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자에게! - 예수님이 길입니다 -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한 주간 평안하시었는지요? 아멘 하시는 분들은 평안하신 것 같은데, 아멘을 하시지 않는 분들은 불편하셨던가 보지요? 허리가 안좋으셨나요? 만약 지난 주가 불편하셨다면 이 번 주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편안한 주간을 보내시기를 축복합니다.
1.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주일 : 왕국주일
오늘은 왕국절(Kingdomtide)의 마지막 주일로 왕국주일입니다. 왕국절기는 8월 마지막 주에서 강림절 전주까지를 말합니다. 왕국주일은 그 마지막 주일입니다. 절은 여러 주를 포함한 절기이고, 주일은 절기 중에서 한 주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오늘 사회 하시는 선교목사님과 저와 찬양대원들이 하얀색 스톨을 목에 걸었습니다. 스톨은 영대인데 주님의 종이라는 멍에를 뜻합니다. 왕국주일에는 하얀색 스톨을 두릅니다. 왜 하얀색이냐면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기념하고 경축하기 때문입니다. 하얀색은 예수님을 축하하고 경배하는 성탄절, 변화주일, 부활주일,승천일등에 사용합니다.
태양을 중심으로는 양력, 달을 중심으로는 음력이라고 하지요, 교회력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계산하는 역법입니다. 교회력은 예수님을 기다리는 강림절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승천 후 성령님이 임재하시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끝납니다. 그리고나면 성령강림절 부터 다음 강림절까지 반년 가까이는 휴지기에 들어갑니다.
미연방교회협의회는 1937년에 발행된 기독교인 연대 (Christian Year)에서 이 반년 기간을 왕국절로 명명했는데, 1940년에는 8월 마지막 주일부터 강림절 까지 3개월로 줄여서 지키기로 하였고, 미연합감리교회는 1945년도에 3개월 기간의 왕국절을 받아들이고 1965년 예배서에 공식적으로 실은 후 1984년 부터는 선택적으로 지킬 수 있게 하였습니다.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는 1992년 선교국에서 발간한 예배서에서 왕국절을 8월 마지막 주일에서 강림절 까지 13주 내지 14주로 정하여 지켜오고 있습니다.
왕국절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선포하고 기념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주의 주시며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라는 이름은 재림주의 호칭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인 통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박수암, 요한계시록, 248쪽) 사도 요한은 어린 양 에수를 만왕의 왕으로 선포합니다.
<요한계시록 17: 14절>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이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 이란 호칭은 원래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할 때 사용하던 호칭이었습니다.
<신명기 10: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다니엘 2: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딤전6:15>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그런데 우리는 이 거룩한 호칭,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룩한 이 호칭을 왕국주일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게 헌사하며 경배하는 것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 19장 16절은 재림주의 호칭으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는 호칭을 사용합니다.
<요한계시록 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한마디로 왕국주일은 왕국절기의 마지막 주일로,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심을 선포하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주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길을 갑니다. 왕이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면서 승리의 삶을 삽니다.
2. 왕이신 에수 그리스도의 선포 : 내가 길이다!
저는 지난 10월 4일에 한 달여를 준비해서, 우리 감리교회 본부에서 발행하는 목회와 강단(목회자용 정기 간행물)에 왕국주일 설교를 게재하였습니다. 지난 8월에 원고 청탁을 받고 두어달을 준비하여 10월 4일에 원고를 보냈습니다. 원고료도 39,000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까지 다시 두어달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설교를 묵상하면서 요한복음 14장의 길이신 예수님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래서 설교 제목을 "길을 묻는 자에게! - 예수님이 길입니다"라고 정했습니다.
