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교회력과 예식 강론

평화를 누리십니까?(눅2:8~14) 2015-1225 성탄절

우순(愚巡) 2015. 12. 26. 15:49

평화를 누리십니까?

 

<누가복음 2:8~14> 8 그 지역의 목자들이 들에서 밤을 새우면서, 자기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는데, 9 주의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의 영광이 그들에게 두루 비치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해 준다.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12 너희는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적이다." 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14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성탄절 아침입니다.

성탄절에 우리 상동교회에 예배하러 오신 것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구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거룩하신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자 우리 모두 옆 사람과 성탄절 인사를 하십시다.

메리 크리스마스!

좋은 성탄절입니다!

 

다시 인사하실까요?

이 번에는 전후좌우 네 분 씩 즐거운 성탄절 인사를 나눕시다.

이 번에는 오늘 설교의 주제로 인사하십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누리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평화가 당신에게 임하시기를 축복합니다.”

 

[평화를 만든 우리 상동교회]

 

제가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어제 저녁 JTBC 방송에서 윌림엄 벤튼 스크랜턴의 이야기를 보신 분 손들어 보시지요? 보신 분들에게 천대에 이르는 복이 있을지어다! (웃음) 못 보신 분들은 JTBC 방송 홈페이지에 들어가셔서 보시기를 바랍니다. 무료입니다. 어제는 못 보셨지만 홈페이지에 가셔서 보실 분들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 분들에게도 천대에 이르는 복이 있을지어다! 어제 JTBC 방송국에서는 저녁 630분부터 755분까지 스크랜턴 특집방송을 방송했습니다. 타이틀이 “ JTBC 특집프로그램 조선을 향한 생명과 사랑, 윌리엄 스크랜턴 입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스크랜턴 선교 130주년을 맞이하여 JTBC가 윌리엄 스크랜턴을 새롭게 조명했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윌리엄 벤튼 스크랜턴이 세운 교회 들 중에 중심 교회입니다. 스크랜턴의 선교사역의 본산이 우리 상동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민족교회연구소 사무국장이신 김종설 권사님이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도 인터뷰를 했는데 거의 다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습니다. 제가 좀 원색적인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면서도 삭제될 것이라고 웃으면서 예언(?)했습니다. 제 예언이 맞았습니다. 거의 다 삭제되었습니다. (웃음)

 

저는 이런 내용으로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가난한 자의 이웃이며 민중교회로 시작했습니다. 스크랜턴은 조선 민중의 평화를 위하여 가장 낮고 소외된 남대문 시장의 걸인들과 빈민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습니다. 요즘 한국 교회는 너무 보수화되어서 역사의식을 잃어버리고 가진 자의 편에 서서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스크랜턴을 다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스크랜턴의 선교사역은 세상의 빛이었으며 상동교회는 그 본산으로서 민중교회를 지향했습니다. 그리고 스크랜턴의 수제자인 전덕기 목사는 남대문의 민중이 아니라 조선의 민중을 위한 교회를 지향하여 상동교회를 민족교회로 세워갔습니다. 우리가 스크랜턴을 기념한다면 역사를 후퇴시키고 군사 쿠테타 세력을 비호하는 악의 무리들과 결별해야 합니다. 스크랜턴의 마음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자유와 평등의 세상이었습니다. 민중들이 환하게 웃는 민중들의 평화가 충만한 세상이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람이 사람으로 대접을 받고 사람이 사람으로서 자존감을 느끼게 하는 만인평등의 세상이 스크랜턴이 꿈꾸던 세상입니다. 전덕기가 4년 만에 세례를 자원한 것도 스크랜턴이 보여준 민중에 대한 평등한 마음이었고 진정한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전덕기 목사님은 스크랜턴의 가족들이 보여준 평등한 대접 때문에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스크랜턴을 보면 볼수록, 상동교회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감동이 됩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가진 교회입니다. 1905515일 조선 선교사직을 사임한 스크랜턴 선교사의 이야기는 가슴을 뭉클하게 합니다. 스크랜턴이 우리에게 전한 복음은 <세상의 빛>이었고 <조선 민중의 평화>입니다. 그리고 스크랜턴의 제자인 전덕기가 전한 복음도 조선 민족의 평화였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위대한 교회입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한국 교회의 생명이 흐르고 있는 역사적인 교회입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교회는 친북좌파가 되서도 안 되지만 군사 쿠테타 세력을 비호하고 축복하는 수구꼴통이 되서도 안 됩니다. 친일 유신 독재의 망령이 사회를 엄습해 옵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역사책이나 국정화를 통해 획일화 하려고 합니다. 안됩니다. 교회는 복음적인 공동체를 지향하면서 이 땅의 아픔에 동참하는 <평화의 성소>가 되어야 합니다.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전한 복음은 조선 민중의 평화였으며, 전덕기 목사님이 온 몸을 다 바쳐 이룩한 교회는 조선 민족의 평화였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는 곧 조선의 독립을 통해서 얻으려는 이 땅의 평화였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선물하신 평화입니다.

