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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성경신학

[스크랩] 서막과 세례자의 증언(요1:1-59)연구 -Rudolf Bultmann의 견해와 비평적 대화를 중심으로-

우순(愚巡) 2006. 4. 17. 13:20








서막과 세례자의 증언(요1:1-59)연구 -Rudolf Bultmann의 견해와 비평적 대화를 중심으로-

번호:3 글쓴이: 말씀강론가 서철 목사
조회:2 날짜:2003/04/02 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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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막과 세례자의 증언(요1:1-59)연구 
-Rudolf Bultmann의 견해와 비평적 대화를 중심으로-


여는 말

이 연구보고서는 요한복음 1장의 서막과 세례자의 증언에 관한 전승사적 연구이다. 요한 복음은 성경중의 진주와 같고 1장은 진주중의 진주요 다이아몬드와 같다. 1장 속에 요한복음의 2대 주제가 들어 있다. 표적의 책이며 영광의 책인 요한복음의 두 가지 주제를 요약해 놓았다. 11절은 표적의 책(1-12장)을, 12절은 영광의 책(13-20)을 요약해 놓았다.

요한복음의 신학적 성격을 규정짓는 1장은 R. Bultmann의 문제 제기로 인하여 요한복음 연구의 초점이 되었다. 불트만은 1장과 2장의 불연속성을 제기하면서 요한복음이 비기독교적인 사상들의 전승과 공관복음서의 개작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불트만은 특히 서막(1:1-18)의 편집성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양식사학,편집사학,종교사학적인 연구의 흐름을 열었다. 불트만은 서막의 Prologue가 헬라주의적 유대교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희랍 영지주의  구세주 신화(The Redeemer Myth) 와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불트만은 Prologue 에 나오는  Logos Hymn 은 원래는 세례종파에서 나온 영지주의의 작품이었는데 요한복음의 저자가 그리스도를 찬양하기 위하여 이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Kasemann은 그리스도 찬양시를 기독교 이전의 것으로 보는 데 반대한다. 서막의 9절
?Hn to. fw/j to. avlhqino,n o] fwti,zei pa,nta a;nqrwpon evrco,menon eivj to.n ko,smon 과 14절의  o` lo,goj sa.rx evge,neto 는 반영지주의적이다라고 말한
다 또  Stephen S. Smally는 불트만의 견해에 반대하여 요한은 공관복음서의 자료들을 몰랐
으며 동방종교나 영지주의 같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인 복음서라고 주장한다. 스몰
리는 요한복음을 동방종교나 헬레니즘적인 영향보다는 유대적이고 쿰란공동체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R. Brown은 이것을 보다 더 명료하게 말하여 로고스 개념이 헬라 사상 보다는 성서와 유대사상에서 전승되었다고 주장한다. 서막에 대한 연구는 점점 헬라적 유대교의 영지주의적
이해로부터 팔레스틴의 유대적 유대교적 배경에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다. 초대교회는 다양한 찬양시
적 고백문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그리스도 찬양시인 찬송시도 빌립보서(2:6-11)골로새서(1:15-20)를 비롯하여 디모데 전서(3:16)와 히브리서(1:2-5)서의 기독론적 진술들이 그러하


그런가 하면 다른 각도에서 요한복음을 보는 견해가 있다. 요한복음이 자체적으로 혹은 요한서신과
함께 가지고 있는  교차 대칭 병행구조(Chiastic Parallelism) 를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시
도다. Chiasmus는 염색체 교차의 Chiasma처럼 말을 할 때 X자 모양으로 표현하는 교차대귀법에서
따 온 수사학적 해석학의 개념이다. 이는 요한복음의 문학적 구조를 분석하는데 도움을 주며 특히 서
막이 가지고 있는 결론부분 같은 데서 오는 편집성의 가능성을 반박하도록 도와준다. 이 구조주의적
접근은 요한복음을 하나의 독립된 문서로 보게 한다. 이런 병행구조는  대칭 순환 원칙 으로 정교하게 묶여져 있다. 이런 구조는 반복적 구조를 통하여 핵심을 청중들에게 잘 전해주려는 당시의 문학 표현 방식이었다. 엘리스는 요한복음 전체가 이 교차대칭 구조로 되어 있으며 각 병행 구조안에는 더 작은 단위로 세분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교차대칭 병행구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었다. 병행구조의 숮 자에 따라 일곱 개로 보는 ABCDCBA 이론(Jeff Staaley), 다섯 개로 보는 ABCBA이론 ( John Gerhard,S.J, N.W.Lund) 그리고 열 한 개로 보는 ABCDEFEDCBA 이론이 있다(M.E.Boismard). 이런 병행 구조는 A-A, B-C,C-C,D-D,E-E가 같은 형식을 취한다. 그리고 핵심은 가장 가운데 위치하는 C(5중 구조) D(7중 구조) E(9중 구조) F(11중 구조)에 있다

