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딤후1:9) 2012-1021

우순(愚巡) 2012. 10. 20. 19:0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좋은 주일입니다.

한 주간 잘 지내셨는지요?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지금-여기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기서'  예배하시면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이 자리! 예배하는 지금 이자리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축복의 자리입니다.

'지금- 이시간' 예배하는 지금 이시간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희망의 시간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 예배하는 이 시간 이 자리가 희망의 시간이요 축복의 자리입니다.

 

 

1.  '지금'은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난 17일 자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얼마 전 덴마크에서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지난 해 2011년 11월 까리나 멜키오르(20)는 교통사고를 당하여 혼수상태에 빠지고 오르후스 대학병원에서 뇌사판정을 받자 장기를 기증하고 적출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장기를 적출하려고하는 순간 까리나 멜키오르의 눈이 떠지면서 다리가 움직이더니 살아났습니다. 덴마크 방송은 이 소녀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반영했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죽음을 선언하고 장기를 적출하는 그 시간 까리나 멜키오르의 몸에서는 생명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우리들에게 절망과 죽음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생명과 희망을 선언하십니다.

 

‎   사람이 살다보면 견디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과거는 추억의 강으로 흘러가 버렸고 미래는 암담하여 혼돈과 공허와 흑암만 짙게 드리웠을 때, 우리는 '지금' 곧 현재의 시간을 보내기가 너~무 힘들 때가 있습니다. 특별히 죽음이 우리 앞을 가로막을 때, 소유했던 모든 것을 잃어버릴 때, 예기치 않은 환난 때문에 심신이 극도로 지칠 때, 더욱 그렇습니다. 그럴 때 우리들은 공황장애를 겪기도 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자존감이 무너져 자기를 학대하기도 합니다. 자기를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 부닥치면 사람들은 보통 다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전혀 아닙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지금’은 가버린 시간을 바라보는 아쉬움의 때도, 오지 않는 상실된 시간을 바라보는 두려움의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때입니다. 지금은 생명의 때요 회복의 때요 치유의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6:2> "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의 회복을 선포한 이사야가 전한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바울이 인용한 고린도후서 6장 2절의 말씀은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선포하실 때 주신 말씀입니다. 과거의 죄악 때문에 심판을 받고 암울한 미래의 절망에 낙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회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자리,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며 구원의 날입니다. 회복의 때이며 치유의 날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시는 시간입니다. 지금 바로 지금이 그렇습니다.

   <이사야 49:8>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를 백성의 언약으로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리라.”

   지금은 나의 시간이 끝나가는 때가 아닙니다. 시한부 인생의 남은 시간을 조금씩 깍아 먹는 때도 아닙니다. 지금은 아직도 여전히 하나님이 나에게 시간을 풍부하게 공급해주시는 때입니다.  오히려 지금은 하나님이 나의 삶에 전적으로 임재 하여 나를 붙드시는 충만의 때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아직도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존귀하게 여기셔서 생명을 붙어 넣고 계시는 존엄한 때입니다. 지금은 끝나는 시간이거나 상실되는 시간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을 부어주시는 새 창조의 때입니다.

    그러므로 이 ‘지금’에, 성도는 생명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할 것이요, 구원의 날에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생명의 존엄을 충만히 누려야 할 것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성경은 오직 지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12: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고 치유의 축복을 베푸십니다.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2. '지금'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십시오. 순종은 지금 내게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신앙의 왕도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신앙의 왕도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종종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고,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으며, 우리의 기대나 이익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뜻이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신앙생활의 왕도입니다.

 

우리는 가끔 질문을 던집니다.

예수를 잘 믿고 싶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고 싶습니다.

체험을 얻고 싶습니다.

기독교신앙의 가치를 깨닫고 싶습니다.

제대로 믿고 싶습니다. 

교회를 잘 다닐 수 있는 비결이 알고 싶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궁금해요? 궁금해요? 궁금하면 500원, 하듯이 궁금합니다.

궁금해도 너~~무 궁금합니다.

 

정답이 있습니다.

