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기록(2006-0108 석양설교) 전문

우순(愚巡) 2010. 9. 30. 20:28

<사도행전 1 1-2기록”> 2006 1 8 석양예배 설교

 

<사도행전 1 1-2기록”> 2006 1 8 석양예배 설교

 

도입)

 

  오늘 이 시간에 우리 주님의 평강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부터 석양예배 시간에는 사도행전을 강론하겠습니다. 강론은 히브리어로 다바르라고 합니다. ‘다바르는 흩어진 물건을 정돈한다는 말에서 왔습니다. 흩어진 물건을 정돈하는 게 강론입니다. 묵상이 개인적인 성경읽기라면 강론은 공동체적인 성경읽기 입니다.

 

전개)

 

이 시간은 사도행전 1 1절로 2절의 말씀을 가지고 기록에 대하여 강론하겠습니다. 저는 늘 하던 대로 강론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묵상합니다. 사도행전 1장을 읽는 중에 기록에 대하여 깊은 묵상을 했습니다.

 

성경은 기록입니다.

사도행전도 기록입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에 대한 기록입니다.

먼저 쓴 글 누가복음서는 예수님 때부터 승천 때까지의 기록이고,

나중에 쓴 사도행전은 예수님 승천 이후의 사도들의 기록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어 구전으로 전승되다가 기록된 것이 성경입니다.

  그래서 기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요 공동체의 신앙고백입니다.

 

본론)

 

1.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록

 

     사도행전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록입니다.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던 한 사람 데오빌로를 구원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사람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데오빌로는 이름이 아니라 별명입니다. 데오는 하나님이라는 테오스에서 왔고, 필로는 사랑한다는 필레오에서 왔습니다. 그래서 데오빌로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별칭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 한 사람을 위하여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그것도 근원부터 미루어 자세히 살펴 기록했습니다. (1:1-4). 누가는 이전에도 예수님에 대하여 붓을 든 사람이 많았지만 근원부터 미루어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아서 누가복음을 쓴다고 전제합니다.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기록! 늘 이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구원과 양육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근래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 중 하나는 지역교회와 선교단체의 조화입니다. 교회에는 부흥성장을 원하는 사람과 부흥성장을 섬기는 사람들로 혼합되어 있습니다. 지역교회는 전통과 역사의 권위를 가졌다면 선교단체는 영성과 선교비전을 가졌습니다. 지역교회의 전통과 역사가 뿌리와 기둥이라면 선교단체의 영성과 선교비전은 꽃과 열매입니다. 이 둘이 서로 대립되어 있다가 1980년대 이후 조화를 이루기 시작 했습니다. 더욱이 요즈음은 예수 전도단의 찬양과 지역교회의 열린 예배 혹은 현대 예배가 결합하면서 예배의 감격을 통한 부흥성장을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지역교회는 선교단체로부터 일대일 제자 양육 성경공부라는 양육 프로그램을 배웠습니다. 한 사람을 위한 중보기도와 신실한 돌봄이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몇 해전 CCC와 함께 러브 이바라기껜에 참여해서 일본을 전도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일본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데 단 한 줄을 배웠습니다. 그것도 틀리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11일 동안 일본 이바라기껜의 이시오카시 4000세대를 축호전도 했습니다. 제 아내는 예수 전도단의 DTS 훈련을 받고 레바논 지역에서 선교를 했습니다. 지역교회는 전통과 역사를 가졌기에 영적인 보루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선교단체는 복음전도의 영성과 선교비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적 전투의 현장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이 잘 합쳐진 모델이 강남 지역의 뉴 후론티어라는 온누리, 사랑의 교회, 남서울교회, 지구촌 교회 등입니다. 물론 그 이후에 새로운 모델들이 나왔습니다.  .NCD.나 셀 사역 또는 예수 마을 교회처럼 목장 사역도 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들의 뿌리에는 감리교의 웨슬리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우리의 자산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자산을 잊어 버렸습니다. 웨슬리의 명성은 여러 갈래로 분화되었습니다. 성결사역은 성결교회로, 성령체험은 순복음교회와 하나님의 교회로, 자선사업은 구세군으로, 형제사랑은 나사렛교회로 전수되었습니다. 그리고 웨슬리 영성의 본류인 감리교회는 조직과 제도를 이어 받았습니다. 물론 조직과 제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보다도 소프트웨어가 최신형이래야 앞서가는 것입니다. 웨슬리는 자신이 만든 조직도 선교에 방해가 된다면 얼마든지 바꾸라고 했습니다. 웨슬리의 주요 관심은 복음전도였습니다.

