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나의 십자가(고전2:2) 2014-1228 주일

우순(愚巡) 2014. 12. 2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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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십자가

 

<고린도전서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2014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한 해가 저물어 벌써 송년주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한 해 매 주일마다 우리 상동교회 성전에 올라 오셔서 예배하신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제가 오늘 준비한 말씀은 <나의 십자가>입니다.

성경본문은 우리가 함께 봉독한 고린도전서 22절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자신이 개척했던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어 선언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에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다. 고린도 교회는 당시로서는 약 25만 명이 살고 있다는 세계적인 도시 고린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린도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그리스 본토를 연결해주는 도시로 헬레니즘의 융성으로 철학이 발달하였고 아프로디테(사랑의 여신) 같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성행하고 신전에서 일하는 창기들로 성적 타락이 심했던 도시입니다.

 

바울은 그런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하면서 담대하게 선언했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구하지만 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을 전합니다.(고전1:22) 십자가의 도가 멸망당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고전1:18) 바울에게 복음은 십자가였습니다.

 

나의 십자가!

오늘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것은 임성택 장로님과 장년부 성경공부 반 덕분입니다.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주님 오늘은 무슨 설교를 준비할까요? 그 때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제게 주일에 전할 말씀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상동교회 교회학교의 장년부 성경공부 반이 가을학기를 끝내고 방학을 하면서 책 걸이로 함께 읽고 있는 <십자가>란 책을 읽으면서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25년간 장년부 성경공부를 인도하신 임성택 원로장로님이 제게 <김응국 목사>가 지은 규장출판사의 <십자가>란 책을 선물해주셨습니다. 장년부 성경공부 반 학생들도 같이 읽기로 하셨답니다. 설교자의 양심으로 미리 말씀드립니다. 오늘 설교는 표절은 아닙니다만 <김응국의 십자가>를 많이 인용하고 있음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저는 설교의 표절을 아주 싫어해서 설교문을 제가 직접 작성합니다. 인용하는 대목은 인용한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꼈습니다. 하나는 김응국의 십자가를 읽고 설교를 준비하였기 때문에 설교 준비하기가 수월했습니다. 그러나 전혀 다른 정반대의 감정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무거운 중압감입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설교하러 강단에 서는 것조차 두렵고 떨리는 무거운 중압감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설명하고, 십자가를 소개하기는 쉬운데, 제 자신이 십자가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는 것은 진지한 진정성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의 십자가>앞에서 진정성을 가진 회개를 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나의 십자가> 앞에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새롭게 느꼈습니다. 김응국의 십자가는 겉으로만 읽을 때는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말씀을 묵상하며 행간을 읽어보니 읽어볼수록 깊은 맛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맞닥뜨려서 대면해보니 제게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늘 설교를 들으시는 성도님들에게도 하나님이 제게 주셨던 귀한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김응국의 십자가

 

김응국의 십자가는 2014년도를 마무리하는 제게 김응국의 십자가는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저는 2014년을 보내면서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신앙의 근본, 믿음의 근본>을 묵상하고 있었습니다. 주보에 있는 송구영신 예배의 제목처럼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되 뇌이며 강림절 내내 주님을 기다리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무언가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을 지워버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무언가 잘 못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Ad Fontes!> 뜻을 풀이하면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말을 마음에 되 뇌이며 한 해를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Ad Fontes!는 직역하면 <원천의 샘으로>라는 뜻입니다. 에라스무스가 이 말을 사용하여 르네상스를 촉발시켰고, 루터가 이 말과 맥을 같이하여 <Ad Biblia! 성경으로 돌아가자!>를 선포하며 종교개혁을 시작했습니다.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하여서는 Ad Fontes!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 김응국의 십자가는 제게 아주 분명하게 <돌아갈 근본, 돌아갈 목적지>를 보여 주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돌아가야 할 신앙의 근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돌아 가야할 십자가는 장식이나 이야기 소재 또는 고고학적인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생명을 얻는 회개>의 십자가가입니다. 김응국의 십자가를 읽으면서 성경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십자가를 정면으로 마주해서 맞닥뜨리고 통회하고 자복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게 주님의 십자가를 다시 생각하게 한 김응국의 십자가를 짤막하게 소개하겠습니다. 김응국 목사님은 십자가를 저술할 당시 규장출판사의 편집국장이었고 말씀의 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시고 계셨습니다. 김응국 목사님은 규장출판사의 직원예배를 인도하실 때 <십자가와 회개>에 대해서 설교를 하시었는데, 하나님이 규장 직원들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던 죄악들을 토설하고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고 <십자가>란 책을 쓰셨습니다.

