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믿음의 친구(영적동지) (요17:20~26) 2012-1216 주일

우순(愚巡) 2012. 12. 15. 14:36

 

믿음의 친구(영적동지)

 

  <요한복음17:20~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시는 좋은 아침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아침 준비한 말씀은  "믿음의 친구(영적동지)"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존재가 믿음의 친구입니다.

 

 

1. 믿음의 친구 (영적동지)

 

 

믿음의 친구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믿음의 힘을 북돋우어 줍니다. 믿음의 동역자는 믿음으로 사역하도록 믿음의 용기를 북돋우어줍니다. 믿음의 친구는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데 든든한 버팀목입니다. 시골에 가면 농부들이 고추나 토마토나 오이등을 재배할 때 나뭇가지로 버팀목을 만들어줍니다. 그러면 그 연약한 채소들이 버팀목에 의지해서 거센 비바람을 견뎌내고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참 비바람이 많이 붑니다. 넘어질 때가 한 두번이 아닙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들이 혼자 있으면 쉽게 넘어지지만 함께있으면 든든하게 버텨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친구들이 서로 서로 힘을 북독우어서 믿음을 지키게 했던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이야기는 아주 대표적인 이야기입니다. 다니엘(벨드사살)과 세 친구들은 -하나냐(사드락), 미사엘 (메삭), 아사랴(아벳느고)-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거부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을 때 훨씬 아름답고 윤택했습니다.

 

<단1:11~15> 11 환관장이 다니엘하나냐미사엘아사랴를 감독하게 한 자에게 다니엘이 말하되  12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13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음식을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당신이 보는 대로 종들에게 행하소서 하매  14 그가 그들의 말을 따라 열흘 동안 시험하더니  15 열흘 후에 그들의 얼굴이 더욱 아름답고 살이 더욱 윤택하여 왕의 음식을 먹는 다른 소년들보다 더 좋아 보인지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여호수아와 갈렙도 좋은 예입니다. 열 사람이나 반대하는 가나안 입성을 앞에 두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입성의 복을 누렸습니다.

 

<민14:1~10> 1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  2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3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아론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의 아들 여호수아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온 회중이 부정적인 열 사람의 보고에 경도되어서 흥분할 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의 눈으로 가나안을 바라본 내용을 보고합니다. 10절은 회중들이 돌로 치려했다고 표현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확실히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영적동지였습니다. 열 사람의 보고자가 지극히 인간적인 보고, 지극히 이성적인 보고만 할 때, 믿음의 보고를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렘의 보고는 하나님 중심의 보고였습니다. 아마 제 생각으로는 이랬을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저분들 열 사람의 말이 맞습니다. 분명 저분들 말대도 그들은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이고 우리들은 메뚜기 같습니다.(참조, 민13:33)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다릅니다.(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 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하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렘의 마음은 일치했습니다. 비록 가나안 원주민이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 같을지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약속의 땅을 주시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는 여호수아와 갈렘의 마음에 믿음의 용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두 사람은 부정적인 보고자들 때문에 두려워하는 군중들에게 두려워하지 말자고 독려합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자!

 

