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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조직신학

[스크랩] 고신의 신학과 신앙노선-변종길 교수

우순(愚巡) 2006. 11. 23. 09:09
고신의 신학과 신앙 노선
2006-02-25 13:36 | VIEW : 53

사진 : 변종길 교수(고신포럼에서 발표)
아래의 글은 변종길 교수(고려신학대학원)가 2006년  2월 14일에 부산 삼일교회에서 열린 고신 포럼에서 발표한 것이다.

고신의 신학과 신앙 노선

변 종 길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1952년에 설립된 고신교단은 1946년에 개교한 고려신학교가 모체가 되어 탄생하였다. 따라서 고신교단의 신학과 신앙 노선은 고려신학교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고려신학교는 고신교단의 전폭적인 사랑과 지원을 받으며 성도들의 기도와 관심 가운데 나아왔다.

1. 고려신학교의 설립이념

  1945년 일제의 탄압에서 해방된 한국의 교계는 신학과 신앙 모두 어지러운 판국에 있었다.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로 인하여 평양의 장로회신학교가 폐쇄된 후 조선신학교가 자유주의 신학을 퍼뜨리고 있었다. 신앙적으로도 한국교회는 일본의 우상 앞에 무릎 꿇었던 죄 문제를 청산하지 못하고 혼란한 가운데 있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옛 평양신학교의 신학적인 전통을 계승할 신학교의 설립은 한국교회의 시급한 과제였다.

  그리하여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고려신학교를 설립하게 되었는데, 옛 평양신학교의 신학적인 전통을 계승하여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잇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고려신학교가 추구한 교육이념과 신학사상은 “고려신학교 설립기성회”가 작성한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에 잘 나타나 있다. 이 문서에서 그들은 고려신학교 설립을 통해 “정통신학운동” 곧 “명백한 정통체계에 있는 진리운동”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그렇다면 이들이 내세웠던 “정통신학(正統神學)”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바로 “성경의 독자적 신임성을 믿는 개혁신학”이었으며, 구체적으로는 “칼빈주의 신학”이었다. 칼빈주의 곧 개혁주의 신학은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인간의 이성(理性)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따라 생각하고 그 말씀을 따라 살고자 하였다. 그래서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은 인간의 이성에 의거하여 성경을 비판하는 고등비평과 신(新)신학을 단호히 배격하였다. 또한 그들은 역사적으로 볼 때 성경의 진리를 거역한 나라들은 다 망하고 파괴되었음을 상기시키고 있다.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은 나아가서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해서 “참된 문화운동”을 하기를 원했다. 자연을 숭배하지 않고 그것을 연구하는 대학제도와 같은 참된 문화운동은 성경에서 나왔으며, 따라서 문화운동도 먼저 천국을 구하는 정통신학운동에 수반하여야만 된다고 주장하였다. (“고려신학교 설립취지서”에 대해서는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역사편찬위원회, 서울: 총회 출판국, 2002, pp.323-325를 참조하라.)

2. 고려신학교의 교육이념

  이러한 설립이념은 고려신학교의 교육이념에 좀 더 체계적으로 나타나 있다. 곧 “신·구약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신앙과 본분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의 법칙임을 믿고, 그대로 가르치며 또 장로회 원본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교리대로 교리와 신학을 가르치고 지키게 하며 생활의 순결과 순교적 이념으로 교역자 양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세 가지를 알 수 있는데 곧 개혁주의적 성경관, 교리관, 생활관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고려신학교는 개혁주의의 핵심이요 제일 중요한 기초인 ‘성경’을 강조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정확무오한, 유일무이한 표준임을 믿는다. 이것은 고려신학교와 고신교단이 지향하는 신학은 자유주의적, 합리주의적, 주관주의적 신학을 거절하고 철두철미 계시의존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고려신학교는 신학의 지침으로서 개혁주의 역사의 유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받아들이고 강조하였다. 이것은 고려신학교와 고신교단이 하나님께서 2천년의 기독교 역사를 통해 인도하신, 개혁교회의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 고신교단은 개혁주의 신학의 유산을 존중하며, 그것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려 노력해 왔다. 이를 위해 고신교단은 순수한 개혁주의 노선을 따르는 세계의 교회들 및 신학교들과 교류를 진행해 오고 있다.

