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자의 비밀의 승리(요한복음10:40-12:43)”
서론
요한복음 10장 40절에서 12장 43절은 “계시자의 비밀의 승리”라는 주제가 말해주듯이 예수의 승리를 암시해주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예수의 복음과 예수 자신이 두 종류의 그룹들 앞에서 결단을 요청하는 강력한 결단을 촉구하는 본문이기도 하다. 또 이 본문에는 라자로의 소생(영원히 사는 몸으로 살아난 것이 아님으로 부활이 아닌 소생임)이라는 표적 중의 표적이 등장하고 있다.그리고 12장은 표적의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표적의 책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전환점을 형성하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본 연구 보고서는 본문의 요한복음내의 위치와 구조 그리고 신학적 편집 의도성을 분석하므로 불트만의 견해에 대한 비평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1. 본문의 구조
11. 요한복음 내의 위치
본문의 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내의 위치이다 본문은 요한복음의 표적 자료(Semeia Quelle에 속한다불트만은 요한복음의 자료를 표적자료(semeia quelle), 계시담론(Offenbarungsreden), 수난설화 세 가지로 구분한다.
semeia는 능력을 나타내는 du,namij 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70인역에서 를 대신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불트만, 115쪽
표적자료는 6개내지 여덟 개의 표적을 말한다. 여섯 개는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나머지 한 개는 서로 다르다. 포도주 표적(2:1-2),백부장의 아들 표적(4:46-54), 베데스다 표적(5:2-9), 5병2어 표적(6:1-15), 시각장애인 표적(9:1-41), 그리고 라자로 표적(11:1-44) 여섯 가지를 표적으로 보는 데는 일치하지만 갈릴리 바다의 풍랑 표적(6:16-21)은 어떤 이는 표적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것 대신에 십자가상의 피와 물을 쏟은 이야기를 대신넣기도 하며(Girad), 21장의 고기표적을 넣어 여덟 개로 보기도 한다(R.T. Fortna). 참조) 김득중, ꡔ요한의 신학ꡕ(서을:컨콜디아사,1996),68-71쪽.
본문은 이런 semeia 자료에 속한 본문이다.. 표적이 12장에서 끝난다고 하면 본문은 표적자료의 마지막 부분이고, 19장이나 21장이을 표적으로 본다고 하면 여섯 개의 불완전한 표적의 마지막 부분이다. 불완전한 여섯 개의 표적이란 가나의 포도주 표적에 나오는 여섯 개의 물항아리처럼 표적이 여섯 개인데 불완전하고 뒤에 부활의 표적이 일곱수를 채워 완전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일곱수를 채우려는 해석을 인위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참조) 불트만,113-114쪽.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본문은 표적의 종결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12장은 논쟁을 제기한다. 우선 일반적으로 12장에서 표적자료가 끝이 나고 13장에서 계시담론이 시작된다고 보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즉 교차대칭 구조를 주장하는 이상훈은 본문을 불트만과 달리 12장 11절에서 끝낸다. 즉 A(1:19-4:3) B(4:4-6:15) C(6:16-21 B'(6:22-12:11) a'(12:12-21:15)로 보아 본문을 적극과 소극의 구별 B에 대칭하는 B'로 본다 이상훈,ꡔ요한복음ꡕ(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9),47-9쪽.
그런가하면 불트만은 12장의 연결이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 12장 33절 뒤에 8장 30절부터 40절이 오고 그 뒤를 6장 60절부터 71절이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 불트만,477쪽.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불트만이 편집자를 전제하고 자기의 논리로 맞추었다는 약점을 안고 있어서 비판을 받는다. 스티븐 S 스몰리,ꡔ요한신학ꡕ,(서울:생명의 샘,1996) 제3장은 요한복음의 형성사에 대한 불트만의 견해와 비평자들의 견해를 잘 분석해놓고 있다. 특히 슈나켄브르크와 브라운의 비평을 소개하면서 스몰리는 요한복음의 형성사와 통일성 그리고 한사람의 편집성을 제기한다.
