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요한계시록 22: 20~21>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람어 마라나타의 음역입니다. 교회는 오랫동안 이 말을 성만찬식과 종말론 신앙과 연관 지어서 사용해 왔습니다. 성경의 결어문구이기도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초대 교회의 예배에서는 이 말을 성찬식의 공식 기도문으로 사용하였습니다. 대략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1) 근본 하나님의 아들이신 에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심으로 이 땅에 오셨고 또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 주셨으니 (마20:28) 우리는 성찬예식을 행함으로 그 분을 기념한다. (고존 11: 24, 25)
2) 십자가에 달리셨다가 부활, 승천하신 예수 (눅 9:28~36, 예수 생애의 5대 사건) 께선 지금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이 성찬 예식에 함께하고 계시며 이 자리에 참여한 뭇 성도들의 심령을 살피고 계시니 혹시 이 가운데 진정으로 주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있을진대 그에게 저주가 있기를 바란다
3) 예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뜨거운 열망이 담겨 있어서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우리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권세와 의로운 심판이 완전히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전통적으로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가 첨예한 교리의 차이를 보이기도 했으나 언제나 일치했던 성만찬에 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또, 이 마라나타라고 하는 말씀은 예수의 재림을 사모하는 성도들의 뜨거운 열망이 담겨있습니다. “우리 주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 왜냐하면 우리는 당신의 권세와 의로운 심판이 완전히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고 하는 이 공식 기도문은 초대교회로부터 소망의 근거와 인내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로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라는 마라나타는 아멘이라는 말과 함께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소망의 근거이자 인내의 원천이 되어 왔습니다. 오늘 이 말씀이 우리의 소망의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내의 원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강림절 둘 째 주일, 예수님의 강림을 바라는 오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마라나타! 의 믿음이 우리의 마음에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1. 강림절의 성구
오늘은 강림절 둘 째 주일입니다. 회개와 빛의 촛불을 켜고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듯이 강림절에는 네 개의 촛불을 켭니다. 첫 째주일에는 기다림과 소망의 촛불을, 둘 째 주일에는 회개와 빛의 촛불을, 셋 째주에는 사랑과 나눔의 촛불을, 넷 째 주에는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켭니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교회와 성도는 기다림과 소망, 회개와 빛, 사랑과 나눔, 만남과 화해의 촛불을 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립니다. 오늘은 둘 째 주일이라 회개와 빛의 촛불을 켭니다. 우리 모두 회개와 빛의 촛불을 켜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강림절 성구를 준비했습니다. 교회력은 성서일과에 따라 성경을 읽도록 권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도 성서일과의 성경을 읽었는데, 오늘도 강림절 둘 째 주일에 맞는 네 개의 성경을 먼저 읽으려고 합니다. 1> 이사야 40:1~11 희망의 말씀, 2> 시편 85:1~2, 8~13 은혜와 화평의 말씀 3> 베드로후서 3:8~15a, 재림의 말씀 4> 마가복음 1:1~8 (마 3:1-12; 눅 3:1-9, 15-17; 요 1:19-23) 복음 전파입니다. 성서일과의 성구는 교회력에 맞는 성구입니다.
1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2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 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 6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7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하지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게 이르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하라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사야 40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위로의 말씀입니다. 이사야는 선포합니다.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 복역의 때가 끝났고 그 벌을 배나 받았다. 기독교의 힘은 용서입니다. 물론 제가 악습의 반복이나, 용서를 빙자한 악행을 두둔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용서는 진정한 참회로 나아가야 하고, 진정한 참회는 악습과 악행을 근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힘은 용서에 있습니다. 이사야 40장은 하나님의 용서,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사면을 선포합니다.
이사야 40장이 강림절의 성구로 읽혀지는 또 한 가지는 10절~11절때문입니다.
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11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의 팔로 안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 친히 그 팔로 안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강림절은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소망의 절기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40장은 기다림의 소망을 선포합니다.
2> 시편 85:1~2, 8~13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셀라) ....중략...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11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 12 여호와께서 좋은 것을 주시리니 우리 땅이 그 산물을 내리로다 13 의가 주의 앞에 앞서 가며 주의 길을 닦으리로다
시편 85편의 주제는 은혜와 화평입니다.
1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땅에 은혜를 베푸사 야곱의 포로 된 자들이 돌아오게 하셨으며 2 주의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8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실 말씀을 들으리니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그들은 다시 어리석은 데로 돌아가지 말지로다 9 진실로 그의 구원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우니 영광이 우리 땅에 머무르리이다 10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3> 베드로후서 3:8~15a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4> 마가복음 1:1~8 복음을 전파하다(마 3:1-12; 눅 3:1-9, 15-17; 요 1:19-23)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6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7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8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2. 성경의 결론
성경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분석에 따라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결어로만 본다면 성경의 결론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간구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강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념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지금 여기에 오시는 현재의 강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말씀은 의미가 깊습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예수님을 기다리는 강림절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온고이지신이라는 말 뜻처럼 옛 것을 통해 우리는 새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현재의 삶에 예수님이 임재하시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에수님의 초림을 기다렸던 사람들의 마음을 통하여 준비를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렸던 대표적인 사람들은 시므온, 안나, 마리아입니다.
