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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요5:39) 2012-1209 주일

우순(愚巡) 2012. 12. 12. 20:14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여러분 평안하시었는지요?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저는 성서주일을 맞이하여 "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성경본문은 요한복음 539절입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수 있기에,   성경을 연구할 때는 영생을 얻을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은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고 있기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들을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1. 성경묵상의 진지함

 

오늘 제가 제일 먼저 준비한 말씀은 성경묵상의 진지함입니다. 저는 요즘 성경을 읽고 묵상하면서 진지함을 느낍니다. 그것은 성경말씀 한 절 한 절, 단어 하나하나가 깊은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나름대로 오래 읽어 왔는데, 요즘 점점 더 깊은 맛을 느끼면서 성경을 읽습니다. 성경은 읽을수록 새롭고, 묵상할수록 깊고 깊은 맛이 우러납니다. 그것은 말씀과 삶의 관계 때문입니다. 성경말씀을 삶의 현장 속에서 진지하게 읽고 묵상하면 성경말씀 한 절 한 절이 깊은 은혜를 줍니다. 특히 요즘 제 마음의 깨달음은 자기 돌아봄입니다. 성경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할수록 자꾸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성경묵상과 자기 돌아봄! 성경을 피상적으로 읽지 않고 진지하게 읽고 묵상하면 지금 서 있는 삶의 현장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깊은 체험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 자체가 허공의 메아리나 상상력의 허구가 아니라 삶의 현장에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경말씀의 묵상은 언어분석이나 지적동의나 율법강요가 아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진지한 사건입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도 성경을 묵상하면서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온유와 겸손에 대한 묵상입니다. 저는 지난 한 주간 새벽기도를 인도하면서 온유와 겸손이라는 말씀을 붙들고 씨름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아직 온유와 겸손에 대하여 확실한 깨달음을 얻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지요? 온유와 겸손은 마태복음 11장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주시는 쉼의 말씀에 대한 해답으로 주어졌습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은 멍에가 쉽고 짐이 가볍다는 해답입니다.

 

<11:28~30>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지난 한 주간 내내 주님의 말씀이 마음에 들립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 그러니 너도 내게 배워라! 그러면 네 멍에도 쉽고 네 짐도 가볍다이 말씀이 일주일 째 제 마음을 붙들고 깊은 은혜를 주고 있습니다. 한 주간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하나님! 제게 온유함과 겸손함이 무엇인지 알려주시기를 간구했습니다. 온유함이 잘못하면 나약함이 되고, 겸손함이 잘못하면 비굴해집니다. 그래서 약하지 않으면서도 부드러울 수 있는 온유함, 그리고 비굴하지 않으면서도 오만하거나 교만하게 비춰지지 아니하는 겸손함을 간구했습니다.

 

온유함과 겸손함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손에는 딱 잡히지 않습니다. 어렴풋이는 알겠는데 손에 딱 잡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거다! 하고 손에 잡히지를 않습니다. 부드럽되 나약하지 않는 온유함, 낮은 자리에 서되 비굴하지 않는 겸손함이 손에 딱 잡히지를 않습니다. 하지만 진지한 묵상을 통하여 확실하게 얻은 은혜는 제 자신을 돌아본 것입니다. 좀 더 온유해져야 함을, 좀 더 겸손해져야 함을 돌아본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우리의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합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2. 성경을 사랑하는 성서주일

 

오늘은 성서주일입니다. 성서주일은 성경을 사랑하는 주일이고 성경을 널리 보급하는 주일입니다. 대한 성서공회에서 펴낸 성서주일 소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서주일은 영국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전해지는데 메리 존주라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감동적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18세기 말에 영국의 웨일스 지방에서 살았던 8살의메리 존스(Mary Jones)’ 라는 소녀는 성경책을 갖고 싶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메리는 성경책을 얻기 위해서 30Km를 걷기도 하고, 어린 나이에도 허드렛일을 하기도 하는 등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6년간 돈을 모아서 결국 성경책 한권을 삽니다. 메리 존스는 성경을 사랑한 소녀였습니다.