12. 본문의 구조
121. 불트만의 분석 불트만, 431쪽 이하
A 살해의 결의 (10:40-11:54)
a 서두(10:40-42)
b 부활과 생명(11:1-44)
b1 도입(11:1-16) b2 부활과 생명(11:17-44)
c 공회의 살해 결의(11:45-54)
B 십자가를 향한 길(11:55-12:33;8:30-40;6:60-71)
a 예루살렘 입성(11:55-12:19)
a1 도입(11:55-57) a2 베다니의 도유(12:1-8) a3 가교(12:9-11) a4예루살렘입 성(12:12-19)
b 에수의 죽음의 신비(12:20-36; 8:30-40; 6:60-71)
b1 예수에게 이르는 길(12:20-33) b2거리낌(8:30-40) b3 가름(6:60-71)
C 결문
122. 이상훈의 분석(B'의 교차 대칭구조) 이상훈, 48쪽.
a 유월절 떡 언급(6:22-72) - B(4:4-6:15)의 a 유월절 떡과 병행(6:1-15)
b 잔치의 지체장애 치유(7-8장) - " b 잔치의 지체장애 치유(5:1-47)
c 바리새인의 믿음 거부(9-10:21)- “ c 이방인의 믿음(4:46-52)
d 예수의 선언(10:22-39) - “ d 사마리아인들의 경청(4:39-45)
e 사마리아 여인(4:4-38) - “ e 베다니의 여인(10:40-12:11)
123. 부활신앙적 배열
불트만은 편집설에 의하여 표적자료의 논리성을 강조하였지만 이상훈은 교차대칭구조를 맞추기 위해 너무 작위적인 배열을 한 느낌이 있다. 오히려 요한복음의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여러 사람의 잡동사니식 편집이 아니라 정교한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편집한 것임을 전제한다고 하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옳다. 그렇다고 보면 본문은 표적의 장이 끝나는 장이며 계시담론의 전조물로서 가치가 있고 뒤에 나오는 부활신앙의 예표 곧 Sign이 들어 있는 semeia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면 이렇게 배열하는 것이 좋다
A. 요한복음의 구조
부활신앙의 찬가(1장)
부활신앙의 표적(2장-12장)
부활신앙의 선포(13장-17장)
부활신앙의 증거(19장-20장)
B 본문의 구조
부활신앙의 대상: 예수(10:40-42)
부활신앙의 표적: 라자로의 소생(11:1-44)
a 죽음의 역설적 테제(11:1-1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
b. 부활신앙의 확실성 (11:11-16)- 예수님의 거듭된 죽음의 확인과 도마의 죽음여행 선동 c 부활신앙의 고백 (11:17-44)- 부활신앙의 대상이신 주님에 대한 고백
부활신앙의 적대자들(11:45-57)
a 부활신앙의 갈라짐(11:45-46)- 믿는자와 밀고자
b 부활신앙의 적대자(11:47-57)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살해모의
부활신앙의 추종자들(12:1-36)
a 마리아의 향유 도유(12:1-8)
b 유대인의 큰 무리 (12:9-11)
c 무리의 증거(12:12-19)
d 헬라인의 믿음(12:13-36a)
부활신앙의 충돌(12:36b-43)
a 불신의 이유(12:36b-41) : 구약의 예언 성취
b 은익의 이유(12:42-43) : 인본주의의 한계
2. 본문의 의미
21.부활신앙의 초점
일반적으로 일치하듯이 21장은 후대의 첨가문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요한복음은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20장이 결론부분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불트만,775-778쪽
. 20장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책이다 불트만, 771-772쪽.
. 그리고 21장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부활신앙의 증거에 대한 사명위임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요한복음의 결론은 부활이다. 그리고 이 부활신앙의 초점은 2장부터 12장 사이에 이어지는 여섯 개의 표적들이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긴장감이다. 김득중,71-2쪽. 포도주 이적은 때와 세례종파의 Wasser Motiv에 담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백부장의 아들 소생과 라자로의 소생 표적은 죽음으로 부터의 부활을, 그리고 5병 2어의 표적은 성만찬의 흔적을 본다는 점에서 부활을 위한 죽음의 준비와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과의 언약식사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모두 다 부활을 지향하고 있다.
이 긴장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불트만, 774쪽.
수난사화를 강조하는 불트만도 그의 책을 부활절의 아침으로 끝낸다. 그리고 20장30절과 31절을 본문의 결론부로 파악하고 있다. 불트만,771쪽.
