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화신학의 연속성과 일관성
김광식
우리 신학계에서 처음으로 토착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1960 년대 이래 여러 신학자들이 각각 자신의 신학적 사유를 심화시키면서 얼른 보아서는 서로 다른 신학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미 유동식 박사는 <韓國神學의 鑛脈>(1982)에서 한국신학을 보수주의, 진보주의 및 자유주의로 분류한 바 있다. 그러나 이 세 가지는 모두 미국신학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그래도 한국적인 신학을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토착화신학을 거론할 수 밖에 없다.
토착화 논의의 주역이던 유동식 박사와 윤성범 박사는 60 년대 논의가 지난 후로는 더 이상 토착화를 말하지 않았다. 윤 박사의 “성(誠)의 신학”과 유 박사의 “풍류(風流) 신학”은 결국 토착화를 말하지 않는 토착화신학이 된 것이다. 아직까지도 토착화를 말하고 있는 필자는 토착화신학이란 말이 좋아서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토착화신학의 마지막 남은 대변자처럼 신학하기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윤 박사와 유 박사가 각각 한국적 신학과 한국신학이란 용어를 즐겨 쓰는 가운데 또 하나의 한국신학이 70 년대를 풍미하였다. 안병무 박사와 서남동 교수 등이 주창한 민중신학이 그것이다. 민중신학자들은 후에 통일신학을 거론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중신학의 뒤를 이은 것은 여성신학이나 환경신학 등과 같이 서양의 신학적 변천과정에 민감한 신학이 되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신학을 주장하던 이들이 80 년대 이르러서는 종교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 혹은 포스트모던신학 등 당시 서양의 첨단신학들에 대하여 열렬히 몰두하였다.
아직도 토착화신학을 말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한국의 모든 신학사조를 토착화신학의 틀 안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이것은 넓은 의미에서 생각한 토착화신학이다. 비록 외국에서 들어온 신학일찌라도 그것이 한국인 혹은 한국신앙인에게 영향을 주고 그러한 영향을 자기 나름대로 수용하여 신학한다면 그것은 토착화신학의 범위 안에 들어온 것이다. 이 경우에 토착화는 씨가 땅에 떨어져 뿌리를 내린다는 의미를 매우 형식적으로나마 신학에 적용한 것이다. 외국의 모든 신학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신학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한국신학을 표방하는 신학들은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한국적인 것을 중심적인 주제로 삼고 있다. 그것이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이든지 혹은 한국사회와 현실이든지 신학적 사유의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한국적이다. 가령 민중신학, 여성신학, 종교신학, 환경신학 등이 한국적일 수 있고 그러한 의미에서 토착화신학의 범위 안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착화신학이라는 명칭에 대하여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고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상당히 많이 있다. 필자를 비롯하여 문화신학회를 시작한 사람들은 토착화신학회 대신에 문화신학회라는 학회명칭을 사용할 때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theology of culture)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토착화신학이란 이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문화신학이라는 보다 포괄적이고 부담감이 적은 이름으로 학회활동을 하더라도 그 내용은 여전히 토착화신학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이 토착화란 용어를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왜 그러한가? 그 까닭은 토착화란 말 속에 담겨 있는 비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윤성범 박사는 토착화를 뿌리내림(root-in) 이라 하였고 유동식 박사는 토착화를 성육신에 비견하였다. 두 신학자의 근본의도는 복음의 중심인 예수 그리스도가 한국교회의 주님이 되신다는 데 있다. 이것이야 말로 감추어진 비밀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바로 토착화신학의 중심주제가 된다.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는 예수를 믿으라고 전하는 것이다.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으로 보시는 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토착화이다. 한 번은 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N 박사가 찾아와서 연세대 안에 히브리 연구소를 설립하면 지원하겠다고 하였다. 이미 한국기독교문화연구소가 있으니 히브리 연구소를 함께 통합하여 운영하자고 제안했더니 N 박사는 난색을 표하였다. 우리가 영접하고 주님으로 믿는 예수는 분명히 유대인이었으나 그분은 기쁘게 한국인의 구주로 오셨다. 토착화란 용어는 유대인 예수를 억지로 한국인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예수가 친히 기쁘게 한국인으로 오심을 함축하고 있다.