 

이 메리의 성경사랑이 챨스 목사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지자, 1802년에 영국 런던에서 열린 기독교회의에서는 성서공회를 만들기로 하고 1804년에 최초의 성서공회인 영국 성서공회가 만들어집니다. 이어서 1814년에는 네델란드 성서공회가 만들어지고, 1826년에는 스코틀란드가 성서공회를 조직합니다. 특히 스코틀란드 성서공회는 한국의 존 로스가 번역한 최초의 한글성경인예수셩교젼셔를 번역하기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6년에는 13개국 대표들이 영국의 헤이워드 히드(Haywards Heath)에서 모임을 가지고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방언으로 성경을 펴서 말씀을 전할 목적으로세계성서공회연합회를 조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세계성서공회연합회의 회원국은 137개국이며 200여 개국 이상이 함께 성서사업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성서주일 예배를 드린 것은 1899년이었습니다. 1885년에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가 입국하고 1895년에 서울에 성서공회 사무실을 열었으니 1899년에 "성서공회 주일"을 지킨 것은 참으로 빠른 것이었다. 처음에는'성서공회주일(Bible Society Sunday)'로 지켰으나 1900년부터는 '성서주일(Bible Sunday)'로 호칭되었고 점차 전국 교회의 광범위한 관심과 호응을 받게 되었다.

 

한국의 성서주일에 대한 보고서가 영국 성서공회의 자료에 있습니다. 1901년에 영국성서공회에 보고된 보고서를 읽어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성서공회주일은 전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성서주일 대부분의 중요한 교회에서는 특별예배를 드렸는데 공통된 설교의 제목은 성경의 가치와 성경의 필요 및 성경의 권위와 성서공회의 목적과 목표에 대한 것이었다. 몇몇 교회에서는 연보를 거두어 성서공회 기금에 백이원 삼십육전을 보태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액수이기 때문에 이 돈은 아름다운 헌금이다. 1901년도에는 성서주일을 지키는 한국교회들이 늘어나고 연보도 백사십일원이나 되었는데 조선의 가난을 생각할 때 이 금액은 매우 고무적이었다.”<출처 대한성서공회>

 

성서주일은 성경을 사랑하는 주일입니다. 그리고 성경을 사랑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성경의 가치를 깊이 인식하고 진지하게 묵상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 개신교 신자들은 우리의 신앙의 근거가 성경임을 명확하게 해야 합니다. 종교개혁의 구호는 오직 성경으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입니다. 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 오직 성경만이 우리 믿음의 근거입니다.

 

 

3. 성경의 보물은 영생

 

성경의 보물은 영생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고 연구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으려는 생각입니다. 연구란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고, 생각에 따라서 연구결과가 결정됩니다. 묵상은 생각을 깊이 하는 영적 생각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하면서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39절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한다고 선포합니다.

 

