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축복의 성찬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다”(2011-1002)

우순(愚巡) 2011. 10. 7. 14:07

 

축복의 성찬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다”(2011-1002)

 

     [고린도전서 10:16~17] “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할렐루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은 성찬주일이기 때문에, 설교는 성찬식의 성경본문을 읽고 성찬예식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그래서 짧게 말씀을 전하고 곧바로 성찬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매 년 10월 첫 주는 세계성찬주일입니다. 세계의 모든 기독교가 성만찬을 나누는 주일입니다. 우리 교회도 해마다 10월 첫 째 주에는 성찬예식을 합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매 해 첫 주일과 성찬주일에는 대예배때 성찬예식을 하고,  나머지 달에는 매월 첫 주 석양예배시에 성찬예식을 합니다.

 

 

   성찬(성만찬)예식은 주님이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26:17~30, 14:12~26, 22:7~23, 13:21~30, 고런 11:23~25) 성찬예식은 예수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예식으로, 초대 교회에서는 살과 피를 먹는다는 말 때문에 식인종의 종교로 오해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면병 혹은 성만찬용 떡과 포도주를 마시는 예식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만찬예식은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예문에 따라 집례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예문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문 1집에는 성례와 혼례와 장례와 가정의례가 실려 있고, 예문 2집에는  목사 안수 및 허입과 취임, 이임, 은퇴, 파송, 임명 등과 성전 기공식 봉헌 및 교회 설립 등에 관한 예식문이 실려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 감리교회의 예식문을 한 권씩 사가지고 계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성찬예식도 예문에 따라 섬기고 있습니다. 성경본문도 예문에 실려 있는 네 개의 성경본문 가운데 두 번 째 성경본문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보낸 첫 번 째 편지에 실려 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바울은 성찬예식의 의미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의미하는 포두주는 축복의 잔이다. 예수님의 피를 의미하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이기에  떡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게 성찬식의 핵심입니다.

 

 

1. 축복의 성찬(聖餐, the Sacrament, the Eucharist)

 

   우리가 오늘 하는 이 성찬은 축복의 잔입니다. 축복이라고 하는 말에 대해서 성경이 쓰고 있는 성경구절을 제가 차용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은, “우리가 나누는 잔은 축복의 잔이다.”(고전10:16)라고 했습니다. 오늘 성찬을 같이 나누게 될 때, 이것은 축복의 잔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성찬을 받을 때, 목회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을 주시고, 우리가 나누는 잔은 서로 서로 축복하는 잔이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시간을 나누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냐?"(고전 10:16). 우리는 가끔 축복에 대하여 언어논쟁에 빠지거나 언어유희에 빠지는 사람을 봅니다. 축복이냐 복이냐? 따집니다. 그냥 편하게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기독교는 언어논쟁이나 언어유희를 넘습니다. 정확하게는 목사의 축복, 하나님의 강복, 성도의 분복 그리고 이 모두를 복이라고 말해야 맞을 겁니다. 그러나 그런 언어의 분석이 중요하지 않고 그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또 너무 예민해서 기복주의 종교라고 축복 애기를 민감하게 생각합니다. 이것도 좀 더 편안하게 생각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툭하면 기복주의 종교하고 비판하지만 물질숭배주의자들의 천박한 자본주의의 폐해 때문에 그런 것이지 하나님께 복를 비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빌지 우상에게 가서 복을 빕니까? 그저 편안한 마음으로 은혜받으시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축복의 잔이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오늘 성찬예식에 참석하신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은 축복의 잔에 참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편안한 마음으로 축복의 잔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긍휼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오늘만 아니고 매월 첫 주에 나누는 성찬예식에 꼭 오셔서 축복의 잔을 나누시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은혜를 같이 아누시기 바랍니다.

 

2. 성만찬예식은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하는 신비한 성례전

 

     성만찬은 거룩한 신비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신비의 예전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성만찬을 중요시합니다. 존 웨슬리는 성만찬을 은혜 받는 방편으로 중시했습니다. 우리가 성만찬을 눌 때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십니다. 루터는 성만찬의 떡 위에, 밑에, 옆에 그리스도가 임재한다고 했습니다. 이 루터의 입장을 깔뱅도 웨슬리도 존중합니다. 특별히 존 웨슬리 목사님은 성만찬을 더욱 중요시 했습니다. 웨슬리 목사님은 '은혜의 방편 (Means of Grace)'를 강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만찬은 은혜를 받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예전입니다.