 

성탄절입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혹시 오늘 오후에 함께 할 일이 없으신 분들은 저랑 함께 오후를 보내시지요? 저는 오늘 오후 3시에는 시청 광장에서 <고난 받는 이들과 함께 하는 성탄절 예배>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오늘 시청광장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학생들, 펑화통일을 염원하는 평화 운동가들과 함께 성만찬을 나누고 헌금을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사역한 전남병 목사님이 성만찬 분급자로 섬기신다고 합니다. 오늘 헌금은 민주주의, 세월호, 국정교과서, 노동개악, 평화통일, 교회개혁을 위하여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730분부터 금요기도회를 섬기려고 합니다. 성탄절에 조용히 기도를 하면서 우리 상동교회와 우리나라를 위하여 조용한 기도를 드리려고 합니다. 함께 하실 분들은 오시기 바랍니다.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

 

오늘 저는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평화를 누리십니까?>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는데 지금 그 예수님의 평화를 누리시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를 설립하신 스크랜턴이 전하였던 그 조선 민중의 평화를 누리시고 계십니까? 우리 교회의 상징인 전덕기 목사님이 목숨을 바쳐 얻으려고 했던 그 조선 민족의 평화를 누리시고 계십니까? 성탄절 아침 우리 모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면서 평화를 진정으로 누리는 길을 함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평화는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면서 함께 보내신 하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날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14> "가장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땅에서는 주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로 오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하늘의 평화가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9:6~7> 6 한 아기가 우리에게서 태어났다. 우리가 한 아들을 얻었다. 그는 우리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그의 이름은 '기묘자, 모사,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평화의 왕'이라고 불릴 것이다. 7 그의 왕권은 점점 더 커지고 나라의 평화도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그가 다윗의 보좌와 왕국 위에 앉아서, 이제부터 영원히, 공평과 정의로 그 나라를 굳게 세울 것이다. 만군의 주의 열심이 이것을 반드시 이루실 것이다.

 

히브리서의 말씀을 아시지요?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멜리기세덱의 서열을 좇아 오셨다고 하시는데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6:20~7:2> 6:20 예수께서는 앞서서 달려가신 분으로서, 우리를 위하여 거기에 들어가셔서,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습니다. 7:1 이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여러 왕을 무찌르고 돌아올 때에, 그를 만나서 축복해 주었습니다. 2 아브라함은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첫째로, 멜기세덱이란 이름은 정의의 왕이라는 뜻이요, 다음으로, 그는 또한 살렘 왕인데, 그것은 평화의 왕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는 곳에 평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만나시고 파송하실 때에 평화의 인사를 하셨습니다.

 

<20:19>19 그 날, 곧 주간의 첫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인들이 무서워서, 문을 모두 닫아걸고 있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오시어, 그들 가운데 서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20이 말씀을 하시고, 두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를 보고 기뻐하였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셨다.

 

사도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예수님의 평화를 설교했습니다.

 

<10:3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을 보내셨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민의 주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전한다고 했습니다.

 

<5:1>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하여 주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

 

사도 요한은 서신을 쓰면서 예수님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요이1:3>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오는 은혜와 자비와 평화가, 진리와 사랑 안에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초대 교회는 은혜와 함께 평화가 공식적인 인사말이 되었습니다.

<1:4> 나는, 같은 믿음을 따라 진실한 아들이 된 디도에게 이 편지를 씁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 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그대에게 있기를 빕니다.