<요한복음 5:39>"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생각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연구하실 때 어떤 생각을 갖고 연구하십니까? 성경은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생각이 중요합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저마다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성경을 읽습니다. 문학가는 문학적 상상력을 동원하고, 심리학자는 성경 속에 등장하는 종교적 치유에 집중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생을 얻는 일입니다. 성경의 보물은 영생입니다. 영생은 성경에 숨겨둔 보물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에서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에 숨겨진 영생이라는 보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보물찾기를 기억하십니까? 어린 시절 소풍을 가서 한 번쯤은 경험하신 보물찾기 말입니다. 소풍을 가면 선생님께서 아이들에게 보물찾기를 시킵니다. 그때 아이들은 왜 그토록 산을 헤맬까요? 그냥 산책하는 마음으로 할까요? 심마니처럼 산삼을 캐려고 할까요? 거기서 동전을 주우려고 돌아다니겠습니까? 나뭇잎 속에 묻혀있거나, 바위틈에 있거나, 큰 나무 틈새에 있는 보물이 표시된 쪽지를 찾으려고 하는 겁니다. 목적이 아주 분명합니다. 그래도 찾지 못하면 아이들이 포기하나요? 찾을 때 까지 계속 찾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이들은 확신을 가지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보물을 찾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라입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책이고, 성경 안에는 영생이라는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겁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영생의 보물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성경을 연구할 때,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보물인 영생을 얻을 줄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경에서 많은 유익한 것을 얻을 수는 있지만, 결국 영생은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문학가 이문열씨도 성경을 많이 읽으신 분이시지만 영생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이문열씨의 팬입니다. 이문열씨의 소설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으로서 이문열씨에 대하여 짙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로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 기반을 둔 명작을 남기셨지만 영생을 얻지 못하신 것 같아서 짙은 아쉬움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문열씨의 명작중 하나인 사람의 아들이라는 소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민요섭이라고 하는 주인공을 통해서 신을 이야기하고 진리를 이야기합니다. 소설의 제목인 사람의 아들은 성경의 메시야 호칭입니다. 구약에서는 기다리는 메시야, 신약에서는 예수님을 지칭하는 호칭입니다. 이문열씨는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메시야 호칭을 주제로 명작을 썼습니다. 이문열씨가 이 책을 쓰기 위해서 기독교 관련 책만 500여권을 읽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독서량입니다. 또 성경도 10여 차례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문열씨는 스스로 나는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고백합니다. 한 평론가는 이런 글을 남깁니다. “신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문제에, 종교적 진리의 시련보다는 사회적 정의의 시련에 더욱 중점을 두었다. 이점은 구원보다는 정의를, 신의 논리보다는 인간의 논리를 계속 추구하고 있는 주인공 민요섭의 지향이 결국 신의 은총이 아닌 정의의 실현에 놓여 있다고 결론을 짓는다.”

 

저는 문학가로 볼 때에는 이문열씨의 이 지향점이 나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분은 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고 명작의 소설을 지었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분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평론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는 월북을 하고 어머니는 교회를 다녔는데 월북한 아버지의 공산주의 사상과 교회를 다니는 어머니 속에서 Father complex 아버지 열등감이 혼란을 가져왔기 때문에 결국 그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열등감을 포장하기 위해서 더 강력한 보수주의자가 되었고 그리고 교회를 다니긴 했지만 아버지의 상을 통해서 성경을 읽고 어머니와의 혼재 속에서 성경을 읽다가 보니까 성경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계시는 읽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것도 옳고 그름을 제가 따지지 않겠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문학가로서는 성공했지만 영생을 얻지 못했다고 하면 적어도 성경을 읽은 목적을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성경의 보물인 영생인데, 성경의 부수적인 것들만 얻었지 성경의 가장 소중한 보물은 얻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보물은 영생입니다. 우리는 성경의 보물찾기에서 꼭 영생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런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를 합니다. “나는 이문열씨가 어머니를 따라다녔던 그 교회에 가서 목사님에게 이렇게 따지고 싶다. 어떻게 설교를 하셨기에 이 아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제가 이것을 소개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성경을 그렇게 많이 읽고 명작을 남겼어도 그 성경 안에 들어있는 영생이라고 하는 보물은 얻지 못했다는 겁니다. 두 번째는 이분이 다녔던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당신이 설교를 하셨기에 이 아이가 이렇게 되었습니까? 라고 하는 반문을 하겠다는 평론가의 질문 속에는 오늘 교회가 영생이라고 하는 설교를 안 한다는 겁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사람은 기독교적 시각을 가졌는지도 모릅니다. 교회가 내세에 대해서,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천국에 대해서 이야기를 안 하는 겁니다. 그것은 촌스럽고 무식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교회에 다닙니까? 착하게 살자는 것입니다. 왜 헌금합니까? 혼자 쓰지 말고 나눠쓰자는 겁니다. 일견 좋아 보이는 말 같지만 아주 소중한 진리가 상실되었습니다. 성경은 영생을 얻는 책이고, 교회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다니는 것입니다.

 

 

4. 성경의 보물찾기 : 영생을 얻으라!

