지는 신약적인 내용을 담은 제2 이사야서라고 합니다. 이사야 401절은 제 2 이사야서의 표제어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이사야는 계속하여서 하나님의 위로를 선포하였습니다. 복음은 위로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4)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로하십니다.

 

[시편 119:50] 주님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었으니, 내가 고난을 받을 때에, 그 말씀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달래 줍니다.

 

[시편 94] 18 주님, 내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할 때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듭니다. 19 내 마음이 번거로울 때는,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하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72:19~21] 19 하나님, 주님의 의로우심이 저 하늘 높은 곳까지 미칩니다. 하나님, 주님께서 위대한 일을 하셨으니, 그 어느 누구를 주님과 견주어 보겠습니까? 20 주님께서 비록 많은 재난과 불행을 나에게 내리셨으나, 주님께서는 나를 다시 살려 주시며, 땅 깊은 곳에서, 나를 다시 이끌어 내어 주실 줄 믿습니다. 21 주님께서는 나를 전보다 더 잘되게 해주시며, 나를 다시 위로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붙들고, 하나님의 위로는 우리를 달래 줍니다.

[시편 94] 18 주님, 내가 미끄러진다고 생각할 때에는, 주님의 사랑이 나를 붙듭니다. 19 내 마음이 번거로울 때에는, 주님의 위로가 나를 달래 줍니다.

 

 

5) 노아와 시므온과 바나바의 공통점은 위로입니다.

 

노아의 이름 뜻은 위로였습니다. 노아를 아시지요? 우직한 순례자였던 노아의 이름 뜻은 위로 그 자체입니다. 세상을 구원한 노아는 세상의 위로 그 자체였습니다. 대홍수의 기후 격변기에 세상을 구원한 사람입니다. 새로운 세상의 생명을 이어가게 한 씨앗의 사람이요 근원의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 노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시지요?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직하게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순례길을 걸어간 노아의 이름을 위로라고 지어주었습니다.

 

[5:28~29] 28 라멕은 백여든두 살에 아들을 낳았다. 29 그는 아들의 이름을 노아라고 짓고 말하였다. "주님께서 저주하신 땅 때문에, 우리가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데, 이 아들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예수님을 기다린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던 자였습니다. 우직한 순례자였던 시므온은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렸던 시므온은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습니다.

 

[누가복음서 2: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사도 바울을 교회의 공식 석상으로 인도한 바나바의 이름 뜻은 <위로의 아들>입니다. 위로의 아들이 사울을 위로하여 바울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도행전 4:36] 키프로스 태생으로, 레위 사람이요, 사도들에게서 바나바 곧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별명을 받은 요셉이,

 

 

2. 존 웨슬리의 회심 : 성령 체험과 전환점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의 생일과 같습니다. 지금으로부터 284년 전인 1738524일 오후 845분경 영국 런던 올더스케잇 거리에서 존 웨슬리 목사님이 성령 체험을 하시고 회심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1738524일과 이 후의 일기들을 읽으면서 웨슬리의 성령 체험과 전환점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1738524일 존 웨슬리 회심 일은 감리교회의 생일입니다.

 

1738524 ()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오후 915분 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심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나 같은 죄인의 죄까지도 가져가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후에 나는 나를 악의에 차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5:44) 위하여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증거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유혹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소리를 치니까 모두 달아났다. 그러나 유혹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다본즉 하나님은 그의 성소로부터 도움을 보내주셨다. 여기서 나는 나의 현재 상태와 나의 과거 상태가 서로 다름을 발견했다. 과거에는 은혜 아래 있고, 또한 율법에게 속하였으므로 비록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도 패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다.

 

 

1738524일의 일기는 존 웨슬리에게 회심 말 그대로 마음을 돌이키는 생의 전환점이었습니다. 웨슬리의 회심은 우직한 순례자의 출발점이었습니다. 보통 우리가 알고 있는 웨슬리의 일기는 앞부분입니다. 마음이 뜨거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자신의 구주임을 고백하는 확신을 기록한 앞 부분이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분명 앞 부분은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뒷 부분에서도 중요한 것을 발견합니다. 회심 이전에는 패한 때가 많았지만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라는 고백이다. 회심을 경험했다고 모든 것이 하루 아침에 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유혹은 이어졌습니다. 싸움도 계속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항상 승리하는 것>입니다. 회심 이전에는 패하기도 했지만 회심 이후에는 항상 승리하였습니다.

 

<항상 승리하였다> 이것이 웨슬리의 회심일이 가져온 분명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일기 원문의 영어를 어떻게 번역하느냐의 문법보다 <항상 승리하였다>는 이 선언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항상 승리하고 있습니까? 항상 승리하는 전환점을 가지시고 계십니까? 감리교회 성도들에게 524일은 그것을 묻고 확인하는 날입니다.

