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하던 때
<창세기 35:1~8> 1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6 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8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에 있는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그 나무 이름을 알론바굿이라 불렀더라
[도망자의 하나님]
오늘 나눌 말씀은 도망하던 때 입니다.
저는 성경을 읽으면서 성경이 도망자의 성경이라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경 본문의 야곱은 도망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도망자 야곱이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창35:1)
이것입니다.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도망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을 소개하는 성경은 도망자를 위한 경전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쫓기고 있는 도망자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성경은 도망자들에게 위로를 주고 용기를 주고 힘을 줍니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에게도 성경은 큰 위로와 용기와 힘을 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힘을 내시고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도망자의 삶을 한 두 번 이상 살게 됩니다. 사람의 일생에는 빛과 그늘이 있습니다. 당당한 시절이 있는 가 하면 한 없이 위축되고 약한 시절이 있습니다. 성공한 때가 있었는가 하면 실패한 때도 있습니다. 자신감을 가지고 활발하게 살던 시절이 있었는가 하면 살 길이 없어서 힘든 시간이 있습니다. 명예와 권력을 가지고 있던 때가 있는가 하면 지위를 잃고 직업을 잃어버린 채 쉬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삶은 한 마디로 쫒겨 가는 도망자의 삶입니다. 도망자의 삶은 뒤로 돌아갈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혼돈과 공허의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창세기 35장의 주인공 야곱은 도망자였습니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성경은 야곱의 삶을 "도망하던 때"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였을 뿐만 아니라, 외삼촌 라반에게서도 도망하였습니다.
<창31:20~22> 20 야곱은 그 거취를 아람 사람 라반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떠났더라 21 가 그의 모든 소유를 이끌고 강을 건너 길르앗 산을 향하여 도망한 지 22 삼 일 만에 야곱이 도망한 것이 라반에게 들린지라.
야곱은 축복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도망자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아버지와 형을 피하여 도망가고 외삼촌을 피하여 도망가고 그래서 끝내는 이리도 저리도 갈 곳이 없는 방랑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속이는 데 익숙하여 이득은 잘 취했지만 생명을 보장받는 안전을 얻지 못한 채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야곱에게 네가 어찌하여 선의를 배반하고 도망을 갔는냐고 힐난합니다. 야곱의 도망 행위는 어리석은 행동이었습니다.
<창31: 26~28> 26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속이고 내 딸들을 칼에 사로잡힌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7 내가 즐거움과 노래와 북과 수금으로 너를 보내겠거늘 어찌하여 네가 나를 속이고 가만히 도망하고 내게 알리지 아니하였으며 28 내가 내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지 못하게 하였으니 네 행위가 참으로 어리석도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하나님 이야기의 핵심은 야곱의 어리석음이나 야곱의 속임수가 아닙니다.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신 도망자의 하나님입니다. 분명 야곱은 속임수의 대가였습니다. 분명 야곱은 어리석은 우매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야곱에게도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성경본문 창세기 35장 1절은 야곱이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벧엘의 이야기입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갈 때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28: 16~18>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야곱은 분명한 체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신앙은 체험이 중요합니다. 웨슬리의 신앙도 회심체험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새벽 기도회에서 소개한 서경석 목사님의 간증도 체험이었습니다. 민주화와 인권에 헌신하신 서경석 목사님은, 자신이 NCC(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사로 있을 때는 합리적인 사고로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였지만 체험을 하고 나서는 믿음을 갖고 복음주의 신앙으로 회심했다고 간증합니다.
서경석 목사님의 글입니다.
[나는 과거에 자유주의 신학에 빠져 있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내가 믿음이 부족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합리적으로 사고하게 되어 있다. 합리적인 사고에 입각한 기독교 이해가 바로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리고 나는 신앙체험을 하고 나서야 복음주의로 되돌아왔고 자유주의신학 전체를 버렸다. 그래서 나의 자유주의 신학 이해는 “신앙체험을 아직 하지 못한 사람들의 과도기적 생각”이다.] (서경석 목사의 칼럼 "WCC는 끝났다" 중에서)
<창31:29> 너를 해할 만한 능력이 내 손에 있으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어제 밤에 내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셨느니라
[도망자의 제단]
하나님은 야곱에게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던 벧엘에서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십니다.(창35:1) 야곱은 순종합니다. 야곱은 자기 집안 사람들과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에게 일어나 벧엘로 가자고 말합니다.
<창35:2~5> 2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3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그러자 야곱의 집안 사람들과 함께 한 사람들은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면서 함께 벧엘로 올라갈 준비를 합니다. 야곱은 그것들을 세겜 상수리 아래 묻고 벧엘로 떠나갑니다. 도망자이지만 도망하던 때에 나타났던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으러 갑니다.
<창35:4~5> 4 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들과 자기 귀에 있는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는지라 야곱이 그것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고 5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
야곱은 도망자였으나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자였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것입니다. 야곱은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셨던 하나님께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셨던 벧엘에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쌓은 곳을 엘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 엘벧엘은 벧엘의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야곱이 벧엘을 엘벧엘이라고 부른 것은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그 곳에서 야곱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입니다.
