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은혜와 예정(엡1:3~7) 2014-0824 주일

우순(愚巡) 2014. 8. 26. 16:18

은혜와 예정

 

<에베소서 13~7>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 주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군대에 가 있는 우리 자녀들을 위한 합심기도]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고는 하지만 계속되는 사고 소식에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특별히 요즈음 부대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와 성추행 소식에 아들들을 군대에 보낸 부모님들과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마음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요즘 젊은 엄마들이 화가 많이 나 있다고 합니다. 일명 앵그리 맘이라고 합니다. 세월호로 인해서 중고등학교 부모들이 화가 났었는데, 군에 간 병사들이 폭력에 시달리다 희생당한 것 때문에 40대 엄마들이 화가 났다고 합니다.

 

지난 주 우리 교회 부장회의에서는 군대에 간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혹시라도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하여 관심을 갖기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주일을 맞이하면서 군에 간 우리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선교목사님과 교육목사님이 제게 명단을 주셨는데 혹시 이름이 빠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시험 들지 마시고 부목사님들이나 제게 문자로 아이들 이름을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지금 군에 간 자녀들의 이름과 가족 그리고 부대 이름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건강한 사회의 빛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이 기도하고 있는 우리들의 자녀 이름을 제가 이름을 불러 보겠습니다.

 

권용희(권순환 권사 김옥진 집사 아들), 김광수(서민정 권사 외손자) , 김지영(김철인 집사 김옥진 집사 아들), 김태현(김영호 성도 남미경 집사 아들), 박상권(박석순 권사 신은주 권사 아들), 송희원(송동조 권사 민선화 권사 아들), 서은규(서영석 목사 임미선 사모 아들), 유찬열(유지호 성도 박미례권사 아들), 이선우(이동학 목사 김영례 사모 손자), 이원우(이영일 권사 박명희 집사 아들), 이지수(이호근 집사 김용자 권사 아들), 이홍섭(이상철 성도 문성호 집사 아들), 임희수(임광선 권사 강경희 집사 아들), 정온유(정효현 목사 이경숙 사모 아들), 조기상(조철호 장로 김정숙 권사(타교인) 아들), 최종원(백순옥 권사 손자), 하두현(하해용 성도 아들), 하영준(하승필 권사 이화 집사 아들)

 

자녀들을 군대에 보내 놓고 마음 아파하시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런 저런 사고 소식에 마음이 불편한 이 때 주님의 교회에 나와서 예배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하면 할수록 우리가 주일에 성전에 모여서 예배하는 것은 참 복된 일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들이 받은 이 예배자의 자유가 우리 자녀들에게 끊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무사히 군 복무를 마치고 우리들에게 돌아와서 사회의 빛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

 

오늘 우리가 들을 하나님의 말씀은 <은혜와 예정>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성경은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 선택과 예정의 말씀은 바울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간증입니다.

 

저는 선택과 예정의 말씀을 신앙고백과 간증의 입장에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은혜받기 위하여 <선택과 예정>이라는 성경 말씀을 깊이 묵상하려고 합니다. 교리논쟁이나 법리논쟁을 하지 않고 신앙고백적인 입장에서 또 은혜 받은 간증의 입장에서 말씀을 같이 나누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하나님의 예정을 깊이 묵상할수록 마음에 와 닿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깔뱅은 본문 말씀을 주석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네 가지 원인을 설명합니다. 동력인과 질료인과 목적인과 형상인입니다.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동력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동력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라는 것이고, 질료인은 물질로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구체적인 사랑은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룬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목적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고, 마지막은 형상인으로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는 복음전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동력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동기를 말하고, 질료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며, 목적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입니다. 그리고 형상인은 하나님의 은혜의 전달입니다.

 

 

[첫째도 은혜요 둘째도 은혜요 셋째도 은혜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묵상할 때 마음에 와 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선택과 예정>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면 치열한 논쟁거리가 됩니다만 신앙고백적으로 묵상하면 깊은 간증거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예정하셨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도,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도 은혜요, 둘째도 은혜요 셋째도 은혜입니다.

 

성경본문은 말씀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고 그의 은혜는 거저 주시는 은혜이고, 그 은혜는 풍성하다!

 

<1: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우리들은 우리들이 믿음으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교회를 다니고,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닙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주님의 교회를 다니면서 봉사하면서 자신이 쌓은 공덕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성경을 묵상하면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의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고, 나의 공적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앞섭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고 우리를 예정하셨다.

