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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초막절과 예수님(요7:1~9) 2012-1111 상동주일

우순(愚巡) 2012. 11. 13. 17:33

 

초막절과 예수님

 

 

   <요한복음 7:1~9>

 

   1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이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5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아니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일들을 악하다고 증언함이라  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9 이 말씀을 하시고 갈릴리에 머물러 계시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초막절과 예수님』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초막절과 예수님의 구속사입니다.

 

지난 주에 추수감사절은 초막절에서 유래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초막절이 추수감사절인 것을 알았으니 "추수감사절과 예수님"이라고 해도 됩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을 말씀드리면 초막절은 구원의 완성을 찬양하는 절기이고, 예수님은 그 초막절의 의미인 구원의 완성을 성취하셨다는 것입니다. 초막절은 예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연관성이 있습니다.

 

1. 믿음의 정수는 주님과의 친밀함입니다.

 

우리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밀함입니다. 주님과의 교제입니다. 주님과의 소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으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함에서 은혜와 진리를 얻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언제나 예수님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잘 선포합니다.

 

   <요1:15~17>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우리의 믿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과의 친밀함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만족입니다.

 

  <고후3:4~5>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가 정말 예수님 한 분 때문에 만족하고 행복하다면 믿음의 길은 태산을 넘고 광야를 지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약속의 땅을 얻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히12: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2. 구원의 완성인 초막절과 예수님

 

예수님은 구원의 완성자로서 초막절의 구속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 본문인 요한복음 7장과 8장은 초막절에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다 같이 몇 구절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7:8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 지 아니하노라

요7:10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요7:14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

요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요8:20 이 말씀은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헌금함 앞에서 하셨으나 잡는 사람이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

 

느낌이 오시나요? 예수님은 초막절의 한 가운데서 말씀하셨고 이는 초막절이 담고 있는 구속사를 완성하시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이 초막절의 구속사를 완성하신 예수님과 친밀해지는 믿음을 나누려고 합니다.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입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의 진정한 의미는 헌금이나 이벤트가 아니고 광야의 기억이며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을 찬양하는 축제입니다. 초막절의 의미는 광야의 기억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이고, 초막절의 말씀 선포자이신 에수님은 이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하신 구세주이십니다. 초막절은 “추수와 감사”라고 하는 표면적인 의미보다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광야의 기억과 광야 생활 속에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구원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런 점에서 구원을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절기가 초막절입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면서 보통 교회는 헌금, 행사, 그리고 감사에 포커스를 둡니다. 그러나 거듭 말씀드린 대로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는 초막절의 본질은 헌금과 행사와 감사라고 하는 표면적인 의미보다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구속사를 완성하셨습니다. 때문에 초막절 곧 추수감사절을 농경문화의 유산으로 생각하는 고정된 시각에서 좀 더 발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구속사의 절기로 예배해야 합니다.

 

저희 부부는 지난 목요일에 세 친구의 부부들과 함께 모였습니다. 77년도에 신학교에 입학할 때에 본관 다락방에서 기도하면서 WRMC라는 기도모임을 만들었던 친구들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유기성 목사님, 조재진 목사님, 김상현 목사님, 이렇게 네 목사들이 모여서 함꼐 기도했습니다.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송성모 목사님도 계십니다. 이렇게 5명이 감신대의 기도모임인 WRMC(Wesley Revival Movement Club)를 만들었습니다. 내일 감신대에서는 WRMC 35주년 홈커밍 대회가 열리고 제가 개회설교를 조재진 목사님이 WRMC의 창립역사를 맡아서 섬깁니다. 1977년 신학교 1학년 때 우리들은 대학에 온 것이 아니라 신학교에 왔고, 대학생이 아니라 신학생이라고 우리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감리교신학대학과 감리교회를 위해서 기도했었습니다.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야 한다고 했던 그 때의 마음을 가지고 부부들이 손을 잡고 함께  기도하면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가장 중요했던 이야기는 주님과의 친밀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님과 정말 친밀해진다고 하면 그 나머지 문제들은 다 수면 아래 감추어 질 수 있고 또 극복될 수 있다고 마음을 같이 하고 기도했습니다. 좋은 목사는 좋은 교회를 원합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목사를 원하고요, 또 좋은 교회는 좋은 교인을 만들고 좋은 교인은 좋은 교회를 만듭니다. 좋은 남편은 좋은 아내를 , 좋은 아내는 좋은 남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좋은 부모는 좋은 자식을 기를 수 있고 좋은 자식은 좋은 부모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부수적인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만족은 오직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 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다 덤이고 부수적인 것입니다.

