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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講論)/교회력과 예식 강론

이준 서거 100주기 기념 설교

우순(愚巡) 2022. 3. 10. 21:06
<이준 기념 설교 - 서철목사>...감리회 이준 서거 100주년 기념주일 공식 설교문중 하나
 
 
 
 

<이준 기념 설교 - 서철목사>

 

 

 

 

설교제목 :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교회

성경본분 : 에스겔 371-6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 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 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 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 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두리니 너희가 살리라 또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하셨다 하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리 감리교회가 모두 함께 지키는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오늘 저는 에스겔 371절로 6절의 말씀을 가지고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교회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도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시면서 큰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매 시간 말씀을 사모하는 모든 영혼을 만족시켜 주십니다. 오늘은 특별히 삼일절 기념주일이면서 이준 열사 순국 100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이준 열사의 서거일은 정식으로는 714일이지만 삼일절 기념 주일을 맞아 전국의 모든 감리교회가 함께 드립니다. 그리고 714일을 전후해서는 네델란드이 헤이그에서 정부와 함께 이준 열서 순국 100주년 기념식과 기념교회 봉헌식이 있을 예정입니다.

 

 

이준 열사는 1907615일부터 1개월간 개최되었던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던 고종황제의 밀사였습니다. 그는 만국평화회의에서 을사늑약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려다가 세계열강의 냉대를 받고 울분으로 병을 얻어 순국한 애국지사입니다. 일본에 의하여 강제적으로 조약된 을사늑약조약의 부당함을 세계에 알리고 싶었던 고종황제는 전덕기 목사를 통해 이준을 비롯하여 이상설과 이위종에게 신임장을 주어 헤이그에 조선대표로 파견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감리교회는 상동교회의 담임목사였던 전덕기 목사를 통해 조선독립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되고 민족교회로서 민중들의 빛이 되었습니다. 마치 이스라엘의 암흑기에 에스겔이 하나님의 비전을 보고 분열된 민족의 통일을 바라보았듯이 이준과 감리교회는 을사늑약조약으로 나라를 상실해가는 한민족의 독립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준은 1898년부터 독립협회(獨立協會)에 가입하면서 민권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고, 1902년에는 이상재(李商在) · 민영환(閔泳煥) · 이상설(李相卨) · 이동휘(李東輝) · 양기탁(梁起鐸) 등이 조직한 비밀결사단체인 개혁당(改革黨)에 참여하였습니다. 1904년에는 일본의 황무지개척권 요구에 반대하여 송수만(宋秀晩) · 정순만(鄭淳萬) 등과 대한보안회(大韓保安會)를 조직, 총무로서 활동하였으며. 1904년 일제의 주구 기관인 일진회(一進會)에 대항하기 위해 만민공진(萬民共進)’이란 뜻을 담은 공진회(共進會)를 조직하여 그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황주 철도(鐵島)에 유배되기도 하였습니다. 190511월 을사늑약조약 체결 직후에는 전덕기(全德基) · 정순만(鄭淳萬) · 이동휘(李東輝) · 최재학(崔在學) · 조성환(曺成煥) · 김구(金九) 등과 함께 조약폐기를 요구하는 상소운동(上疏運動)을 전개하였는데 이때 상소문을 작성하였습니다. 그후 1906년에는 국민교육회(國民敎育會)(1904824일 설립) 회장, 한북흥학회(漢北興學會), 헌정연구회(憲政硏究會) 회장직을 역임하면서 국권회복운동의 폭을 넓혀 나갔습니다. 이준이 만국평화회의의 밀사로 선정된 것은 만국공법에 대한 법률적인 소양과 위와 같은 국권회복운동의 경력 때문이었습니다.

