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좋은 주일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여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예배하시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 예배하는 지금 이자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지금- 이시간' 예배하는 지금 이시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희망의 시간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예배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희망의 시간이요 축복의 자리입니다.
1.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난 17일 자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얼마 전 덴마크에서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해 2011년 11월 까리나 멜키오르(20)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고 오르후스 대학병원에서 뇌사판정을 받자 장기를 기증하고 적출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장기를 적출하려고하는 순간 까리나 멜키오르의 눈이 떠지면서 다리가 움직이더니 살아났습니다. 덴마크 방송은 이 소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반영했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죽음을 선언하고 장기를 적출하는 그 시간 까리나 멜키오르의 몸에서는 생명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절망과 죽음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선언하십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견디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과거는 추억의 강으로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암담하여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 짙게 드리웠을 때, 우리는 '지금' 곧 현재의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힘들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 예기치 않은 환난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지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자존감이 무너져 자기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보통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은 가버린 시간을 바라보는 아쉬움의 때도, 오지 않는 상실된 시간을 바라보는 두려움의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지금은 생명의 때요 회복의 때요 치유의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6: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선포한 이사야가 전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인용한 고린도후서 6장 2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과거의 죄악 때문에 심판을 받고 암울한 미래의 절망에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회복의 때이며 치유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간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 그렇습니다.
<이사야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지금은 나의 시간이 끝나가는 때가 아닙니다. 시한부 인생의 남은 시간을 조금씩 깍아 먹는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에게 시간을 풍부하게 공급해주시는 때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하나님이 나의 삶에 전적으로 임재 하여 나를 붙드시는 충만의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존귀하게 여기셔서 생명을 붙어 넣고 계시는 존엄한 때입니다. 지금은 끝나는 시간이거나 상실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시는 새 창조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금’에, 성도는 생명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것이요,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명의 존엄을 충만히 누려야 할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성경은 오직 지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치유의 축복을 베푸십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2. '지금'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순종은 지금 내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신앙의 왕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의 왕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종종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고,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으며, 우리의 기대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신앙생활의 왕도입니다.
우리는 가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를 잘 믿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습니다.
체험을 얻고 싶습니다.
기독교신앙의 가치를 깨닫고 싶습니다.
제대로 믿고 싶습니다.
교회를 잘 다닐 수 있는 비결이 알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하듯이 궁금합니다.
궁금해도 너~~무 궁금합니다.
정답이 있습니다.
신앙의 왕도가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왕도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가만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보통 하나님의 뜻은 내 생각과 다르게 다가옵니다. 때때로 자주, 하나님의 뜻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머리로 이해가 안되고, 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나에게는 막대한 손해가 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내 생명까지 달라고 하십니다. 사실 순종이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머뭇거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눅22:42~43>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순종은 내 원대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찬송가 549장은 부를 때마다 진한 감동을 줍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믿음은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을 위하여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살든지 죽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찬송가 549장을 깊이 음미하십시다.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슴 깊이 울려 퍼지는 진한 울림을 느낍니다. 온 몸과 영혼을 다 주님께 드리고, 큰 근심 중에도 낙심하지 않을 때 순종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순종을 위하여서는 때로는 주님처럼 울기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오직 모든 일들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저 천성을 향하여 고요히 나가는 사람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주님이 보여주신 순종의 목표가 세 가지라고 정의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모법으로서우리에게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2) 둘째는, 우리의 보증으로서 그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모든 의를 이루시려는 것이다.
3) 셋째는,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에게 나우어 줄 새로운 성품(순종)을 마련코자 하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