그런 점에서 수난 사화가 상세히 언급된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포함하여 요한복음은 철저한 죽음을 통한 부활신앙에로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요한복음 20장을 결론 부분으로 보면 표적의 책이 끝나는 12장은 자연히 20장의 부활신앙을 이끌어 내기까지 부활하실 주님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범한 인간상을 표현하는 본문들로 구성되게 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sign이 들어 있는 표적이다. 그리고 이 표적들은 영광의 때에 일어날 잔치를 말하는 포도주 표적으로부터 11장의 라자로의 소생까지 철저하게 부활의 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이 표적들은 이 세상에 쌓을 곳이 없도록 많지만(12:30) 불트만,771쪽. 불트만은 이 메모는 복음서 기자를 변호하기 보다는 표적의 풍부함을 변호해주고 있다.
, 요한은 여섯 개의 표적들을 발췌하여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선포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행동을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 표적과 예수의 말들을 통일적으로 단일시 하였다 불트만,772쪽.
22. 부활신앙의 표적
요한이 표적 자료로부터 발췌한 여섯 개의 표적 가운데서도 본문에 들어 있는 라자로의 표적은 부활신앙을 적시해주는 으뜸표적이다. 본문의 핵심은 라자로의 소생기사이다 라자로가 다시 살기는 했어도 영원한 부활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蘇生이라는 말로 구분해 사용한다. 왜냐하면 예수만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 라자로의 소생기사는 죽은 자의 부활을 예표하는 표적이다. 이 표적속에는 죽은자가 다시 살아남이 예시되고 있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이 선포되고 있다. 철저한 죽음과 살아남! 그리고 철저하게 죽은 자를 살려내는 주님! 이 본문의 핵심이다.
eivrh,kei de. o` VIhsou/j peri. tou/ qana,tou auvtou/ evkei/noi de. e;doxan o[ti peri. th/j koimh,sewj tou/ u[pnou le,gei to,te ou=n ei=pen auvtoi/j o` VIhsou/j parrhsi,a| La,zaroj avpe,qanen((11:13-14절)
사람들이 라자로가 잠들어 쉬는 줄로 알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죽었다고 말씀하신다. La,zaroj avpe,qanen( 라자로는 분명하게 죽었다. avpe,qanen는 제 1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죽은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예수님은 parrhsi,a를 사용하시어 말씀하심으로 죽음의 상태를 더 부각시키셨다.. 사실 peri. th/j koimh,sewj tou/ u[pnou라는 표현도 죽음을 가르키기도 하는데 이 단어는 외경의 집회서 46:19에서도 죽음에 대하여 사용된다
,,예수님은
parrhsi,a| La,zaroj avpe,qanen(라고 말하심으로 죽음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덤에 있는 지 나흘이나 되었다는 17절의 표현도 죽음의 상태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 라자로가 살아난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죽은 것이 분명하게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예수의 부활에 대한 왜곡중의 하나인 가현설의 “가짜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부활의 확실성을 보다 명료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라자로의 소생은 가현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한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이다. 이 분명한 살아남을 통해 우리는 표적의 절정을 본다. 여섯 개의 표적은 이 라자로의 부활을 향해 점층적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으며 종국에 가서는 20장의 부활의 선포를 위하여 그 토대를 만들어 놓았다. 라자로를 통한 부활신앙의 메타포아를 위하여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를 이틀 간이나 묶어 둔다 “.to,pw| du,o h`me,raj 이틀을 지나서” 라자로를 살리러 가신다. 이틀이라는 수치 속에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게 된다.. 죽음의 철저성이 드러난다. 이 죽음의 철저성은 분명한 부활에 이르는 필수 부가결의 전제 조건이다. 이것은 하나님앞에서 다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다. 철저한 죽음이 분명한 부활로 나아간다
불트만은 본문을 부활과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승리의 사건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부활을 이야기하면서도 부활에 이르는 수난사화의 논리적인 배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어서 8장 30절-40절과 6장 60절-71절까지의 본문들을 12장에 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적인 덧붙임이 아니고서도 우리는 본문이 가지고 있는 부활을 향한 여정을 본다. 불트만에게 있어서는 부활사건을 신화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보다 비신화적인 수난사화에 집착한다.