  셋째, 고려신학교는 정통신학을 강조하는 동시에 생활의 순결을 강조해 왔다. 성경 중심의 올바른 신학은 생활의 순결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고신교단은 무엇보다도 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회개와 성결한 생활을 강조해 왔다. (이상에 대해서는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부산: 고려신학대학원 출판부, 1996, p.41을 보라.)

3. 박윤선 박사의 신학

  고려신학교에서 초기에 주로 가르친 분들은 박윤선 박사, 박형룡 박사, 한상동 목사, 한부선 선교사 등이었다. 박형룡 박사는 얼마 있지 않아 서울로 떠났기 때문에 고려신학교 초창기 10년 동안 고려신학교와 고신의 신학의 초석을 놓은 분은 바로 박윤선 박사이었다. 개혁주의 신학을 기치로 내세운 고려신학교와 고신교단은 박윤선 박사에 의해 그 구체적 내용을 채움 받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박윤선 박사는 말년에 자신이 쓴 “성경과 나의 생애”라는 자서전에서 자신의 신학 곧 개혁주의 신학을 다음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박윤선,  「성경과 나의 생애」, 서울: 영음사, 1992, pp.199-213)


1)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주권이란 신자가 어디서나 무엇에서나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와 의지의 활동을 생각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권 사상은 칼빈이 성경에서 얻은 것이다. 칼빈주의(개혁주의)의 규준은 성경이다. 칼빈주의는 성경에서 시작하고 성경으로 진행하고 성경으로 마감한다. 칼빈주의는 성경이 가는 데까지 가고 성경이 멎는 데서 멎는다. 그 이유는, 칼빈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성경 말씀 그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며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까지 관계하고 계심을 믿는다(마 10:29,30).

2) 개혁주의 성경관

  개혁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이 주신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절대 오류가 없다. 그리고 성경은 성령의 감화가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성경을 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생(重生)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 저자들을 통해 기록하셨다는 유기적 영감설을 믿는다. 개혁주의는 성경에 관하여 다음 네 가지 속성들을 믿는다.

① 성경의 자증(自證): 성경은 그 자체 안에 독자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교회나 어떤 사람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은 그 이전에 이미 독자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성경이 있기 전에 교회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반대한다. 개혁주의는 오히려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개혁주의는 성경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를 더 높이는 가톨릭의 견해를 반대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의해 판단받아야 함을 믿는다.

② 성경의 필요성: 개혁주의는 인간의 구원과 생활을 위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믿는다. 성경을 교회의 전통과 같은 위치에 두거나 필요한 여러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보는 견해들에 반대하며, 성경은 우리의 구원과 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유일한 기준이라고 믿는다.

③ 성경의 명료성: 개혁주의 교회는 성경은 구원과 생활 문제에 있어서 모든 신자들이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계시하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성경은 단지 성직자들만 읽고 해석할 수 있다는 가톨릭교회의 주장을 반대하고, 모든 성도들이 성경을 읽고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았음을 믿는다.

④ 성경의 충족성: 가톨릭교회는 성경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하여 성경 외에 전통(傳統)을 진리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는 그러한 전통의 권위를 부인하고, 성경만으로 충분하며 오직 성경만을 진리의 유일한 표준으로 삼았다.

3) 개혁주의 인생관

  가톨릭교회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그리스도 외에 다른 중보자들을 두고 있지만, 개혁교회는 그리스도 외의 어떠한 매개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주권을 높이고, 인간은 본래 그 앞에 멸망받아 마땅한 죄인임을 생각하기에 항상 겸손한 자세를 취하며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는다. 그리고 개혁주의는 인간을 영웅시하는 사상을 배척한다.

4) 개혁주의와 과학

  개혁주의는 과학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사람으로 하여금 그 모든 것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창 1:28). 따라서 진정한 기독교 세계에서 과학이 발달하게 된다.

5) 개혁주의와 일반은총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사랑을 특수은총에서만 발견하지 않고 일반은총에서도 발견한다. 특수은총은 구원의 은총이며, 일반은총은 신자와 불신자가 함께 누리는 은총이다.