 

 

영생을 얻으라! 복음입니다. 성경의 보물이요 말씀선포의 핵심입니다. 영생은 기독교신앙의 알맹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가장 소중한 목적은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성경구절,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찬송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입니다. 복음의 핵심이요 성경의 보물입니다.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언제부터인가 교회 안에서 영생, 내세, 천국, 재림 같은 설교를 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불신앙적인 풍조가 생겼습니다. 그런 설교를 하는 사람은 아주 무식하고 촌스런 사람이라고 치부합니다. 강단에서 멋진 사상과 근사한 시민의식과 섬세한 심리진단을 설교하면 그럴듯하게 생각합니다. 아니면 좀 더 세련되게 문학작품의 평론이나 시대사조나 역사의식을 설교하면 대단히 지성적이고 참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신앙적인 지성은 영성의 빛을 통하여 빛이 나지만, 불신앙적인 지성은 영성의 빛이 없어 영적 흑암에 진리를 잃어버립니다. 건강한 지성, 영성의 빛 가운데 진리를 깨닫는 지성은 성경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오늘 교회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종교다원주의나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영지주의의 후예인 무신론적 지성주의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경전인데, 성경의 보물은 영생인데, 성경을 하나의 책으로만 읽고 삶의 교훈만 얻으려고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에 담겨진 신화를 발견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은 바벨론 신화나 이집트 문화를 착색한 것이고,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라고 하는 것은 초대교회가 만들어낸 영웅전의 허상의 고백일 뿐이고, 천국과 지옥, 내세와 영생은 기독교가 교회를 강화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종말론적인 교리일 뿐이라고 폄하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목사가 영생을 설교하지 못하고 내세를 설교하지 못합니다. 참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목사가 용기를 가지고 여러분이 죽으면 천국에 가셔야 된다.”는 설교를 못한다는 겁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마음이 뜨끔했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을 생각했다는 말씀이 강하게 찔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다고 강하게 설교하지 못하는 교회의 현실을 이문열씨를 예화로해서 비판하면서 어쩌면 오늘 교회는 정말 복음의 진리를 말하는데 부끄러워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은 모든 사람에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능력을 전하는데 부끄러워하고 있지 않은가? 천국과 지옥을 말하면 무식해 보이고 영생을 말하면 허상을 쫒는 것처럼 보이는 흐름이 교회를 이끌어가는 것은 아닐까? 이제 우리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 안에서 참 진리를 전파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새벽기도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몰라도 제가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는 것만큼은 교인들이 같이 따라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저는 우리가 죽으면 영생을 얻는 줄 믿습니다. 반드시 천국과 지옥이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이 있음을 믿습니다. 혹시 자신의 지성과 지식 때문에 내세와 영생과 천국과 지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시면 성경을 펴시고 보물찾기를 다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로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여러분! 성경을 연구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성경 안에 있는 영생을 찾기 위해서 연구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냐? 의미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12명이면 어떻고 13명이면 어떻습니까? 발음도 안 되는 제자들의 이름을 못 쓴다고 해서 신앙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달달 외우는 것과 어설픈 성경의 구절을 가지고 율법적으로 자기를 만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 가지고는 부족했습니다. 그는 성령이 함께해서 성전에 들어가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경 안에 들어있는 영생이라고 하는 보물을 꼭 찾으셔야 합니다.

 

 

5.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준비한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담고 있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하신 말씀의 목적입니다. 성경에서 영생을 얻습니다. 성경은 에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언합니다. 곧 영생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하나님의 증언을 아멘으로 받아들일 때 얻을 수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5: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성경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책이고, 예수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이 속에서 문학적 상상력을 만들 수 있고, 성경을 읽으면서 상업적 테크닉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카피라이터들은 예수님 기적의 장면을 광고로 인용합니다. 또 예수님의 이야기 속에서 빛과 그림자를 찾으려 했던 융과 같은 심리학자들도 있습니다. 얼마든지 좋습니다. 그러나 꼭 한 가지 어떤 방식으로 성경을 읽고 유익을 얻던지 간에 덤일 뿐이지 가장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서 영생을 얻는 것이고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도록 성경본문인 요한복음 539절이 들어 있는 성경 절 앞 뒤의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요한복음 530절에서 47절까지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이 선포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고 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함께 말씀을 묵상해보겠습니다.