 

 <고후3:4~5>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종교개혁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Sola Fide, Sola Gratia 오직 믿음과 오직 은혜로만 하나님의 의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런 원죄교리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그럼에도”의 신앙입니다. 내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우릴 구원해 주신다는 겁니다.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것은 죄성, 죄책감을 깊이 느껴서 파괴의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찬양하는 겁니다.

 

  때문에 평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이 세상이 주는 평안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좋은 아내와 좋은 남편과 좋은 자식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덤이요 부수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반대일 경우도 행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남편이 아니어도, 좋은 아내가 아니어도, 좋은 부모가 아니어도,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게 진정한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은 바로 그런 평안입니다. 가장 본질적이고 원초적인 평안입니다.

 

나쁜 부모를 둔 자식은 평생 나빠야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윗물이 더러워도 아랫물은 맑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들을 구원하심으로 우릴 새롭게 하시고 평안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으로부터 평안을 얻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기쁩니다. 좋은 아내와 남편이 있으면 플러스알파의 덤입니다. 그러나 아내와 남편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주님과 내가 친밀해지면 아내와 남편을 용서해줄 수 있는 겁니다.

 

좋은 자식이 아니어도 주님이 주시는 평안만 있으면 부모는 행복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주시는 평안으로 나쁜 자식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닉 부이치치 (Nicholas James Vujicic, Nick Vujicic, 1982년 12월 4일생)는 사지가 없는 상태에서 태어나서 15살까지 자살을 3번 기도합니다. 그러다가 15살에 회심합니다. 닉이 15살에 주님을 영접했을 때의 고백은 “아버지 어머니는 이런 나를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겁니다. 목사가 자식을 낳은데 사지가 없는 아이를 낳습니다. 죄책감,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조롱이 얼마나 괴로웠겠습니까? 그래도 주님이 주신 평안을 붙들고 아버지 목사님과 어머니 사모님이 아이를 끝까지 사랑하니까 자살을 3번이나 시도하던 아들에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읽었듯이 요한복음7장은 명절에서 시작해서 명절로 끝나는 초막절의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이 명절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다가 조금 후에 올라가십니다.

 

  7장 8절에서는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

 

  그런데 10절에 가보면

 

 『그 형제들이 명절에 올라간 후에 자기도 올라가시되 나타내지 않고 은밀히 가시니라』

 

 예수님은 초막절에 성전에 은밀히 가십니다. 만약에 따지기를 좋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예수님을 거짓말하고, 비겁하게 숨어 다니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우선 요한복음 7장과 8장의 절기는 초막절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초막절에도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초막절이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시면서 은밀하게 올라가신 이유는 우선순위때문입니다. 성경에는 3대 절기가 있습니다. 유월절(무교절), 칠칠절, 수장절(초막절)입니다. 이 세절기가 모두 예수님과 관계가 있지만 우선순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의 절기는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에 희생양으로 돌아가시기 때문입니다. 명절에 올라가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나는 아직 유월절에 희생양으로 죽을 때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지금 초막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올라가실 때에는 사람들에게 드러내시지 않고 은밀히 가십니다. 그것은 초막절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구원의 날에 구속사를 완성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올라가시되 유월절처럼 아직 죽을 때는 아니라고 하는 이 절기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구속사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3. 초막절의 이른비와 예수님의 성령의 생수