 

     성찬을 받을 때 우리는 그리스도가 임재하는 신비스럽고 거룩한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종교개혁파 가운데 극단적인 개혁파들은 성만찬을 기념식으로 격하시켜서, 단순히 예수의 죽음을 기념할 뿐이지,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루터[Martin Luther, 1483.11.10~1546.2.18]와 깔뱅[Jean Calvin, 1509.7.10~1564.5.27]과 웨슬리[John Wesley, 1703.6.17~1791.3.2], 종교 개혁의 3대 거두라고 할 수 있는 개신교의 시조들은 공통된 의견을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임재설(臨在說, Spiritual Presence)입니다. 카톨릭의 화체설(化體說, transubstantiation)과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1~1531.10.11]의 기념설(記念說, remembrance, commemoration)을 다 지양하고, 임재설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가 이 성찬을 통해서 우리에게 임재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남대문 경찰서 뒤에 가면, 루터교 본부인 루터중앙교회가 있습니다. 제가 거기에 가서 목사님하고 교제를 나누면서 제가 성만찬에 대해서 루터교의 입장을 물어보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아주 명확하게 “우리가 받는 떡의 위에, 밑에, 옆에, 이것을 성령 안에서 먹고 마실 때,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임재함을 믿습니다.”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와 루터교와 장로교회등 건강한 기독교는 모두 다 임재설을 따릅니다. 우리가 나누는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하는 물리-화학적 변화는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기념만 하는 회고의 사건이 아니라 실제로 성만찬을 나누는 동안 그리스도가 임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성만찬은 한 마디로 신비입니다. 거룩한 신비입니다. 그리스께서 임재하는 거룩한 신비입니다.

   

3.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거룩한 신비(神秘)’

 

    또한 이 성만찬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거룩한 신비입니디.  성경본문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떡을 같이 떼는, 그리스도의몸에 참여함이 아니냐”(고전10:16) 하는 이 메시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는 것은 거룩한 신비입니다. 우리가 한 몸이 된다고 하는 이 말을 깊이 체험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갈 때에 진정한 신앙의 눈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물질적인 육체가 서로 개별적으로 나눠져 있지만, 때로는 뜻이 같고 마음이 같아서 하나가 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히 채워짐으로써, 하나님과 내가 같은 속성을 채우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구주의 이름이신데, 그분과 내가 성찬을 통해서 한 몸이 된다고 하는 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신비’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분명히 말씀하기를 우리가 성찬을 통해서 한 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여러분이 성찬을 나누실 때에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얻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을 기록한 헬라어의 주인들인 희랍인들은 영혼과 육체와 함께 몸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몸은 육체가 아닙니다. 영혼도 아닙니다. 오히려 육체와 영혼을 담는 그릇과 같습니다.이 몸을 누구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몸이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서 실체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갖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는 결국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우리들의 언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신비입니다. 그러나 이 신비는 성령안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놀라운 체험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거룩한 신비입니다. 

      

    4. 그리스도 안에 서로 하나가 되는 성찬

 

    성만찬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신비스러운 체험입니다. 그리스도의 임재를 통하여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신비입니다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와 한 몸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극히 영적인 사건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총입니다. 그리고 이는 성령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 몸이 된다는 것은 헬레니즘적인 그리스의 철학적인 몸의 개념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다음 이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고, 너가 예수님과 하나가 되면, 나와 너는 모두 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만찬은 이렇게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그런데 성만찬을 받는 사람 모두가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신비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잔을 마시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는 사람은 내가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으니,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또 다른 사람과도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점이 이천년 동안에 성만찬이 가지고 있었던 중요한 의미입니다. 오늘 이 성찬을 나누는 이 시간은 흑인도 있고, 황인도 있고, 백인도 있고, 유럽국가도 있고 아시아도 있고 미주 대륙도 있고 오세아니아도 있고, 아프리카도 있습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만약 우리가 진정한 기독교 신자가 되기를 사모하신다면, 이 성찬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 하나가 되는 깊은 임재를 경험하고, 그리스도의 임재를 경험하며, 믿음의 신비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