비록 토착화란 말이 한자로 표기되어 있으나 그 말은 순전하게 한국말이다. 가령 중국어 사전이나 일본어 사전에는 土着化란 말이 없다. 중국인이나 일본인은 그 말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와 천주교 뿐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예술 등 각 분야에서 토착화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우리말 사전에는 토착화라는 표제어가 실려 있다(<동아 새 국어사전>1990참조). 토착적이란 의미에서 영어로 indigenous를 쓰거나 독일어로 einheimisch를 사용한다. 그러나 영어나 독일어에는 토착화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영어로는 indigenization이나 혹은 inculturation이라는 조어(造語)를 사용하기도 하며 독일어로는 Indigenisierung 혹은 Inkulturation을 쓰기도 한다. 한자를 풀이하여 말한다면 토착화(土着化)는 땅(一) 위에 서있는 십자가(十)에 달리신 어린 양(羊)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目)을 닮는 것(化)이다. 토착화는 예수를 영접하여 주님으로 섬기는 것을 뜻한다. 영접하고 섬기는 것은 우리 자신이고 한국적이다. 중국에서는 국민당 정부가 기독교를 서양의 앞잡이라 하여 핍박했을 때 기독교가 공산당과 손을 잡았으나 그들의 염원은 기독교의 공산화가 아니라 기독교의 본색화(本色化)였다. 교회가 본래의 교회로 되는 것은 사양인의 교회도 아니고 국민당이나 공산당의 교회가 아니라 본래의 중국적 교회로 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본색화이다. 아마도 그것은 중국교회의 토착화의 몸부림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토착화는 인간적 시도와 노력의 산물이 아니다. 복음의 토착화는 성령의 역사로서 일어나는 구원의 사건이다. 토착화가 성령의 역사인 까닭은 첫째 예수를 믿고 영접하고 주님으로 섬기는 것이 사람의 자기의(自己義)가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으로 주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 둘째 이유는 어느 개인이나 집단이 토착화를 인간적 종교적 천재에 의거하여 창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무의식적 성령체험에서 토착화의 구원사건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토착화가 구원의 사건인 까닭은 그것이 인간적 업적이나 천재성을 자랑하려는 데 있지 않고 어두움 가운데 비취는 참 빛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에 이르게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역사로서의 토착화가 구원의 사건이기 때문에 선교와 깊은 관계 가 있다. 선교와 토착화는 마치도 칭의와 성화의 관계와 같다. 칭의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인 하나님의 의를 얻는 것이고 성화는 하나님의 의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전유(專有)하여 거룩하게 되는 구원의 사건이다. 마찬가지로 선교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며 토착화는 그리스도의 약육으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로서의 구원의 사건이다. 또한 선교 없는 토착화는 맹목적이고 토착화 없는 선교는 공허하다. 더구나 언행일치의 신학에서 보면 선교와 토착화는 서로 일치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선교는 선교대로 토착화는 토착화대로 빗나가게 된다. 그것은 구원의 사건이 아니라 파멸적 상황이다. 바로 이러한 파멸적 상황에서 이단이 싹트게 된다. 선교 없이 이루어진 토착화는 사이비 이단이 될 수 밖에 없고 토착화에 무관심한 선교는 실패할 수 밖에 없다. 그 두 가지가 모두 파멸적인 결과이다. 그러니까 선교와 토착화는 상호종속적이다.
