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하다]
<야고보서 1: 12~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함꼐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하다]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도사린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야고보는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고 하였습니다. 욕심은 죄요 죄는 사망입니다. 오늘 말씀을 나누면서 마음의 욕심을 버리시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호박과 도토리] 애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농부가 호박 농사를 짓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밭에 나가 호박을 보면서 투덜거렸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커다란 호박을 이렇게 연약한 줄기에 매달아 놓으셨을까? 그리고 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토리가 달린 상수리 나무를 보고는 또 다시 불평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 커다란 나무에 겨우 이 작은 도토리를 매달아 놓으셨을까? 튼튼한 이 나무에 도토리가 호박처럼 크게 매달려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묵도 양이 많이 나오고 소득도 증대될텐데 하며 불평을 했습니다. 그 다음날 농부가 호박을 돌보러 밭에 가는 길에 상수리 나무를 지나가는 데 툭 하며 도토리 하나가 머리로 떨어졌습니다. 작은 도토리인데도 머리에 맞으니 따금한 게 꽤 아팠습니다.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휴 ~ 호박이면 큰일날뻔 헸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상수리 나무에 큰 호박이 안열리고 조그만 도토리가 열리게 해서 저를 살려주시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를 정리해고한 사람에게 감사한다] 여러분! 윌리스 존슨을 아십니까? 미국의 홀리데이 인 호텔을 건축한 윌리스 존슨은 원래 조그마한 제재소에서 일하던 목공입니다.그는 40 세 때 직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회사로부터 이런 통고를 받습니다. “존슨, 이제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되네.이 일은 자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네.”존슨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는 최악의 불황이었습니다.여러달 동안 취업을 못했고 가진 돈도 다 떨어지자 그는 아내에게 말했다."여보 우리 차라리 죽는 게 났겠오. 수백통의 이력서를 내봤지만 오라는 데가 없소. 정말 미안해요!" 그런데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다른 회사에서 유능한 당신을 채용해주지 않는다는 거죠? 그 사람들이 바보라 유능한 당신을 몰라봐서 그래요. 그러면 당신이 회사를 하나 만들면 되지않아요?" 딱히 다른 방도도 없는 존슨은 아내의 말대로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조그만 건축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재능이 활짝 꽃을 피웠습니다. 사업이 번창하여 5년만에 조그만 기업이 되었고 몇년 후에는 세계적인 체인점인 홀리데이 인 호텔이 되었습니다. 훗날 존슨은 이렇게 회고한다. “나를 정리해고한 사람에게 감사한다.왜냐하면 그 날의 고통이 축복의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하나의 다른 문이 열린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은 사망을 낳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일평생 불평불만만 하다가 사망을 낳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야고보서 1장의 본문은 읽고 또 읽어도 참 소중한 말씀입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며 사망을 낳습니다. 우리는 욕심이 우리를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욕심을 내려놓지 못합니다.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4)
인류의 시작은 욕심의 비극으로 부터 시작합니다 아담과 이브는 동산 중앙의 선악과를 바라보며 욕심을 품었습니다. 에덴 동산 전부를 주었지만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 동산의 모든 나무와 모든 열매와 모든 소유권을 다 주셨지만, 동산 중앙에 심어 놓은 선악과만은 남겨두라고 했습니다. 그랬지만, 그 많은 에덴동산을 소유하고도, 남은 한 나무 선악을 알게 하는 금지된 나무까지 갖고 싶은 소유욕을 이기지 못하여 사망을 선고 받습니다.
"15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하나님 존재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절제의 상징입니다. 인간의 욕심은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자리마저 뺴앗으려는 욕심에서 시작합니다. 에덴 동산을 다 가져도 만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욕심이 사망을 가져 왔습니다.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2:17) 먹으면 반드시 죽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먹고 죽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어리석어 보이지요? 우리는 절대로 안 그럴 것 같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는 늘 이렇게 자기 욕심을 내려 놓지 못해서 죽음의 길로 갑니다. 정말 욕심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사망을 낳습니다.
두 번 째 사람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또 다른 욕심의 비극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형제입니다. 둘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의 반응이 달랐습니다. 형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고, 동생 아벨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으셨습니다. 이에 분노한 형의 질투심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가인의 분노 속에는 독점욕과 경쟁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욕심은 반드시 사망을 낳습니다.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창4:3~8)
가인의 마음에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경쟁욕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해하는 가장 무서운 욕심중 하나는 경쟁욕입니다. 경쟁욕은 질투심을 유발하고 편집증세를 보이다가 강박관념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댓가는 결국 자신의 죽음입니다. 가인은 자기의 제사가 거절당하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동생의 제사를 받으시는 것을 질투하여 아벨을 죽입니다. 아벨은 형에게 아무 잘못을 범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형 가인의 질투심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입니다.