 

이 평화를 누리시고 계십니까? 성탄절에 받을 은혜는 무엇보다도 평화의 은혜입니다. 우리들 마음에 예수님의 평화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곳곳에 주님의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예수님의 평화를 누리는 길]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평화를 누리는 길이 무엇입니까? 존 웨슬리 목사님은 설교를 통하여 평화에 이르는 길을 성경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잘 말씀해주셨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감리교회를 설립한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집 중에 나오는 평화를 읽어 보았습니다. 존 웨슬리 목사님의 설교 중에 평화에 관한 메시지들이 나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기독교는 행복의 종교이고 그 행복의 토대는 평화라고 설교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자연인이 아닌 하늘에 속한 영의 사람일 때 예수님이 주시는 진정한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설교하시었습니다.

 

1. 예수님의 평화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이 누립니다.

 

웨슬리는 고린도전서 2장을 인용하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은 사람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고 설교했습니다.

 

<고전2:12~14> 12 우리는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들을 깨달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우리가 이 선물들을 말하되, 사람의 지혜에서 배운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이 가르쳐 주시는 말로 합니다. 곧 신령한 것으로 신령한 것을 설명합니다. 14 자연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에 속한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어리석은 일이요, 그런 사람은 이런 일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이런 일들이 영적으로만 분별되기 때문입니다.

 

웨슬리의 설교입니다.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화는 자연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입니다. 성령 안에 거하면 그리스도가 주시는 평화가 있습니다. 그 평화는 모든 의혹 모든 고통에 찬 불안을 추방하는 평화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리스도인의 영과 함께,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거 합니다. 또 그것은 괴로움을 주는 모든 공포, 하나님의 진노의 공포, 지옥의 공포, 악마의 공포, 특히 죽음의 공포를 추방합니다. 하나님의 평화를 소유한 자는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을 바라기 때문입니다.<존 웨슬리 설교전집, 1, 140>

 

2. 예수님의 평화는 성령 안에서 사는 성도가 누립니다.

 

웨슬리의 설교입니다.

 

그러나 참 종교 곧 하나님과 사람에게 바르게 향하는 마음은 성결과 함께 행복도 포함합니다. 다만 의로울 뿐만 아니라 <평화와 성령 안에서의 기쁨>(14:17)입니다.

<존 웨슬리 설교전집, 1139>

 

웨슬리가 인용한 로마서 1417절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을 말합니다.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로마서 14장은 이어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은 성령 안에서 평화를 누릴 뿐 만 아니라 평화를 도모하라고 말씀합니다.

 

<14:18~19> 18 그리스도를 이렇게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19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평화를 도모하는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씁시다.

 

3. 예수님의 평화는 감사함으로 구하는 자가 누립니다.

 

빌립보서의 말씀입니다.

 

<4:6~7>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고,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7 그리하면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켜 줄

4. 예수님의 평화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는 자가 누립니다.

 

웨슬리는 예수님의 평화를 인내를 온전히 이룬 열매로 이해했습니다. 웨슬리의 설교문입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했는데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것은 완전한 열매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성령이 그것을 통해서 신자의 마음속에 생산하는 열매는 무엇입니까? 인내의 즉각적인 열매는 평화입니다. 마음의 평정과 정신적인 평온함인데, 인내가 없는 곳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평화는 자주 기쁨으로 발전합니다. “인내로 영혼을 얻을 수 있는사람들은 정신적인 고요함뿐만 아니라 승리와 환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다음과 같은 효력이 있습니다.

 

까다로운 성격의 거친 길을 평탄하게 만들며,

각자의 가슴에 작은 천국의 문을 열어 준다.”

 

<존 웨슬리 618>

 

5. 예수님의 평화는 믿음으로 괴로움을 이겨내는 성도들이 누립니다.

 

웨슬리는 <영혼의 암흑과 괴로움>을 구분하면서 영혼의 암흑 속에 사는 사람은 평화를 누리지 못하지만 괴로움 속에 사는 사람은 잠시 동안의 괴로움을 통하여 믿음을 단련시키고 희망을 갖기 때문에 평화를 누린다고 설교했습니다.

 

웨슬리의 설교문입니다.