 

 

이준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민족교회를 세워간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준에겐 믿음의 가슴에서 뿜어나오는 민족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에서 오는 조선독립의 비전과 희망을 보았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처럼 마른 뼈 같은 민족의 운명을 보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던지는 믿음의 가슴이 있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조약이 체결되자 우리 감리교회는 상동교회를 중심으로 초교파 구국기도회를 열어 합십하여 기도하면서 민족의 운명에 생기를 불어 넣었습니다. 전덕기 목사를 주축으로 김구, 이동휘, 이준, 주시경, 박용만, 이승만등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눈물의 예언자 예레미야처럼 민족을 위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이 조선을 독립국으로 세워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준은 그런 구국기도회의 영성을 체험하며 황제의 밀사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에 파견됩니다. 상동교회의 청년회인 엡웟회의 회장이었던 이준은 한국 민족을 빛 가운데로 이끌기 위하여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던 헤이그로 멀고도 먼 여행길을 떠났다가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타향에서 병으로 죽었습니다. 이준이 갔던 길은 참 멀고도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출발부터 어려움이 컸습니다. 당시 고종은 덕수궁에 갇혀 있었고 일본의 출입 통제가 심했습니다. 그래서 황제의 밀서도 받기가 어려웠습니다. 밀서의 내용은 을사조약 무효와 한국독립에 관한 열국 지원 요청을 만방에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구국의 밀서 신임장은 고종의 신임을 받던 감리교 선교사 헐버트가 가지고 나왔다는 설과 전덕기 목사의 친척인 박상궁과 내시 강석호의 도움으로 황제도 만나고 밀서도 가지고 나왔다는 설이 있습니다. 전달과정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덕기 목사에게 고종황제의 신임장이 들어 왔고 이준에게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준의 순국에는 전덕기 목사의 영적지도가 있습니다.

 

 

 

1. 우리 감리교회는 민족교회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민족교회입니다. 감리교회는 일찍부터 민족의 운명을 가슴 깊이 끌어 안고 아파한 민족교회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민족의 등불이 꺼져 갈 때 자신을 내어 던져 기꺼이 민족의 등불이 되었던 민족교회입니다. 특히 1907년도에 상동교회의 담임목사로 취임한 전덕기 목사를 중심으로 한 상동파는 한국 근대사의 주역이 되었으며 민족교회의 사명을 섬겨간 믿음의 선각자들이었습니다. 상동파에는 김구, 이회영, 이동녕, 윤치호, 서재필등 한국 근대사와 독립 운동사의 주역들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독립문도 세웠습니다. 독립문은 1895년 미국에서 나와 아펜젤러 선교사의 집에 묵으면서 배재학당에서 정치학 강의를 맡고 있는 서재필 박사가 윤치호 남궁억 전덕기 이상재 등과 합하여 독립협회를 조직한 후 중국 사신을 맞아들이는 영은문을 헐고 독립문을 세웠고 중국을 사모하는 모화관을 개조하여 독립관으로 만들었으며 한국 민족에게 민주주의 사상을 깨우쳐 주기 위해 독립신문을 발간했습니다. 이준은 그 독립협회에도 가입하여 평의장으로 맹활약을 했습니다다.

 

 