 

웨슬리의 영적 투쟁과 승리에 대하여 우리는 회심 다음 해에 씌여진 일기를 주목합니다.

 

173911() 페터레인 애찬식

 

웨스트리 홀 목사(웨슬리의 매부), 챨즈 킨친 목사, 인감 목사, 조지 휫필드 목사, 허칭 즈 목사, 내 동생 찰즈 목사가 60여 명의 다른 형제들과 함께 페터레인에서 갖게 된 애찬식에 참석했다. 새벽 3시 경이었다. 우리가 계속 갈급하게 기도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권능이 우리 위에 매우 강하게 임재하셨다. 그 권능 아래 많은 사람은 넘쳐흐르는 기쁨으로 울부짖었고, 그리고 많은 사람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의 현존 앞에서 그 위엄과 놀라움에서 약간 깨어나자마자, 우리는 한 목소리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의 주님이 되십니다" 를 불렀다.”

 

1739615()

 

저녁에 나는 피곤한 몸과 지친 마음으로 왑핑(Wapping) 집회에 갔다. 로마서 3:19에 관해 말씀 선포를 하려 했으나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를 몰랐다. 우리는 계속 찬송을 불렀다. 나의 마음은 어딘지는 모르나 공동 서신과 히브리서의 많은 구절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직접 지시해주실 것을 간절히 기도하고 성경을 열었더니 히브리서 10:19-22“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의 말씀을 주셨다.

 

내가 사람들에게 새롭고 산길(a new and living way)”을 통해서 가장 거룩한 성소'에 들어오라고 열심히 죄인들을 초청하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눈물과 큰 소리 로 하나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푹 쓰러져서 그 자리에서 몸에 힘이 빠진 상태로 누워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몹시 떨고 진동을 했다. 어떤 이들은 너무나 비탄에 젖은 나머지 육체의 모든 부분에 일종의 격동적인 동작을 보였으므로 4-5명의 사람들이 한 사람을 당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히스테리 환자와 간질병 환자들의 발작 증세를 보아 왔 으나, 그러나 이들은 그러한 증세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즉시 하나님께 믿음이 약 한 자들이 마음에 상처받지 않도록 기도했다.

 

17391023()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부득이 킹스우드(Kingswood)에 있는 한 젊은 부인 (Sally Jones란 여인임)에게 다시 가야만 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할 테니 각자가 판단하시기 바람) 그녀는 19-20 세 정도였으나 쓰지도 읽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2-3 명이 그녀를 잡고 있었다. 무서운 광경이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실망과 공포와 고뇌가 그녀의 창백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온몸이 수천 번 비틀어지는 것으로 보아 지옥의 개들이 그녀의 심장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을 나타내었다. 견딜 수 없는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뒤섞여 나왔다. 그러나 그녀의 돌처럼 굳어버린 두 눈은 울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입을 열자마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저주를 받았단 말이예요, 저주를. 영원히 파멸되었어요. 엿 새 전에만 왔어도 나를 도울 수 있었을 텐데. 이젠 늦었어요. 이제 나는 마귀의 자식이예요. 나를 마귀에게 주어 버렸어요. 나는 마귀의 것이니 마귀를 섬겨야 해요. 마귀와 함께 지옥에 가야해요. 나는 마귀의 것이고, 그를 섬겨야 해요. 그와 함께 지옥에 갈거예요. 나는 구원을 받을 수도 없고, 구원을 받지도 않을 거예요. 나는 저주 받아야만 하고 받을거예요. 그리고서 그녀는 악마에게 기도를 시작했다.

 

우리는 주님의 군사여, 일어나라, 일어나라”(챨스 웨슬리가 지은 찬송)라는 찬송을 불렀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잠자듯이 푹 쓰러졌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자마자, 말할 수 없이 격렬하게 다시 소란을 피웠다. “돌 심장이여, 터져 버려라....”그리고 그녀는 두 눈을 천정의 구석을 향해 고정 시키고는, “, 그가 저기 있어요. 좋은 악마여, 와서 나를 데리고 가렴. 네놈이 나의 골통을 부셔 버리겠다고 했잖아. 와서, 빨리하란 말이야. 난 너의 것이고, 너의 것이 될 것이란 말이야. 나를 데리고 가다오.”

 

우리는 다시 그녀에게로 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녀는 전처럼 또한번 푹 쓰러졌다. 그런데 또 다른 여인(Betty Somers로 판명됨)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9시경 내동생 찰스가 왔다. 우리는 함께 11시까지 계속 기도했다. 그때 하나님께서 고통당하는 첫 번째 여인과 두 번째 여인의 영혼 속에 한순간 평화의 말씀을 주시니, 그들 두 여인은 원수와 복수자(44:16)를 잠잠케 하신 주님을 함께 찬양하였다.