  <민14: 9>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믿음은 두려움을 이깁니다. 믿음은 용기를 불어넣어줍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용기가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믿음으로 산 용기자들이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들을 한 마디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선포합니다.(히11:38)  이들의 믿음이 두려움을 몰아냈습니다.(민14:9). 그러자 이들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했습니다.(민14:10) 열 사람의 이성적인 보고, 합리적인 보고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고 두려워하게 만들었지만, 두 사람의 영적인 보고, 신앙적인 보고는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는 이 놀라운 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렘 - 이  두 믿음의 친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임재하게 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믿음의 친구였습니다. 영적인 동지들이었습니다. 믿음의 친구와 함께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있으면 화중들이 흥분할 때도 차분하게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친구들을 성경에서 또 발견하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을 이어가고 가문의 원한을 해소하는 좋은 예입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는 선임자와 후임자의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나만 남았다고 외로워하던 엘리야에게 엘리사는 큰 위로의 동지였습니다. 그리고 갑절의 영감을 구하는 엘리사에게 엘리야는 질투하지 않고 자기의 겉 옷을 벗어 줌으로써 멋진 승계를 마칩니다.  느헤미야서 13장의 성전개혁 이야기는 더 의미심장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던 느헤미야에게 산발랏과 도비야과 게셈이 비난를 퍼붓고 조롱할 때, 하나님은 에스라를 느헤미야의 협력자로 세워주십니다.(느12:1) 성경학자들 중에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저자가 같은 사람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왜냐하면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동시대 사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낸 믿음의 좋은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나바와 바울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바울은 사울이었고 기독교를 핍박하던자였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사울을 인정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하여 사울을 안디옥의 제자들과 에루살렘의 제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바나바는 사울을 기독교 세계에 소개한 좋은 믿음의 친구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십니까? 혹시 기독교 교리를 알고 계십니까? 교회 안의 장로 집사 제도를 알고 계십니까? 개척교회 이야기, 해외 선교 이야기를 알고 계십니까? 그 모두가 다 바울이 정리한 것이고 바울이 세운 것들입니다. 그런데 그 바울을 기독교 세계에 등장시킨 이가 바나바입니다. 바울이 바울될 수 있었던 것은 바나바라는 좋은 믿음의 동역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이 두 사람을 안디옥의 지도자로 따로 세워주셨습니다. 안디옥 교회에는 다섯 명의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행13:1) 바나바와 니게르라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입닙니다. 성령님은 이 들 중에서도 사울과 바나바를 따로 세워주셨습니다. 이 둘은 참 좋은 믿음의 동역자였습니다. 이 두사람의 연합이 오늘날의 기독교를 세웠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은 이 두사람을 따로 세워주셨습니다. 성령님이 따러 세워주신 믿음의 친구가 기독교 역사를 만들어 갔습니다.

 

 <행13: 1~3> 1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2. 믿음의 진지함

 

이제 제가 두 번째 준비한 말씀은 믿음의 진지함입니다. 믿음의 친구, 영적 동지를 소중하게 생각한 것은 믿음의 진지함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많은 사람이 오가고, 많은 일들이 오가는 데, 시간이 흐르고 세월이 흐르면서 깨닫는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알고 있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말 소중한 사람을 알고 있었던 것이 중요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의 숫자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믿음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고,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말씀묵상과 자기성찰은 믿음의 진지함에서 나오는 깊은 영성들입니다.

 

저는 요즘  믿음의 삶에 대하여 진지한 돌아봄의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진지하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진지합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진지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도 진지하게 하려고 이전보다 더 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 좀 더 세심하고, 좀 더 섬세하게 교회를 돌아보고 교인을 돌아보고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하루 아침에 제가 이전의 저를 몰라볼 정도로 확 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고백들이 거짓이 될까 더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제 마음이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과 제 사역과 제 주변을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도 새삼 느끼고, 고마운 사람들도 새롭게 만납니다. 진지한 돌아봄은 새로운 마음을 갖게 하고 새로운 눈을 뜨게 합니다.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고 새로운 비전을 갖게 합니다.

 

저는 이 번 주 수요일에 있을 대통령 선거도 참 진지하게 하나님과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긴장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대통령 선거에 대하여 말할 생각은 없습니다. 선거법을 지킬 생각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교회가 이 세상에 희망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를 뛰어 넘는 품격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제가 드리려고 하는 말씀은 믿음의 진지함입니다. 누구를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하는지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판단을 진지하게 했다는 것이고, 그렇게 진지하게 판단하기 까지 성경을 읽고 묵상도 하고 기도도 했습니다. 믿음의 진지함으로 하루 하루를 깊이 묵상하면서 기도하면서 살아가니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이전에 가볍게 판단하던 것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미래지향적으로 바라보면서 제 자신의 삶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번 대통령 선거에서 누구를 선택할 지에 대해서도 참 진지했더니 하나님이 제 마음에 선택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지난 한 달여 전인 11월 19일 아침에 기도하던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제 마음에 분명하게 결정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습니다. 제게는 과거의 역사를 용서하는 진지함이 필요했습니다. 후보를 혈연의 관계가 아닌 후보 자신의 정체성으로 바라보는 진지함도 필요했습니다. 물론 후보가 속한 정당이 지향하고 있는 정책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함도 필요했습니다. 이런 진지함으로 대한민국의 미래와 장래를 생각해보니, 일시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고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적인 구호보다 차분하면서도 실천가능한 정책을 제시하는 진정성이 더 좋은 정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만큼만  하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말씀은 믿음의 진지함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사는 삶에 대한 진지함이 소중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도 각자 진지하게 자신의 믿음을 돌아보면서 신앙적으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바라기는 우리 대한민국이,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국가, 세계 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복 받은 국가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거듭 말합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지, 어느 정당을 선택할 것인지, 믿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시면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SNS의 오가는 말이나, 정치공학적인 여론몰이나, 이해관계에 얽힌 정쟁의 공작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진정성