1) 첫 번째는 시므온 이야기입니다. (눅2:22~35)
"(눅2:22~35) 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으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눅2:25~27)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고,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였고, 성령이 그 위에 임하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고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시므온의 이야기를 통해서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다려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의롭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성령이 그 위에 함께한 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됩니다.
저는 이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사회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다리는 사람, 우리 상동교회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기다리는 사람, 또 자신의 가정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기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은 사실 그 마음 가운데 큰 아픔과 상처와 고통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성경이 말하고 있는 가난한 민중의 사람일 수 있을 것이고 예수님이 아니고서는 이 어려움을 도저히 풀어나갈 수 없는 사람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이 커서 죽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너무 괴로워서 고망가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또 공동체를 생각한다고 하면 그 마음속에 서운함과 여러 가지 아픈 마음들이 혼재되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의 삶에 진정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까? 그러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회와 교회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진정으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있다고 하면, 시므온처럼 예수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2) 두 번 째는 안나 이야기입니다. (눅2:36~40)
(눅2:36~40)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안나’라고 하는 선지자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는 결혼한 후에 일곱 해 밖에는 남편과 함께 살지 못했습니다. 그는 과부였습니다. 이 젊었던 과부가 84세가 되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혼자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여성들의 정혼의 나이가 12세였기 때문에 남편과 함께 산 시간인 7년을 더하여 보면 20세에서 84세까지 약 60년을 혼자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60년을 홀로 사는 동안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안나를 이렇게 말합니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7) 그러더니 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이 사도행전의 말씀과 함께 또 다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4~5)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했습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예수의 말씀을 붙들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고 예수의 말씀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기도했고, 기다렸던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84세가 되도록 60년을 혼자 살았던 ‘안나’라는 여인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예수의 임재를 경험했습니다. 그는 그 60년 동안 과부에게 다가오는 사회의 눈초리들, 경제적인 어려움들, 수많은 날들의 눈물들, 그리고 성전 안에서 겪는 아픔들까지 그의 삶은 결코 수월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가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일로 신앙생활을 하다가 시련을 당할지라도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는 자가 예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랑하는 상동교회를 지난 세월 오랫동안 여러분은 30년, 40년간 대를 이어 여러분은 지켜오셨습니다. 무슨 일인들 없었겠습니까. 그 많은 세월의 흐름들 속에서 그 시간 속에서 여러분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이 자리에 계신 것 자체가 복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여러분,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셔서 예수의 임재를 경험하시기를 축복합니다.
3) 세 번 쨰는 마리아 이야기입니다.(눅1:26~38)
(눅1:26~38) 26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27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28 그에게 들어가 이르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니 29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가 생각하매 30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31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32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시리니 33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하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35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이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어지리라 36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임신하지 못한다고 알려진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37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하지 못하심이 없느니라 38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매 천사가 떠나가니라
또 하나의 증인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그는 약혼밖에 하지 않은 처녀였는데, 아이를 잉태했습니다. 남편조차도 가만히 끊고자 하여 관계를 청산하고자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미 이 상황을 잘 이해하고 계실 것입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바로 확신입니다. 마리아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나는 이 아이를 성령으로 잉태하여 임마누엘 예수를 잉태하였고 성령이 나와 함께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너무 신격화하고 신화화했기 때문에 마리아를 생각하며 동경의 대상으로 삼기는 하지만, 좀처럼 마리아의 고통을 생각하지는 못합니다.
이천년의 세월동안 동정녀 탄생이 확고한 기독교의 뿌리로 자리 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것을 믿지 못하는 신학자들이 있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이천년 전에, 모세의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율법적 종교의 지배 아래, 예수의 이야기가 알려져 있지도 않은 상황과 이해될 수도 없는 상황에서 한 처녀의 잉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되어지는 확신이 없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정말 성령의 교통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믿음의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예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사실은 교회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초월적인 계시를 선포하던지 지극히 이성적인 사기를 펼치던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교회는 처녀가 잉태했고 죽은 예수가 부활하여 승천한 후 다시 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두 가지 중의 하나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기가 막힌 사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 아니면 초월적 계시를 우리는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확신이 없이는 우리는 절대로 예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을 것이다.”(눅 1:30~35) 남편조차도 가만히 끊고자 했던 마리아가 자신에게 임재하고 있는 이 놀라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으로 성력의 교통 안에서 기다리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3. 우리의 믿음
오늘 우리 가운데 확신이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드리고 있는 이 예배가, 그리고 하나님의 종이 전하고 있는 이 메시지가 사기극의 수사가 아니고 이것이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는 확신이 내 마음 속에 믿어질 때에 예수의 임재를 경험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 정리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 20~21) "20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의 결론입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신앙은 아멘입니다. 믿음은 기다림입니다.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을 기다렸듯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성서의 원문에서는 모든 자들을 ‘성도들에게’로 번역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에게 있을지어다. 있기를 바란다는 단순한 기원이 아니고 이것은 전형적인 제사형의 축복문입니다. “있을지어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예수의 은혜가 있는 사람만이 예수의 임재를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러분 이곳에 왜 오셨습니까? 무엇을 하러 이 자리에 와계십니까? 강림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 주일에 예수님을 만나고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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