신앙의 왕도가 있습니다.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는 것이 신앙의 왕도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가만히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보통 하나님의 뜻은 내 생각과 다르게 다가옵니다. 때때로 자주, 하나님의 뜻은 내 마음에 들지 않고, 내 머리로 이해가 안되고, 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때는 나에게는 막대한 손해가 나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내 생명까지 달라고 하십니다. 사실 순종이 말은 쉬운데 실제로는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머뭇거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좋은 모델을 보여 주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눅22:42~43>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순종은 내 원대로, 내 뜻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것이 순종입니다. 찬송가  549장은 부를 때마다 진한 감동을 줍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믿음은 주님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순종을 위하여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은 살든지 죽든지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찬송가 549장을 깊이 음미하십시다.

"(1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세상 고락간 주인도 하시고 날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주관 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3절)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저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가슴 깊이 울려 퍼지는 진한 울림을 느낍니다. 온 몸과 영혼을 다 주님께 드리고, 큰 근심 중에도 낙심하지 않을 때 순종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순종을 위하여서는 때로는 주님처럼 울기도 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은 오직 모든 일들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든지 죽든지 저 천성을 향하여 고요히 나가는 사람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주님이 보여주신 순종의 목표가 세 가지라고 정의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모법으로서우리에게 참된 순종이 무엇인지를 보여주시기 위함이었다.

   2) 둘째는, 우리의 보증으로서 그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한 모든 의를 이루시려는 것이다.

   3) 셋째는,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에게 나우어 줄 새로운 성품(순종)을 마련코자 하심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우리들을 부르신 예수님에게 순종하십시오!

또 여러분을 인도하는 자들에게도 순종하십시오!

 

   <히브리서 13:17>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성경은 순종의 축복에 대하여 아주 많은 말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렘42:6> "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

 

   <출15:26> "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신28:1~19>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또 하나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행5: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또 우리가 진리를 순종하면 우리의 영혼이 깨끗해집니다.

 

 

  <벧전 1:22>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성경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딤후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

 

    우리들이 살다보면 옛 말처럼 희로애락(희로애락喜怒哀樂)이 늘 엇갈리며 공존합니다. 사람 살아가면서 느끼는 가지 감정. 기쁨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 기쁘고 즐거운 날이야 모든 게 아멘이니 순종이 당연하지요. 그러나 분노하고 슬플 때는 하멘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순종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즉 내가 바라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슬플 때 바로 그 순간이 내가 진정으로 순종해야 할 시간인 것을 깨닫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이 내게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뜻이 임재하는 시간인 것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겸손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순종하는 성도는 겸손한 성도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전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성도입니다.  우리가 순종하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나"입니다. 나의 마음에 들지 않고, 나의 생각에 맞지 않고, 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기에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약하다고 말합니다. 사역자들이 종종 말합니다. 저는 너무 연약해서 속장을 못합니다. 선교회장을 못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봅니다. 정말 약하신가요? 정말 너무 약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하십니까?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도 종종 약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너무 약해서 순종하지 못합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전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약해서 사역을 못하거나 직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유행어로 하면 강해도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강해서, 강해도 너~~무 강해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의 마음을 '완악함'이라고 말합니다. 출애굽한 사람들의 불순종은 바로 완악함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생각, 우리의 고집, 우리의 독선, 우리의 편견, 우리의 유혹이 우리의 완악함입니자. 이런 것들이 우리의 순종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완악함을 십자가 앞에 내려 놓고 진짜 약한 자가 죄어야 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약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약하게 될 때 우리 주님의 강하심이 드러납니다.

 

<고후 13:4> 4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고후12: 7~10> "7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8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히11: 32~34>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3. '지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순종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를 나되게 하시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때문이다.

 

     <고전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오지만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 옵니다. 우리는 모셉의 율법 땅에서 요한의 세례라는 다리를 건너 예수의 은혜 땅으로 건너 왔습니다. 사도 요한은 이를 아주 명확하게 선언합니다.

 

   < 요1:15~18> "15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 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그래서 초대 교회는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인 샬롬 즉 평화 또는 평강을 기원하는 인사말에 은혜라는 말을 반드시 첨가하여 인사하였습니다. 신약성경중 제일 먼저 기록되었다고 하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은 은혜와 평강의 선포로 시작합니다.