 

이제 세 번 째 주제입니다.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믿음의 진정성은 믿음의 진지함에서 나오는 믿음의 영성입니다. 믿음으로 살아보려는 믿음의 진지함은 삶의 순간순간마다 믿음의 진정성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이럴 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믿음으로 사는 것인지? 순간 순간 깊은 생각을 갖게 합니다. 요즘 저는 제 자신에게 즐기차게 묻고 있습니다. 믿음의 진정성입니다. 진지하게 묻습니다. 믿음으로 살고 싶은가? 믿음으로 사역하고 싶은가? 정말 믿음으로 사는 목회자가 되고 싶은가? 사실 매우 쉬운 질문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하면 이 단순한 질문이 그리 만만치 않은 질문이기도 합니다. 현실의 벽은 우리를 그리 쉽게 믿음의 길로 가게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믿음의 진지함과 믿음의 진정성을 깊이 생각한 것이 히브리서를 묵상하다가 성경 구절에 마음을 뺏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의 지나간 말로 하면 필이 꽃힌 것이지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하다가 그런 마음을 갖고 옷매무새를 고쳐 입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묵상하는 데, 계속 '믿음으로, 믿음으로, 믿음으로 ....'라는 말씀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한 마디로 이런 이런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8절의 말씀이 확실한 마침표를 제 마음에 남겼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믿음으로 살기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 그들이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히브리서 12장의 말씀이 제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습니다.  " 우리에게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라보자!" 믿음으로 살아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

 

  <히11:1~2> "1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바라보며 살 수 있을까?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 2. 인내심을 가지라   3.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말자.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마음이야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지만 종종 우리들이 시험에 빠집니다. 왜냐하면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가 우리를 누르기 때문입니다. 포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포기하고 싶을 때를 많이 만납니다. 이제 그만 내려 놓고 싶은 순간이 아주 많습니다. 십자가가 우리를 부끄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들에게 이런 모든 것들에서 벗어나서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말합니다.

 

저는 지난 주중에도 믿음의 진정성을 깊이 생각하면서 한 후배 목사님 부부와 깊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힘을 얻게 하고 용기를 얻게 하며 좋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도록 도와줍니다.  지난 주에 한 후배 목사님 부부가 저를 찾아왔습니다. 지하실에 세를 얻어 개척교회를 하시는데 '아기방 사역'을 통해 낙후된 지역을 복음화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깊이 격려해주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부부하고 사역을 의논하다가 한 가지 아픈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사님 부부가 너무 열심이 많으셔서 교인들을 돌보시느라 아이를 돌보지 못해서 아이를 혼자 두었더니 아이가 TV만 보면서 혼자 있다가 자폐증세를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를 치료하는 중에 수 많은 아이들이 자폐증이나 틱 장애 같은 아픔을 갖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런 아이들을 돌보시는 데 헌신하시기로 결정하셨다고 합니다. 우리는 함께 간절히 기도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임하시기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 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옛날 같으면 형제자매들이 많아서 서로 싸우면서 크다보니 저절로 크는데 요즘은 그렇 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있는 외로움은 우리를 아프게 만들고 힘들게 만들고 지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도 힘들고, 아이의 부모님도 힘들고, 아이의 부모님이 목회자라 힘듭니다. 제게 1,000만원을 도와달라고 왔는데 제 형편이 도와드릴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우선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위해서 기도하고, 제가 아는 문래동 교회와 신풍교회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참 힘들고 아플 때, 세상이 우리를 시험하고 무너뜨리려 할 때,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말이 아니라 마음의 진정성입니다. 믿음은 세월 좋을 때 교회 다니는 연조로 말하는 종교성이 아닙니다. 믿음은 진지한 말씀묵상과 진지한 자기성찰에서 나오는 마음의 진정성입니다. 그리고 삶의 자리에서 순간순간 자신을 결정하는 깊은 자기 돌아봄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믿음의 진정성을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믿음으로 살자!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으로 살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자! 맞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많이 힘듭니다. 그럴 때 우리들이 정말 믿음으로 살려면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진지함은 믿음의 진정성을 낳고 믿음의 진정성은 믿음의 친구들을 만나 영적 그물망(Spiritual Network)을 만듧니다.