 

 

2) 성령 체험의 날- 감리교회의 정체성

 

우리는 존 웨슬리의 순례 여정 가운데 1738524일이 성령을 체험한 날이라고 기억합니다. 자신의 마음이 따뜻해지고, 항상 승리하는 출발점이 된 회심의 날의 체험은 분명 성령이 웨슬리 안에 내주하셔서 역사하신 날이라고 기념합니다. 신학자들은 존 웨슬리의 신학을 <사중표준과 통합의 신학>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사중표준은 성경, 전통, 이성, 체험입니다. 이 중에 전통은 초대 기독교, 성경은 개혁교회, 이성은 성공회와 연관이 있습니다. 시차적으로는 정교회와 천주교회의 전통의 교회가 있었고, 그다음에 루터와 깔뱅의 종교개혁의 교회가 있고, 그다음에 전통과 성경을 이성의 빛 아래 절충한 영국의 성공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성공회를 완전하게 만든 체험의 감리교회가 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는 체험의 교회입니다.

 

이는 자연히 신학적인 강조점에서도 다릅니다. 루터와 깔뱅과 웨슬리는 개신교회의 3대 스승인데, 루터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대속자인 예수님 성자를 강조했고, 깔뱅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성부를 강조했고, 웨슬리는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확신을 체험케 하시는 성령님을 강조했습니다. 정교회와 가톨릭의 전통에 반기를 들고 성경을 강조한 개신교회의 삼대 스승은 시간적으로 먼저 루터가 성자 예수님을, 그 뒤를 이어 깔뱅이 성부 하나님을, 마지막으로 웨슬리가 성령 보례사를 강조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두는 삼위일체 신앙 안에 있습니다.

 

감리교회의 형제들을 보면 이런 점은 더욱 분명합니다. 감리교회의 동생 가운데 자선 사업은 구세군이, 성결은 성결교회가, 사랑은 나사렛교회가 가져갔는데, 체험은 순복음교회와 미국의 복음적인 하나님의 교회가 가져갔습니다. 원래는 우리 감리교회의 자산들입니다.

 

 

3. 항상 승리하는 우직한 순례자

 

존 웨슬리의 회심 이후의 삶을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우직한 순례자>입니다. 웨슬리는 항상 승리하며 우직하게 순례자의 길을 갔습니다. 갈등도 있었고, 다툼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박해도 있었지만 항상 이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순례자에게 편안한 길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직한 순례자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순례길을 완주합니다. 그래서 악인의 장막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좋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 길을 기꺼이 갔습니다. 깡패들이 돌을 던지면 맞으면서 갔습니다. 성공회 제도가 강단을 빼앗으면 아버지 무덤에 올라가서 일주일씩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당이 없으면 하남 마운트 언덕 같은 야외에서 설교하였습니다. 우직한 순례자는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존 웨슬리는 그런 순례자였습니다. 우리는 웨슬리의 후예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순례길을 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우직한 순례자>들입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우직한 순례자>들입니다.

 

<84: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날 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순례자들은 성지를 순례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더 근원적으로는 하나님의 시온산을 향해 거룩한 삶의 길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우직한 순례자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우직>이라는 말이 뜻하는 <올곧게 한길로만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 때문입니다. 조금은 융통성이 없지만, 때로는 고집스럽기도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시온산을 향해 반듯하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오늘 읽은 시편 84편은 시온의 순례길을 가는 우직한 순례자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84:5~7]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위로에 대하여 찬양대를 인도하던 고라 자손들은 저 유명한 시편 84편을 남겼습니다. 시편 84편은 예배의 기쁨을 노래한 찬양시입니다. 코로나로 인하여 예배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괴로워하는 우리에게 시편 84편은 새로운 느낌으로 깊은 위로를 느끼게 합니다. 제가 새번역으로 시편 84편을 읽어보겠습니다.

 

1 만군의 주님, 주님이 계신 곳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주님의 궁전 뜰을 그리워하고 사모합니다. 내 마음도 이 몸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기쁨의 노래 부릅니다. 3 만군의 주님, 나의 왕, 나의 하나님, 참새도 주님의 제단 곁에서 제집을 짓고, 제비도 새끼 칠 보금자리를 얻습니다. 4 주님의 집에 사는 사람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합니다. (셀라)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8 주 만군의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야곱의 하나님,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셀라) 9 우리의 방패이신 하나님, 주님께서 기름을 부어 주신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10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11 주 하나님은 태양과 방패이시기에, 주님께서는 은혜와 영예를 내려 주시며, 정직한 사람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내려 주십니다. 12 만군의 주님,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복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주님께 힘을 얻고 더 얻어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 뵐 것입니다. 저는 시편 845절에서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을 우직한 순례자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에서 살기를 더 원합니다. (84:10) 이 우직한 순례자들은 하나님의 집 성전의 문지기만 되어도 좋아합니다. (84:10) 하나님은 이들이 눈물 골짜기를 걸어갈 때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십니다. (84:11)

 

서대문지방 모든 성도님도 존 웨슬리처럼 우직한 순례자들이십니다. 다같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르시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시편 84편을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경험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받으셨는지요? 저는 지난 2년 동안 시편 84편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경험하였습니다.