 

나는 몇 가지 추론을 가지고 결론을 맺으려 합니다. 첫 째, 영혼의 암흑과 괴로움과의 차이가 얼마나 큰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체험적인 그리스도인들도 일반적으로 이 양자를 서로 혼동하고 있습니다. 암흑 또는 황폐된 상태는 성령에 의한 기쁨을 완전하게 상실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괴로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괴로움 가운데서도 우리는 말로다 표현할 수 없는 기쁨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암흑 속에 빠진 사람은 하나님의 평화를 잃어버리지만,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바로 괴로움 속에 있을 때에 은혜뿐만 아니라 평화가 넘쳐흐릅니다. 암흑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적으로 소명하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그 사랑이 점점 냉랭해지게 됩니다. 괴로움 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충만하게 유지되거나 오히려 날로 증가하게 됩니다. 반면에 암흑 속에 있는 사람은 믿음 자체를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다 할지라도 믿음은 몹시 퇴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 즉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증거를 확신하는 것은 과거처럼 분명하거나 강력하지 않습니다. 이에 비례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신뢰도 약해집니다.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지는 못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분명하고도 흔들림이 없는 확신을 가지며, 그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가 사함을 받았다는 그 사랑의 영속적인 증거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한 결과 우리가 불신앙에서 신앙을 , 절망에서 희망을, 싸움에서 평화를, 세상에 대한 사랑에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는 한 우리는 분명하게 암흑 속에서 괴로움을 구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웨슬리설교전집, 3, 243~244>

 

6. 예수님의 평화는 아버지의 원대로 사는 성도가 누립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는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우리 신앙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자기 부정>입니다. 우리는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는 언제나 우리들의 갈 길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22:42~44> 42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면,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게 하십시오." 43 [그 때에 천사가 하늘로부터 그에게 나타나서, 힘을 북돋우어 드렸다. 44 예수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서 땅에 떨어졌다.]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절기입니다. 왜 우리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할까요? 예수님의 생애와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탄생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 때문에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이 의미가 있는 것은 예수님의 삶이 의미가 있었고 예수님의 마지막이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자기를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른 것입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바로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가 이 땅에 오신 탄생의 목적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었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6: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7. 예수님의 평화는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 누립니다.

 

존 웨슬리는 플레처 목사를 매우 사랑했습니다. 플레처는 이화여고와 이화여대를 설립한 메리 플레처 스크랜턴의 가운데 이름이기도 합니다. 감신대 이덕주 교수는 아마도 메리의 아버님이 독실한 감리교회 성도이셨기 때문에 자기 딸에게 플레처라는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주었다고 추정합니다. 플레처는 초기 감리교회 목회자로 성령세례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복음주의 목사님이셨는데 미국의 하나님의 성회하나님의 교회의 성령운동의 성령세례론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웨슬리는 플레처 목사님의 장례식에서 시편 3737절을 인용하여서 평화에 대한 설교를 하였습니다. 제가 38절 까지 이어서 읽겠습니다.

 

<37:37~38> 37 흠 없는 사람을 지켜보고, 정직한 사람을 눈여겨보아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래가 있으나, 38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할 것이니, 악한 자들은 미래가 끊어지고 말 것이다.

 

시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있지만 범죄자들, 곧 평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바라보고 희망을 갖기 원합니다. 흔히 미래지향적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미래가 있는 사람, 미래의 희망을 가진 사람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사람도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785년 플레처의 장례식에서 행한 웨슬리의 설교문입니다.

 

우리는 단지 말할 수 있습니다. 형용할 수없는 평안함과 영의 고요함과 신자의 영혼을 보호하시는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서의 평온함입니다. 최근에 경비대가 도시를 지키는 것처럼 마음과 열정과 사랑을 지킬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각과 이해와 상상의 행동들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성의 활동들을 지키십니다. 그들이 경험한 이러한 평강은 예수의 피로 얻은 구속함을, 물론 죄의 용서함도, 처음으로 발견했을 때부터 그들이 계속 신앙 안에 머무르는 동안 약간의 고저는 있어도 경험됩니다. 콕에 정착한 첫 뻔 째 설교자 중의 한 사람인 에녹 윌리엄즈 (열한 살 때 이런 평강을 받게 되었고 한시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에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 후에 나중에는 너무나 기진하여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지만 <평화> <평화>라고 말하고 죽었습니다.

<존 웨슬리 6183쪽 플레처 목사의 죽음에 대하여>

 

 

[성탄절에 드리는 평화의 기도]

 

우리 모두 평화의 기도를 드립시다. 우리들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기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 모두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위해서, 평화의 기도를 드리십시다. 평화를 누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를 누리시는 거룩한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웨슬리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하나를 소개해드립니다.

 

주여! 당신의 능력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당신을 주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합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세상에 나타나신

당신을 향하여 끊임없는 할렐루야를 외치며

하늘에 있는 당신의 보좌를 향해서

우리가 여기서 찬양을 드립니다.

당신이 현존하시는 곳, 거기가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존 웨슬리 설교전집,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