이제까지 넓은 의미의 토착화신학에 대하여 논의하였으나 이제부터는 좁은 의미의 토착화신학에 대하여 논술하고자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60 년대에 토착화 논쟁에서 주역이었던 유동식 박사와 윤성범 박사가 70 년대 이후로 토착화라는 신학개념을 포기하였다. 그 대신에 성의 해석학 내지 한국적 신학을 시도했으나 윤 박사는 더 이상의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작고하셨다. 아직 생존하여 왕성하게 활동 중인 유동식 박사는 토착화에서 출발하여 무교연구 및 종교신학을 거쳐 풍류신학에 이르렀고 다시 최근에는 예술신학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 이 모든 것이 토착화신학의 범위 안에 있다. 그러나 위의 토착화 논쟁의 주역들은 처음부터 토착화신학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았다. 필자는 기억컨대 1982 년 기독교 공동학회 개최시 조직신학분과에서 “土着化 의 再論”이라는 주제로 발표할 것을 요청받고 학회에서 발제를 하고 토론한 일이 있다. 그 발제논문이 나중에 <基督敎思想>에 게재되었고 후에 다시 정리하여 拙著 <土着化와 解釋學>(1987)의 첫머리에 옮겨 실었다.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토착화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토착화신학이라는 이름을 모두 기피하고 내버린 결과로 그 이름이 필자의 신학을 지칭하는 것으로 굳어지고 있다. 토착화신학은 세 단계를 거쳐 전개되어 왔다. 사람들은 두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필자의 토착화신학과 그 밖의 다른 한국신학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에 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세 단계로 전개된 토착화신학의 전개과정에서의 일관성에 대한 것이다. 필자는 제1 단계 신학에서 그 이전의 한국신학과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의식적으로 다루었다. 이 첫 단계에 속한 저술로서는 박사학위 논문인 God in Humanity. The Belief in Hananim and the Faith in God, Diss. Basel 1970(1992)과 <宣敎와 土着化>(1975) 혹은 <言行一致의 神學>(2000) 및 <신앙의 초대>(1979) 혹은 <신앙에의 초대>(1984) 등을 꼽을 수 있다. 윤성범 박사의 “성”(誠) 개념이 형이상학적이고 교의학적인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언행일치”는 “성”에 대한 구속사적 접근에 입각한 개념이고 양명학의 지행합일(知行合一)에 대한 통속적 이해에 근거한 개념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언행일치와 인간의 언행일치를 구별하여 구속사적으로는 하나님의 본원적 언행일치 (창조와 계약) 그리스도의 역사적 언행일치 (예언과 성취) 그리고 성령의 현실적 언행일치 (영성과 은사) 및 종말론적 언행일치 (종말과 영광)에 대하여 산만하게 논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언행일치는 칭의와 성화, 선교와 토착화, 신앙과 생활 등으로 논의되었다.
토착화신학이 선구자적 스승들의 토착화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윤 박사의 토착화론에서는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천재성이 매우 강조되어 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선제적 행위와 복음의 능력은 상대적으로 경시되었다. 그러니까 성의 신학자는 복음보다 한국의 문화적 내지 종교적 천재성을 소중히 여기는 듯한 인상을 준다. 복음은 단지 중립적이고 수동적인 객체로 남게 된 것이다. 유동식 박사의 토착화론에서는 한국종교사의 원동력이라 할 만한 소위 기층문화를 상정한다. 그 기층문화는 다름 아닌 풍류(風流)이다. 풍류는 한국무교 속에 면면히 이어져 오고 화랑도에서 꽃피우고 불교와 유교와 기독교 등 외래 종교를 수용하여 독자적 문화종교로 발전시켜 왔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의 복음도 풍류도의 바탕에서 토착화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필자의 토착화론은 교회 공동체와 한국교인들의 신앙에서부터 출발한다. 한국교회와 한국교인은 공동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이미 유불선 종교문화에 의하여 각인된 존재이다. 복음이 전파되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유불선 종교인으로서의 한국인에게서 토착화라는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교회적으로도 그러하다. 선교와 토착화가 일치되는 구원의 사건은 인위적이거나 인간주도적인 토착화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서의 토착화이다. 이렇게 보면 필자의 토착화론은 성령론적이라 할 수 있다. 앞선 두 스승님은 천재성과 기층문화를 강조했다면 필자는 성령의 역사를 강조한 셈이다.