오늘 설교의 요지는 이것입니다. 길을 묻는 자들에게 예수님이 길이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르쳐주시는 분이시기도 하지만 길 자체이십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길은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를 묻는 기도도 중요하고 길을 가르쳐주시는 응답도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 왕이신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 함께 가는 길이 제일 중요한 길이요 가장 좋은 길입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혹시 알고 계십니까? 우리 기독교신자들에게 불편한 진실이 있는 것을? 우리 기독교신자들에게는 한 가지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답답함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의 분명한 응답을 기다립니다. 이것은 길을 묻고 물은 길에 답하는 것입니다. 길을 묻는 자에게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미혼자는 배우자를 묻고, 사업가는 투자처를 묻고, 환자는 병고침을 묻습니다. 사역자는 신학교를 갈 것인지를 묻습니다. 요즘 같은 대선정국에서는 누구를 찍어야 할는지를 묻습니다. 그런데 길을 물으실 때.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팍팍 오시던가요? 하나님의 응답이 즉각 즉각 오시는 분들은 아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찌할 지를 몰라 답답해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묶으면 길을 묻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길을 알려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결론은 하나입니다. 하나님! 제게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길만 알려 주시면 즉각 순종하고 그 길로 가겠습니다. 우리는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기도하시면 팍팍 응답이 오시던가요? 즉각 즉각 이리 하라 저리 하라 음성이 들리던가요? 솔직이 말하면 우리들은 확실한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도 못한 채 답답함을 느끼고 있지 않나요? 나만 그런것 같아서 쉬쉬하지만 사실 돌아보면 주위에 많은 성도들이 다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하나님이 응답을 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르짖어 구하라고 하시며 응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렘33:2~3>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또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막11: 24>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그런데 실상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은 실생활 속에서 아주 분명한 응답을 받고 사십니까? 실제로 매순간 매순간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길로 가고 계십니까? 예라고요? 그러면 오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사시면 한 가지를 더 묻습니다. 지금 행복하십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길로 가고 계시면 분명 행복해야 되는 것 아닐까요? 성경은 분명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께로 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후3:4~5>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런데 솔직이 우리에게는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것은 분명한데, 우리들이 정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길을 가는데도 행복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응답에 대하여 아주 불확실하게 느낍니다. 하나님이 확실하게 길을 알려주시면 그대로 할텐데 이게 하나님의 응답인지? 저게 하나님의 응답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확신이 서지를 않아 불분명합니다.
믿음이 좋은 성도님들 가운데는 믿음이 너무 좋아서 하나님의 확실한 응답을 받고 움직이기를 원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게 네가 가야할 길이다! 하고 분명하게 정해주시면 순종하려고 준비가 되어 있는데 문제는 이게 그 길인지? 이게 정말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를 알 수 가 없어서 망설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하게 들을 때까지 결정을 미루다가 중요한 시기를 놓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그런데 우리가 믿은 예수님,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은 길을 묻는 자에게 의외의 대답을 하셨습니다. 길을 묻지 마라 내가 길이다! 예수님은 길을 묻는 도마에게 길을 대답하시지 않고 자신이 길이시라고 선포하십니다. 오늘 읽은 성경본문 요한복음 14장은 도마와 예수님의 대화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도마는 의심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확인해보고 믿는 의심의 기질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도마의 의심이 잘 드러난 것은 부활의 주님을 의심하는 장면입니다. 도마는 부활의 주님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과 발을 확인해 본 다음 믿겠다고 말합니다.
<요20: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도마는 의심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도마는 확인하고 싶었던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도마에게 예수님은 믿음 없는 자가 되지말고 믿음 있는 자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20:26~29> 26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 도마가 예수님에게 길을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시는 지 그 길을 모르겠습니다. 주님이 가시는 길을 제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도마는 길을 물었습니다.
<요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그러나 도마의 이런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길이다! 예수님은 길은 가르쳐 주시지 않고 자신이 길이시라고 선포하셨습니다. 내가 길이고, 내가 진리고, 내가 생명이다. 나를 통해서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다.
<요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도마는 길을 묻고 예수님은 자신이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눈을 감고 가만히 묵상해보았습니다. 길을 묻는 도마에게 길이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예수님은 길을 묻는 자에게 길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예수님 자신이 중요한 것임을 깨우치고 계셨습니다. 평범하지만 쉬운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랑하는 연인이 길을 가면서 어디로 갈까 논의하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어디로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1993년도엔가 28일간 유럽의 여러 나라를 배낭을 메고 아내와 여행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면서 재미있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혼자 여행을 하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서 연인이 되기도 하고 결혼을 약속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부부끼리 연인끼리 여행을 왔다가 돌아갈 때는 헤어져서 이혼하거나 헤어지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길 때문이었습니다. 여행하면서 길을 묻는 사람은 길 때문에 싸우다가 헤어지고, 여행하면서 길을 묻기 보다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하고 결혼하였습니다. 어디로 갈지 싸우는 커플들은 코펜하겐의 인어공주를 보러 갈지 브뤼셀의 오줌 싸는 소년을 보러갈 지 다투다가 헤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이 싹튼 커플들은 무엇을 보았는느냐고 하면 아주 쉽게 대답합니다. 그냥 오빠랑 놀다 왔어요.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는데 함께 여행을 하다가 헤어집니다. 어디로 갈지를 놓고 싸우다가 급기야는 갈라섭니다. 그러나 사랑하게된 커플들은 어디로 갈 지는 뒷전이고 함께 있는 것 만으로 매우 행복하게 여행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가는 지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가느냐입니다.