그런가 하면 불트만처럼 개작과 편집을 주장하지는 않지만 서막이 형성되는 과정에 첨가가 있었음을 주장하기도 한다. R.E.Brown은 세 단계설을 주장한다. 본래의 찬양시(1-2,3-5,10-12b,14,16)가 있었고, 1차적으로 찬양시를 설명하는 확대가 있었으며(12c-13, 17-18), 2차적으로 세례요한에 관한 자료들(6-9,15)이 첨가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첨가작업이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같은 시기에 이루어졌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또 J.A.Robinson은 프롤로그를 포함해서 요한복음은 한 사람의 책인데 요한복음의 본문-요한서신-Epilogue & Prologue순으로 만들어졌으며 프롤로그는 시가 산문이 된 것이 아니라 산문이 시가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견해들은 결국 두 가지 흐름으로 나뉘어진다, 불트만을 따르는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종속성에 근거하여 삽입과 개작을 통한 편집저작설을 주장하며 초대 공동체의 고백속에 헬라사상과 동방종교의 사상이 전승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불트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요한복음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구약성경과 유대교의 지혜사상으로부터 사상이 전승되어 기독교 내부의 독특한 사상으로 발전되었다고 본다.

펴는 말
1. 구조

1) 주제별 구조

(1) 말씀이신 그리스도(1-18)
(2)세례자 요한의 증언(19-34)
(3)첫 번 째 제자들(35-51)

2) 교차대칭 구조

(1) 서언(1-18)의 교차대칭 병행구조:

A(1-5): 로고스 기독론(로고스와 하나님,창조,인류와의 관계)
B(6-8):세례자 요한의 증거
C(9-11):로고스의 강림(빛이 세상에 옴)
D(12-13): 로고스이신 예수를 영접하는 자의 권세
C(14): 로고스의 강림(말씀이 세상에 옴)
B(15):세례자 요한의 증거
A(16-18): 로고스 기독론(로고스와 인류,재창조,하나님과의 관계)

(2) 증언(19-51)의 교차대칭 병행구조:

A(19-34): 예수에 대한 증거(세례자 요한)
B(35-36): 예수와의 우연한 만남(요한의 두 제자)
C(37-40): 예수의 부르심(시몬과 안드레)
D((41-42): 메시야와의 만남과 개명
C(43-44): 예수의 부르심(빌립)
B(45-48): 예수와의 우연한 만남(나다나엘)
A(46-51): 예수에 대한 증거(나다나엘)



2. 본문 주해(주제별)

1) 로고스이신 그리스도(1-18)

1-2절: .En avrch/| h=n o` lo,goj kai. o` lo,goj h=n pro.j to.n qeo,n kai. qeo.j h=n o` lo,goj ou-toj h=n evn avrch/| pro.j to.n qeo,n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고 로고스는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 그리고 그 로고스는 하나님이었으니 이는 태초부터 신과 함께 있었음이다. 문제는 두 가지이다. 로고스는 무엇이며 이 사상은 어디에서 왔나? 불트만은 1절과 2절은 요한공동체의 노래이며 , 로고스 사상은 영지주의에 근거하고 있다고 말한다(13) 스몰리는 로고스 사상은 헬라적인 사상만이 아니라 이미 유대교에서도 알려진 히브리적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로고스는 시간안에서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시간이전부터 존재한 신이시다. 그래서 .En avrch가 반복되고 있으며 h=n(있다)라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로고스는 신적 존재이다. 그는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신 자체이다. 그는 신과 함께 시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하였다. 로고스는 evge,neto (되다) 동사로 표현되지 않고 h=n(있다)로 표현된다. 신 이후에 태어난 존재가 아니고 신 자체로서 신과 함께 존재한 로고스는 처음부터 존재했으며 VEn avrch/| h=n o` lo,goj 신과 함께 있었고 h=n pro.j to.n qeo,n 신 자체였다 qeo.j h=n o` lo,goj

이런 로고스의 선재성은 이디오피아의 에녹서 42장에 나오는 지혜의 선재성과 강림 그리고 회귀와도 비슷하다.