이렇게 불트만은 수난사화에 집착하므로 표적은 계시담론으로 이어지고 계시담론은 다시 수난사화에 이어지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인간들의 결단을 요청하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상당 부분 그의 논리적인 분석 작업이 가치를 드러내주면서도 한계를 느끼는 점은 바로 두 가지 점 때문이다. 하나는 전제된 논리에 따라 본문을 바꾸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기 부정이라는 실존론적인 자각에로 성경을 이끌어 감으로 성경과 예수를 신화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23. 부활신앙의 충돌
본문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충돌을 통해 전개된다. 라자로의 소생사건을 보고 믿는 자들이 나타난 반면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나타난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 살해모의를 하고 명령을 내린다. 이런 두 종류의 집단들간에 형성된 충돌의 긴장감이 본문에 강하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kai. evpi,steusan polloi. evkei/ eivj auvto.n”(10:42) 많은 사람이 믿었다.
Nai, ku,rie evgw. pepi,steuka(( (11:27) 마르다가 믿었다
Polloi. ou=n evk tw/n VIoudai,wn oi` evlqo,ntej pro.j th.n Mari,an kai. qeasa,menoi a] evpoi,hsen o` VIhsou/.j( evpi,steusan eivj auvto, (11:45) 마리아에게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
o[ti polloi. di auvto.n u`ph/gon tw/n VIoudai,wn (12:11) 라자로의 사건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
? Hsan de. tinej {Ellhne,j evk tw/n avnabaino,ntwn i[na proskunh,swsin evn th/| e`orth/|\ (12:20)명절에 예배하러온 헬라인들도 믿었다
evk tw/n avrco,ntwn polloi. evpi,steusan eivj auvto,n (12:42)유대의 관리들 가운데서도 믿는 자가 있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있었다
tine.j de. evx auvtw/n (11:46) 유대인 중의 몇몇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를 밀고하였다
avp evkei,nhj ou=n th/j h`me,raj sunebouleu,santo i[na avpoktei,nwsin auvto,n (11:53)그 말을 들은 대제사장 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Tosau/ta de. auvtou/ shmei/a pepoihko,toj e;mprosqen auvtw/n ouvk evpi,steuon eivj auvto,n (12:37) 많은 표적을 보았어도 믿지 않는 자도 있었다
이 두 그룹간에 긴장감이 본문을 지배한다. 예수를 믿거나 따르는 사람들은 호산나 찬양을 하며 예수를 영접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그들은 표적을 보았어도 믿지 아니했다. 심지어 죽이려는데 가담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감 가운데로 예수가 통과하고 있다.
라자로를 살리러 가는 길에 죽음에 이르는 메타포어가 있다. 라자로는 철저하게 죽었다. 철저하게 죽은 라자로를 향해 가는 예수의 여행에 대하여 도마는 죽으러 가자고 선동한다.((11:16)“ ei=pen ou=n Qwma/j o` lego,menoj Di,dumoj toi/j summaqhtai/j :Agwmen kai. h`mei/j i[na avpoqa,nwmen met auvtou/ ” 도마의 이 짧은 고백적 선동문에는 라자로를 살리러 가는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역으로 죽음에 이르는 길을 통하여 부활로 나아감을 보여 주고 있다. 불트만은 이런 철저한 죽음을 향한 여정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인간의 구원을 보고 있다. 불트만의 입장은 “신앞의 실존적인 자기부정”이다.
24. 부활신앙의 거리낌 거리낌은 불트만이 실존적 자각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극복의 개념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충돌은 거리낌의 극복을 통해 나타난다. 불트만, 489-491쪽. 불트만은 계시가 충돌할 때 거리낌이 일어나며 충돌을 자극하는 것은 계시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불트만은 8장 30-40절에서는 어떻게 충돌이 일어났으며, 6장 60-71절에서는 그 충돌의 결과로 어떻게 가름(Scheidung)이 나타나는 지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불트만,489쪽.
불트만은 수난사화에 이르는 논리적 통일성에 착안하여 8장 30절-40절까지와 6장 60절부터 71절까지를 12장에 연결시키고 있다. 불트만은 6장 60-71절을 결문의 형태로 이해하고 두 번째로 넘어가는 가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트만, 462쪽.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8장에 나오는 자유한 제자와 부자유한 불신자의 충돌은 12장에만 연속성을 갖는 것이 아니고 8장 자체에도 유대인과의 논쟁이 들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8장에 위치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만은 아니다. 또 6장 60절-71절을 첫 번째 결문으로 보고 두 번째로 넘어 가는 가교로 보는 것도 불트만식의 편견이다. 이미 요한복음은 1장부터 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자로 증거되면서 유대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어 왔고 매 사건마다 충돌을 빚어 왔다. 따라서 6장의 오르내림과 열 두 제자 이야기를 12장에 덧 붙여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12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면 12장 33절 이후에 8장이나 6장을 위치하지 않고 바로 12장 34절-43절을 이어서 읽어야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불트만은 8장과 6장이 십자가에 이르는 수난사화로 내재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34절에 나오는 무리의 반응도 자연스러운 이어짐이 된다.