4. 고신의 신학

  박윤선 박사 이후에 이근삼 박사와 오병세 박사, 홍반식 박사, 그리고 허순길 박사 등에 의해 개혁주의 신학 노선은 계속 유지되고 발전되어 왔다. 신학교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개혁주의가 강조되었으며, 특별히 학생신앙운동(S.F.C.)의 강령을 통해 우리의 입장이 분명하게 표명되었다. 곧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을 생활원리로 삼았으며,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국가와 학원의  복음화 및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과 세계의 복음화를 사명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개혁주의 신학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박윤선 박사 이후에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와 환경의 변화로 인하여 오늘날 우리 고신 신학은 대내외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이런 중요한 시점에서 고신 신학의 핵심을 다시 한 번 간단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하나님의 주권

  우리 교단은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에 서 있으며 하나님의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무엇보다도 강조한다. 하나님이 천지만물과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찬송과 영광을 받기에 합당하심을 고백한다. 이러한 신본주의의 입장에서 우리 교단은 인간의 이성이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인본주의나 알미니안주의,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한다.

2) 성경관

  개혁주의는 무엇보다도 진리의 표준으로서 성경을 강조한다. 진리는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서 나와야 하며, 성경만이 참된 진리의 근원이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신학은 성경에 기초하여야 하며, 성경이 아닌 인간의 이성으로 성경을 판단하거나 비판하면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을 파괴하고 깎아 내리는 모든 종류의 문서설(자료비평)과 양식비평, 편집비평 등을 반대한다. 또한 성경에 실수나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또는 인간의 믿음에 의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고 하는 신정통주의(바르트 신학)와 실존주의 신학(불트만과 그 제자들의 신학) 등을 반대한다.

  우리는 단지 성경의 사상이나 흐름만이 아니라 글자 한 자 한 자에 이르기까지 영감되었다고 하는 축자영감을 믿는다. 성경은 모든 부분, 모든 글자에 있어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 물론 그 중에는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거나 풀기 어려운 구절들이 더러 있지만(벧후 3:16), 이것은 인간의 무지와 한계 때문이지 성경의 잘못은 아니다.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성경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며, 천국에 가면 모든 의문이 다 풀릴  것이다.

3) 구원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며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 받은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다(以信稱義). 따라서 우리는 구원 받음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의 공로를 주장하는 알미니안주의를 반대하며,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를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도르트 신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의 지침이 된다. 곧 인간의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구속,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 교리가 그것이다.

4) 교회론

  개혁주의 교회는 교회론에 있어서도 말씀의 권위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회도 하나님 말씀의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하며, 그리할 때에만 참 교회라고 말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교회의 권위를 절대화하며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에 종교개혁자들은 그러한 결정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패할 수 있으며 부패한 교회의 결정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순수한 말씀의 전파, 순수한 성례의 거행, 권징의 시행을 참 교회의 중요한 표지로 보았다. 이러한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받은 고신교단도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말씀의 올바른 전파와 성례의 올바른 거행, 그리고 권징을 중요하게 여겨 왔다.

  다른 한편으로 개혁교회는 회중교회와 달리 개교회주의를 취하지 아니하고 노회와 총회의 권위를 존중하며 교단적인 활동에 적극 참여한다. 특히 신학교를 운영하고 후원하는 일에 적극 참여하며, 운영주체로서 감독과 책임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5) 문화관

  고신교단은 일찍부터 기독인의 문화활동에도 열심을 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단지 내적 체험과 개인적 경건에 몰두하는 신비주의나 경건주의의 편협함에 빠지지 아니하고 삶의 전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고신교단의 정신은 종교개혁 시대의 칼빈주의와 그 후 네덜란드에서 발전된 개혁신학의 정신을 계승한 것이었다. 단지 자기 교회나 자기 교단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 전체를 생각하고, 나아가서 온 세계를 가슴에 품은 원대한 정신이었다. 그 구체적인 모습은 복음병원과 고신대학교의 설립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원대한 이상을 다 받아들이지 못하고 여러 가지 문제점에 부딪혔다. 따라서 우리는 기독교 문화 건설을 위한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시점에 왔다. 우리가 기독교 문화 건설에 대해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졌던 것은 아닌지, 그리고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아가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가 되었다.