 

 

초막절은 이른비를 구하는 기도의 절기입니다. 초막절의 의식중에 중요한 의식이 관제의식이고, 이 관제 의식은 제물에 포도주와 물을 붓는 의식입니다. 다른 제사는 포도주만 붓는 데 초막절 관제는 물을 같이 붓습니다. 이는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해 농사를 위하여 비를 내려달라고 기도하는 의식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초막절에 땅의 농사를 위하여 비를 구하지만 말고, 영혼의 추수를 위하여 성령의 생수를 마시라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함께 성령의 생수를 마심으로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됩니다.

 

 예수님이 초막절에 생수의 강에 대해서 설교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날은 명절 끝 날입니다. 이 끝 날은 초막절의 일곱째 날인데요. 번제단을 7번을 돌면서 축제를 벌이는 날입니다. 다른 때에는 제사장만 들어가는 번제단 뜰이지만 이 날만큼은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다 같이 종려나무, 버드나무, 무성한 나무, 아름다운 실과를 들고 이 주위를 돌면서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호쉬아 나(우리가 당신께 구하오니 지금 구원하소서) 호쉬아 나”합니다. 붙여서 읽으면 호산나 호산나입니다.

 

그리고 이 명절 끝 날에 호산나 축제와 함께 하는 것이 관제의식입니다. 사도바울은 이야기 합니다.

 

   <딤후 4:6> 『관제와 같이 벌써 내가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왔도다』

 

  관제는 제물위에 포도주를 붙는 의식입니다. 다른 절기와 제사 때에는 포도주만 붙지만 명절 끝 날이라고 하는 초막절의 7일째가 되는 날에는 물을 붙습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길어옵니다. 제사장들이 은 나팔을 불면서 제사장 뜰로 오도록 안내합니다. 이 물을 붓는 이유는 다음 해 농사를 위해서입니다. 도시인들은 가을이 되면 넓은 들에 익은 곡식을 생각하면서 추수만 생각하지만 농부들은 다음의 농사를 준비합니다. 고구마와 감자 같은 씨앗을 따로 저장하구요, 옥수수 같은 것은 지붕에 매달구요, 거름을 준비합니다. 농부는 가을이 되면 추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 농사를 준비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 초막절에 추수절이 되면 다음 해 농사를 준비합니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물입니다. 태양은 당연한 것이고 물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실로암 물가에서 물을 길어다가 제물위에 붓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런 관제의식을 잘 표현합니다.

 

   <이사야 12: 1~3> 1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2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3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초막절의 관제의식에는 포도주만이 아니라 물도 같이 붓습니다. 이는 광야에서 마라라고 하는 쓴물을 마시면서 고난을 당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엘림의 장막에서 물을 주신 것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실로암 연못에서 물을 길어다가 물을 제물위에 부으면서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이른 비를 주셔서 내년 봄 농사를 잘 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초막절은 단순히 가을 농사의 결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음 봄 농사의 준비를 위해서 비가 오기를 기도하는 절기입니다.

 

예수님이 이 때 말씀하십니다. 생수의 강물 곧 성령을 마시라!

 

  <요7:38-39>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하나님의 구원사를 완성하신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었던 것을 기억하면서 해마다 초막절이 되면 관제의 축제를 하면서 물을 붓고 이른 비를 구하는데 정말 중요한 물은 하늘의 비가 아니가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는 성령의 생수가 흘러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초막절에 가을의 추수를 하고, 헌금 액수를 정하는 것만 아니라 그 것을 넘어서서 또 하나 원초적인 의미를 깨닫는 것은 내년에 이른 비가 내려서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기도하던 초막절의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내년도에 성령의 생수가 우리가운데 흘러 넘쳐서 우리의 영혼이 신앙의 농사를 잘 지을 수 있도록 기도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꼭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예수를 바라보시면 마음 속에 사랑이 싹이 틉니다. 예수를 바라보시면 축복이 충만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평안이 넘칩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강인 성령을 받을 준비를 이 가을에 하시고 2013년도에 여러분의 삶 가운데 다시는 목마르지 아니하는 성령의 생수를 흠뻑 마시길 축복합니다.