avpekri,qh auvtw/| o` o;cloj ~Hmei/j hvkou,samen evk tou/ no,mou o[ti o` Cristo.j me,nei eivj to.n aivw/na kai. pw/j su. le,geij o[ti dei/ u`ywqh/nai to.n ui`o.n tou/ avnqrw,pou ti,j evstin ou-toj o` ui`o.j tou/ avnqrw,pou((12:34)
무리의 질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그리스도는 영원한데 어찌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것( o[ti dei/ u`ywqh/nai to.n ui`o.n tou/ avnqrw,pou) 과 인자가 누구냐는 것이다.(ti,j evstin ou-toj o` ui`o.j tou/ avnqrw,pou )
12장 33절까지 이어 내려오는 일련의 기사는 라자로의 소생 표적을 일으키신 예수가 영광을 받는 일에 관한 기사이다. pa,ter do,xaso,n sou to. o;noma h=lqen ou=n fwnh. evk tou/ ouvranou/ Kai. evdo,xasa kai. pa,lin doxa,sw (28절) 아버지께서 예수를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고 앞으로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 영광스러움은 무엇인가? 인자가 들려야 하는 것이다. 인자가 들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트만이 8장과 6장을 12장 33절에 덧붙이려고 하지만 12장 44절이 이어져 내려 와도 본문의 의미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수난사화에 집착하기보다는 부활신앙의 눈으로 볼 때 41절의 주의 영광 th.n do,xan auvtou/ 이 28절에 나오는 아들의 영광과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그런 면에서 요한은 부활신앙을 강하게 전하려고 했다. 수난사화는 부활로 나오기 위해 죽어야 되는 구약적 대속의 이해를 담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거리낌이란 부활신앙으로 나아가는 길목의 십자가의 거리낌이다. 단순히 부활신앙은 신화적 표현이고, 신앙적 결단을 위한 관념론적 전제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자기 포기야 말로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르는 거리낌이라는 불트만의 견해는 수정되어야 한다. 거리낌은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부활로 나아가는 부활신앙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며, 죽은 것처럼 보이는 假現이 아니라 실제로 분명하게 죽은 라자로의 죽음 같은 철저한 예수의 죽음이 거리낌이다. 예수는 거리낌의 모델이 아니라 거리낌의 본질이다. 거리낌은 부활신앙이다
25. 부활신앙의 성별(Scheidung)
부활신앙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르고 있다 성별하고 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이다(11:9)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 사람 안에 빛이 없는 고로 실족하는 자이다(11:10) 믿는 자는 영광을 볼 것이며(11:40)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광을 보지 못한다. 그 영광은 부활이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12:23) 아버지는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앞으로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28) 선지자 이사야도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예언하였다(12:41) 이것은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다(12:43)
그러므로 이제 선택하라! 나를 섬기라(12:26).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랑하라(12:43)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 가운데로 다니라(12:36) 죽음을 두려워 말라(12:24) 죽는 자가 산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 반드시 믿으라는 강한 경고요 요청이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성별된다.