6) 종말론

  한국교회는 일찍이 미국의 선교사들로부터 전천년설에 입각한 종말론을 전수받았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 특히 고신교단이 신학적으로 개혁주의를 받아들이고 연구하면서 구라파의 개혁주의 신학은 무천년설 곧 교회시대를 천년왕국으로 보는 입장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 교단에서는 양쪽 입장을 다 받아들이면서 다른 쪽 입장을 존중하며 배척하지 않는 분위기를 형성해 오고 있다. 어쨌든 우리는 예수님의 재림을 굳게 믿으며, 죽은 자의 부활과 최후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믿는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받아들이며,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그대로 믿고 순종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7) 성령론

  성령론에 있어서도 고신교단은 개혁주의적 입장을 고수해 왔다. 고신교단은 초창기부터 불건전한 신비주의와 체험주의를 배격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비와 체험은 소중하게 간직하지만 그것을 성경보다 우위에 두거나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나게 주장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저항해 왔다. 그리하여 고신교단은 초창기부터 불건전한 신비주의, 불건전한 성령운동, 이단들에 적극 대응하면서 성경의 진리를 파수해 왔다.

  뿐만 아니라 우리 교단은 제2의 축복과 방언을 강조하는 오순절주의와, 은사를 강조하는 신오순절주의(은사운동)에 대해서도 대개 비판적인 자세를 취해 왔다. 그러다 보니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고 열심이 식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하였으나, 그 중심은 어디까지나 성경의 진리가 흐려지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근래에는 구라파나 미국의 개혁교회가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지나치게 소극적인 성령론에서 벗어나서 좀 더 적극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과거에 서양의 개혁교회가 성령의 사역과 관련하여 올바르게, 충분하게 드러내지 못했던 성경의 진리를 바로 드러내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고 그 가르침에 순종하고자 하는 것이 우리 교단의 기본 입장이다.
  
  그 외에도 많은 다른 분야에서 고신교단은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며 지면관계상 다 언급하지는 못하지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가르침에 그대로 따르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신학입장이다. 비록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어도 순수한 개혁주의 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최고의 표준으로 삼는다. 시대정신이 변하고 사회 분위기가 바뀌어도, 그리고 우리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 영원토록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무이한 절대적 표준임을 우리는 믿는다.

5. 고신의 신앙

  고신교단의 신앙은 위에서 살펴본 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 둘은 서로 뗄 수 없는 것이지만, 우리 교단의 신앙생활과 관련하여 특별히 강조되고 있는 것들 몇 가지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우상숭배 반대

  고신교단은 일제 말기에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하던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설립된 교단이다. 따라서 우리 교단은 태생적으로 우상숭배를 가장 큰 죄악으로 여기며 반대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신을 이어받아 고신교단은 무슨 신상을 세우거나 그 앞에 절하거나 숭배하는 것을 가증할만한 죄악으로 여긴다. 우리는 또한 조상숭배를 반대하며 죽은 자 앞에 절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근래에는 단군상 건립반대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오고 있다.

  우상숭배를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명이 그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무엇보다도 우상숭배를 멸망할 큰 죄로 여기시며 그것을 엄금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상숭배를 금하고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한다. 나아가서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것도 우상숭배라고 할 수 있다(골 3:5). 따라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사랑해야 하며,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멀리하거나 하나님의 권위 아래 두어야 한다.

2) 회개 강조

  우리 교단은 해방 후에 한국교회의 재건을 위해 회개운동을 전개한 출옥성도들을 중심으로 하여 탄생하였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의 회개를 강조하며, 우리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할 때 진정한 은혜를 누리게 됨을 믿는다. 오늘날 개교회와 교단의 여러 문제들, 나아가서 한국교회의 문제들은 각 개인이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회개를 할 때 문제가 참되이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참 회개는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며 참 마음으로 하는 회개여야 한다. 또한 행동의 열매로 나타나는 회개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성령의 감화와 역사가 필요하다. 인위적인 회개나 외적인 회개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될 수 없으며, 종종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를 보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우치며 성령의 강력한 역사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전해야 하며 하나님의 영이 강력하게 역사하시도록 힘써 기도하여야 한다.