 

  웨슬리는 복음을 전하며 일기를 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즐겨 썼던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아주 차분하게 웨슬리의 영성을 이어 가는 새로운 불꽃을 일으켜야 합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기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 마음 속으로 한 사람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글을 써 보십시오. 교회는 전도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공동체입니다. 구령열에 불타는 교회가 살아 있는 교회입니다. 사람의 영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진짜 교회공동체입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을 우습게 여깁니다. 속회를 인도하러 간 강사가 속도원이 한 사람만 와 있으면 너무도 쉽게 말합니다. “오늘은 하나도 안 왔네~” 그 순간 먼저 와 있던 한 사람은 여지없이 비인간화를 맛보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교회학교에서도 빈번합니다. 교회 봉사할 때도 빈번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그 한 사람이 노인이든 아이이든 아주 중요한 한 사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 한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심으로 중보기도하고 간절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한사람을 위하여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것을 받아 들였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의 영혼이 중요합니다. 그 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진지한 고뇌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그 한 사람의 영혼 구원을 위하여 기록을 시작하십시오.

 

2.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른 기록

 

사도행전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기록한 책입니다. 모든 성경은 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기록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하심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웨슬리 영성의 핵심은 성령체험입니다. 개신교는 세 사역자의 영성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루터와 칼빈과 웨슬리입니다. 개신교는 루터가 시작하고 칼빈이 꽃을 피웠으며 웨슬리가 완성했다고 말합니다. 이 세 사람은 각각 강조점이 달랐습니다. 루터는 가톨릭과의 구원론 논쟁 때문에 이신득의 즉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강조하느라 성자 예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칼빈은 루터의 종교개혁의 근거를 성경적으로 규명하다가 구원의 예정자이신 성부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두 사람의 종교개혁을 이어 받아 구원의 확신을 체험하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웨슬리의 성령체험은 21세기 신학의 중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자체가 성령의 책입니다. 사도행전의 역사라는 게 오순절 성령체험 이후의 역사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모든 능력은 다 성령의 사건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이 감동하신 기록입니다. 또한 성령의 역사가 충성한 기록입니다. 사도행전의 숫자를 누가복음과 비유하면 흥미로운 것을 발견합니다. 예수님 한 분 으로 부터 측근 제자 셋, 사도 열 둘, 다른 제자 70, 다락방 기도대 120, 세례자 3000, 더 많아진 제자, 심히 많아진 제자의 수, 그리고 유대인 중에 수 만명….으로 이어지는 숫자의 증가를 보게 됩니다. 이런 숫자의 증가의 분기점 마다 독특한 사건이 있었는데 120명에서 3000명의 세례식이 있을 때는 성령체험이 있었습니다.

 

  성령체험에 대해서는 다음에 또 자세히 묵상하기로 하겠습니다. 오늘은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기록을 만들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구원을 성취하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의 기록에 역사하시도록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성적인 기록을 남겨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성적인 기록을 남겨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감성이나 이성을 초월하여 성령의 체험으로 기록한 책이라 감동이나 설득이 아닌 영적 감화를 체험하게 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고린도 윗 지방의 성도들처럼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분은 안계신가요? 있으시다면 좀 적극적으로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도록 간절히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행전 19 2절을 보니 고인도 윗 지방 사람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합니다. 혹시 여러분들 가운데도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하신 경우는 없으신지요? 있다면 저와 함께 웨슬리 처럼 성령의 임재를 체험하는 은혜를 구하십시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