<창35:7>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
우리 성전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성전이 교회냐? 하는 논쟁은 잠시 유보합시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언어논쟁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예배자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의 집의 하나님이시며, 성전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에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 와서 예배하는 가장 귀한 의미는 바로 우리가 도망자였을 때 우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우리가 도망하던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처럼 이 번 주간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다는 의미입니다. 이 하나님이 이 번 주간도 우리와 함께 하실 줄로 믿으면 아멘 합시다.
[도망자의 찬양]
저는 이제 도망자의 찬양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예배의 시작은 찬양으로 시작합니다. 제단을 쌓는 일은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예전입니다.
시편 34편은 <도망자의 찬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망자의 노래>라고도 부릅니다. 성경은 시편 34편의 제목을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라고 달았습니다. 다윗은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쫒겨난 후에 시편 34편을 지었습니다. 다윗은 도망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도망하던 때에 자기를 건져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도망자 다윗의 하나님은 다윗을 두려움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시34: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다윗은 자신이 곤경에 처해서 도망하던 때의 자기를 곤곤한 자요 환난을 당한 자라고 회상하면서 하나님께 피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합니다.
<시34: 6~7> 6 이 곤고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또 계속해서 다윗은 하나님이 자기를 모든 환난에서 건져 주셨으니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를 부릅니다.
<시34:17~20> 17 의인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들의 모든 환난에서 건지셨도다 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19 의인은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의 모든 고난에서 건지시는도다 20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도망자의 노래로 알려진 시편 34편의 역사적 배경은 사무엘상 21장입니다. 사무엘상 21장은 다위의 도망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놉 땅으로 도망갑니다. 그리고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게서 거룩한 떡을 받아 먹습니다.
<삼상21:6>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이 떡은 더운 떡을 드리는 날에 물려 낸 것이더라
다윗은 다시 사울을 두려워하여 가드 와 아기스에게로 도망갑니다. 가드 왕 아기스는 블레셋 왕으로 두 번이나 다윗을 살려 줍니다. 첫 번 째는 삼상 21장에 나오고 , 두 번 째는 사무엘상 27장에 나옵니다. 가드왕 아기스는 다윗에게 시글락 성읍을 주기도 합니다. 시편 34편에 나오는 아비멜렉은 이 아기스의 다른 이름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첫 번 째 도움을 받았던 사무엘상 21장에서 다윗은 아기스를 두려워하여 미친 체 합니다. 대문작에 그적거리고 침을 수염에 흘리며 미치광이 행세를 합니다. 생존을 위한 미치광이 짓! 이것이 도망자의 모습입니다. 정쟁의 영웅 다윗, 이스라엘의 국기가 된 군기를 만들었던 다윗이었지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었지만, 그런 다윗에게도 도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망하던 때는 미치광이 짓을 해야만 하는 아픈 때였습니다.
<삼상21: 10~15> 10 그 날에 다윗이 사울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도망하여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가니 11 아기스의 신하들이 아기스에게 말하되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 무리가 춤추며 이 사람의 일을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한지라 12 다윗이 이 말을 그의 마음에 두고 가드 왕 아기스를 심히 두려워하여 13 그들 앞에서 그의 행동을 변하여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리매 14 아기스가 그의 신하에게 이르되 너희도 보거니와 이 사람이 미치광이로다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15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니라
시편 34편은 이 도망하던 때를 회상하며 부르던 도망자의 노래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도망하던 때,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생존했던 때를 기억하며, 자신을 살려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다윗의 시는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입니다.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셔서 자신을 구출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입니다. 믿음이란 기억입니다. 믿음이란 삶의 한 가운데서 도망하던 때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행위입니다. 믿음이란 가장 힘들 때, 가장 어려울 때, 가장 외롭고 고독해서 죽고 싶었을 때,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주셨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그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성전의 하나님 엘벧엘]
결국 믿음은 기억이고, 믿음은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여 제단을 쌓고 찬양하며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벧엘의 하나님 엘벧엘 곧 성전의 하나님이십니다. 주일에 성전에 와서 예배하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주일에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 가장 소중합니다. 주일에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이 참 소중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전에서 성전의 하나님 엘벧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지요? 벧엘은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리고 그 벧엘의 원 지명은 루스입니다. 루스는 척박한 땅이란 뜻입니다. 척박한 땅이 변하여 하나님의 집이 되고, 다시 그 하나님의 집에서 제단을 쌓으매 엘벧엘 성전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이것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창세기 35장의 말씀을 묵상하며 "도망하던 때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에게 제단을 쌓는 예배와 찬양을 하는 것은, 성전의 하나님을 다시 만나는 거룩한 체험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일에 이 하나님의 집에서 만난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한 주을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새로운 한 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서 만난 성전의 하나님 엘벧엘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한 주를 힘차게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우리의 삶이 척박한 루스를 지날 지라도 그곳이 하나님의 집이 되리라 믿고 담대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훗날 하나님의 은혜로 먹고 살 수 있을 때, 생명을 건지고 살 만 할 때, 꼭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제단을 쌓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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