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난
<이사야 43장 6절> 1 우리가 들은 것을 누가 믿었느냐? 주의 능력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2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3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그는 언제나 병을 앓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돌렸고, 그가 멸시를 받으니, 우리도 덩달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을 드립니다. 오늘은 사순절 두 번 째 주일입니다. 사순절은 사십일을 기념하는 절기로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올 해는 지난 주일부터 부활주일 전인 3월 26일까지가 사순절입니다. 사순절을 계산할 때는 주일을 빼고 계산하기 때문에 6주의 36일간과 주간을 역산하여 토금목수 해서 4일을 더한 사십일을 말하는 데 실제적으로 46일이 되는 셈입니다. 사순절이 시작하는 날은 항상 수요일에 오는데 성회수요일이라고 부릅니다. 올 해는 2월 10일이었습니다.
사순절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기념하고 묵상합니다. 그래서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은 예수님의 고난을 예고한 예언의 말씀으로 유명합니다. 이사야 53장의 말씀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신 예수님>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사야 53장을 <예수님의 고난>으로 해석한 것은 사도행전 8장 32절에 나오는 빌립 집사의 인용입니다.
사도행전 8장 <빌립과 에티오피아 내시>
26 그런데 주의 천사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일어나서 남쪽으로 나아가서, 예루살렘으로부터 가사로 내려가는 길로 가거라. 그 길은 광야 길이다." 27 빌립은 일어나서 가다가, 마침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으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사람인데, 내시였다. 그는 예배드리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고 있었다. 29 성령이 빌립에게 "가서, 마차에 바싹 다가서거라" 하고 말씀하시니, 30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7)"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했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해서, 예수를 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4)세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하고 말하였다. 8)(37절 없음) 38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4)세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초대교회의 첫 번 째 집사였던 빌립은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고관을 만나 성경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때 그 고관이 읽던 성경이 이사야 53장이었습니다. 빌립은 이디오피아 관리에게 읽는 것을 깨닫느냐고 묻습니다.(30)
“ 30 빌립이 달려가서, 그 사람이 예언자 이사야의 글을 읽는 것을 듣고 "지금 읽으시는 것을 이해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성경은 읽기도 하지만 이해를 해야 합니다. 에티오피아 관리는 말합니다. 지도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깨달을 수 있습니까?
31 그가 대답하기를 "나를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올라와서 자기 곁에 앉기를 빌립에게 청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경 구절은 이것이었다. "양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것과 같이, 새끼 양이 털 깎는 사람 앞에서 잠잠한 것과 같이,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굴욕을 당하면서, 공평한 재판을 박탈당하였다. 그의 생명이 땅에서 빼앗김을 당했으니, 누가 그의 세대를 이야기하랴?" 34 내시가 빌립에게 말하였다. "예언자가 여기에서 말한 것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빌립은 내시에게 이사야 53장의 말씀이 예수님에 대한 말씀이라고 가르쳐줍니다.
35 빌립은 입을 열어서 이 성경 말씀에서부터 시작해서, 예수를 알리는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빌립은 이사야 53장의 말씀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이라고 에티오피아 관리에게 해석을 해주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지도해주는 사람>은 대단히 중요한 도우미입니다. <성경을 깨달을 수 있도록 지도해주는 사람>은 구약성경을 읽고도 그 말씀이 예수님에 관한 말씀인 것을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말씀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들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눅24:44~49>
4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하기를, 모세의 율법과 예언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두고 기록한 모든 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였다." 45 그 때에 예수께서는 성경을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46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47 그의 이름으로 죄를 사함받게 하는 회개가 8)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하였다. 너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48 이 일의 증인이다. 49 보아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이사야 53장은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사순절을 맞이하여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고난은 나를 위해 받으신 고난이다.
4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다. 5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6 우리는 모두 양처럼 길을 잃고, 각기 제 갈 길로 흩어졌으나, 주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지우셨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예수님이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예수님이 매를 맞음으로 우리는 고침을 받았다. 우리는 이 이사야서의 고백을 읽고 또 읽으면서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우리의 허물과 우리의 악함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 말씀에 아멘이십니까?
오늘 우리가 깊이 생각하고 대답해야 할 질문은 바로 이 질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고 느껴지십니까? 기독교신앙의 핵심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성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성을 이어주는 다리는 예수님의 고난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의 다리를 건너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성을 이어주는 영혼의 다리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고난이라는 다리를 통하여 예수님과 연결이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신앙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신앙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기독교신앙의 본질이 훼손되고 잡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저는 요즘 제 자신 안에 일어나는 신앙의 본질적인 질문에 대하여 매일 생각하고 생각합니다. 나와 예수님의 관계는 잘 되고 있는가? 사람인지라 자꾸 넘어지는 부분을 발견합니다. <신앙의 핵심>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인데 사람과의 관계 때문에 웃었다 울었다 하는 모습을 스스로 보면서 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급히 정리해야 할 숙제는 <예수님과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정말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인 것을 믿는가?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이 나를 위한 고난이라는 것을 깊이 깨달으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신앙은 본질의 싸움입니다. 기독교가 본질을 회복할 때 진정한 신앙심의 깊이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그 은혜 속에서 강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신앙심을 깊이 가지려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본질은 나와 예수님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이 나의 허물과 죄악 때문이라는 것을 깊이 느끼고 아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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