선지자 에스겔이 본 37장의 마른 뼈들은 이스라엘 족속입니다(37:11). 에스겔은 포로수용소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분열된 자기 민족이 하나로 통일될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37:15-17). 자기 손에서 둘로 분열된 자기 민족이 하나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아주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믿음의 열매로서의 희망입니다. 이준은 전덕기 목사와 함께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가 간 길은 멀고도 먼 길이었고 결국은 죽음의 길이었지만 희망의 길이었습니다. 모두가 절망한 그발 강가의 포로수용소에서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던 에스겔이 민족통일의 희망을 가졌던 것처럼 조선독립의 희망을 보았던 믿음의 길이었습니다. 비록 이준은 자기가 원했던 만큼 조선 일본의 만행을 알리지 못한 채 울분으로 병을 얻어 죽어 돌아왔지만 그는 결코 그냥 죽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희망의 씨를 심고 돌아왔습니다. 아니 그 자신이 희망의 씨앗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이준이 심었던 씨앗은 겨자씨처럼 작은 씨앗이었지만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 감리교회는 전덕기 목사의 지도 아래 전국의 엡웟청년회와 함께 조선독립운동의 선봉에 서게 되고 한민족의 역사에 민족교회로 자리를 잡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조약이 체결되자 상동교회에서는 전국감리교회 엡윗청년회 연합회가 소집되어 "을사늑약조약" 무효상소운동을 결의하였는데, 이때 상동교회 엡윗회 대표로 참석한 이준도 대한문에 나가 상소를 올리다가 일본 경찰에 의해 무참히 해산되고 말았습니다. 또 이준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나자 국채보상연합회의소를 설립하여 소장이 되었으며 그 해 조직된 항일 결사 신민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이준은 전덕기 목사의 권유로 만국평화회의에 대표로 참석합니다. 19077월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제2회 만국평화회의가 열린다는 소식은 먼저 들은 양기탁에 의해 즉시 상동교회 공옥학교 교감 이회영에게 알렸고 이회영은 전덕기 목사에게 알렸으며, 전덕기 목사는 이회영 이동휘 등 여러 동지들과 기도하한 후에, 고종 황제의 특사를 파견하여 을사보호조약은 일제의 강압이며 결코 한국 황제의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알려 무효화시키기로 합의했습니다. 특사는 이상설, 이준, 이위종으로 정한 후 이 뜻을 은밀히 고종 황제에게 전하였고, 1907420일 고종의 신임장을 받았다. 이후 전덕기 목사는 이준에게 신임장을 전달하고 상동교회에서 그를 위해 마지막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평화를 알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민족의 아픔을 치유했던 민족교회입니다. 거기에 감리교회 목사 전덕기가 있고, 상동교회가 있으며, 감리교회 교인 이준이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에스겔이 이스라엘의 희망을 보았듯이 우리 민족의 희망을 보았던 민족교회입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는 단순히 사회단체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이 아니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로서 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단순히 우리 민족의 독립에 대한 어렴풋한 기대만으로 독립운동을 한 것 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위에서 독립운동을 선도했습니다. 그래서 감리교회의 애국지사들은 기도했고 말씀을 선포했으며 목회자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당시 (1905년 을시늑약조약)는 우리나라 주권이 일본의 수중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금식기도회와 구국철야기도회가 상동교회에서 매일 밤 열렸습니다. 전덕기 목사는 전국 감리교회 엡윗청년회 연합회를 소집하여 5명씩 한 반으로 나누어 상동교회에서 기도를 드린 후 대한문으로 가서 을사늑약주약은 무효이며 일본의 강압으로 빼앗긴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상소를 고종 황제께 올렸습니다다. 이때, 진남포 김구 회장, 이동녕, 조성환도 같이 활동하였다.

 

 

이준도 그랬습니다. 이준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준은 기독교인이 된 것은 아마도 그의 부인 이일정 여사 때문일 것입니다. 이준은 189335세에 17세이던 이화학당 출신의 이일정씨와 결혼을 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부인 이일정은 탈환회를 조직(당시 부인들의 반지를 빼서 독립운동에 바쳤던 모임)하였고, 이어서 감선회(찬거리 값을 절약해 자금을 내는 모임)도 조직하는 등 가두시위대에 뛰어들어 명렬히 구국운동을 했던 여자였습니다. 이준은 35(1893)때 당시 17세였던 이화학당 출신 이일정과 김병시의 중매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이나 부인이라기보다, 나라를 구해야 한다는 뜨거운 애국심을 가진 동지적 결합이라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동교회에서 전덕기 목사의 지도 아래 신실한 믿음의 사역자로 성장했습니다. 이처럼 이준이 본격적으로 십자가의 보혈과 구원의 의미를 알게 된 것은 전덕기 목사님을 만나 상동교회에서 청년 회장직을 맡을 때부터입니다. 청년회장직을 맡은 이준은 속장직도 함께 맡으면서 서재필, 윤지호 등과 같이 청년 운동을 통해 구국운동과 연결시켰다.