사람들이 토착화신학의 일관성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둘째 궁금증이라 하겠다. 어떤 목사님은 이렇게 묻는다. 기도원 설교를 하고 기도의 영성을 체험하면서 혹시 이전에 주장했던 신학에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묻는 것이었다. 토착화신학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모두 인정했듯이 여기서도 토착화신학의 일관성과 함께 자세전환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토착화신학의 연속성은 선구자들의 신학을 이어받아 이를 존중하고 심화시킨 것이라면 불연속성은 선구자들과의 차별화라 하겠다. 토착화신학의 일관성은 신학적인 틀을 이루는 논리적 구조가 일관되게 간직하고 있다는 점이 될 것이다. 반면에 자세전환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출발한 연구자세가 기도원 설교와 영성체험에 이르러 교사가 아닌 설교자의 입장으로 바뀐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토착화신학의 일관성은 무엇인가? 세 단계의 신학적 사유에 있어서 일관하고 있는 신학적 논리는 무엇인가? 언행일치를 말하는 첫 단계에서 구속사적 언행일치를 주장했으나 둘째 단계에서는 이것이 신토불이의 신학으로 드러났다. 일치가 이제는 불이(不二)로 이해된 것이다. 언행일치의 경우에도 일치는 단순히 기하학적인 합동(合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치가 불이로 재해석되는 것이 둘째 단계의 신학적 논리이다. 언행일치가 신토불이로 바뀐 것은 논리의 변화가 아니라 논리의 재해석이다. 일치에 대한 구속사적 해석에서 다시 일치의 재해석을 통하여 불이에 이른 것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본시 한의학에서 말하는 약처방의 방법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고 살아온 땅에서 얻은 약초가 그 땅 사람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발족하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이 헐리자 국내산업을 보호하기 위하여 외국산 상품보다 국산 상품을 장려할 목적으로 우리나라 정부가 한 때 신토불이를 강조한 바 있다. 지금은 우리 경제의 60%가 수출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구호가 되었다. 그러나 토착화신학에서는 그것이 매우 의미있는 사자성어(四字成語)가 되었다. 신토불이에다 동성동의(同聲同意)의 원칙에 따라 교의학적 주제를 대입시킬 수 있다. 그 결과 신토불이는 하나님과 땅은 둘이 아니다(神土不二)라고 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몸과 땅은 둘이 아니다(身土不二)라고 할 수 있고 기독교의 믿음과 땅은 둘이 아니다(信土不二)라 할 수 있으며 종말론적인 새로움과 땅은 둘이 아니다(新土不二)가 될 수 있다. 여기서 땅은 한국적인 것(proprium Coreanum)을 뜻한다.
신토불이에 대하여 사색하기 직전에 필자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인 디트리히 릿츨과의 대화를 통하여 루터의 칭의공식과 불이의 관계를 관련시킬 수 있었다. 한국에 있어서 복음의 토착화는 언행일치와 신토불이로 표시될 수 있으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이러한 토착화에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칭의공식을 이미 마련하였다. 루터에 의하면 그리스도인은 의인인 동시에 죄인(simul justus et peccator)이다. 여기서 “동시에”가 일치 혹은 불이에 해당한다. 루터의 칭의공식을 토착화 공식으로 만들면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이방인”(simul Christinaus et paganus)이라 할 수 있다.
릿츨 박사와의 대화를 위한 나의 논찬문을 미리 읽어본 하인리히 오트 교수는 “동시에(simul)를 좀 더 명시화하고 심화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필자는 후에” “동시에“를 신토불이의 입장에서 풀이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의 약속받은 자손 즉 의인이지만 이방인은 죄인이다. 물론 한국인도 이방인이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라는 공식을 얻게 된다. 이방인은 본래 죄인이지만 의인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로다”(사 19:24-25). 이사야는 이방인 애굽과 앗수르도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 하였다. 바울 사도도 이방 그리스도인이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는다고 하였다(갈 3:9).한국은 하나님(韓)의 나라(國)이며 한민족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다만 예수를 믿고 영접하여 주님으로 모시는 그 날에 이르러 그렇게 된다.
의인인 동시에 죄인이듯이 그리스도인인 동시에 한국인이라 하는 말은 신토불이에 적용될 수 있다. 여기서 땅(土)은 한국이요 한국인이요 한국문화요 한국적인 것을 뜻한다. 하나님과 한국적인 천지신명(天地神明)은 믿음 안에서 둘이 아니다. 이것은 칭의이고 토착화이고 구원이다. 단군신화의 하느님과 애국가의 하느님은 땅에 속한 것이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하느님은 성경의 하나님과 둘이 아니다. 이것을 우상숭배나 혼합주의로 여기면 안 된다. 한국인이 성경의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에서 토착화의 사건이 일어나고 칭의의 동시성(simul)이 일어난다. 애국가를 부르고 만세를 부르던 3.1 운동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느님과 하나님이 둘이 아니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한국인으로 오셨다는 신토불이(身土不二)는 또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한국의 교회라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독교의 신앙은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과 만남으로써 토착화의 사건이 이루어진다(信土不二). 이 믿음 안에서 마지막 때의 새로움은 한국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이다(新土不二).