 

    <살전1:1> "바울과 실루아노디모데는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후대에는 긍휼과 사랑이 첨가되어 인사말이 길어집니다. 목회서신은 이를 잘 드러냅니다. 그래도 기독교인의 인사는 은혜로 시작합니다.

 

     <딤전1:1~2>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결론적으로 우리 성도들은 우리의 존재성, 우리의 정체성,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때문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본래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롬8:29~30>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해야 합니다.



  <골2:6~7> "6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 할수록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꼐 영광을 돌립니다.

 

   <고후4:13~15>  "13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 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  15 이는 모든 것이 너희를 위함이니 많은 사람의 감사로 말미암아 은혜가 더하여 넘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도 신앙의 왕도입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길을 지도해주신다고 약속합니다.

 

  <잠언 3:5~6>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여호와를 자신의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성민이 되게 하십니다.

 

  <시편26: 17~19> "  17 네가 오늘 여호와를 네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또 그 도를 행하고 그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지키며 그의 소리를 들으리라 확언하였고 18 여호와께서도 네게 말씀하신 대로 오늘 너를 그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게 하시고 그의 모든 명령을 지키라 확언하셨느니라  19 그런즉 여호와께서 너를 그 지으신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사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시고 그가 말씀하신 대로 너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라"


   감사는 인정입니다. 감사는 나의 나됨도, 나를 세우심도, 나를 축복하심도, 나를 구원하심도, 나를 부르시사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케 하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들은 부족함이 많습니다. 은밀한 죄악도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내세울 수 없습니다. 가끔 남을 비난하는 성도들을 봅니다. 성경은 남을 비난하거나 헤아리지 말라고 했는데 스스로 자기 의에 도취된 사람들을 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하는데 자신이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큰 문제입니다. 아닙니다. 주님 앞에 겸손한 성도, 참 믿음을 소유한 성도는, 자신이 부족함을 고백합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는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사6:5~7>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우리는 이런 고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울처럼 나의 나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때문임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길이 신앙의 왕도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자주 부르는 찬송은 새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3절..이제껏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 또 나를 장차 본향에 인도해주시리" 

 

  이 찬송을 부를 때 가슴이 찡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눈물을 흘리며 은혜에 은혜를 받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면 감사할수록 은혜위에 은혜가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4. 전적인 순종과 전적인 감사는 믿음의 명문가를 세우는 축복의 열쇠입니다.

 

  지난 한 주간 순종을 주제로 특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하나님은 사울이 바치려는 좋은 양과 좋은 소의 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좋은 제사가 아니라 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부분적인 순종, 어느 정도의 순종이 아니라 전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순종과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순종하면, '지금' 감사하면, 축복이 대를 잇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면 가문이 축복의 문을 열고, 한 사람이 불순종하면 가문이 축복의 문을 닫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축복의 획득이 대를 이어가고,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축복의 상실이 대를 이어갑니다. 순종은 후손들에게 물려줄 축복의 열쇠입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면 가문이 축복의 문을 엽니다. 한 사람이 불순종하면 가문이 축복의 문을 닫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축복의 획득이 대를 이어가고,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축복의 상실이 대을 이어갑니다.

 

    다윗과 사울의 예는 아주 대조적입니다. 다윗도 사울도 모두 다 왕이 되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왕권을 얻었습니다. 가문의 축복으로 선포됩니다. 하지만 다윗 가문은 축복이 대를 이어갔고, 사울 가문은 축복이 당대에 끝나버렸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순종과 불순종의 차이입니다.  순종은 분명 제사보다 낫습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재해석했다가 가문의 축복을 잃어버립니다. 사울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멸'하지 않고 좋은 양과 좋은 소를 남겨 둔 이유를 아주 신앙적으로 변명합니다. "하나님! 저는 딴 뜻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좋은 양과 좋은 소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고 다 진멸하지는 않고 조금 남겨 두었습니다.(삼상15:21) 다 나름대로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처럼 좋아하시겠습니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삼상15:22) 자기만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손들까지 왕권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죄악에도 불구하고 순종함으로 왕권의 축복을 얻습니다. 영원히 가문 대대로 왕권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상동교회에는 좋은 장로님들이 계셨습니다. 좋은 권사님들이 계셨습니다. 제가 심방을 가보면 자주 말씀들을 하십니다. 우리 집에는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할머니가, 어머니가, 참 좋은 신앙인이셨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영광이라면. 그저 교회가 유익하다면, 그저 목사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잘 사는 것은, 우리 집안이 믿음의 가문이 되신 것은, 그 분들 때문입니다. 믿음의 가문들에는 언제나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조상이 있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신 조상이 있습니다. 목회자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도왔던 조상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으로 믿음의 가문이 세워진 것입니다.