 지혜는 거할 곳을 차지 못했다
그래서 지혜의 거할 곳이 하늘에 마련되었다
지혜는 사람들의 자녀들 가운데 거할 곳을 만들기 위해 나섰다
그러나 거할 곳을 찾지 못했다
지혜는 자신의 장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천사들 가운데 잡았다 

로고스에 대한 논쟁의 핵심은 그 전승의 기원에 있다. 로고스는 신적 능력이며 말씀인데 요한복음의 로고스는 세계 속에서 발생하는 역사 이후의 사건이 아니라 이미 역사 이전부터 존재하였던 신 자체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념은 어디에서 전승된 것일까?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이방 신화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유대교적 지혜문학의 길이다. 불트만은 전자를 따르기에 만다이즘 같은 동방종교의 신화로부터 그 해석을 찾아 보려고 한다 ,

그러나 이미 지혜의 개념으로 로고스는 유대교안에서 그리고 초기 기독교안에서 알려지고 있었다는 점과 쿰란 공동체의 사해사본에서 나오는 평행 구절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로고스는 보다 더 유대교적인 지혜의 전승에서 이해되어져야 한다. 불트만은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도 로고스의 신화적 모습에 집착하여 영지주의적 셰계관을 말한다. 쿰란 문서들과 요한복음사이의 접촉점과 유사성은 브라운이 말하는 수정된 이원론의 입장을 말해주는데 로고스는 그런 점에서 헬라주의적 입장보다는 쿰란공동체의 에세네파 전승을 받았으면서도 독자적인 기독교의 영역을 표현해주고 있다.

3절-4절:pa,nta di auvtou/ evge,neto kai. cwri.j auvtou/ evge,neto ouvde. e[n o] ge,gonenevn auvtw/| zwh. h=n kai. h` zwh. h=n to. fw/j tw/n avnqrw,pwn\

로고스는 태초부터 있었고 h=n 만물은 그로부터 되었다(/ evge,neto ) 여기서 로고스와 만물은 창조자와 피조물로, 선재자와 후재자로 , 태초부터 있던 자와 태초후의 인간 세계의 시간부터 존재하는 자로 분명하게 구분된다. 로고스 없이는 창조된 것이 없고 로고스에 의하여 창조된 것은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다. (/ evge,neto )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순수한 창조사상의 표현이다.

로고스가 창조자로 나타난다. 창조자의 지혜나 능력이 아니라 창조자이다. 이는 로고스가 육체를 입고 오신 분이 예수라는 14절에 비추어 볼 때 예수를 신격화 시키는 결정적인 근거가 된다. 1-2절의 로고스의 선재성과 함께 3-4절의 로고스의 창조성은 예수의 선재적 신성을 강조하는 근거가 되었다

5-18절: 계시자로서의 로고스

5절에서 로고스는 사람들의 빛으로서 어두움 가운데 비친다. fai,nei는 현재형이다. 이는 로고스의 빛이 현재(요한공동체)에도 비쳐지고 있는 계속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빛은 어두움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였다 또는 이기지 못하였다. ouv kate,laben는 이기지 못하다의 의미도 가지고 있다. 어두움은 빛을 깨닫지도 못하고 이기지 못한다.

9절은 로고스는 참 빛인데 예수가 참 빛이라고 소개함으로써 예수와 로고스를 동일시하고 있다. ?Hn to. fw/j to. avlhqino,n o] fwti,zei pa,nta a;nqrwpon evrco,menon eivj to.n ko,smon 에수는 참 빛이다 그는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에게 비춘다 그에게 생명이 있다. 그 생명은 참 빛속에 들어 있다. 또 10절은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만들어졌음을 말한다. o` ko,smoj di auvtou/ evge,neto 이 것은 만물이 로고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말과 동일시되고 있다. 물론 불트만은 만물과 세상을 구분하지만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만물 속에 세상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맥이 통한다. 로고스가 창조한 만물 그리고 예수로 말미암아 창조된 세상 이 두 개의 대칭 표현 속에 예수와 로고스의 동일시가 있다.