그렇습니다. 길을 묻는 자들은 길을 가르치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마음은 좋은 것이지만, 그 속에 무언가 부족한 2%가 느껴집니다. 길을 묻는 우리의 마음속에는 길을 가르쳐주는 하나님보다 우리가 가고 싶은 길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는 마음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아니 어쩌면 하나님이 가르쳐주시는 길보다도, 내 마음이 정한 길을 하나님이 승인해주시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자기의 소원이 성취되도록 하나님이 힘을 실어주시기를 강권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은 길만 찾으면 하나님은 여지없이 버릴 준비가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상실한 채, 우리 주님을 상실한 채 홀로 길을 가다가 낙심하고 절망하고 실패할 것입니다.
3.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 : 가장 좋은 길!
우리가 가야할 가장 좋은 길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길입니다.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신앙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입니다. 우리가 구할 것은 길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예수님에게 길을 묻는 것도 좋은 신앙이지만 더 좋은 것은 예수님이 길이심을 믿는 신앙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길보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길이 더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대로 함께 따라 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우리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예수님과 함께 가면 그게 바로 살 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길을 소개 받았을 지라도 예수님 없이 가면 그 길은 고독하고 절망하고 낙심천만한 길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길은 아무리 좋은 길일지라도 결국은 시험에 빠지고 패배하는 길입니다. 살길은 가장 좋은 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가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길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지난 번에 친구 목사에게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 협성대학교의 교수로 오셨던 박우영 목사님이 유학을 가실 때 이야기입니다.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데 유학비가 없어서 장학금을 받아야 유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답니다. 박 목사님은 하나님의 응답을 구했습니다. 장학금이 오면 하나님의 뜻이니 유학을 가고, 장학금이 안 오면 유학을 가지 않겠다고 기도를 드렸답니다. 그런데 가시고 싶었던 미국 대학교의 입학 일자가 다가오는데도 장학금 통지가 오지를 않더랍니다. 그래서 아하 유학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구나 생각하고는 유학을 포기하려고 했었답니다. 그런데 매형인 제 친구가 조언을 했답니다. 장학금이 오면 응답이고 안오면 안응답이 아니다. 유학을 가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믿으면 주님이 인도하실 줄로 믿고 그냥 가라고 조언을 해서 보냈답니다. 박 목사님은 하나님의 응답을 확실하게 받지 못했다고 낙심했지만 주님이 동행하심을 믿고 가라는 매형의 말을 듣고 무조건 미국엘 건너가서 학교에 등록을 했는데 며칠 후에 학교 당국자가 장학금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장학금을 수령하라고. 그래서 "저는 장학금 통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랬더니 학교 당국자가 말하기를 "아니 우리가 벌써 연락을 했는데 왜 몰랐느냐"고 되묻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학교에서는 이미 다른 채널로 장학금 대상자임을 통보했는데 제대로 연락을 받지 못했었답니다. 그 때 깨달음이 오더라는 것입니다. 주님이 동행하심을 믿고 가길 잘 했지 안 갔으면 장학금도 취소되고 정말 유학생활을 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것입니다. "
우리는 다시 성경말씀으로 돌아갑니다. 내가 길이다! 예수님이 길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그 하나님의 응답이 아주 분명하게 내 마음에 각인되었다고 할지라도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의 동행입니다. 예수님에게 집중하는 신앙생활입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에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합니다. 좋은 남편을 만나면 잘 살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좋은 여자를 만나면 이게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할 때도 기도하고 결정하니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하기도 합니다. 어떤 일을 결정할 때도 나름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결정합니다. 물론 좋은 배우자와 사는 것은 행복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은 성공의 지름길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게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확신하고 결혼도 하고 사업도 시작하지만 얼마 못가서 위기를 만납니다. 그리고 그 위기 앞에서 낙심하고 절망합니다. 힘들게 살아갑니다.