 

 

2. 우리 감리교회는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교회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한민족사에 생기를 불어넣은 민족교회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대로 마른 뼈를 향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너희 모든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37:4). 생기에게 대언했습니다.“주 여호와의 말씀에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하셨다.”(37:9) 마른 뼈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까? 생기가 에스겔의 명령대로 움직이겠습니까?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절망적인 상황뿐입니다. 흔히 말하는 대로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에스겔은 믿음으로 마른 뼈들에게 생기의 바람이 불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기가 불어 왔습니다. 생기의 바람이 사방에서부터 사망을 당한 마른 뼈들에게 불어와 큰 군대를 만들었습니다(37:9) 에스겔의 예언은 계속 이어집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37:12)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비록 마른 뼈들 같아 소망이 사라진 이스라엘 민족이지만(37:11), 그들을 무덤을 열고 나오게 할 것이라고 약속합니다(37:13)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 민족의 희망입니다.

 

 

이준은 우리 감리교회의 청년회장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의 한 가운데 주님을 모셨습니다. 이준은 담임목사였던 전덕기 목사의 영정 지도아래 믿음으로 조선독립운동에 참여했습니다. 이준은 친일파인 일진회와 대항하기 위해 공진회(共進會)를 조직, 회장에 추대되어 친일대신 5명을 성토하다가 체포되어, 황주 철도(黃州 鐵島)6개월 간 유배당했을 때 성경을 깊이 연구하는 중에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진실한 신앙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준에게 기독교는 처음에는 정치생활의 구급피난소였지만 전덕기 목사와 상동교회를 통해 우리 감리교회의 교우가 되면서 믿음이 깊어졌습니다. 특히 유배 중에 더욱 예수의 성스러운 희생의 정신인 십자가의 피의 의의를 내 것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 때부터 이준은 전덕기 목사의 지도아래 우리 감리교회 교우들과 믿음의 교제를 나누면서 깊은 믿음의 기독교 정신아래 민족독립운동을 섬겼습니다.

 

 

전덕기 목사는 고종황제의 특명을 받고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모여 철야기도한 후 이준을 이상설이위종 등과 함께 해아밀사로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준은 광무황제의 헤이그밀사 신임장을 포함하여 미국, 러시아, 오스트리아, 화란의 원수들에게 보내는 친서 4통과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보내는 친서를 받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구국운동에 우호적이던 미국인 Herbert와 영국인 Bethell에게도 밀사파견의 지원을 호소하고 떠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준은 장도에 오르기 전 그동안 구국운동에 동참하였던 안창호이갑이종호 등의 동지들이 베풀어 준 전별연에 참석하여 마음의 준비를 더욱 다졌는데, 그때 동지들이 필적을 남겨 달라는 요청으로 우국충정의 시를 몇 수 지어 주었다. 그 중 이종호에게 건네 준 시에는 사회가 평안할 날이 없으니 한 집안을 어찌 근심하리, 평생 우리들의 일은 독립과 자유를 구할 뿐이라고 읊었다. 이준보다 먼저 출발한 이상설은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여 이위종을 만났다. 이상설이 사전에 러시아에 간 것은 이위종이가 어학에 능통하다는 것을 알고 그를 특사의 일원으로 포함시켜 회의참석에 따른 준비를 하기위한 것이었다. 이준은 출발하기에 앞서 420일 자강회의 주최로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 에서 생존경쟁이라는 제하의 연설을 하여 최후의 사자후로 청중을 감동시켰으며 또한 당시 주구배들에게 경중을 울렸다.