 

    우리 상동교회에는 신앙의 전설들이 많습니다. 멀게는 민족교회를 세웠던 전덕기 목사님과 독립운동가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이는 좋은 장로님들이 게셨습니다. 지금 오십 중반이 되가는 교인들은 제게 아주 인상적이었던 장로님들의 미담을 자주 이야기하십니다. 그 장로님들 중 한 분은 사회적으로 상당한 지위가 있었는데도 청년부장을 하시면서 청년들을 헌신적으로 섬기시고 진심으로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그 장로님은 나이가 어린 청년부 교육전도사님이나 교육목사님에게도 깍듯하게 존대를 하시면서 겸손하셨다고 합니다.  그 때 청년들이었던 성도들은 제게 자주 그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런 한 사람 한 사람들의 순종과 헌신이 가문의 축복을 이어가고 교회의 기둥을 세웠습니다.

 

  한 사람이 참 중요합니다. 한 사람! 믿음으로 순종하는 한 사람!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히 세워갑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서신을 통하여 한 사람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들어왔고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의가 들어 왔다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17~19> "17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많은 사람이 아닙니다. 한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그렇게 값진 것입니다.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조덕삼 장로님은 순종의 좋은 모델이십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순종으로 믿음의 명문가를 세우신 좋은 장로님이십니다. 조덕삼 장로의 순종이 금산교회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한국 교회사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이 세우신 금산교회는 남여차별의 시절에 남여를 구분하기 위해 세운 ㄱ자 예배당으로 유명합니다. 이 ㄱ자 예배당은 1999년에 전라북도 문화재 제136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이 유명한 것은 이자익 목사님과의 관계 때문입니다. 조덕삼 장로님과 이자익 목사님은 주인과 머슴관계였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마방을 운영하는 김제시 금산면의 양반 지주였고 이자익 목사님은 조덕삼 장로님의 마방에서 일하던 마부였습니다. 머습이었던 거지요.  조덕삼 장로님은 당시 김제 지역에 복음을 전하러 오셨던 최의덕(테이트) 선교사에게서 복음을 영접하고는 자기 집의 머슴이었던 이자익 청년을 교회로 인도합니다. 이자익 청년은 경상남도 김해출신으로 부모님을 여의고 먹을 것으로 구하기 위하여 곡창지대였던 김제 평야를 찾아온 거렁뱅이였습니다. 조덕삼 장로님은 이자익 청년을 자기 마방에서 일하게 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조덕삼 장로님은 이자익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고 1905년 10월 11일 최의덕 선교사에게 함께 세례를 받고 금산교회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금산교회가 부흥하여 성도가 200여명으로 불어나자 교회는 장로를 세우기로 하고 투표를 합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믿음의 연조로 보나, 사회적인 지위로 보나, 교회에 대한 헌신으로 보나, 조덕삼 성도가 장로가 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조덕삼 성도가 아닌 이자익 청년이 장로로 피택이 된 것입니다. 사람들은 수근댑니다. 당황합니다. 양반이고, 유지이고, 믿음의 선배인 조덕삼 성도가 장로 투표에 떨어진 것을 보고는 큰 일 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장로 투표에 떨어진 조덕삼 성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우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동요하지 마십시오. "이것도 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가 순종합니다." 사람들은 놀랐고 다시 한 번 조덕삼 성도의 믿음에 큰 감동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순종의 미덕을 보인 조덕삼 장로는 집에서는 머슴을 거느린 주인으로 양반역할을 했지만 교회 가서는 이자익 장로를 깍듯하게 섬기면서 평신도로써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조덕삼 장로는 자기 집의 머슴인 이자익 청년 마부가 전하는 설교를 강단 아래에서 들으며 아멘 아멘 은혜를 받습니다. 금산교회는 이자익 장로를 세운 지 반년 후인  1908년 가을에 조덕삼 장로를 금산교회의 장로로 추대합니다. 그리고 조덕삼 장로는 이자익 장로를 신학교에 보내어 공부를 시킨 후 금산교회의 담임목사로 초빙하여 섬겼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교회를 세우고 믿음의 가문을 세웠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이, 한 사람의 겸손이, 교회를 든든히 세워가고 믿음의 명문가를 세워 축복읨 문을 열었습니다. 이 조덕삼 장로의 아들은 조영호 장로요 손자는 국회의원을 지내고 새정치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을 하셨던 조세형 장로입니다. 3대를 이어 가며 장로의 직분을 섬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인 이규완 교수(연변 과기대 교수)도 장로로 믿음의 가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005년 4월 19일에는 대전신학대학교에서 이자익 목사 기념관을 열었는데 초교파적으로 치러진 이 행사에서 이자익 목사님의 손자인 이규완 장로는 조덕삼 장로님의 손자인 조세형 장로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 만났습니다. 만약에 우리 할아버지께서 주인을 잘못 만났다면 오늘날 우리도 없고, 우리 할아버지도 안 계십니다.”라고 조덕삼 장로님에 대한 존경을 표한 뒤 끝에 가서 “우리 할아버지의 후손들은 할아버지의 업적만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할아버지 못지않게 신앙생활을 잘해서 사회의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 가리고 할아버지의 명예를 손상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해 참석자들을 감동시켰습니다.