 

김응국 목사님이 쓰신 <십자가>란 책의 겉표지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함을 절감하고 미련한 십자가,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는 십자가를 자랑하기로 굳게 결심했다. 그는 오늘날의 기독교가 <부와 번영의 복음> <자기 계발의 복음>이라는 사이비 복음에 현혹되는 것을 애통해 하며 <본향을 찾는 나그네>와 같은 심정으로 이 시대에 <원형질의 십자가 복음>을 들이댄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인 십자가만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며, 죽어가는 교회를 소생시킬 수 있음을 역설한다.

 

<본향을 찾는 나그네, 원형질의 십자가 복음>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근본으로 돌아가는 신앙회복이요 진정한 믿음의 부흥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Ad Fontes! 원천(源泉)의 샘으로 돌아가는 거룩한 순례의 행진입니다. 우리는 <원형질의 복음인 십자가> 앞에 다시 서야 살 수 있습니다. 십자가만이 구원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김응국의 십자가는 규장출판사 직원들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한 것을 소개합니다. 규장 출판사는 기독교인들이 사랑하는 믿음의 출판사입니다. 좋은 책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규장 출판사에서 직원들이 예배를 하다가 놀라운 체험을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생명을 얻는 회개를 체험한 것입니다. 규장 직원들이 눈물로 회개했습니다.

 

[사장인 여진구 대표는 사적인 골프비를 회사 돈으로 지급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포털사이트인 갓피풀의 조한상 사장은 거래처로부터 뇌물성 선물을 받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남자 직원은 미디어의 유혹에 넘어간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A라는 한 주임은 주님께 드릴 헌금을 자기 마음대로 계산해서 십일조를 속인 일을 자백했고, B 사원은 입사할 때 학력을 속인 일을 회개하였습니다. C 과장은 나이를 속인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D 사원은 기도라는 책을 펴내면서 기도하지 않은 죄를 회개했습니다. E 사원은 어머니를 학대한 아버지를 용서하지 않은 죄를 회개하였습니다. F 사원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것들이 많았음을 회개하였습니다. G 실장은 아침에 나와서 예배를 인도했지만 마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으며, 영적 교만함으로 안일함과 나태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죄를 회개 했습니다 H 주임은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네가 뭔데...’하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먼저 상처를 준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I 팀장은 스스로 공평하다고 느꼈지만 자신이 무자비하고 냉정한 사람임을 깨달았고 그것이 예수님을 죽인 자신의 죄였음을 고백했습니다. J 대리는 모니터에 개인적인 창을 띄워 놓고 업무 시간에 개인 일을 한 것을 회개했습니다. K 차장은 개인적으로 사용한 기름 값을 청구한 것을 회개하였고, L 사원은 공금을 유용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직원들의 회개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회개를 한 사람은 규장 제작부 정도봉 차장이었습니다.

 

저는 이 더러운 입으로 남을 시기하고 욕했고 그런 입술과 입으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신상명세서에도 나는 크리스천이라고 적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겉으로는 크리스천인척 예수 믿는 다고 했지만 제 마음속에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저는 크리스천이 아니라 불신자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거짓말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하나님의 책을 만들면서 제 지식으로만 만들고 하나님 말씀 없이 기도 없이 그냥 만들기만 했습니다. 하나님, 죄송합니다. 이 죄인을 용서해주십시오.”

 

 

2. 나의 십자가

 

십자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이나 묘사가 아니라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나의 십자가>를 고백하는 믿음이 올 한 해를 믿음으로 마무리하고 새 해를 맞이할 수 있게 합니다. <나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당위성이나, ‘회개란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같은 십자가에 대한 논리나 설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어주시는 넘치는 은혜에 감격하여 철저하게 자복하고 통회하는 회개 자체를 체험하는 <나의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움, 유쾌함이 충만해집니다.

 

성경말씀을 들으십시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 하였도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4,15>

 

성경은 말씀합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우리는 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면서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정말입니까? 정말 주님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체험하시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베드로는 이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되는 은혜가 있다고 선포합니다. (3:19) 표준새번역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이를 것이라고 번역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면 새롭게 되고 유쾌하게 됩니다. 이 십자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이심을 체험하시었습니까? 구체적으로 체험을 하시었습니까? 십자가가 어떻게 우리 자신의 삶에 능력으로 다가 오셨습니까?