 

 

이준은 1907422일 가족들과의 고별의 아픔을 간직한 채 서울역을 떠나, 부산항을 거쳐 블라디보스톡으로가 그곳에서 이상설과 합류하였으며 521일 시베리아 철도편으로 블라디보스톡을 출발하여 64일 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하였습니다. 이준과 이상설은 이범진, 이위종을 만나 그간의 경과에 대하여 토론하며 장서공고사를 불어로 번역한 후 619일 그곳을 출발하여 독일 베를린에 들려 장서를 인쇄하고 동월 25일에 만국평화회의 개최지인 헤이그에 도착하여 웨곤가 124번지의 드융 호텔에 숙소를 정하였습니다. 628장서와 그 부속문서인 이인불법행위책자를 40여 참가국 위원들에게 보냈으며, 그 다음날 러시아 대표이며 평화회의 의장인 넬리도브 백작을 방문하였으나 네덜란드 정부의 소개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여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이어 30일에는 부회장인 네덜란드 전 외무대신 뽀포로를 방문하였으나 역시 거절당하였습니다. 이어 네덜란드 외무대신에게도 서한을 급송하여 면회를 요청하였으나 평화회의에서의 발언은 어렵다는 통지를 받아 거절당하고 말았습니다.

 

 

역사적 만국평화회의는 1907615일부터 1개월간 개최되었습니다. 당시 참가국은 46개국이고 대표는 약 247명이었습니다. 이상설을 비롯한 3명의 특사는 만국평화회의 의장에게 광무황제의 친서와 신임장인 공고사를 제출하고 한국의 대표로서 공식적인 활동을 전개하려 하였으나 일본과 영국대표의 노골적인 방해로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에 세 특사들은 일제의 한국침략을 폭로, 규탄하고 을사조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를 각국대표와 언론에 공개하자 각국 언론들은 동정적이었으나 열강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더욱이 일제는 이준 열사의 이러한 열정적이 노력에 위기감을 갖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특사들의 활동을 저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세 특사는 일제의 방해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한국의 입장과 일본의 부당성을 웅변으로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각국 신문기자들은 깊은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영국인 William. T. Stead가 회장인 국제협회의 후원을 얻고 있는 회보인 Courrier de la Conference(평회회의보)장서의 전문을 게재 하였으며, 79일에는 협회의 회합에 귀빈으로 초대되어 연설 할 기회를 얻어 이위종으로 하여금 불어로 연설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위종의 열성적인 호소는 참석한 각국의 이름난 언론인은 물론 평화회의의 각국대표 및 그들의 수행원들까지도 감명을 주어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습습니다. 이위종은 일본의 개화된 면만 보지 말고 야만적이고 배신적인 면도 보아야 하며 또한 일본이 한국정부에 대해 조약을 강요하였으며 많은 국민들은 예속보다는 죽음을 택하려 한다고 말하고, 나라를 살리려고 각자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치고 있다고 역설하였다. 이와 같은 이위종의 감격적인 웅변내용은 헤이그에서 발행되던 평화회의보Haagsche Courant지에 보도되었다. 1907. 7. 10일자 이위종의 국제협회에서의 연설 이후 각국 신문이 매일같이 한국사정을 논의하여 억일부한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각국 대표들은 공례를 빙자하여 한국의 청원을 공감하지 않자 열사는 분격을 금하지 못하고 연일 애통하다가 1907년 음력 714일 한을 남긴 채 순국하였습니다.

 

 