 

 

 5.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  순종과 감사는 신앙생활의 왕도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가장 바르고 올곧은 길은 순종과 감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삶이 신앙생활의 왕도요 정도요 지름길입니다.  순종하되 전적으로 순종하십시오. 감사하되 전적으로 감사하십시오! 놀라운 평화가 찾아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힘들고 짜증이 나는 가장 큰 이유중 하나는 불순종과 불평입니다. 우리가 불순종하면 그 즉시 수 많은 문제가 우리를 파괴합니다. 그러나 순종하는 삶은 우리에게 평화를 줍니다.

 

  존 비비어의 불순종의 댓가를 이렇게 말합니다.

 

    "불순종하기 전에는 미움, 분노, 용서하지 않는 마음, 다툼, 험담, 타락, 사기, 원한, 착취가 없었다. 성도착, 약물 남용, 술 취함, 살인, 절도도 없었다. 배우자 구타나 자녀 학대도 없었다. 동물들은 완전한 조화 속에 살았다. 하나님의 뜻이 모든 피조 세계를 다스리시는 가운데 지구는 안정되어 있었다. 불순종은 인류를 괴롭히는 온갖 무시무시한 문제를 불러왔다. 세대가 지날수록 문제는 종류도 많아지고 점점 추악해졌다. 불순종하는 순간 상황이 변했다. 불순종 전에는 전적으로 영혼이 지배했으나 이제는 육체가 지배하게 된 것이다.

 

                                                                                      -순종존 비비어

 

  또한 감사하는 삶도 평화를 줍니다. 저는 지난 해 감사에 대하여 설교를 하면서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심지어 성경은 말합니다. 악인도 정한 날에 쓰일데가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화를 당하거나 힘든 일을 당해도 감사하시면 길이 열립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감사가 위대한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십시오. 그러면 놀라운 평화가 찾아옵니다. 넘치는 감사가 이어집니다. 감사에 감사가 넘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생각한대로 안되고, 우리가 너무 억울한 것처럼 힘들 때에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에는 말 그대로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요셉의 고난 속에 출애굽의 서사시가 있었습니다. 모세의 광야생활이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힘들어도 아멘, 짜증나도 아멘, 실증나도 아멘, 받아들일 수 없어도 아멘하시며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자가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합니다. 모든 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자가 전화위복의 축복을 받습니다. 나의 나됨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성도가 축복의 대를 이어갑니다. 

 

이 한주간도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