결론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가는 부활신앙의 장엄한 서사시같은 표현을 담고 있다. 요한복음의 핵심인 부활신앙을 드러내기 위하여 라자로의 소생기사 표적을 채택함으로 표적의 극치를 이루며 20장의 결론부로 나아간다. 여섯 개의 표적들은 가나의 포도주 표적에 나오는 ‘물-동기’ 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주고 있다. 여섯 개의 물이 있었으나 새로운 물이 필요하다. 그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한 포도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포도주는 부활로 이어지는 축제의 회복이다. 더 좋은 포도주요 죽어가던 잔치의 회복이다. 이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계시자 예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단순한 세례종파의 사건이 아니라 표적을 통한 부활신앙의 축제가 펼쳐진다. 수난과 죽음은 부활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다.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요청된다. 충돌과 거리낌을 통하여 성별된 믿음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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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요한복음 10장 40절에서 12장 43절은 “계시자의 비밀의 승리”라는 주제가 말해주듯이 예수의 승리를 암시해주는 본문이다. 이 본문은 예수의 복음과 예수 자신이 두 종류의 그룹들 앞에서 결단을 요청하는 강력한 결단을 촉구하는 본문이기도 하다. 또 이 본문에는 라자로의 소생(영원히 사는 몸으로 살아난 것이 아님으로 부활이 아닌 소생임)이라는 표적 중의 표적이 등장하고 있다.그리고 12장은 표적의 책의 결론 부분에 해당하거나 아니면 표적의 책 마지막 부분에 해당하는 전환점을 형성하기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본 연구 보고서는 본문의 요한복음내의 위치와 구조 그리고 신학적 편집 의도성을 분석하므로 불트만의 견해에 대한 비평적인 해석을 시도한다.
1. 본문의 구조
11. 요한복음 내의 위치
본문의 구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요한복음내의 위치이다 본문은 요한복음의 표적 자료(Semeia Quelle에 속한다불트만은 요한복음의 자료를 표적자료(semeia quelle), 계시담론(Offenbarungsreden), 수난설화 세 가지로 구분한다.
semeia는 능력을 나타내는 du,namij 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70인역에서 를 대신한 것으로 사용되었다 불트만, 115쪽
표적자료는 6개내지 여덟 개의 표적을 말한다. 여섯 개는 공통으로 들어가지만 나머지 한 개는 서로 다르다. 포도주 표적(2:1-2),백부장의 아들 표적(4:46-54), 베데스다 표적(5:2-9), 5병2어 표적(6:1-15), 시각장애인 표적(9:1-41), 그리고 라자로 표적(11:1-44) 여섯 가지를 표적으로 보는 데는 일치하지만 갈릴리 바다의 풍랑 표적(6:16-21)은 어떤 이는 표적으로 보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것 대신에 십자가상의 피와 물을 쏟은 이야기를 대신넣기도 하며(Girad), 21장의 고기표적을 넣어 여덟 개로 보기도 한다(R.T. Fortna). 참조) 김득중, ꡔ요한의 신학ꡕ(서을:컨콜디아사,1996),68-71쪽.
본문은 이런 semeia 자료에 속한 본문이다.. 표적이 12장에서 끝난다고 하면 본문은 표적자료의 마지막 부분이고, 19장이나 21장이을 표적으로 본다고 하면 여섯 개의 불완전한 표적의 마지막 부분이다. 불완전한 여섯 개의 표적이란 가나의 포도주 표적에 나오는 여섯 개의 물항아리처럼 표적이 여섯 개인데 불완전하고 뒤에 부활의 표적이 일곱수를 채워 완전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트만은 일곱수를 채우려는 해석을 인위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참조) 불트만,113-114쪽.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본문은 표적의 종결을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12장은 논쟁을 제기한다. 우선 일반적으로 12장에서 표적자료가 끝이 나고 13장에서 계시담론이 시작된다고 보지만 다른 견해도 있다. 즉 교차대칭 구조를 주장하는 이상훈은 본문을 불트만과 달리 12장 11절에서 끝낸다. 즉 A(1:19-4:3) B(4:4-6:15) C(6:16-21 B'(6:22-12:11) a'(12:12-21:15)로 보아 본문을 적극과 소극의 구별 B에 대칭하는 B'로 본다 이상훈,ꡔ요한복음ꡕ(서울:대한기독교서회,1999),47-9쪽.
그런가하면 불트만은 12장의 연결이 부자연스럽다고 말하면서 12장 33절 뒤에 8장 30절부터 40절이 오고 그 뒤를 6장 60절부터 71절이 오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주장한다 불트만,477쪽.
그러나 이런 주장은 불트만이 편집자를 전제하고 자기의 논리로 맞추었다는 약점을 안고 있어서 비판을 받는다. 스티븐 S 스몰리,ꡔ요한신학ꡕ,(서울:생명의 샘,1996) 제3장은 요한복음의 형성사에 대한 불트만의 견해와 비평자들의 견해를 잘 분석해놓고 있다. 특히 슈나켄브르크와 브라운의 비평을 소개하면서 스몰리는 요한복음의 형성사와 통일성 그리고 한사람의 편집성을 제기한다.
