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성경본문<요한계시록 7;15-17>: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 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아침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저를 모르시는 새 가족 여러분! 제가 복지교회의 마름 머슴인 담임목사
복지교회는 생기를 불어 넣는 비전과 은사의 복음공동체입니다. 이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비전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기를 바랍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인생의 역전극을 연출하시기 바랍니다. 복지교회는 꿈을 파는 비전마트입니다. 복지교회는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는 사랑의 성소입니다. 복지교회는 인생의 역전극을 연출하는 믿음의 스타디움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좋은 교회입니다. 다만 복지교회는 이 시대 불신자들의 가슴에 기독교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심어주는 특별한 교회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자랑거리가 아니라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요 감사거리입니다. 여러분들은 복지교회와 더불어 “새 하늘과 새 땅”의 새로운 은혜를 입을 수 있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어린 양의 위로”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5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어린 양의 위로’에 대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어린 양의 위로가 있습니다. ‘어린 양’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상징어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의 위로’는 ‘예수님의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성도들을 위로하십니다. 오늘 아침 주일 예배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에게 주님의 깊은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어린양의 위로’는 17절 말씀에 나오는 성구입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 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어린 양이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모든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1장 3절로 4절도 ‘새 하늘과 새 땅’이 열리는 날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위로하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어린양 예수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로자이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먼저 제 자신이 어린 양 예수님의 위로를 체험했습니다. 지난 일년간 안식년을 보내면서 저는 회개와 성찰과 각성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큰 깨달음은 아니지만 작은 깨달음을 얻어 갔습니다. 그리고 본래의 모습을 찾아 갔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목사가 되면서 서원한 것이 ‘사랑과 축복의 말씀강론가’입니다. 저는 평생 사랑하는 일과 축복하는 일만 하는 말씀사역자가 되기를 서원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 본 저의 모습은 부덕함과 무능함의 허물뿐이라 저 자신을 용서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심한 자책감으로 괴로웠습니다. 그 때 어린 양의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맡김’은 어린 양의 위로를 받는 지름길입니다. 모든 염려를 주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주님이 주님의 자녀를 돌보아 주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마태복음11장 28절> :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
[벧전
1.어린 양 예수님은 사랑하고 축복하는 성도들의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사랑하고 축복하는 성도들의 눈물을 씻기시며 위로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분들이 저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십니다. 모르겠습니다. 나는 아니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모든 분들이 저를 사랑하신다고 믿겠습니다. 저를 사랑하시는 분들에게 진심을 부탁합니다. 이 부탁은 평생 목회자를 사랑하는 길라잡이 입니다.
정말 목사를 사랑하신다면 그 목사의 신앙관과 인생관을 깊이 이해하십시오. 목회자를 사랑하는 방법의 으뜸은 목사의 신앙관과 인생관을 깊이 이해하고 닮아가는 것입니다. 목사의 신앙관은 신앙고백입니다. 목사의 인생관은 삶의 틀거리입니다. 정말 목사를 사랑하신다면 목사의 신앙고백을 닮으시고, 목사의 삶의 틀거리를 닮아 가시기 바랍니다. 목사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는 것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를 진심으로 깊이 이해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사를 사랑하지만 때로는 목사를 소유하거나 친밀해질 뿐 진심으로 목사의 신앙관과 인생관을 닮아가지 않습니다. 그것은 목사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일 수 있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면서 ‘사랑과 축복의 목회자’가 되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사랑과 축복은 목회자로서의 제 성직서원입니다. 또한 이는 모든 성도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목회자로서 “사랑과 축복의 말씀강론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믿음의 사람은 사랑하고 축복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사랑과 축복은 모든 믿는 자의 신앙 기본기입니다. 마음이 아플 때도, 상황이 힘들 때도, 누군가 자신을 힘들게 할 때도 결코 사랑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결코 축복하는 사역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사랑과 축복이 기독교의 근본 힘입니다. 기독교의 원초적인 능력입니다. 사랑과 축복은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에 보니 어린 양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시사 우리의 눈물을 씻겨 주신다고 약속하시고 계십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누구입니까? 어린 양 예수님의 위로를 받고 그 눈의 눈물을 씻김 받을 사람이? 사랑하고 축복한 성도입니다. 믿지 않는 남편을 사랑하고 축복하려면 눈물이 필요합니다.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하려면 눈물이 필요합니다. 배우자를 사랑하는 데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데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부모 형제를 사랑하는 데도, 친구를 사랑하는 데도, 믿음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데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사랑과 축복은 반드시 눈물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과 축복은 눈물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보여 주신 십자가의 사랑은 자기를 죽이는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이 힘이 있습니다. 그 사랑이 기독교의 능력입니다.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소유할 뿐이지 사랑하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랑은 눈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축복도 눈물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런 눈물을 흘린 사람은 어린 양 예수님께서 위로하시며 그 눈물을 씻겨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는 사람들이 흘린 눈물을 우리 주님이 씻겨 주십니다. 어린 양 예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를 사랑하시다가 눈물을 흘리신 적이 있습니까? 예수님이 그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사랑중의 사랑은 생모의 사랑입니다. 솔로몬의 재판에 나오는 생모의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 줍니다. <아이를 입양해 기르시거나 친 자녀가 아니지만 생모처럼 남의 자녀를 기르시는 분들이 계시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한 아이를 두고 두 어머니가 논쟁을 버립니다. 솔로몬은 명쾌한 재판을 내립니다. 열왕기상 3장 16절로 28절에 나오는 솔로몬의 재판은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의 재판>
“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 지라 왕이 이르되 이 여자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 여자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 도다 하고 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그 산 아들의 어머니 되는 여자가 그 아들을 위하여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왕이 대답하여 이르되 산 아이를 저 여자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의 어머니이니라 하매 온 이스라엘이 왕이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그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살아 있는 한 아이를 두고 두 어머니가 서로 생모라고 주장합니다. 쉽게 생모를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솔로몬이 아주 지혜로운 대답을 합니다. 아이를 둘로 나누어 가지라는 것입니다. 두 여인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가짜 어머니는 솔로몬의 판결을 받아들입니다. 내가 가지지 못할 바에야 남도 가지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생모는 다릅니다. 그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았습니다. 아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진짜 어머니는 아들을 죽여서라도 반 쪽을 가지기 원하기 보다는 아들을 포기하더라도 아들이 살기를 바랬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주님의 교회가 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저를 사랑하고 저를 아끼는 분들은 저의 이런 신앙관을 따라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복지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제 나이 33살에 부임하여 마흔 여덟이 되도록 16년을 섬긴 교회입니다. 저는 복지교회가 잘 될 수 있기를 이전에도 기도 했고, 지금도 기도하고 있고, 이후에라도 기도할 것이며, 제가 죽어서 하나님 앞으로 간 후에도 기도할 것입니다. 저의 젊은 날의 열정이 다 쏟아 부어진 복지교회가 살 수 있도록 마지막 순간까지 혼신의 힘을 다 기울일 것입니다. 우리 모두 ‘생모의 마음’ 으로 주님의 교회를 사랑합시다.