 

우리들은 십자가의 자리에 부와 번영의 복음을 세우고, 자기부인의 십자가를 허물고 자기긍정, 자아숭배의 우상을 세우고 사는 데 십자가가 어떤 능력으로 다가 오신 것을 체험하셨습니까? 우리는 오래 동안 십자가를 치워버리고 엔터테인먼트에 도취되어 흥을 돋우는 변질된 예배와 믿음에 익숙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본래의 기독교는 자기계발이나 심리학이나 처세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 앞에서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철저하게 부인하는 회개를 가르칩니다. 그런 체험을 하신 적이 있으십니까? 기독교의 핵심은 속죄입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통회하고 자복하고 죄를 용서받음으로 생명을 얻는 속죄의 종교입니다. 십자가는 <생명을 얻는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래서 진정성을 가지고 십자가를 체험한 사람은 통회하고 자복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도님은 지금 이런 회개와 속죄의 체험을 하셨습니까?

 

 

3. 기독교의 정문: 십자가

 

당신은 기독교의 정문으로 들어오셨습니까? 당신은 기독교에 들어오실 때에 십자가가 세워진 정문으로 들어오셨습니까? 십자가는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창에 찔려서 피가 뚝뚝 덜어지는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채찍에 맞아 살덩어리가 떨어져 나가는 십자가, 가시 면류관을 쓰셔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당신은 그 십자가의 정문으로 기독교에 귀의 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십자가의 정문을 통과하시면서 가슴속에서 터져 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체험하시었습니까?

 

성경말씀을 묵상하시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정문은 십자가입니다.

1)예수님의 복음전도는 <회개의 선포>였습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4:17)”

 

2) 베드로는 회개를 하는 자가 새롭게 될 것이라고 설교 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3:19)”

 

3) 바울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온갖 죄들이 들어왔다고 말합니다.

<1:28~32> “28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또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31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32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

 

4) 사도 요한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선포합니다.

<요일1:8~10>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 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십자가! 회개를 선포하는 십자가! 자신의 죄악을 다 토해 내놓도록 우리 앞에 서 있는 십자가! 그 십자가가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우리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기 원한다면 그 십자가의 정문을 통하여 하나님께로 들어오셔야 합니다. 우리는 정말 기독교의 정문으로 들어가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나의 십자가>를 분명히 고백하고 그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만 사용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적어 보내면서 하나님을 우표처럼 붙이기만 합니다. 그것은 정문이 아닙니다. 개구멍이라고 하는 뒷문이고 옆문이고 가짜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야 할 기독교의 정문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매달려서 죽어가신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피가 쏟아지고, 예수님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 땅 바닥에 나뒹굴어대는 십자가가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그 십자가의 정문으로 들어오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은 진정성을 가지고 온전한 믿음을 위하여 회개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가끔 우리들은 스스로 죄가 없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간혹 사회의 실정법을 어기지 않았다고 스스로 죄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 큰 문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죽이신 것을 우습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보다 더 무서운 것은 암세포도 초기에 발견하면 살 수 있는데 오래도록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늦게 발견해서 치료할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합니다. 지금 자신의 죄를 들여다보고 십자가 앞에서 철저하게 통회하고 자복해야 합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정문입니다. 정문으로 들어오십시오!

 