9절부터 11절 까지 나오는 세상 o` ko,smoj는 신과 대립되어 있다. 이것은 빛과 대립되어 있는 어두움과 함께 요한복음의 이원론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 세상과 어두움은 비록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려고는 하지만 신과 빛을 대항하여 싸울 수 있는 독자적인 세력이 아니다. 다만 세상은 신의 사랑의 대상이며 계시를 받는 자이고 신에게 저항하고 버림을 받는 거짓 세력이다.
세상은 예수를 거부했다. 여기에 세상의 비극이 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신과 완전히 등을 돌린 세상이 아니다. 계시를 받는 대상이며 하나님이 사랑하신 세상이다. 그리고 세상 가운데는 아들을 영접하는 자도 있다. 그런 점에서 서막에 나오는 요한복음의 이원론은 완전한 이원론이 아니다. 세상은 로고스를 받을 수 있다. 완전한 대립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불트만의 영지주의적인 편향적 해석은 수정되어야 한다.

이제 다음 귀절인 12절에 보면 예수를 받아들이는 자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졌다. o[soi de. e;labon auvto,n e;dwken auvtoi/j evxousi,an te,kna qeou/ gene,sqai toi/j pisteu,ousin eivj to. o;noma auvtou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세[상가운데서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가되고 빛의 아들이 된다. 이들은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다. evk qeou/ evgennh,qhsan 하나님께로 났다는 것은 혈통과 다르다 육체나 사람의 의지와도 다르다.. 그것은 창조자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그 창조자가 누구인가? 로고스요 말씀이요 예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은 곧 예수를 통하여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다.

왜냐하면 14절에 로고스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때문이다/ o` lo,goj sa.rx evge,neto! 로고스가 육신이 되었다는 것은 이제 부터는 로고스가 예수를 통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 육체가 되신 로고스 곧 육신이 된 말씀 그 분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 evqeasa,meqa th.n do,xan auvtou/ do,xan w`j monogenou/j para. patro,j 그리고 거기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plh,rhj ca,ritoj kai. avlhqei,머 이 말은 신의 본질이 은혜 와 진리속에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은혜는 선사하는 은혜와 은혜의 선물의 형식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반면 진리는 은혜의 내용 곧 계시되는 신의 현실을 표시한다 그 분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2) 세례자 요한의 증언(19-34)

세례자 요한의 증언을 담은 19절부터 34절에서는 자기에 대한 증언과(19-28) 예수에 대한 증언(29-34)으로 나뉘어 진다. 자신에 대한 증언에서는 당신은 누구인가? 라는 질문 Su. ti,j ei 이 중요한 키워드가 된다. 세례 요한은 거듭되는 질문을 받는다. 예루살렘에서 보내진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통한 질문은  너는 누구냐? 는 것이다. 거기에 요한은 자기를 분명하게 소개한다. 그리스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선지자도 아니다. 다만 주의 길을 곧게 하려고 온 자다.(23) 이 질문과 대답하는 반복속에 들어 있는 22절-25절을 불트만은 분명한 삽입으로 본다. 그러나 교차대칭 병행 구조속에서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는 예수를 보라고 말하면서 새로운 증언을 선포한다. 그는(예수는)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다. :Ide o` avmno.j tou/ qeou/ o` ai;rwn th.n a`marti,an tou/ ko,smou 보라:Ide는 요한묵시록에서도 자주 쓰이는 요한의 특수한 화법이다.. 하나님의 어린 양에서 어린양` avmno.j는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어린양 avrni,on과는 다르다. 전자는 제물로 바쳐지는 약한 어린양이지만 후자는 승리의 개가를 부르는 강한 어린양이다

셰례자 요한은 계속해서 자기와 에수를 비교해서 증언한다. 예수는 내 뒤에 오신다 그러나 그 분은 나보다 앞선 분이시다. 왜냐하면 그 분은 나보다 먼저 게신 분이시기 때문이다.(30) 예수의 선재성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의 증거는 계속된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리라.(33). 그리고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보고 증거한다. kavgw. e`w,raka kai. memartu,rhka는 말을 요한은 유난히 강조한다. 세례자 요한의 증언이 강조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뒤이어 나오는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의 제자들이 되는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 당시 유대인 민중들에게 권위 있는 지도자가 세례자 요한이었기 때문이다.


