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거듭나기
<로마서 6:8~9> " 6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우울증 거듭나기'라는 제목으로 로마서 6장의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우울증 거듭나기! 설교 제목으로 어떤 느낌이 드십니까? ...........
오늘은 설교 제목을 지난 주에 읽었던 책의 제목에서 따왔습니다. 그것은 데이비드 로젠의 책 제목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 거듭나기'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외래 교수로 있는 이도희 선생님이 번역을 하셨습니다. 원제는 "Trandforming Depression"입니다. 이도희 선생의 번역대로 우울증 거듭나기이지요. 원제도 책을 읽는 동안 제 마음에 많은 생각을 주었는데, 부제가 더욱 더 깊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Healing the soul through Creavity -창조성을 통한 영혼의 치유"입니다. 부제의 제목에서 보듯이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내포된 창조성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저자와 역자는 C.G. Jung의 정신분석학을 이용해 우울증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위로와 치유
저는 오늘 우울증을 앓는 이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단언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치유가 있기를 축복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계신 성도님들과 가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을 제공한 로젠의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입니다. 우울증 거듭나기입니다. 우울증을 파괴적으로만 보지 않고, 그 안에 담겨진 창조성을 통하여 치유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제목을 택했습니다. 이미 우울증은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아픔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울증의 위험은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밑 바탕에는 진한 아픔이 배어 있습니다.
로젠은 그 자신이 아주 우울한 삶을 살았던 우울증 환자였습니다. 여름 휴가를 준비하고 있던 사춘기 시절의 어느날 막 휴가준비를 끝내고 휴가를 떠나려고 하는데 자신의 엄마로 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습니다. 데이빗! 짐을 싸서 외할머니에게 가자! 오늘 아빠와 이혼했다. 데이빗은 휴가를 떠나려다가 갑자기 이혼한 엄마를 따라 외갓집으로 갑니다.
그에게 우울한 일이 겹쳐져 일어납니다. 외로운 데이빗에게 아버지 같이 따뜻한 정을 주던 친구 댄의 아버지 밀트씨가 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 샘이 목을 매달아 죽었다는 소식을 연이어 듣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데이빗 자신도 결혼했으나 실패하고 이혼을 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우울증을 앓는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떄 데이빗에게 발상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데이빗을 상담했던 의사의 권유입니다. 데이빗은 뉴욕으로 가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받습니다. 데이빗이 말합니다. "나는 실패자예요, 희망이 없어요, 왜 사나요?" 그러자 상담 의사가 좋은 대답을 합니다. "당신은 실패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단지 결혼생활에 실패한 것 뿐입니다." (21쪽) 그 후로 데이빗은 우울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울증은 동굴속에서 성소를 찾는 것과 유사하다" (46쪽) "우울증은 붕괴되는 상황에 대한 자연스러운 반응이기에 불쾌하지만 필수적인 요소다" 우울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을 갖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우울증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데이빗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이미 이전에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도 주장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플라톤은 질병으로서의 우울증은 부정적이지만 신적인 선물로서의 우울증은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은 우울증 속에 있는 영감을 바라보았습니다. 우울증은 네 개의 특별한 영감을 갖는데, 예언적인 영감, 종교적인 영감, 시적인 영감, 에로스적인 영감입니다. (47쪽)
칼 구스타프 융은 우울증 속에 담긴 죽음과 재생의 에너지를 보았습니다. 죽이고 싶은 것이 내재되어 있는데 상징적인 죽음을 통하여 죽이고 싶은 것을 죽이면 재생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미술 치료, 음악 치료, 등은 바로 이런 상징적인 죽음을 통하여 재생의 길로 나아가는 치료여행입니다.
아서 슈메일은 우울증은 적응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음을 분석했습니다. 우울증은 현실에 대한 적응을 통하여 삶의 에너지를 창출하려는 몸 짓으로 본 것입니다. (성정, 현실 검증, 생존)
2. 영혼을 치유하라!
제가 이 책을 읽으면서 설교를 준비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울증에 대한 그들의 이해 때문입니다. 우울증 거듭나기, 창조성을 통한 영혼의 치유 등에서 이미 암시 되었듯이,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의 창조성을 보았고, 치유의 가능성을 보았으며, 그 치료 기재의 방법으로 영혼의 소중한 가치를 전제합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우울증의 네 가지 요인을 분석했습니다. 생물학적 요인, 심리학적 요인, 사회적인 요인, 실존적/영적 요인입니다. 생물학적 요인으로는 우울증이 생화학적인 화합물 즉 신경전달물질의 농도 저하나 장애와 연관있음을 분석했습니다. 이것들은 3대 주요6 단가아민인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세로토닌 등입니다. 심리학적인 요인 으로는 리비도의 막힘(프로이트 ), 자궁으로의 퇴행- 영혼의 상실, 정신의 죽음(융) 등이 있습니다. 사회적인 요인으로는 과도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실존적/영적 요인이 있습니다.