4. 진정한 주님의 음성 :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진정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전해지는 음성이 진정한 하늘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늘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저는 병원에서 쓸개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습니다. 복통이 나서 이화여대 부속병원에 입원했을 때 의사가 한 말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쓸개를 떼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담석증으로 쓸개에 돌이 새겼고 그로 인하여 담낭염이 왔고 장티푸스에 급성 간염까지 왔으니 쓸개를 떼어 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그래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GOP 숫자가 550이나 올라가니 무조건 쓸개를 떼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두 말 안하고 대답했습니다. <YES! 그렇게 합시다.> 그리고 지금까지 20년간 건강하게 살고 있습니다. 쓸개를 떼 내라고 말하는 의사의 말은 저의 생명을 건지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잘라 내자고도 말씀하시고, 우리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떼 내자고도 말씀하십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주저 말고 YES 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순종합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그래야 삽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NO! 못하겠습니다. 이것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만은 절대로 때 낼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죄악을 끌어안고 애지중지 하다가 마침내는 생명 전체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말씀은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듣고 싶지 않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가롯 유다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고, 사탄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롯 유다처럼 들리고, 내가 악신에 들린 사울처럼 들리고, 내가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요나처럼 들리기 때문에 듣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듣고 싶은 달콤한 이야기만 들으려 합니다. 그리고 설교자도 듣고 싶어 하는 달콤한 사이비 복음의 이야기만 전합니다. 비겁한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그런 사이에 성도들은 아주 나약한 그리스도인이 되갑니다. 아주 탐욕스럽고 세속적인 신앙인으로 전락해갑니다. 세상과 싸울 힘을 잃어갑니다. 죄악을 이길 힘을 잃어갑니다. 마치 작은 세균이나 바이러스에도 생명을 잃어버리는 아주 아주 나약한 사람으로 전락합니다. 마침내는 불신앙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어집니다.

 

우리는 귀에 쓴 소리라도 들어야 삽니다. 우리는 입에는 쓸지라도 몸에는 보약이 되는 말씀을 받아먹을 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들어야 세상을 이길 복음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마태복음 3장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마태복음 3:5~12> “5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6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7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우리는 이제 다시 <우리의 근본>인 십자가 앞에 돌아가서 진정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왜 교회에 나옵니까?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드러내놓고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하려고 교회에 나옵니까? 아니면 자아의 실현을 위해서입니까? 오늘 많은 사람들이 <자아의 실현>을 위해 교회에 나옵니다. 교회에 나오는 내면의 동기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은혜 받고, 십자가 앞에서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하려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아의 성취>를 위해 교회에 나오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나오고, 사회에서 얻지 못한 <명예와 지위>를 얻기 위하여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의 직책도 섬기는 직분이 되지 못하고, 은근히 자신을 드러내는 명예의 훈장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성직을 매매하기도 합니다. 직분을 탐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장로가 안 되고 권사가 안 되면 삐져서 상처받았다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왜 교회에 나오느냐? 너는 알고 있느냐? 교회는 너의 죄를 용서하려고 내가 하나밖에 없는 내 아들을 죽여서 그 피로 세운 <피의 공동체>이다. 십자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각자 자기의 십자가를 만났습니까? 오늘 교회에는 세상을 좇아가는 많은 엔터테인먼트가 들어왔습니다. 나름 교회의 문화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눈물>을 사라지게 만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가슴 깊은 통회와 자복>을 하면서 흘리는 <회개의 눈물>이 사라지는 위기감을 느낍니다. 진정한 믿음의 감격이 사라지고 있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십자가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십시오! 그러면 삽니다.

 

 

5. 십자가 앞의 죄인

 

우리가 진정성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선다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의 십자가 앞에서 분명하게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나의 죄를 용서하시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죽이셨습니다. 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전적으로 나의 죄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인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4) 나는 내가 죄인임을 깊이 인식하고 통회하며 자복합니다. 5) 하나님 나를 용서해주시고 십자가의 은혜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죄를 지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이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은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다윗을 책망했던 나단 선지자를 아시지요? 나단 선지자는 다윗에게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직설적으로 선포합니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당신이 바로 그 죄를 지은 주인공이다.

 

나단은 다윗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합니다.(참조, 삼하 12:1~8) 가나한 사람에게 양이 한 마리가 있는데 가족들이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 양을 딸 같이 여겼습니다.(삼하12:1~3) 그런데 행인 한 사람이 부자에게 오매 부자는 자기 양을 잡지 않고 그 가난한 사람의 양을 빼앗아 행인을 위하여 잡았습니다.(삼하12:4~5) 그러자 다윗은 분노하여 화를 내며 반문합니다. 누구냐?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죄악을 범했느냐?(삼하12:5~6) 그 때 나단이 말합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12:7)

 

나단 선지자의 이 말은 다윗의 마음을 가슴 깊이 아프게 찌르는 말이었습니다. 당신이 그 사람이다! 다윗은 회개를 합니다. 다윗이 위대한 것은 깨끗해서가 아니라 회개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범죄 하였으나 쓴 소리를 들었을 때에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진정성을 가지고 회개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회개를 요청하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질 때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그 사람이다. 당신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 엄청난 죄를 지은 사람이다.

 

십자가의 저자 김응국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합니다.