3) 첫 번 째 제자들(35-51)

에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었다. 세례자 요한은 자기의 두 제자들에게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소개한다(36) 이 이야기를 듣자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를 따라가게 된다(37) 그들은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간 최초의 제자들이 되었다(40) 이들의 이름은 베드로와 안드레이다. 그들이 에수를 따라간 시간은 십시쯤되었다. 오후 네시쯤에 해당하는 유대인의 십시는 완전수를 의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십은 영지주의자와 피타고라스 학파 그리고 유대교와 구약성경에의 세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완전수이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 이야기는 빌립과 나다나엘로 이어진다. 빌립은 벳새다 사람이었고 베드로 형제와 같은 고향사람이었다(44) h=n de. o` Fi,lippoj avpo. Bhqsai?da, evk th/j po,lewj VAndre,ou kai. Pe,trou 이 빌립이 예수를 만난 후에 나다나엘을 소개한다. 그리고 예수는 이 나다나엘을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칭찬한다. 그에게는 사람을 꿰뚫어 보는 신적인 직관력이 있다. 이로 인해 나다나엘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부른다(49) 결국 이 첫 번째 제자들의 이야기는 예수님의 첫 번 째 제자가 세례자 요한이 이끌던 세례종파의 제자들이었으며 세례자 요한이 스스로 넘겨준 제자들이었음을 밝혀주고 있다.

51절은 특이하다. kai. le,gei auvtw/| VAmh.n avmh.n le,gw u`mi/n avpv a;rti o;yesqe to.n ouvrano.n avnew|go,ta kai. tou.j avgge,louj tou/ qeou/ avnabai,nontaj kai. katabai,nontaj evpi. to.n ui`o.n tou/ avnqrw,pou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구약성경의 야곱설화를 연상케 하는 표현이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 사이에 존재하는 연속성을 통하여 공동체의 존재성을 확인하고 있다.


3. 본문 주해(구조별)

1)서언(1-18)의 병행구조: A(1-5)-B(6-8)-C(9-11)-D(12-13)-C(14)-B(15)-A(16-18

서언의 병행 구조에서 핵심은 D부분에 해당하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이다. o[soi de. e;labon auvto,n e;dwken auvtoi/j evxousi,an te,kna qeou/ gene,sqai toi/j pisteu,ousin eivj to. o;noma auvtou 영접하는 자와 그 이름을 믿는 자가 동일시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빛이 왔으나 어두움이 깨닫지 못했고, 하나님의 아들이 독생하신 영광으로 이 세상에 왔으나 세상이 영접하지 안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영접하는 자들이 있다 비록 적은 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 이 말은 이미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빛 가운데로 나오기 시작하는 신앙공동체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 준다

또 이 구조는 핵심이 되는 D(12-13)를 가운데 두고 A(1-5, 로고스 기독론,로고스와 하나님,창조,인류와의 관계)- B(6-8,세례자 요한의 증거)-C(9-11,로고스의 강림,빛이 세상에 옴)-D(12-13,로고스이신 예수를 영접하는 자의 권세)-C(14,로고스의 강림,말씀이 세상에 옴)-B(15,세례자 요한의 증거)-A(16-18,로고스 기독론,로고스와 인류,재창조,하나님과의 관계)로 교차대칭 병행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 구조속에서 핵심이 되는 D 부분을 보면 서언구조는 로고스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강조하며 그를 영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선포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때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이 땅에 오신 로고스 즉 육신을 입고 오신 말씀을 영접한다는 것의 구체적인 실천성이다.12절 o[soi de. e;labon auvto,n e;dwken auvtoi/j evxousi,an te,kna qeou/ gene,sqai toi/j pisteu,ousin eivj to. o;noma auvtou/ 본문은 영접하는 자 곧 o[soi de. e;labon auvto,n를 예수의 이름을 믿는자 곧 toi/j pisteu,ousin eivj to. o;noma auvtou와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결국 요한공동체의 핵심주제는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1) 증언(19-51)의병행구조: A(19-34)- B(35-36)-C(37-40)-D((41-42)-C(43-44)-B(45-48)-A(46-51

증언의 병행구조에서의 핵심은 41절과 42절에 나오는 메시야와의 만남과 개명이다. 시몬은 메시야를 만나고 이름을 게바라고 부르도록 개명의 명령을 받는다. 이는 21장에 나오는 베드로에 대한 위임기사와 큰 그림의 병행 구조를 갖게 해주고 있다. 세례자 요한이 에수를 증거하고(A) 다시 나다나엘이 예수를 증거한다(A). 또 B에서는 요한의 두 제자 시몬과 안드레가 예수를 우연히 만나고 B서는 나다난엘이 예수를 우연히 만난다. C에서는 안드레가 시몬을 찾고 C에서는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는다.