데이비드 로젠의 치료방법은 영혼을 통한 치료방법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다른 분석가들과 달리 네 번 째 요인인 실존적/영적 요인을 아주 중요하게 취급하고 영혼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려고 합니다. 제가 로젠의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데이비드 로젠이 기독교인이거나 기독교적 마인드를 가진 의사로 느껴졌습니다. 이는 성경 구절의 인용이나, 신학자들이 사용하는 '하나님의 형상'의 라틴어 Imago Dei 등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영혼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영혼은 존재를 전체로 만들고 사람을 완전히 인간으로 만드는 안정화하고 총합하는 힘을 생기게 하는 빛나는 심혼 또는 생명을 주는 힘이다 전체가 된 사람들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알 수 있고, 낙관주의, 감수성, 수용성, 공감, 그리고 창조성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다. 마음과 지성이 사고와 이성(로고스)의 장소인데 비해, 영혼은 정서적인 도덕적 본성 -감성과 사랑(에로스) -의 장소다,
데이비드 로젠은 영혼을 모든 치료적인 노력으로 고려하며 삶의 의미 추구와 가치실현을 중시합니다. 데이비드 로젠이 인용하고 있는 이야기들입니다. 1) 니체 -왜 사느냐는 의문을 갖는 사람은 모든 어떻게를 견딜 수 있다 2)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 - 의미에의 추구가 인간 존재 행위의 주된 동기이다. 프랭클의 시각은 - 우울증은 실존적 좌절 -스트레스나 긴장이 문제가 아니라 의미가 문제 -실존적 공허 3)융- 정신은 그것의 의미를 알 필요가 있다. 4) 에이브러햄 매슬로 - 의미충족감-이게 없으면 가치질환을 경험한다
데이비드 로젠은 '희망의 빛'을 이야기 합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민츠의 말을 인용하여 희망의 빛을 영혼의 치료를 위한 중요한 치료 기재로 이해합니다. 민츠(Mintz) 는 희망을 자살항체라고 부른다. 데이비드 로젠은 어두움의 터널에 집중하지 말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빛에 집중하라고 권유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만 고친 것이 아니라 약한 것고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이 만난 환우들 가운데는 육체의 질병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의 약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혼을 치료하는 것이 우울증을 치료하는 좋은 방법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 우울증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라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이 택한 방법은 영혼을 통한 죽음과 재생입니다. 융의 분석을 차용하여 우울증 속에 내포된 창조성을 활용하는 치료방법입니다. 저는 로젠이 심리학적인 언급으로만 분석하고 있지만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십자가의 은혜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의 로마서를 읽어봅시다.
로마서 6:8~9> " 6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죽음의 의미 는 거짓 자기, 부정적인 자아, 그림자의 죽음입니다. *재생의 의미는 참 자기, 긍정적인 자기의 탄생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한 이유 는 죽음을 맞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죽음과 부활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매일 매일 죽고 사는 믿음의 의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고, 날마다 산다고 말했습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 방법을 이용합니다. 죽음과 재생입니다. 융의 방법은 죽음을 통한 재생입니다. 이 때 죽여야 하는 것은 자아이고 살려야 하는 것은 자기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거짓 자기와 참 자기입니다. 이것은 융의 분석의 도구인 아니무스(양, 여성 안의 남성성)와 아니마(음, 남성 안의 여성성)이고, 그림자와 페르조나입니다.
데이비드 로젠은 죽음과 재생을 통한 우울증 치료를 위하여 자아죽이기와 거듭나기의 네 가지 여행과정을 제시합니다. 1) 나쁜 뉴스 -우울증 2) 좋은 뉴스,- 살 수 있다는 희망
3) 상정적인 죽음-거짖 자기 죽이기 (부정적인 자아 죽이기와 그림자 죽이기) 4)새로운 인생 -참 자기의 탄생입니다.
저는 데이비드 로젠의 방법이 우리에게 주는 귀한 의미가 있다고 느낍니다. 우울증 속에 담겨진 창조성의 발견, 우울증이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기능들, 영적 요인의 가치와 영혼의 치료를 통한 우울증의 치료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죽음과 재생의 치료 여행을 통하여 죽이고 싶은 거짓 자기를 죽이는 상징적인 죽음을 통한 참 자기의 생명 살리기 등입니다.
융의 심리학과 로젠의 정신의학은 상징적인 죽음을 통한 치유를 설명합니다. 미술 치료, 치료 여행, 의미 추구 등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 더 분명하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안에서 진정한 죽음을 맛보면 진정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그리스도안의 죽음은 진정한 죽음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죽이고 싶은 또 다른 자기의 모습입니다. 자아의 죽음을 통한 자기의 살아남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진정한 죽음과 진정한 살아남을 체험케 한다. 참 믿음으로 진정한 죽음을 경험하면 진정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결론>
우울증은 우리 시대의 보편적인 아픔입니다. 단지 드러난 아픔과 감추어진 아픔과 억누른 아픔과 무지한 아픔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우울증의 위험은 자살 시도입니다. 그런 우울증의 치유는 창조성을 통한 영혼의 치유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심리학-의학의 치유는 상징적인 죽음으로 부정적인 자아 죽이기를 통하여 우울증을 치유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진정한 죽음을 체험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융과 로젠의 이야기 그리고 성경의 이야기는 일치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죽일 것과 살릴 것 입니다. 자아를 죽이고 자기를 살려라, 자아를 살리면 자기가 죽고, 자아를 죽이면 자기가 산다. 거짓 자기를 죽이면 참 자기가 산다.
융과 로젠은 상징적인 죽음과 재생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죽음과 진정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묵상합니다.
<로마서 6:8~9> " 6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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