 

 

  초막절은 구원을 완성하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초막절의 제사는 구원의 숫자인 7로 채워져 있습니다. 초막절에는 7이라고 하는 구원의 수가 이어지는 구원의 완성의 절기입니다. 하늘 숫자 3과 땅의 숫자 4입니다. 이것이 합하여 7이 완전수입니다. 곱하면 12가 되고 이것이 두 번째 완전수입니다. 7에 땅의 만수인 10을 곱한 70이 세 번째 완전수이며 12에 땅의 만수인 10을 곱하면 120이 네 번째 완전수이고, 12에 12을 곱하고 1000을 곱하면 14만 4천이 마지막 완전수입니다. 이것은 개별수가 아닙니다. 이단들과 같은 논리가 아닙니다. 이것은 상징수이고 완전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숫자는 거의 7, 12, 70, 120, 144000,입니다. 그 가운데 5라는 숫자가 있습니다. 7에서 하나를 뺀 6은 사탄의 숫자이고 다시 하나를 빼면 5는 육신을 가진 숫자가 됩니다.

 

이 초막절에는 황소를 바치는데 70마리를 바칩니다. 첫째 날 13마리를 바치고 마지막 날에 7마리를 마칩니다. 둘째 날은 12마리와 끝에서 두 번째 날은 8마리로 도합 20마리가 됩니다. 이런 식에서 20마리씩 해서 60마리를 드리고. 가운데 날은 10마리를 드려 모두 합하면 70마리가 됩니다. 또 14마리의 숫양을 바치고 98마리의 양을 바치고 336개의 소제를 바칩니다. 그리고 이 절기는 해마다 7월 15일에 시작해서 7일 지킵니다. 14는 7의 2배수, 98은 7의 14배수, 336은 7의 48배수입니다. 철저하게 7로 계산되어진 절기계산입니다. 이것은 7이 하늘과 땅에 수른 더한 완전수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완전을 이루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초막절에 은밀히 올라가셔서 말씀을 주셔서 성령의 생수를 말씀하신 것은 구원의 완성은 성령의 생수를 마시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때 완성된다는 겁니다.

 

 

4. 초막절의 밤샘 축제와  에수님의 사죄의 은혜

 

 

초막절은 구원의 완성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절깁니다. 선지자 스가랴는 초막절을 구속사가 완성되는 종말론적인 희망의 절기로 선포합니다. 이방 나라들도 초막절을 지킨다고 선포합니다.

 

  <스가랴 14: 16~21>  16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7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  18 만일 애굽 족속이 올라오지 아니할 때에는 비 내림이 있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이방 나라들의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그에게 내리실 것이라  19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이런 초막절의 구속사 곧 구원의 완성은 죄사함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초막절기가 끝난 다음날 아침인 초막절 8일에 여인의 뜰에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사죄의 은혜를 선포하십니다. 

 

<요8: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이 아침은 초막절 8일째입니다. 초막절 마지막 날 그 다음날이 “쉐미니 아짜레트”입니다. 초막절 8일입니다. 아짜레트의 히브리어는 “지연시킨다”는 겁니다. 초막절은 일주일 동안 지킵니다. 그리고 초막절 8일은 지연된 또 하루의 날입니다. 이 날은 새로운 날입니다. 암소 한 마리를 바치는데 초막절 8일에 성경은 노동을 하지 않고 쉬게 합니다.  이 날은 거룩한 대회를 열면서 하나님이 해주신 구원이 완전히 성취되었음을 알립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날 하나님과 함께 하루 더 머무르면서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감격을 만끽합니다.

 

바로 그날 예수님이 이 날에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십니다.