분노는 욕심의 추악한 얼굴입니다. 분노의 이면에는 독점욕, 소유욕, 과시욕, 경쟁욕이 숨어 있습니다. 심지어 가인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죄는 생각하지 않고, 수고 없이 댓가를 얻으려는 사행심의 욕심까지 있습니다. 믿음으로 제사한 동생과 달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제사를 드리지 않았으면서도 제사는 하나님이 받아주시기를 바랬던 마음은 욕심입니다. 사행심입니다. 거저 얻으려는 사행심입니다.
우리의 욕심 가운데 경쟁욕과 질투심은 언제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사라의 질투가 이삭과 이스마엘의 비극을 만들었습니다. 야곱의 질투가 가정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질투가 인신매매를 가져왔습니다. 아간의 탐욕이 아이성의 패배를 초래하였습니다. 레아아 라헬의 경쟁욕이 요셉의 고난을 가져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벌였던 키재기 논쟁 "누가 큰 자냐?"와 '한 자리' 청탁 경쟁이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처음 왕 사울은 일그러진 영웅입니다. 사람들보다 어깨 위로 하나는 더 컸던 사울은 분명 준수한 영웅이었습니다. (삼상9:2) 게다가 하나님이 그를 선택하셔서 예언의 영을 주심으로 이스라엘에 속담까지 생겨났습니다. (삼상10:10~11) "선지자 중에 사울이 있더냐?" 왕에 즉위하기 전에 예언의 영을 받아 선지자가 되었으니 제정일치의 흔적을 지닌 최고의 권력자가 사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추락하여 일그러진 영웅이 되었습니다.
"10 그들이 산에 이를 때에 선지자의 무리가 그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므로 그가 그들 중에서 예언을 하니 11 전에 사울을 알던 모든 사람들이 사울이 선지자들과 함께 예언함을 보고 서로 이르되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고 12 그 곳의 어떤 사람은 말하여 이르되 그들의 아버지가 누구냐 한지라 그러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되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하더라"(삼상10:10~11)
백석대학교 이관직 교수는 '성경인물과 심리분석'에서 사울을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평가합니다. (이관직, 성경인물과 심리분석, 101쪽) '우리의 일그러진 영웅'은 소설가 이문열씨의 소설 제목에서 따온 말로 주인공 엄석대의 몰락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사울은 몰락한 영웅입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경쟁욕때문입니다. 사람을 동역자로 만나지 못하고 경쟁자로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사울의 몰락이 있습니다. 사울은 여인들의 노래 때문에 승승장구하다가 여인들의 노래 때문에 살인자로 추락해 갑니다.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9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10 그 이튿날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사울에게 힘 있게 내리매 그가 집 안에서 정신 없이 떠들어대므로 다윗이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11 그가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사울이 그 창을 던졌으나 다윗이 그의 앞에서 두 번 피하였더라" (삼상 18: 6~11)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하지만,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자기 욕심에 미혹하여 시험을 받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시험을 받습니다. 그리고 시험을 받을 때 하나님이 나를 시험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십니다.
"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 (약1:13~14)
우리는 이 점을 아주 분명히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아무도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오직 시험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는 시험이라는 말을 혼용해 쓰기 때문에 혼란이 옵니다. 정확하게 분석하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것은 일종의 Test로서 야고보서가 말하는 시험은 아닙니다.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시험은 희랍어 Peilazo를 번역한 말로 유혹한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Test가 아니라 Tempt(유혹 Temptation 의 동사)입니다. 희랍어 페이라조는 사람을 속여 유혹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의 중요한 기도중 하나가 시험에 들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마6:13) 공동번역은 유혹이라고 번역합니다. "13 우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 우리가 늘 기도해야 할 것 하나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자기 욕심을 버리면 됩니다. 자기 욕심이 우리를 유혹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악인은 욕심을 버리지 않습니다(시10:3)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지 않는데 인간들이 오히려 하나님을 시험합니다. 광야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시106:13~14)
또한 욕심에 이끌려 사는 사람은 다투기를 좋아함으로 시험에 빠집니다.