 

<1: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그리고 이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신령한 복입니다

 

<1: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우리는 믿음의 가치, 신앙의 가치를 깊이 묵상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주님의 은혜가 귀한 것을 아시고 계시지요?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시고 계시는지요?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신비스러움>을 느낍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은 신비스러운 일입니다. 모태신앙인은 저는 교회 가는 것을 당연시 했습니다. 목사의 아들인 저는 교회를 섬기는 일을 당연시 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믿음으로 시작하였다가 낙심한 사람들을 보면서, 심지어는 이단에 빠지고 적그리스도의 영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 교회를 다니는 것, 교회를 섬기는 일이 당연하고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탄의 방해가 있습니다. 악한 영의 방해가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내가 신앙을 유지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자기를 믿음으로 바라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보인다]

 

바울은 자기를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자기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은 것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무리 설명하려 해도 설명이 되지는 않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고전15:10)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고백하게 되고 창세전에 하나님이 자기를 부르셨다고 고백합니다.

 

어거스틴도 마찬가지의 고백을 합니다. 마니교에 빠지기도 했고, 술집을 전전하며 사생아를 출산시키기도 했던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여전히 자기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고는 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깊은 감사를 고백합니다. 그리고 당연히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모두 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임을 고백합니다.

바울의 고백과 어거스틴의 고백을 이어 받은 깔뱅도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고백합니다. 프랑스 북부지방에서 일어난 위그노들의 종교개혁운동에 동참한 깔뱅은 스위스로 건너와 성경 중심의 교회와 신앙생활을 주장하면서 종교개혁운동을 이어갑니다. 깔뱅은 스위스로 건너와서 목숨을 건진 종교개혁가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을 고백하게 되고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합니다. 이들처럼 선택과 예정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고백하는 신앙고백이요 간증입니다. 그래서 선택과 예정을 교리적으로 분석하면 논리적인 허점을 찾아서 논쟁하게 되지만 신앙고백적인 간증으로 함께 고백하면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네델란드의 신학자들은 도르트에 모여서 깔뱅의 선택과 예정에 관한 믿음을 정리합니다.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머리글자만 모아서 튤립이라고 합니다. 튤립(TULIP)이란 이런 것입니다. '전적 부패(Total depravity)T', '무조건적 선택(Unconditional election)U', '제한적 구속(Limited atonement)'L,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I, '성도의 견인(Perseverance of the saints)'P를 합친 말입니다. 튤립원리는 깔뱅이 성경을 묵상하면서 발견한 구원의 도리입니다. 저는 거듭 말씀드립니다. 교리나 신학으로 일지 말고 신앙고백과 간증으로 묵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인간을 설명하는 최선의 성경원리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의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선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모두 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특별히 제한적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불가항력적으로 임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은 그 택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끝까지 견인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다 같이 마음을 열고 깔뱅의 튤립신앙원리를 묵상해보십시오. 튤립 신앙원리를 묵상할 때 반드시 하셔야 하는 것은 자신에 대한 성찰입니다. 자신 안에 구원을 얻을 만한 그 무엇인가가 남아 있어서 자기의 의나 자기의 공로를 이야기 하신다면 튤립 신앙원리는 처음부터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들여다보고,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자기를 깊이 성찰해 보면, 이 튤립의 신앙원리가 아주 깊은 은혜의 고백임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은 전적으로 부패하여 구원받을 의도 공로도 없는데,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시고 예정해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셨을 뿐만 아니라 끝까지 나를 믿음으로 인도하셔서 궁극적으로 구원받게 하신다. 이 진리를 깨닫고 함께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합니다.

 

[은혜받는 자는 찬양한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것은 무한한 은혜의 사건입니다. 그것도 창세전에 나를 선택하셔다는 것은 은혜 중에 은혜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일 뿐 우리의 공로는 없습니다. 은혜란 바로 나의 구원을 얻음에 나의 공로가 없음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넘친다고 고백하는 것이고, 율법주의자들에게는 은혜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하여 우리는 네 가지를 깊이 생각합니다. 1. 하나님의 은혜는 무상이고 풍성하다 2. 하나님의 은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게 임하셨다 3.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되었다. 4.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성도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해야 합니다. 깔뱅은 네 가지 원인(Causa)을 설명하면서 세 번 째로 목적인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셔서 구원하신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제가 가끔 사용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불신앙과 불신앙인의 신앙입니다. 신앙인은 불신자처럼 불신앙적으로 살고, 불신앙은 신자처럼 신앙으로 산다는 역설입니다. 요즘 저는 이단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단들을 이단이라고 사이비라고 광신도라고 비난합니다. 맞습니다. 저도 동감합니다. 그런데 그럼 정통인 우리는 신앙적으로 사는가?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사는 가? 질문을 스스로 던져 보면 우리는 자신이 선뜻 아멘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시 성경말씀을 읽습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본문 말씀은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6절은 하나님이 우리를 은혜 가운데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건입니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존 웨슬리도 인간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사건이라고 고백합니다. 인간의 의나 인간의 공로는 단 1%도 없습니다. 심지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배려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하나님의 은혜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면서 믿음으로 자신을 선택하시고 예정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을 선택하시고 예정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시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