신토불이의 불이사상은 인도사상과 불교사상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조선유학사에서는 율곡 이이의 이기이원론적 일원론으로 소급된다. 율곡은 이(理)와 기(氣)가 둘이 아니라 하나(二而一)이고 그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하나가 아니라 둘(一而二)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한국인의 전형적인 불이사상이 되어 오늘날까지 우리도 신토불이를 말하게 된 것이다. 신토불이 신학은 주로 Theologische Zeitschrift, Korea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Yonsei Journal of Theology 및 <組織神學論叢>등 국내외 학술지에 간간이 기고한 논문들에서 다루어졌다.
신토불이의 신학은 땅의 구원을 가르친다. 땅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그 땅의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다. 애굽과 앗수르가 복을 받듯이 한국도 복을 받는다. 여기에서 복의 신학이 시작된다. 복의 신학은 이미 연세대 교수로 재직할 때부터 주장한 바 있다. 특히 <組織神學> (II)과 (IV)과 (V)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복의 신학의 가능성을 암시하였다. 그러나 복의 신학을 신학적 이론으로서가 아니라 설교의 형태로 가르치게 되기는 강남금식기도원에서 강사로 활동하면서부터이다. 이제까지 네 권의 설교집이 나와 있고 다섯 번째 설교집을 준비중에 있다. 언행일치와 신토불이와 복은 각각 유불선에 상응한다. 토착화신학의 마지막 단계가 복의 신학이다. 그러나 누가 감히 복의 신학을 말할 수 있는가? 혹시 그것은 기복신앙이 아닌가? 그것은 미신이 아닌가? 그것은 무당 판수 점쟁이 보살이 추구하는 운(運)이 아닌가? 복의 신학에 대한 거부감이 만만치 않다. 운세나 재수나 일진이나 기타 그와 같은 것은 한국인의 일상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어서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점술과 푸닥거리에 휩쓸리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복의 신학을 그러한 미신과 혼동하기도 한다.
책임있는 조직신학자가 감히 복의 신학을 말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와 근거가 있어야 한다. 세 가지 측면에서 복의 신학의 근거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성서와 교회전통과 현실생활이다. 이 세 가지 측면에 집중하는 이유는 조직신학의 연구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이고 교회전통에서는 신조와 교리와 신학이 생성되고 전승되며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세계에 선포된다. 신학의 방법과 과제가 위의 세 가지 측면에 의하여 규정되고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거기에 주목해야 한다.
성경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교리와 신학이 복을 주제화하지 않았고 도리어 복이라는 개념을 외면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율법과 선지자와 성문록이 모두 하나님의 복에 대한 기록이다. 예수님도 산상설교를 비롯하여 많은 대목에서 복을 말씀하셨다. 사도들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교리사와 신학사에 있어서는 복의 개념이 후퇴하고 전면에서 사라지는 대신에 철학과 법률과 신비주의에 의하여 압도당하였다. 교회의 지도층에게는 복이라는 것이 별로 매력이 없었다. 복은 일반신자들에게 더 친숙한 것이다. 교회 정치적으로도 신학적으로도 별로 주목받지 못한 복의 신앙이 일반서민에게는 도리어 절실한 문제였다. 알지 못하는 사이에 복과 구원은 별개의 것인 듯 취급되었다. 복의 신학은 복과 구원을 동일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무엇보다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교인은 물론이고 불신자들도 복을 애지중지한다. 어쩌면 우리의 문화가 온통 복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한국교회의 설교에서 복을 강조하면서 교세가 확장되고 교회가 급속도로 성장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특히 70 년대와 80 년대의 상황이었다.
토착화신학의 마지막 단계인 복의 신학의 연속성과 일관성도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한다. 전에는 아무도 복의 신학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한 면에서는 복의 신학의 연속성을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복의 신앙은 이미 성경에서 시작하여 교회역사를 거쳐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우리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언행일치와 신토불이 사이의 논리적 일관성은 일치와 불이의 일관성에
있다고 하면 복의 신학에 있어서도 그러한 일관선이 있는지 묻게 된다. 동양인들의 인생관과 우주관에는 음양오행설이 근저에 놓여있다. 음양오행설의 기초적인 논리구조는 상생상극(相生相克)에서 찾을 수 있다. 흔히 상생과 상극이 분열과 갈등의 관계인 것처럼 오해한다. 그래서 상극의 정치가 아닌 상생의 정치에 대하여 말하고 상극의 신학이 아닌 상생의 신학을 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음양오행설의 상생과 상극은 갈등 관계에 있지 않고 조화의 관계에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음과 양은 갈등관계로 끝나게 될 것이다. 상생과 상극은 자동차의 가속과 제동에 해당된다. 브레이크 없는 차는 위험천만하고 파멸적이다. 상극 없는 상생은 팽창과 가속도만 알기에 현재 경제위기의 원흉인 월가의 무한경쟁적 탐욕으로 나타났다. 이 탐욕이 우상숭배이고 선악과이다.