3) 말씀 중심

  오늘날 타교단과 구별되는 고신 신앙의 특징을 말하자면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강조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모든 원리는 하나님 말씀에 있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처음부터 끝까지 말씀으로 생각하고 말씀의 지도를 받으며 말씀의 판단을 받는다. 따라서 우리 교단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생명처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긴다.

  이것은 교회운영이나 목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한국에는 인본주의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교회를 부흥시키고 대교회를 이루고서 목회자들을 유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철두철미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야 한다. 소위 “꿩 잡는 것이 매다”라거나 “잘 되는 것이 진리다”는 식의 실용주의적이고 결과주의적인 태도를 반대하며,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의 표준이 됨을 믿는다. 우리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그 답을 찾아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4) 기도 생활

  기도 생활은 한국교회의 큰 자랑이라 할 수 있다. 전세계 교회 역사상 한국교회처럼 기도를 강조하며 실천하는 교회는 많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의 정서와 일제의 탄압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기도생활은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며 활기의 근원이다. 고신교단도 이러한 한국교회의 유산을 물려받았으며, 특히 출옥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의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 교단의 기도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영광과 복음전파를 위한 기도였으며, 개인의 성공과 영달은 그 다음 순위였다.

  그러나 우리 교단은 세월이 지나면서 기도의 열정이 약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타교단보다도 기도의 열정이 약해지는 현상을 보게 된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자세한 분석과 반성이 필요하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자고하지 않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자부심으로 인해 기도에 대한 강조가 상대적으로 적지 않았는지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주시며 간절히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마 7:7, 잠 8:17).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널리 펼치고 전파하려면 강력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구라파의 개혁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한 것은 좋았으나 상대적으로 기도가 약한 나머지 신앙의 활력을 잃어버리고 개혁주의 신학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고 마는 모습들을 볼 때 기도의 중요성은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된다. 기도 없이 성령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으며, 기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도 개혁주의도 지킬 수 없다.

5) 주일성수

  고신교단은 초창기에 주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혹자는 이에 대해 율법주의니 바리새주의니 하면서 비난했지만,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신 안식일 계명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계명 존중의 개혁주의 신앙이 그들로 하여금 주일을 다른 날들과 구별되게, 철저히 지키도록 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자랑이며 오늘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정신이다.

  오늘날 우리는 반(反)율법주의와 인본주의, 편의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자기 편리한 대로, 자기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을 바로 지키는 것이 올바른 신앙이며,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 주실 줄로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고 지켜야 할 것이다. 우리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며, 예배를 생명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외적 형태에만 머물지 말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도록 해야 한다. 자칫 우리의 신앙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며, 믿음이 약한 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6) 십일조

  고신교단은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생활을 기본적인 것으로 당연시해 왔다. 구약도 신약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개혁주의 신학적 입장에서 볼 때 십일조는 당연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 23:23)는 예수님의 분명한 말씀으로 인하여 십일조는 오늘날 신약의 성도에게도 당연한 의무임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오늘날 어떤 이들이 십일조는 구약적이라고 하면서 신약 시대에 십일조는 폐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위 말씀도 십자가 이전에 하신 말씀이기 때문에 율법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이 주장이 옳다면 예수님의 말씀들 중 대부분은 율법에 속한 것이며 오늘날 우리에게 효력이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 중 대부분은 십자가 이전에 주어졌기 때문이다. 모든 성도들이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는 산상보훈의 말씀도 십자가 이전에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산상보훈의 말씀도 구약적이고 율법적이라고 다 버려야 한다는 말인가?