 

 

4. 믿음의 하나됨

 

끝으로 제가 준비한 말씀은 믿음의 하나됨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하나됨 곧 믿음의 일치 영적연합을 이루어야 합니다. 바울은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엡4:1~5> 1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2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3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4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엡4:3) 성령님은 믿음의 친구들 믿음의 동역자들 주님의 제자들을 하나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들을 하나 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마땅히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켜야 합니다. 그 길은 평안의 매는 줄입니다. 평안의 매는 줄로 우리를 묶을 떄 우리는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평안의 매는 줄만이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지난 2년 가까이 마음이 깊이 품고 묵상해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된 것은 제 자신의 섬김이 정말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은 힘써 지켰는지 돌아보게 했기 때문입니다. 참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만이 가득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17장의 말씀도 믿음의 일치, 믿음의 하나됨에 대한 깊은 말씀입니다.   자 이제 요한복음 17장의 본문 말씀을 진지하게 묵상해보실까요?

 

<요한복음17:20~26>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예수님의 기도는 12제자만이 아니라 사도들의 전승을 통해 이어지는 모든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들도 제자들도 다 하나가 되기 바랍니다. 모델은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듯이 그들도 제자들도 하나이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이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이 세상으로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반복됩니다. 예수님은 시종일관 우리가 하나된 것 같이 너희도 하나되라고 말씀하십니다.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예수님의 기도 목적 곧 제자들의 하나되게 하시려는 목적은 세상이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 (아버지께서 보내신 에수님)과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신 것 같이 하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입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에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되어서 예수님과 함께 있기를 바라시면서 결국은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주신 영광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앎의 신앙 - 예수님은 아버지를 알았고, 제자들도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줄을 알았다. 믿음의 지식이 필요합니다. 믿음의 지식은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것과 아버지꼐서 보내신 아들 예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게 하였으며, 이는 예수님을 사랑하신 아버지의 사랑이 제자들 안에 있게 하고, 예수님도 제자들 안에 있게 하려 함입니다.

 

 

자 어떤 느낌이 오시는지요?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기도문이신데 핵심은 제자들의 하나됨입니다. 믿음의 일치, 영적 일치가 중요합니다. 제가 오늘 시종일관 고백하듯이 준비한 말씀은 믿음의 진지함과 믿음의 진정성에서 오는 믿음의 친구들간의 믿음의 일치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시고, 우리 예수님이 그토록 간절히 기도하신 믿음의 일치를 깊이 묵상하면서 힘써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살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영적 과제가 믿음의 하나됨이기 때문입니다.

 

 

 

 

5. 믿음으로 살고 싶다면?

 

 

이제 결론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정말 믿음으로 살고 싶다면 믿음의 진지함과 믿음의 진정성으로 믿음의 친구를 얻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친구가 필요합니다. 믿음의 진지함이 믿음의 친구를 얻습니다. 믿음의 진정성이 믿음의 동역자를 만나게 합니다.  영적 동지를 만나시는 것이 축복입니다. 믿음의 동역자와 함께 사역하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꼭 중요한 것은 믿음으로 살고 싶은 사람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믿음의 친구들과 꼭 하나 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우리 주님 안에서 하나됨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됨, 성령이 하나되게 하심을 힘써 지키며 살아갑니다.  믿음으로 하나됨을 경험하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과 하나되는 사람이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입니다. 그 안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신앙심이 커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됨을 경험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사랑하셨듯이 자신을 사랑하심을 알게 됩니다. 믿음으로 하나됨을 경험하는 사람은 예수님이 받으신 영광을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친구를 만나 믿음으로 얻는 아버지의 영광을 얻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