" 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2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약4:1~3)
자기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유혹의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로 지으신 새 사람을 입어야 합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까? 우리의 신앙생활에 새 힘을 얻게 되기를 바랍니까? 그러면 자기 욕심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자기 욕심에 미혹되는 사람은 끝없는 시험에 빠져 허우적 대다가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고, 아무에게도 시험을 받지 않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오직 자기 욕심에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식탐을 버리면 작은 음식도 감사합니다. 물욕을 버리면 작은 돈도 감사합니다. 육욕을 버리면 부부관계도 감사합니다. 외모의 욕심을 버리면 자신을 지으심이 기묘하며 감사합니다. 권력욕을 버리면 현직도 감사합니다. 명예욕을 버리면 한직도 감사합니다. 노인이 욕심을 버리면 후배들의 성장이 감사합니다. 경쟁욕을 버리면 동반자가 감사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욕심의 안경으로 보면 모든 게 불만스럽고 모든 게 원망스럽고 언제나 서운하고 모든 사람이 미워집니다. 그러나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욕심의 안경을 벗고 감사의 안경을 쓰는 순간 모든 세상 모든 사람이 감사하고 사랑스럽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감사입니다.
이스라엘의 명 수상 골다 메이어 여사는 1967년에 수상에 즉위하여 12년간 수상직을 수행하였습니다. 그녀는 자서전에서 자기의 얼굴이 못 생겼던 것을 감사한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 얼굴이 못 생긴 것을 감사한다. 나는 못났기 때문에 기도했고, 못났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했다. 나의 약점은 이 나리에 도움이 되었다. 나의 절망은 하나님의 소망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 골다 메이어는 자신이 백혈병에 걸렸을 때에도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사투를 벌이면서 국정을 돌보았습니다. 그녀는 나약해지려 할 때마다 하나님을 붙들었고, 아무리 힘든 순간에도 수상이 할 일을 섬세하게 챙겼습니다. 그녀의 이런 삶은 하나님이 그녀에게 주신 삶을 감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상처받은 여인의 대명사이자 인생의 역전극을 연출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흑인에, 결손 가정에, 성폭행에, 그녀의 삶은 상처 투성이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세계 132개국의 1억 4천만명이 시청하는 명 쇼의 사회자입니다. 오프라 윈프리 쇼는 에이미 상을 30회나 수상했으며, TV 아카데미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그녀를 이렇게 만든 것은 감사일기의 습관때문입니다. 그녀는 매일 매일 하루의 일 가운데 다섯 가지 감사 목록을 찾아 기록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것이지만 매일 감사일기를 적어간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고 감사하는 오프라 윈프리에게 세상은 온통 감사할 일들도 채워졌습니다.
가을은 감사의 계절입니다. 봄에 뿌린 씨가 자라나 알곡이 된 열매를 거두며 감사하는 계절입니다. 교회는 오래 동안 추수감사절을 지켜오며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해 옵니다. 추수감사절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 주간 섬겼습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시기를 바랍니다. 지난 주간 감사절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제 자신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경본문에 은혜를 받고, 성경본문을 묵상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1) 첫째날은, 솔로몬의 감사였습니다.(왕상3:1~15) 솔몬은 끔 속에서도 하나님과 기도하
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꿈을 꾸고난 후에 감사했습니다.
1) 둘째날은 감사의 직분입니다.(대상16:1~6) 아삽의 마스길로 유명한 아삽은 다윗이 임
명한 찬양대장이었습니다. 아삽은 칭송과 찬양과 함께 감사의 직분자였습니다.
3) 셋째날은 영원한 감사입니다.(시30:1~12) 시편 30편은 주넌 165년 경부터 안티오커스
4세로 부터 서성전을 회복한 후에 매년 부르던 성전회복가입니다. 주님이 슬픔을 변하
여 춤이 되게 하시고,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를 띄우셨다는 감사의 노래입니다.
4) 냇째날은 감사함으로 성전문에 들어가라.(시100:1~5) 성전(예배당)에 오실 때마다 감
사로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감사로 예배하고, 감사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
다.
5) 다섯째날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라.(시136:1~26) 감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신뢰함으로 시작합니다.
6) 여섯째날은 함정에 빠져도 감사하라.(단6:1~10) 다니엘은 함정에 빠져서도 감사했습니
다.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을 운명에 놓여서도 감사하더니, 함정에서도 살아났습니다.