12. 본문의 구조
121. 불트만의 분석 불트만, 431쪽 이하
A 살해의 결의 (10:40-11:54)
a 서두(10:40-42)
b 부활과 생명(11:1-44)
b1 도입(11:1-16) b2 부활과 생명(11:17-44)
c 공회의 살해 결의(11:45-54)
B 십자가를 향한 길(11:55-12:33;8:30-40;6:60-71)
a 예루살렘 입성(11:55-12:19)
a1 도입(11:55-57) a2 베다니의 도유(12:1-8) a3 가교(12:9-11) a4예루살렘입 성(12:12-19)
b 에수의 죽음의 신비(12:20-36; 8:30-40; 6:60-71)
b1 예수에게 이르는 길(12:20-33) b2거리낌(8:30-40) b3 가름(6:60-71)
C 결문
122. 이상훈의 분석(B'의 교차 대칭구조) 이상훈, 48쪽.
a 유월절 떡 언급(6:22-72) - B(4:4-6:15)의 a 유월절 떡과 병행(6:1-15)
b 잔치의 지체장애 치유(7-8장) - " b 잔치의 지체장애 치유(5:1-47)
c 바리새인의 믿음 거부(9-10:21)- “ c 이방인의 믿음(4:46-52)
d 예수의 선언(10:22-39) - “ d 사마리아인들의 경청(4:39-45)
e 사마리아 여인(4:4-38) - “ e 베다니의 여인(10:40-12:11)
123. 부활신앙적 배열
불트만은 편집설에 의하여 표적자료의 논리성을 강조하였지만 이상훈은 교차대칭구조를 맞추기 위해 너무 작위적인 배열을 한 느낌이 있다. 오히려 요한복음의 저자가 누구이든지 간에 여러 사람의 잡동사니식 편집이 아니라 정교한 신학적 의도를 가지고 편집한 것임을 전제한다고 하면 지금 있는 그대로의 가치를 존중해주어야 옳다. 그렇다고 보면 본문은 표적의 장이 끝나는 장이며 계시담론의 전조물로서 가치가 있고 뒤에 나오는 부활신앙의 예표 곧 Sign이 들어 있는 semeia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면 이렇게 배열하는 것이 좋다
A. 요한복음의 구조
부활신앙의 찬가(1장)
부활신앙의 표적(2장-12장)
부활신앙의 선포(13장-17장)
부활신앙의 증거(19장-20장)
B 본문의 구조
부활신앙의 대상: 예수(10:40-42)
부활신앙의 표적: 라자로의 소생(11:1-44)
a 죽음의 역설적 테제(11:1-10)-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죽음
b. 부활신앙의 확실성 (11:11-16)- 예수님의 거듭된 죽음의 확인과 도마의 죽음여행 선동 c 부활신앙의 고백 (11:17-44)- 부활신앙의 대상이신 주님에 대한 고백
부활신앙의 적대자들(11:45-57)
a 부활신앙의 갈라짐(11:45-46)- 믿는자와 밀고자
b 부활신앙의 적대자(11:47-57)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살해모의
부활신앙의 추종자들(12:1-36)
a 마리아의 향유 도유(12:1-8)
b 유대인의 큰 무리 (12:9-11)
c 무리의 증거(12:12-19)
d 헬라인의 믿음(12:13-36a)
부활신앙의 충돌(12:36b-43)
a 불신의 이유(12:36b-41) : 구약의 예언 성취
b 은익의 이유(12:42-43) : 인본주의의 한계
2. 본문의 의미
21.부활신앙의 초점
일반적으로 일치하듯이 21장은 후대의 첨가문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요한복음은 다양한 견해에도 불구하고 20장이 결론부분이라는 해석을 낳는다 불트만,775-778쪽
. 20장은 예수의 부활에 관한 책이다 불트만, 771-772쪽.
. 그리고 21장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부활신앙의 증거에 대한 사명위임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게 보면 요한복음의 결론은 부활이다. 그리고 이 부활신앙의 초점은 2장부터 12장 사이에 이어지는 여섯 개의 표적들이 일관되게 지향하고 있는 긴장감이다. 김득중,71-2쪽. 포도주 이적은 때와 세례종파의 Wasser Motiv에 담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백부장의 아들 소생과 라자로의 소생 표적은 죽음으로 부터의 부활을, 그리고 5병 2어의 표적은 성만찬의 흔적을 본다는 점에서 부활을 위한 죽음의 준비와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과의 언약식사를 연상케 한다는 점에서 모두 다 부활을 지향하고 있다.