  따라서 우리는 그러한 반율법주의적 견해에 미혹되어서는 안 된다. 개혁주의 신학의 입장은 구약의 말씀이나 신약의 말씀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구속사의 진전과 그리스도 안에서의 완성 측면에서 구약을 이해해야 하지만, 십일조를 비롯한 헌금생활이 신약에서 폐지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견고해지며 완성되었다고 보아야 한다(마 5:17, 롬 3:13, 고전 16:1-2). 왜냐하면 우리는 구약의 성도들보다 더 큰 은혜 아래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랑을 체험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큰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하여 기쁨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 일각에서 종종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는 헌금에 대해 강요하거나 억지로 내게 하면 안 된다. 헌금은 자발적으로 즐겨 내도록 해야 하며, 또한 하나님의 복을 바라보고 드려야 한다(고후 9:6,7).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재물 가운데 일부를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릴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며 복 주신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는 말씀을 생각하면서 구제와 자선사업에 힘쓰도록 해야 한다.

7) 전도와 선교

  고신교단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상대적으로 저조한 성장을 기록하였으나 1980년대 이후로 다시금 성장세를 회복하고 있다. 특히 근래에 들어와서 다른 교단이 상대적으로 침체한 가운데서도 우리 교단은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그 동안 우리 교단이 다진 말씀 중심의 신앙이 이제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선배들이 물려준 신앙유산을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면서 더욱 전도와 선교에 힘써야 할 것이다. 특히 다른 교단 교회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고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교육에 힘쓰며, 한국교회와 한국사회의 차세대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데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은 타교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이긴 하지만 전세계에 선교사들을 파송하여 개혁교회 건설에 힘쓰고 있다. 일부 문제도 있지만, 우리 교단의 선교사들은 모범적으로 선교사역을 수행하여 좋은 열매를 거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우리 교단 선교사들은 개혁주의 신학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유산을 온 세계에 전해주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곧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을 실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주의 신학을 배운 우리 선교사들이 해외 선교지에서 현지 지도자들을 개혁주의 신학으로 양육하고 훈련하는 일에 힘쓰도록 교단 전체가 뒷받침하여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혁주의 신학의 산실인 고려신학대학원이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서 개혁주의 신학을 계승하고 전수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교단 전체의 기도와 후원과 감독이 필요하다. 그리고 전세계 선교 현장의 현지 신학교들과 고려신학대학원 사이에 “글로벌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이는 곧 “개혁주의 신학의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이며, 우리 교단이 하나님 앞에서 받은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된다.

  한국교회가 일제의 탄압으로 거의 다 무너져갈 때에 하나님은 우상 앞에 무릎 꿇지 아니하는  주의 종들을 일부 남겨두셨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으로 한국교회를 재건하고 전세계에 이 신앙과 신학을 전파하라는 뜻으로 이해된다. 이제 그들이 감옥에서 기도하며 꿈꾸던 것이 꽃이 피어 열매를 맺으려는 시점에 와 있다.

  그러나 순수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을 파수하며 전파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에는 많은 도전이 있고 조롱과 유혹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가고픈 유혹도 있으며, 스스로 무력감과 자조에 빠지는 일도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 전체를 보아도 그렇거니와 전세계 교회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키고 따르고자 하는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은 매우 희소하며, 따라서 그만큼 더욱 귀하고 값진 것이다. 좁은 길에는 환난과 어려움이 많아 찾는 이가 적지만 그만큼 귀하고 복된 길이다. 이 길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교단이 무너지면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에서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이 크게 위축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교단을 붙들어 주시고 지켜 주시도록 결사적인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 교단이 개혁주의 신앙과 신학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일제 때 신사참배 반대로 모진 고난과 옥고를 치른 우리의 신앙선배들이 천국에서 크게 슬퍼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를 몹시도 사랑하시고 은혜 내려주셨던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해드리는 것이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곳곳에서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을 위해 수고하는 선교사들의 설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여태까지 베풀어주신 큰 은혜에 감사하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힘입어 용기를 내어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기드온의 300 용사를 통해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능력의 하나님이시다. 만일 우리가 이 하나님을 믿고 용감하게 나아간다면 고신교단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를 위해 큰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 일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 교단을 남겨두시고 붙들어주셨다고 생각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 교단에 맡겨주신 역사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단이 되도록 우리 모두 힘써 기도하며 용감하게 나아가는 믿음의 용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관심맨
글쓴이 : 씨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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