 

5 주님께서 주시는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입니다. 가을비도 샘물을 가득 채울 것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 마음이 시온의 순례길에 올라야 합니다.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에게는 눈물 골짜기를 지나갈 때에도 샘물이 솟아서 마실 것이고, 힘을 얻고 더 얻으며 올라가서 시온에서 하나님을 우러러뵐 것입니다. 한동안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라는 말이 유행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회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교회는 예배의 자유가 사라지고 교회의 공동체성이 사라지는 위기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절실합니다. 하나님은 우직한 순례자들을 위로하십니다. 존 웨슬리처럼 성령 체험을 통하여 회심을 체험하고 항상 승리하는 우직한 순례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예화> 존 웨슬리의 기도문

 

1. 존 웨슬리의 언약 기도문

 

존 웨슬리의 "언약의 기도" "the Covenant Prayer" by John Wesley

I am no longer my own, but thine.

 

Put me to what thou wilt, rank me with whom thou wilt.

 

Put me to doing, put me to suffering.

 

Let me be employed for thee or laid aside for thee,

 

exalted for thee or brought low for thee.

 

Let me be full, let me be empty.

 

Let me have all things, let me have nothing.

 

I freely and heartily yield all things to thy pleasure and disposal.

 

And now, O glorious and blessed God, Father, Son and Holy Spirit,

 

thou art mine, and I am thine.

 

So be it.

 

And the covenant which I have made on earth,

 

let it be ratified in heaven.

 

Amen.

 

 

저는 더이상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저를 붙들어 매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저를 붙이소서.

 

저로 행하게 하소서. 저에게 고난을 주소서. 저를 주님께서 고용하소서. 저를 주님의 처분에 맡깁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를 높이시고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를 낮추소서. 저를 채우기도 하시고, 비우기도 하소서.

저에게 모든 것을 주기도 하시며, 또한 제게서 모든 것을 가져가기도 하소서.

 

제 모든 것을 주님의 기쁨을 위해 쓰시도록 기꺼이 그리고 마음 다해 드립니다.

 

, 영광스럽고 복되신 하나님, 성부, 성자, 성령이시여, 저는 주님의 것이요, 주님은 저의 것입니다.

 

그렇게 되게 하소서. 제가 이 땅에서 맺은 이 언약을 하늘에서도 확증하여 주소서.

 

아멘.

 

 

 

2. 존 웨슬리의 거듭남 기도문

 

 

오 주님!

주님께서는 저희가 원하고 바라는 그 모든 것들을 넘치도록 풍부하게 가지고 계심을 압니다. 저희 모두가 주님의 그 풍요로움을 함께 누릴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은혜에 은혜를 더하셔서 저희들의 죄를 사해 주옵시고 저희의 죄악을 모두 소멸하게 하옵소서.

 

그 은혜 가운데에서 저희가 의롭다 함을 얻고 저희 심령이 성화 되어 정결한 영혼으로 주님의 성도들의 기업을 물려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존 웨슬리의 예비함 기도문

 

 

지극히 은혜로우신 주님, 당신께서는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사 스스로를 내어 주시므로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또한 저희 죄악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서의 고통을 겪으시려고 스스로를 낮추어 인간의 몸이 되셨습니다. 저희의 심령을 주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으로 채워주소서.

 

그리하여 저희들이 순종 안에서 주와 함께 살고 주님의 그 사랑 안에서 죽으며 다시 일어나 주님의 영광 속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즐거워할 수 있게 하소서.

 

4. 존 웨슬리의 구원 기도문

 

<구원>

 

영원하신 섭리로써

 

육체라는 배에다 저희들의 영혼을 실으신 하나님 아버지!

 

험한 바다와 같은 이 세상 그 어느 곳에도 저희를 정박하지 않게 하시고

 

이 바다를 곧 바로 지나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나라로 향하게 도와주옵소서.

 

 

 

또 한 사방 곳곳에서 저희를 향해 몰려드는 거센 위험들로부터

 

저희를 안전하게 보호하여 주옵시고

 

주님의 거룩한 계시를 받을 수 있도록

 

저희의 사랑이 전연히 준비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힘차게 앞으로 항해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려 주신 영원한 구원의 항구에

 

마침내 행복하게 이룰 수 있도록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