사도 바울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후2:4]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행20:31]
그러므로 여러분이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예수님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사랑하시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2.어린 양 예수님은 감사하고 회개하는 성도의 눈물을 씻겨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감사하고 회개하느라 눈물을 흘리는 자들의 눈물을 씻겨 주시며 위로하십니다. 감사는 성도의 깊은 영성입니다. 회개도 성도의 깊은 영성입니다. 감사와 회개는 늘 같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드는 순간부터 회개가 시작됩니다. 회개하는 순간부터 감사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진정한 감사와 회개는 언제나 늘 눈물을 동반합니다. 감사해야 된다고 감사할 때는 눈물이 없습니다. 징계가 두려워 회개할 때는 눈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감사가 터져 나올 땐 눈물이 쏟아집니다. 가슴 깊이 회개할 때는 참회의 눈물이 비 오듯 쏟아집니다. 어린 양 예수님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고 회개하는 성도들을 위로하십니다. 그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9절로 12절로 보면 천사들의 감사가 나옵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요한 계시록 자체가 감사를 드릴 수 없는 상황입니다. 요한계시록 1장 9절에서 요한은 스스로를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알립니다. 예수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거기에는 눈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양이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눈물을 씻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깊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감사가 성도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닙니다. 감사는 성도의 의무가 아니라 권리입니다. 능력입니다. 이 감사의 권리와 능력을 주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는 은혜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감사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난한 사람의 감사를 세상 사람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장애우들의 감사를 이해 못합니다. 실패한 자의 감사를 이해 못합니다. 요한계시록의 교회들처럼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의 감사를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감사는 우리의 권리요 우리의 능력이며 우리의 기쁨입니다. 감사는 눈물로 만드는 믿음의 보석입니다.
감사를 회복하는 순간부터 회개의 눈물이 흐릅니다. 감사와 회개는 항상 함께 움직입니다. 성경에는 회개의 눈물에 대하여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다윗은 회개의 눈물을 많이 흘린 사람입니다. 시편은 다윗이 흘렸던 눈물들을 많이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회개의 눈물을 흘린 사람입니다.
[시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시39:12]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대저 나는 주께 객이 되고 거류자가 됨이 나의 모든 열조 같으니이다
[시42:3]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56: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80:5]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시84:6]
저희는 눈물 골짜기로 통행할 때에 그곳으로 많은 샘의 곳이 되게 하며 이른 비도 은택을 입히나이다
[시102:9]
나는 재를 양식 같이 먹으며 나의 마심에는 눈물을 섞었사오니
[시116:8]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
[시119:136]
저희가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이스라엘 왕국의 전성시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회개의 눈물 때문입니다. 다윗은 회개의 사람이었고 눈물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을 축복하셨습니다.
누가복음서7장 36절로 50절에는 옥합을 깨뜨린 여인이 나옵니다.
<한 여자가 예수께 향유를 붓다>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2)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2)앉으셨음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이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저가 가로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가라사대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3)데나리온을 졌고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가라사대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치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2)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성경은 이 여인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37) 이 죄인인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 발에 옥합을 깨뜨려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겼습니다(37-38) 이를 보고 바리새인은 죄인이 예수님을 접촉했다고 비난합니다(39) 그러나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사죄의 은총을 베푸셨습니다(47). 예수님은 이 여인이 눈물로 발을 적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셨습니다.(44) 이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감동시킨 회개의 눈물! 바리새인들과 시몬 베드로는 이 회개의 눈물을 깨닫지 못했으나 ‘죄인인 한 여자’는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자에게 사죄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을 위로하시고 그 눈에서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이제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어린양이신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로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사랑하고 축복하느라 흘린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감사하고 회개하느라 흘린 눈물을 씻겨 주십니다. 그러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일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감사의 권리를 찾으시고 감사의 능력을 회복하십시오. 또한 철저히 자신을 돌아보아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저도 끝까지 ‘사랑과 축복의 말씀강론가’라는 제 성직서원을 지키게습니다. 또한 지속적으로 ‘감사와 회개의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우리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겨 주시고 우리를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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