 

[ 자신은 교회에서 교역자들을 마음대로 대하면서 정작 본인이 만날 교역자들한테 상처받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은 교회생활을 함부로 하면서 만날 본인이 교회에서 상처받았다고 한다. 자신이 이웃을 함부로 대하면서 자기가 만날 다른 사람 때문에 상처 받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빼앗았다는 의식은 전혀 없이 자기가 빼앗겼다는 데만 예민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내가 그 사람이라는 엄중한 사실로부터 도망할 수 없다. 어디로 도망할 수 있겠는가?]

 

내가 바로 죄인이다. 내가 죄를 지었으니 십자가 앞에서 회개해야 한다. 각자 자기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를 회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맞닥뜨려서 자신의 오장육부를 다 쏟아 내면서 진정한 회개를 경험해야 한다. 이 회개를 할 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자아가 죽었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을 때 이미 자아가 죽었다. 그런데 죽은 자아가 산 것처럼 행동한다면 그것은 시체가 산 것처럼 움직이는 것이니 얼마나 무섭겠는가? 영화에 나오는 강시 같을 것이다. 회개를 말할 때 우리는 우리의 자아가 십자가 앞에서 죽은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김응국 목사의 이야기입니다.

 

[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매일 매일 그 정과 욕심으로 이글거리는 사람은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 날마다 세상을 사랑하는 정욕의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오래 교회에 다녔어도 구원받지 못했다. 만날 자기 뜻, 자기 생각만 주장하는 사람, 자아가 십자가에 죽지 않은 채 자기애-자기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다. 십자가를 다시 공부하라 (122)]

 

김응국 목사님은 계속 말씀을 전합니다.

 

[누가 예수를 십자가게 못 박았는가? 습관적으로 정욕에 휩쓸리는 내가, 재물을 탐하는 내가, 주님에 대한 주체적인 신앙고백 없이 습관적으로만 교회에 나가는 내가, 자기 고집을 부리는 내가, 강한 자아 그대로 성질이 발동하는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한다며 내 마음대로 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드러나 보이기를 바라는 내가 예수를 십자가게 못 박았고, 하나님이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124)]

 

십자가에서 자아를 죽여야 삽니다. 자아를 죽이고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삽니다. 자아을 죽이지 못하고 홀로 자아독립을 선언하면 반드시 죽습니다. 포도나무 비유를 들으십시오.

 

<15:3~6>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자기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그 죄악성을 회개해야 한다. 말세가 되면 고통 하는 때가 오는 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온갖 죄를 짓습니다.

 

<딤후3:1>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뽕잎에서 실크가 나오는 것을 아시지요? 누에는 뽕 잎을 먹습니다. 그리고 실크 비단을 만들어 냅니다. 어떻게 가능합니까? 누에고치를 거치기 때문입니다. 뽕 잎을 갉아먹은 누에가 죽어서 누에고치가 될 때 거기서 실크 비단 실이 나옵니다. 누에고치가 안 되면 뽕 잎은 그냥 누에의 배설물이 될 뿐입니다. 기억하십시오! 뽕 잎이 실크가 될 수 있는 것은 누에가 죽어서 누에고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자아가 죽은 사람만이 부활의 영광에 이름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나라를 만드는 거룩한 실크 비단이 됩니다.

 

 

6. 생명 얻는 회개

 

2014년을 보내면서 우리 모두 진정성을 가지고 <나의 십자가> 앞에 다시 서 봅시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로 가고 있는 순례자들입니다.

 

성경말씀을 읽으시며 <나의 십자가>를 묵상하십시다.

 

<3:3~5> 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11:17~18>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십자가 앞에서 회개하기를 요청하고 계십니다. 우리들 각자 자기의 십자가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붙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더 이상 고집피우지 말라고 요청하십니다.

 

<2:4~8> 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우리는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에게 고백했던 그 고백을 해야 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2:36~39> 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신앙의 진정성을 깊이 묵상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나의 십자가>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하는 시간을 가집시다. 그러면 성경말씀처럼 새롭게 되는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게 못 박은 사람이 바로 나입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그 죄인의 괴수입니다. 오늘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통회하고 자복합니다. 주님 나를 용서해주십시오. 우리 모두 오늘 주신 말씀과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고백합시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그리고 생명을 얻는 회개를 합시다. 그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유쾌한 마음으로 새 해를 맞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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