선지자 에스겔은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1:1).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1:3).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습니다(1:3). 그래서 그는 마른 뼈를 보았지만 생기의 표적을 보았습니다.(37). 하나님이 물었습니다.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37:3). 에스겔은 주께서 아신다고 대답합니다(37:3). 여기 위대한 신앙인의 믿음이 있습니다. 주께서 아십니다! 비록 마른 뼈들이라도 살 수 있는 지는 주님께서 아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는 마른 뼈들이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에스겔은 마른 뼈들이 살아 일어나 큰 군대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37:10). 믿음이란 주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아십니다. 주님은 마른 뼈를 살려내어 큰 군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희망은 주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이준은 신앙심과 애국심이 조화를 이루어 에스겔처럼 민족의 독립과 자유에 대한 희마을 보았고 자기 자신을 아낌없이 헌신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감리교회요 우리 민족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위대한 자산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희망은 생기를 불어넣어 마른 뼈를 큰 군대로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그런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는 민족교회입니다. 우리 모두 에스겔처럼 믿음의 문으로 민족의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앙심과 애국심이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서 하나의 혼으로 발현되어 우리 민족의 희망을 다시 보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 감리교회는 다시 민족의 미래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는 다시 민족의 미래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겠습니다. 2007년도는 아주 중요한 해입니다. 이준 열사가 순국한지 100주년이요, 상동파의 지도자 전덕기 목사가 상동교회의 담임목사가 된지 100주년이며, 영적대각성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입니다. 한국 교회 대부분이 영적대각성 100주년을 의미 있게 준비하고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감리교회는 영적대각성 운동만이 아니라 전덕기 목사 취임과 이준 열사 순국이라는 또 다른 100주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영적대각성의 영성을 함께 나누면서도 민족문제의 중심에 헌신했던 위대한 믿음의 유산이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위대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과 문화가 결합하고, 하늘과 땅이 축제를 벌이는 신앙의 조화에 감리교회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단순한 사회운동가들처럼 사회과학적인 이론에 근거한 민중운동가들이 아니었습니다. 반대로 단순히 교회 안에서 기도만 하던 편협한 신앙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선배들은 뜨겁게 기도하면서도 죽음의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결연하게 뛰어들어 자기 몸을 불사름으로 이 땅의 민중들에게 빛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복음과 문화의 결합이 있고 하늘과 땅의 만남이 있습니다.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가 있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복음위임과 문화위임이 함께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과 땅의 평화가 함께 선포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것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발산되는 진리의 빛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민족교회로서 한민족의 역사에 생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마른 뼈 같았던 우리 민족이 큰 군대가 되는 위대한 초석이 되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2007년도를 신실한 사람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선언했습니다. 어떻게 우리는 신실한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까? 100년전 이 땅에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섬겼던 위대한 믿음의 선배들을 모델로 삼으면 가능합니다. 이준은 물론이고 전덕기 목사와 상동파를 중심으로 한 감리교회의 선배들은 우리 민족사에 희망을 주었던 신실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아직 한국 사회에 기독교가 대중화되지 못했음에도 황제의 밀서를 받아 올 만큼 신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수 많은 애국지사들을 상동교회 지하실에 모을 수 있는 구심력을 가진 신실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한국 민족의 운명을 이끄는 지도력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정부도 민중도 움직일 수 있는 영적 지도력이 충만했습니다. 민족은 그들을 신뢰했고, 민중은 그들을 따라갔으며, 정부의 관리들과 애국지사들은 민족의 운명을 그들에게 맡겼습니다. 분명 그들은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의 신실한 믿음의 지도자들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감리교회 성도 여러분! 다시 일어납시다. 다시 시작합시다. 다시 무릎을 꿇고 기도합시다. 다시 우리 민족의 장래에 소망이 보이도록 생기를 불어넣읍시다. 우리 감리교회는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교회입니다. 우리 민족이 어둠에 묻혀 무덤에 갇힌 마른 뼈 같았을 때 믿음으로 일어나 생기를 불어넣었던 민족교회입니다. 모든 감리교회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로, 모든 감리교인은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사람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영적대각성 100주년과 함께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며 회개하면 우리의 마음을 붙드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에스겔은 37장에서 마른 뼈 비전을 보기 전 36장에서 영적대각성을 외칩니다.