 

  <요8:7-9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사람들이 양심에 가책을 느껴서 사라집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보시면 어른부터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요8:9~11>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왜 어른들 부터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요? 초막절의 축제 때문입니다.  초막절의 마지막인 명절 끝 날에 사람들은 밤새 관제의 축제를 즐깁니다.  그동안 근엄했던 어른들이 춤을 1년에 한번 춥니다. 보는 사람도 신기하고 춤을 추는 어른들도 멋쩍어 보이지만 이 날 만큼은 모든 노인들이 마음껏 춤을 추면서 밤을 새워 축제를 즐깁니다. 다함께 흥겨운 춤을 춥니다. 그러면서 광야의 고난 가운데에 하나님이 살려주셨다는 것을 되새김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초막절에 노동을 하지 말고 거룩한 대회로 모여 축제를 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레23:33~39>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34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35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36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37 이것들은 여호와의 절기라 너희는 공포하여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번제와 소제와 희생제물과 전제를 각각 그 날에 드릴지니 38 이는 여호와의 안식일 외에, 너희의 헌물 외에, 너희의 모든 서원제물 외에 또 너희의 모든 자원제물 외에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니라 39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이 축제는 여인의 뜰에서 베풀어집니다.  성전에는 세 가지의 뜰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뜰, 제사장의 뜰, 여인의 뜻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뜰에서 축제를 벌이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여인의 뜰에서 축제를 벌인 흔적은 요8:20절을 보면 헌금함 앞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헌금함은 여인의 뜰에 있습니다. 이 여인의 뜰에서 축제를 벌이는데 이 때 춤을 추던 노인들이 이런 노래를 젊은이들과 화답을 합니다.

 

먼저 노인들이 “오! 기쁘다 우리의 젊은이들이여 헌신된 자들이여 현인들이여 우리 노인들에게 수치를 돌리지 마소서”

 

그러면 축제를 참여했던 무리들이 이렇게 화답합니다. “오! 기쁘다 우리는 노인들과 함께 젊은이들의 죄를 씻을 수 있나이다”

 

그리고 다 함께 말합니다.“네 젊을 때의 죄를 사함 받은 자는 복이 있을 지어다. 죄를 지었지만 이제 사함 받는 자는 복이 있을 지어다”

 

초막절 마지막 밤샘 축제에서 노인들과 젊은이들은  젊은 날에 죄를 지었지만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 것을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이 축제 속에는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는 죄사함의 은혜 곧 사죄의 은혜가 있습니다. 이렇게 초막절은 죄를 사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는 구원의 큰 날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아침이 된 겁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은 바로 그 축제의 다음 날 아침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셨습니다. 이 때 어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껴 돌을 내려 놓고 하나 둘 자리를 빠져 나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바로 자신들이 바로 오늘 아침까지 밤새 불렀던 찬양과 감사가 하나님의 구원이었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감사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자신들이 젊은 날에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죄없는 자가 돌을 던져라!"

 

그런데 구원의 날인 바로 그 초막절 축제일에  모든 사람이 축제에 참여하여야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참여하지 않습니다. 남들은 구원의 큰 날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축제를 하고 있는데 바리새파 사람들은 죄인을 찾아 다녔습니다. 남들은 죄사함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그 밤에 자신들의 죄악을 용서하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자신들의 죄도 고백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죄를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간음한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바로 그 때 우리 주님이 땅에 글을 쓰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쓰셨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낍니다. 밤새도록 축제를 벌이고 춤을 추면서 노랬던 하나님의 사죄의 은혜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노인들이 어른들이 밤새 노래한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젊었을 때의 죄를 용서해 주셔서 오늘 노인이 되었으니 그 하나님께 감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간음한 죄인이 한 사람 왔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자를 가리키라고 말씀하실 때 자신들의 젊은 날의 죄를 생각했습니다. 성경은 초막절에 한 가지를 선포합니다. 우리의 젊은 날에는 죄가 있었으나 하나님이 용서해 주셔서 오늘 내가 초막절에 축제를 벌일 수 있었다! 그러므로 초막절의 명절 끝날 축제는 나의 공로와 의로움을 내세우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앞세우고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축제입니다. 초막절은 젊은 날의 죄악을 고백하고 사죄의 은혜를 감사하는 절깁니다. 예수님을 바로 그런 초막절에 간음한 여인의 죄를 용서해주셨습니다. 초막절 곧 추수감사절에 우리들은 바로 이런 죄의 고백과 사죄의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5. 초막절의 빛의 축제와 예수님의 생명의 빛