7) 그리고 금요기도회의 설교는 나를 지으심이 기묘하여 감사합니다.(시139:1~15) 송명희
씨의 감사는 기막합니다. 강영우 박사의 감사는 감동입니다. 나를 지으심이, 내가 이
세상에 창조되었음이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목적을 가지시고 우리를 만드셨습
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일그러진 영웅 사울과 달리 모세는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 부터 단언적인 선포를 듣습니다. "너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신31:2)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사명은 맡겼지만 가나안의 입성의 사명은 여호수아에게 맡겼습니다. (신31:2)
" 1 또 모세가 가서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씀을 전하여 2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3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보다 먼저 건너가사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멸하시고 네가 그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며 여호수아는 네 앞에서 건너갈지라 4 또한 여호와께서 이미 멸하신 아모리 왕 시혼과 옥과 및 그 땅에 행하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행하실 것이라 5 또한 여호와께서 그들을 너희 앞에 넘기시리니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명령대로 그들에게 행할 것이라 6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7 모세가 여호수아를 불러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그에게 이르되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이 백성을 거느리고 여호와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들에게 그 땅을 차지하게 하라 8 그리하면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신31:1~8)
모세는 출애굽의 영웅입니다. 그러나 그는 역사의 영웅이기 이전에 믿음의 영웅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를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후계자를 세워간 지도자였습니다. 모세야 말로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마친 삶의 승리자입니다. 시작도 좋았지만 마무리가 좋았던 지도자,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은 죽도록 충성했지만, 하나님의 뜻이 정지를 명령하셨을 때는 더 이상 욕심을 내지 않았던 지도자이기에 더욱 빛이 났습니다.
신명기 후반부는 모세가 자신의 시대를 마감하면서 보여준 믿음의 위대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노래(신32장), 모세의 축복(신33장), 모세의 죽음(신34장)으로 이어지는 신명기의 후반부는 한 영웅의 아름다운 퇴장을 선포합니다. 모세가 진정으로 아름다웠던 것은 영웅적인 지도력만이 아니라 아름다운 퇴장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모세의 퇴장으로 여호수아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자질을 보아도, 교육의 학력과 경력을 보아도, 마음의 담대함과 지도력을 보아도, 출애굽의 혁혁한 공로를 보아도, 여호수아는 모세의 라이벌이 아닙니다. 그런데 역사는 모세의 시대를 마무리하고 여호수아의 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모세 자신도, 여호수아 자신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추측하건대 심지어는 애굽의 바로나 가나안 인근의 왕들에게도, 모세는 두려움의 대상이지만 여호수아는 아직 검증도 안된 나약한 지도자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의 시대를 마무리 짓고 계셨고, 모세는 무조건 순종했으며, 여호수아는 아이 같았고 두려움애 떨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가나안으로 진군해 갔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이스라엘 영토를 장악하기 시작합니다.
누가 진정한 지도자입니까? 아니 누구를 더 존경합니까?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화하셨을 때에 모세와 함께 나타나신 것을 주목하십시오. 요한의 선포를 기억하시지요? 율법은 모세로 부터 왔다. 모세는 지금도 영웅입니다. 비록 출애굽의 험난한 일만 감당하고 느보산에서 자신의 시대가 끝났음을 통보받고 모압 땅에서 죽어갔지만, 아무도 그를 실패한 지도자라고, 사운한 지도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야말로 진정한 믿음의 영웅이었으며, 기독교 역사의 전 역사를 아우르는 핵심인물입니다. 욕심을 버린 모세이기에 믿음의 영웅이 된 것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경쟁심도 사라집니다. 후배가 등장해도 길을 열어줍니다. 노욕을 버리고, 후배에게 길을 여는 은퇴자가 진정한 선배요 위대한 원로입니다. 이승만도, 박정희도 아쉬움이 있는 것은 그들이 욕심만 버렸더라면 국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도자,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도, 부국강병의 대명사 박정희 대통령도 두고 두고 역사의 아쉬움을 남긴 것은 욕심입니다. 장기 집권의 욕심이 화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욕심이 2%를 모자라게 했습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가지고 싶은 허전함 보다 가진 것에 대한 감사로 삶이 풍성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살아갈 날이 적어서 서글프거나 우울하기 보다는 살아온 날들로도 충분히 감사가 됩니다. 시한부 인생 통고를 받아도 욕심을 버리면 몇 개월 밖에 안남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몇 개월이나 더 살 수 있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욕심을 버리면 받지 못한 서운홤과 섭섭함 보다도 이미 받은 것이 너무도 소중하여 모든 게 감사합니다. 욕심을 버리면 노년의 무기력함이 원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젊은 날의 자랑스러웠던 과거가 사랑스러워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욕심을 버리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욕심을 버리시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욕심을 버리시면 모든 게 감사합니다. 감사하는 자가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은혜를 받습니다. 감사하는 자가 믿음의 승리자가 됩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큰 역사가 계속 이어집니다. 이 한주간 감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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