상생상극의 조화는 어디까지나 자연의 이치이다. 이 피조물적 조화의 원리는 모든 분야에서 너무 많이 붕괴되어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물론이고 자연의 질서에서도 상생상극이 왜곡되어 있다. 가령 동물간의 친화관계 뿐 아니라 천적관계도 인공적으로 조작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적인 상생상극은 구제불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서서 복의 신학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과 역사를 가르친다. 더 이상 상생상극에 의지하지 않고 신생신극에 의지한다. 신생신극을 동성동의의 원칙에 따라 교의학적 주제를 대입하여 사자성어를 재구성하면, 神生神克, 身生身克, 信生信克, 新生新克이 된다. 그것을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기시며, 그리스도의 몸이 살리시며 이기시고, 믿음이 살리고 이기며 새로움이 살리고 이긴다. 이 토착화 공식은 각각 신론과 기독론 내지 교회론과 구원론 및 종말론을 암시한다.
복의 신학은 또한 이와 비슷한 사자성어 공식을 사용할 수 있다. 한국인이 즐겨 쓰는 입춘대길(立春大吉)이란 말이 있다. 입춘만 되면 좋은 일이 있다는 것인데 이러한 자연적 운세론은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개입과 역사가 일어난다.
입춘대길이 아니라 입신대복이라 해야 한다. 그것을 토착화된 공식으로 해석하면 入神大福, 入身大福, 入信大福, 入新大福이 될 것이다. 즉 하나님 안에 거하면 큰 복을 받고 그리스도의 몸에 지체가 되면 큰 복을 받고 믿음 안에 거하면 큰 복을 받으며 새로운 피조물로서 새 하늘과 새 땅에 거하면 큰 복을 받는다.
토착화신학의 연속성과 일관성은 결코 정체된 고착상태를 의미하지도 않으며 단순히 옛 것을 무의미하게 반복하는 권태로운 동일성도 아니다. 토착화신학이 언행일치에서 신토불이를 거쳐 신생신극에 이르렀다고 해도 그 길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토착화신학의 길은 또한 동시에 토착화의 길이기도 하다. 토착화는 성령의 역사로서 이루어지는 구원의 사건이다. 이 구원의 사건은 항상 인간에게 복이 된다. 그러니까 언행일치도 신토불이도 신생신극도 모두 구원의 사건이며 복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토착화신학을 말 그대로 복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복의 신학은 토착화신학의 마지막 단계인 동시에 토착화신학 그 자체이다. 필자가 교수로서 가르칠 때에는 토착화신학의 세 단계 길을 말하였으나 기도원 설교자로서 이제 이 세 단계의 길을 복의 신학에서 다시 조명해 보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토착화신학자의 자세전환이다. 복의 신학자는 세 단계로 구분정리하여 토착화신학의 길을 따라 왔으나 마지막 단계의 길에서 전체를 뒤돌아보면서 제재초복(除災招福)이라는 복의 신학의 대주제를 머리 속에서만 아니라 실존적으로 체험하고 증거하는 선포자가 되었다.
복은 항상 저주와 대칭을 이루고 있다. 그 대칭이 때때로 파국으로 몰아가기도 하고 시시때때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도우심으로 구원의 기쁨과 영광을 맛보게도 한다. 따라서 복의 신학은 저주를 물리치고 복을 구하는 즉 제재초복(除災招福)의 길을 걷는다. 이 길은 장망성(將亡城)을 떠나서 영원한 하나님의 도성을 향하여 가는 구원의 길이다.
끝으로 토착화신학이 과연 새 번씩이나 변신하고 변하고 타락한 일관성 없는 변덕인가 아니면 초지일관하여 신학의 대상만을 끝까지 추구하는 신실한 신학인가를 질문으로 남기면서 우리 자신의 신앙과 신학, 영성과 학문을 성찰하는 자세를 촉구하는 바이다. 새로운 세기를 살면서 옛 일을 돌이켜 보는 것은 앞으로 나갈 길을 바르게 찾으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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