이런 증언의 구조에서는 메시야와의 만남과 개명이 키워드이다. 빛이 왔으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고 말씀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왔지만 받아들이지 아니했다. 그러나 우연한 만남일지라도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예수의 메시야됨을 깨닫고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가진다. 그 중에 대표표적인 모델케이스가 베드로이다. 그는 이름이 바뀌어지고 새로운 사역을 맡는다. 교회가 세워지는 반석이다. 이는 음부의 권세도 해하지 못하는 강력한 반석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왔지만 세상이 저를 받지 아니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도 예수를 영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사람의 의지로 된 사람들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된 사람들이다.이들에게 중요한 사명이 주어 졌다. 예수를 증거하는 것이다.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가 메시야이심이 계속적으로 증언될 것을 선포하고 있다. 그 중심에 베드로가 있다 그리고 그 베드로는 21장의 대 위임 곧 내 양을 먹이라는 사명을 위임받게 된다.이것은 베드로에게 대위임을 하시는 21장의 결론부와 전체적인 병행구조를 이루고 있다



4.)요한복음의 전승에 관한 토론

요한복음이 어떤 성격의 문서인가라는 토론에 있어서는 전승의 근원을 따지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불트만이 제창한 양식비평과 편집비평 그리고 종교사학파적인 접근은 철저하게 요한복음의 독립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 이전의 문학적 요소들과 연관지어서 생각한다.

불트만은 요한복음 자체가 이미 특정한 사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변형된 복음서라고 주장한다. 그는 네 가지 전승을 강조한다. 헬레니즘 철학, 영지주의, 동방의 밀의 종교, 만다이즘이다. 물론 작게는 이 외에도 여러가지 영향을 이야기 하지만 앞의 네 가지가 대표적인 것이다. 이 네 가지를 전승자료로 해서 요한복음의 저자는 요한공동체를 위하여 공관복음서를 개작하고 편집했다는 주장을 편다. 헬레니즘의 영향으로는 스토아철학과 신풀라톤주의나 피타고라스학파등이 영향을 받았으며 헤르메스의 문학으로 부터도 영향을 받았고 만다이즘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기도 하지만 보다 많은 영향은 초기 기독교 시대에 만연하였던 동방 계통의 영지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요한의 글에는 절제된 이원론이 보인다. 불트만에 따르면 요한은 본래 영지주의자였던 자로서 영지주의적 체계들 속에서 케리그마를 제 서술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요한은 천상의 한 구속자 신화를 예수의 인격에 접목시켜서 예수는 시간이전에 존재했으며(1:1-2) 세상의 빛으로 성육신했고(4) 영광가운데로 아버지께로 되돌아가 아버지에게ㅡ 이른 길이 되었다. 불트만은 영지주위의 근거를 만다이교 문학, 42편으로 된 솔로몬의 송가집등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불트만의 견해와 달리 스몰리는 요한복음의 독립성을 주장하며 반론을 제시한다. 요한복음의 종말론은 특이하며 성례전 신학은 영지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리고 만다니교 문학 및 솔로몬의 송가집이 요한복음에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명확지를 않다. 오히려 불트만의 주장과는 다르게 요한복음의 언어나 사상등은 독립적이면서 유대적인 뿌리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쿰란공동체에서 발견되어진 사해사본은 요한복음이 구약과 유대교에 뿌리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병행구조가 그 시대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유대교적 문학 기법이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닫는 말

요한복음음 1장은 요한복은은 전체를 결정하는 핵심부분이다. 특히 프롤로그인 서막은 더욱 그렇다. 이 부분에 대한 불트만의 견해는 한마디로 헬레니즘적 영지주의와 동방종교적 신화로부터 전승된 개작이며 편집 작품이라는 입장이다. 반대로 스몰리는 불트만과는 다르게 요한복음의 독자성을 주장하며 헬라적 영향보다는 유대교적 영향을 강조한다. 그런가 하면 브라운은 형성사를 인정하지만 요한복음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수정된 이원론주의자의 입장에 서 있다.

그러나 요한복음을 보다 더 분명하게 이해하려면 우리는 쿰란공동체의 사해사본에서 발견된 평행구절들과의 비교를 통하여 나타난 팔레스틴의 유대교적 전통에서 요한복음을 이해하여야 하며, 요한복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하고도 완벽한 내적 구조 즉  교차대칭 병행 구조 의 시각에서 요한복음을 바라 보아야 할 것이다.







출처 : 생기바다
글쓴이 : 서 철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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