 

 

초막절 중에는 여인의 뜰에 네 모퉁이에 횃불을 밝혔으며 횃불행렬도 있었습니다. 여인의 뜰에는 촛대가 있었는데 초막절에는 밤샘 축제를 위하여 불을 밝혔습니다. 촛대에 불을 밝히고 밤샘축제를 합니다. 이 촛대는 얼마나 밝은지 예루살렘 온 도시를 밝혔다고 합니다. 사실 과장된 것이겠지만 그렇게 성전에 불을 밝혀서 하나님의 빛을 비추는데 이 빛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의로움에 의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죄에 대한 구원의 빛을 비추는 겁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나는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나는 세상의 빛이라는 설교를 하십니다. 나는 생명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시면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라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초막절에 하나님의 구원의 빛을 보면서 축제를 벌이는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내가 세상의 빛이심을 선포하십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리라고 선포했습니다. 

 <이사야 9:1~2>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또 예루살렘은 이 빛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사야 60:1~5>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3 나라들은 네 빛으로, 왕들은 비치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4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먼 곳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5 그 때에 네가 보고 기쁜 빛을 내며 네 마음이 놀라고 또 화창하리니 이는 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이방 나라들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이스라엘의 젊은이들은 토라를 읽으며 초막절을 맞이합니다. 3년을 주기로 토라(율법책- 모세 오경)을 읽기도 하지만 요즘에는 일년 주기로 토라를 읽으며 초막절을 맞이합니다. 여인의 뜰에 있는 촛대는 5개인데 토라도 다섯 권입니다. 혹자는 말하기를, 여인의 뜰에 있는 다섯 개의 촛대에 불을 밝히듯이 다섯 권의 토라를 읽으면서 빛을 밝히는 것을 상징화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심카토라라고 부릅니다. 토라는 율법책으로 모세 오경을 말합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다섯 권의 성경책을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빛의 밝힘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시고 세상의 빛이시기 때문에 이제는 예수님의 빛 가운데로 나와야 합니다. 예수님의 빛 가운데로 나아와 밝은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축제를 벌여야 합니다. 그리고 초막절이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 하는 추수감사절이면서 동시에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이른비를 간구하던 기도의 절기였듯이, 우리들의 추수감사절은 추수만이 아니라 다음 해의 영적 농사를 위하여 성령의 단비를 구하는 기도의 절기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환한 빛을 밝혀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야 합니다.

 

 

  설교를 마칩니다.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생수의 강물을 마시고 다시는 목마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 다 2013년도에 이른 비의 축복을 기대하시며 하나님 앞에 구원의 큰 날을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빛이십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고 집중하셔서 주님과 친밀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주시는 빛 가운데서 우리 죄가 용서받았음을 감격하시고 감사하면서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말고 주님의 사죄의 은총가운데서 빛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 한 주간 예수님과 함께 친밀하게 사시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기도

자비하신 아버지 하나님!

오늘 주님의 말씀 붙들고 초막절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관제와 같은 성령의 부음과 세상의 빛으로 환하게 여인의 뜰을 밝힌 그 빛이신 예수님 앞에 우리가 겸손하게 무릎을 꿇게 하셔서 예수님을 다시 만나는 절기가 되게 해 주시고 다음해에 우리의 영혼의 농사를 잘 짓게 하셔서 이른 비에 복된 비를 내릴 수 있도록 성령의 생수를 간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을 만나서 친밀함과 함께 평안함을 얻는 축복의 한 주를 보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