왜 그럴까요? 분명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었는데 왜 이리도 힘든 상황에 놓이게 될까요? 하나님 상실, 예수님 상실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응답, 예수님의 응답만 원했지, 하나님께 순종하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정말 이거다 하고 딱 부러지게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응답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순간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임을 깨답습니다.
우리는 주위에서 종종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봅니다. 또 확실하고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해서 갈등하고 있는 사람들도 자주 만납니다. 답답해하고, 갈등하고, 심한 경우에는 종교적 우울증에 시달리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심한 죄책감을 느끼기도 힙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이런 분들이 계시면 오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신앙생활의 방향을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길을 묻는 신앙이 아니라 길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신앙으로 돌려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집중하고,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우리가 예수님과 동행하면 그게 성공의 길이고 행복의 길이고 영생의 길입니다.
우리의 성공이나 우리의 행복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성공의 길을 묻고, 우리가 행복의 길을 묻는다고 길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길은 따로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길, 예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 성공의 길이고 행복의 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예수님이 알려만 주시면 그 길로 썡하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그 마음 밑 바탕에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 상실, 예수님 상실입니다. 우리는 그 길만 알면 지체없이 그 길로 쌩하고 달려가기에 하나님도 예수님도 잊어버릴 것입니다. 그 순간 성공도 행복도 산산조각이 납니다. 진정한 성공, 진정한 행복은 지름길이 아니라 길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지금 답답하십니까? 어디로 가셔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 답답하십니까?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하십니까? 왜 내게는 응답하시지 않고 길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시는지 답답하십니까? 생각을 바꿔보시지요. 길을 묻지 말고 길이신 예수님과 동행하시는 삶으로 바꿔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최상의 길, 바로 이거다 하고 딱 손에 잡히는 길이 아닙니다. 어쩜 그런 것은 처음 부터 없었을지도 모르고, 앞으로도 영원히 우리 앞에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길은 있습니다. 살 길이 있습니다. 그래도 길이 있습니다. 바로 길이신 예수님 자체를 바라보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면 주님이 순간 순간 인도하심은 물론이고 우리에게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4.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 넉넉한 승리!
왕국절은 예수 그리스도가 왕이심을 경축하는 절기입니다. 왕국주일은 왕국절기의 마지막 주일로, 예수 그리스도가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심을 선포하고, 왕의 승리에 참여하는 주일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의 삶을 삽니다.
요한 계시록의 시작은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일곱 교회에 승리를 독려하십니다. “이기는 자에게 상급이 있다” 이기는 자,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기는 자, 믿음의 승리자에게는 상급이 있습니다.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계2:7), ‘둘째 사망의 해를 면함’(계2:11),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계17),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계2:6), ‘흰옷과 생명책의 기록’(계3:5), ‘하나님 성전의 기둥’(계3:12), 그리고 ‘아버지 보좌’(계3:21)입니다. 이기는 자에게 상급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믿음의 승리를 독려합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할 것을 격려합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승리합니다. 우리에게는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 승리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성도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자가 됩니다. 왕의 승리는 성도의 승리입니다. 어린양과 짐승과의 전쟁에서 왕의 승리와 함께 성도도 승리합니다. 왕과 함께 성도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kletoi), "택하심을 받은 자들“(ekletoi), "진실한 자들”(pistoi)이 승리합니다. (계17:14)
우리는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고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능력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받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롬8: 36~39>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승리의 힘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마다 세상을 이깁니다.
<요일 5: 4~6>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죄에서, 패배에서, 사망에서 건져 내사 승리케 하시는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롬7: 24~2%>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또한 성도는 승리의 소망으로 끝까지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참으면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하실 것입니다. 믿음은 승리의 힘이요, 왕의 승리에 동참하는 것이며,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딤후 2: 10~13>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항상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길이 궁금하십니까? 길을 묻는 자에게 "내가 길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우리 주님의 선포를 들으시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중요한 것은 길이 아니고 예수님이십니다. 진정한 길은 예수님의 응답이 아니라 예수님 바로 자체이십니다. 답답해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고 불안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우리 주님과 동행하면 그게 길입니다. 그게 살 길입니다. 그 길에 구원이 있고, 영생이 있고, 승리가 있습니다.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누리는 넉넉한 승리의 삶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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