 

 

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1)굳은 마음을 제하고 2)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중략...그 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불선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인하여 스스로 밉게 보리라 ”(36:24-31)

 

우리 감리교회가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가 될 수 있는 길은 우리 스스로가 신실한 사람들이 되도록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100년 전 감리교회처럼 우리 민족의 중심에 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에스겔이 보았던 것처럼 황무지가 변하여 에덴동산이 되며 무너진 성읍들이 세워질 것입니다.(36:32-36) 또 에스겔이 자신의 손 안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가 되는 비전을 보았듯이 우리 민족의 통일을 바라 볼 수 있습니다(37:15-23) 100년 전의 민족운동은 독립운동이었지만 100주년이 되는 지금의 민족운동은 통일운동입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고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지는 평화통일 운동이 우리의 민족운동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이 땅의 분단이 끝나고 하나의 나라가 되며 한 임금이 다스리는 통일의 시대가 열리도록 합니다. 이제 헤이그의 만국평화회의는 과거의 역사가 되었지만 우리 민족의 평화통일회의는 미래의 역사요 현재의 역사로 우리 앞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분단된 민족의 가슴에 생기를 불어넣어야 합니다. 마른 뼈처럼 죽어가며 무덤에 갇혀있는 이 땅의 암울한 어두움에 빛을 던져야 합니다. 그 길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것입니다. 에스겔은 하늘이 열리며 보며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1:1). 하나님의 말씀이 특별하게 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1:3). 하나님의 손에 강력하게 붙들렸습니다(1:3) 그래서 그는 녹슨 가마의 녹을 소멸하는 비전을 보았습니다(24:6-14), 성전의 동편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비전을 보았습니다(겔겔47:1-12) 그리고 분단된 민족이 통일되는 것을 보았습니다(37)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 맑은 물로 씻어 정결함을 얻어야 합니다(36:25) 그리고 새로운 영과 새로운 마음을 받아야 합니다(36:26) 2007년도는 그런 점에서 우리 감리교회에는 아주 의미가 깊습니다. 영적대각성 운동과 민족통일운동이 함께 어우러지는 생기의 바람이 불어오도록 생기를 대하여 대언해야 합니다.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 생수의 강물이 흐르게 하며 마른 뼈들이 살아나게 하는 축제가 벌어지도록 생기야 사방에서 불어와 이 사망을 당한 자들을 살리라고 외쳐야 합니다. 복음전도와 민중사랑이 하나로 춤을 추는 민족교회의 위대한 빛을 다시 드러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스겔처럼 절망가운데서도 소망을 보아야 합니다. 이준처럼 전덕기 목사처럼 민족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상동교회 지하실에서 기도하고 마음을 모은 후에 손과 발로 행동했듯이 우리 감리교회는 민족의 문제 앞에 정면으로 응전해야 합니다. 머나먼 헤이그를 갔던 이준처럼 멀고 먼 길일 지라도 우리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가 가야할 길을 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함께 기도하면서 이준이 전덕기 목사의 영적지도를 받은 것처럼 모든 감리교회 교우들은 목회자의 영적지도아래 생기를 불어넣는 민족교회의 사역자로 헌신해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단순히 1907년을 반복하지 않고 넘어서기 위하여 'Beyond 1907'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닙니다. 과거의 회상이나 반복이 아닙니다. 과거를 재현하되 넘어서서 승화시키는 것입니다. 이준 열사 순국도 기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다시 한 번 재현되고 승화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100년 전의 독립운동의 의미처럼 중요한 우리 민족의 핵심과업인 통일운동에 우리 감리교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합니다. 그 첫걸음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이며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놀라운 표적을 볼 것입니다.

 

 

이준! 그가 위대했던 것은 불가능한 일을 죽어가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신실함이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좋은 목회자와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젠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질 때입니다. 이젠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비전과 약속을 바라다 볼 때입니다. 이젠 우리가 우리 민족에게 생기를 불어넣기 위하여 만국평화회의 먼 길을 떠날 때입니다. 비록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반드시 주님께서 우리 민족의 장래에 통일의 축제를 열어 황무한 땅을 에덴동산처럼 만드실 것을 믿습니다. 그 땅에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그 땅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소리가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생기를 불어넣는 민조교회입니다. 이 땅에 희망을 주는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회 성도들은 이 땅에 하나님의 평화가 임하게 하는 빛입니다. 민족의 빛이요 민중의 빛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