 

31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되

예수님이 스스로 자기를 증언하시는 것은 참이 아니라는 겁니다.

 

32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예수님을 위해서 증언하는 것이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33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

요한이 진리에 대해서 증언합니다. 그런데 진리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알면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진리를 요한이 증거했음으로 요한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겁니다.

 

35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 너희가 한때 그 빛에 즐거이 있기를 원하였거니와

요한복음에 기록된 빛과 어둠은 당시에 유행하던 영지주의라는 철학적 언어를 차용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한은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가 아니라 켜서 빛을 발하는 사람이었는데 한때 그는 영원히 예수를 증언한 것이 아니고 일시적으로 증언을 했다는 겁니다.

 

36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내가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한도 나를 증언했지만 그것은 한 때를 비추는 것에 불과하고 나에 대한 증거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겁니다.

 

37또한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친히 나를 위하여 증언하셨느니라

하나님이 증언하십니다. 어떻게 증언하셨느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하셨다는 겁니다. 성경을 왜 우리가 소중하게 생각해야하느냐? 성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신 겁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이 증언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를 성경에서 읽고 영생을 얻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을 잘 읽는 사람들의 보물찾기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다음에 제 마음을 찔리게 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40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이 말씀이 특히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생각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하나는 영생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께로 오지 않는다는데 강조를 합니다. 또 하나는 내게로 오기는 오는데 목적이 영생이 아니라는 겁니다. 나는 정말 예수님에게 가는 목사인가? 이 말씀이 제 마음을 찔리게 하였습니다. 그 다음 말씀이 저에게 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41~42나는 사람에게서 영광을 취하지 아니하노라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기절초풍하는 겁니다. 율법적으로 너희가 의롭고 경건하고 유대교적인 영성에 비추어 볼 때 완전한 신앙인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런데 너희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성경을 묵상하며 찔림이 왔습니다. 너희는 내게로 와서 영생을 구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겁니다.

 

44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우리가 사람들끼리 나누는 영광을 구하고 있는 것이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종교인이고 신앙인이고 기독교인이지만, 우리 속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영생을 구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결론을 내립니다.

 

45~47절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그러나 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 하시니라

 

내가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런데 고발하는 자가 따로 있습니다. 그는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인데 모세도 믿지 아니하는 너희가 어찌 나를 믿겠느냐고 반문하시면서 말씀을 마치십니다.

 

저는 서두에 온유와 겸손이라는 것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새벽기도를 인도하며 힘들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저는 온유와 겸손에 대한 설교를 수도 없이 했습니다. 그런데 왜 손에 잡히지 않을까? 제 자신이 진지해졌기 때문입니다. 정말 성경에 있는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묵상해보니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정말 하나님을 제대로 믿고 있는지를 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모세의 율법의 시각과 잣대에 비춰보면 도무지 비판할 것이 없어 보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두개인, 제사장들과 장로들을 향해서 주님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영생을 얻기 위하여 오는 것이 아니다. 너희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다. 너희가 구하는 영광은 너희끼리 나누는 영광이지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이 아니다라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설교하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제 마음을 한주일 내내 온유와 겸손이라는 말과 함께 요한복음 5장의 말씀이 저의 관절과 골수를 쪼갰습니다.

 

 

저는 이제 제 말씀을 여기서 마칩니다. 성경은 영생의 보물을 담아두는 보물찾기의 동산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증언하신 책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목적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 가야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은 율법적인 완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숭고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구해야하는 영광은 사람끼리 나누는 영광이 아니라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진지함이 필요합니다. 정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새롭게 만나는 신앙의 돌아봄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혼과 관절과 골수를 쪼개는 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를 철저하게 노출시켜놓고 새롭게 태어나는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성서주일에 성경을 통해서 예수를 만나시고 영생을 얻고 하늘로부터 오는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시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