이 긴장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을 향해 나아간다. 불트만, 774쪽.
수난사화를 강조하는 불트만도 그의 책을 부활절의 아침으로 끝낸다. 그리고 20장30절과 31절을 본문의 결론부로 파악하고 있다. 불트만,771쪽.
그런 점에서 수난 사화가 상세히 언급된다고 하더라도 본문을 포함하여 요한복음은 철저한 죽음을 통한 부활신앙에로 그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요한복음 20장을 결론 부분으로 보면 표적의 책이 끝나는 12장은 자연히 20장의 부활신앙을 이끌어 내기까지 부활하실 주님을 정당화하기 위한 비범한 인간상을 표현하는 본문들로 구성되게 된다. 이 때 등장하는 것이 하나님의 sign이 들어 있는 표적이다. 그리고 이 표적들은 영광의 때에 일어날 잔치를 말하는 포도주 표적으로부터 11장의 라자로의 소생까지 철저하게 부활의 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이 표적들은 이 세상에 쌓을 곳이 없도록 많지만(12:30) 불트만,771쪽. 불트만은 이 메모는 복음서 기자를 변호하기 보다는 표적의 풍부함을 변호해주고 있다.
, 요한은 여섯 개의 표적들을 발췌하여 예수의 그리스도성을 선포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행동을 표적으로 이해하고 있고, 그 표적과 예수의 말들을 통일적으로 단일시 하였다 불트만,772쪽.
22. 부활신앙의 표적
요한이 표적 자료로부터 발췌한 여섯 개의 표적 가운데서도 본문에 들어 있는 라자로의 표적은 부활신앙을 적시해주는 으뜸표적이다. 본문의 핵심은 라자로의 소생기사이다 라자로가 다시 살기는 했어도 영원한 부활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蘇生이라는 말로 구분해 사용한다. 왜냐하면 예수만이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기 때문이다.
. 라자로의 소생기사는 죽은 자의 부활을 예표하는 표적이다. 이 표적속에는 죽은자가 다시 살아남이 예시되고 있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이 선포되고 있다. 철저한 죽음과 살아남! 그리고 철저하게 죽은 자를 살려내는 주님! 이 본문의 핵심이다.
eivrh,kei de. o` VIhsou/j peri. tou/ qana,tou auvtou/ evkei/noi de. e;doxan o[ti peri. th/j koimh,sewj tou/ u[pnou le,gei to,te ou=n ei=pen auvtoi/j o` VIhsou/j parrhsi,a| La,zaroj avpe,qanen((11:13-14절)
사람들이 라자로가 잠들어 쉬는 줄로 알았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죽었다고 말씀하신다. La,zaroj avpe,qanen( 라자로는 분명하게 죽었다. avpe,qanen는 제 1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죽은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예수님은 parrhsi,a를 사용하시어 말씀하심으로 죽음의 상태를 더 부각시키셨다.. 사실 peri. th/j koimh,sewj tou/ u[pnou라는 표현도 죽음을 가르키기도 하는데 이 단어는 외경의 집회서 46:19에서도 죽음에 대하여 사용된다
,,예수님은
parrhsi,a| La,zaroj avpe,qanen(라고 말하심으로 죽음을 확실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덤에 있는 지 나흘이나 되었다는 17절의 표현도 죽음의 상태를 더 분명하게 보여 준다.. . 라자로가 살아난 것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는 죽은 것이 분명하게 전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곧 예수의 부활에 대한 왜곡중의 하나인 가현설의 “가짜 죽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부활의 확실성을 보다 명료하게 해주는 사건이다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라자로의 소생은 가현적인 것이 아니다 분명한 죽음에서 살아난 사건이다. 이 분명한 살아남을 통해 우리는 표적의 절정을 본다. 여섯 개의 표적은 이 라자로의 부활을 향해 점층적으로 전진해 오고 있었으며 종국에 가서는 20장의 부활의 선포를 위하여 그 토대를 만들어 놓았다. 라자로를 통한 부활신앙의 메타포아를 위하여 요한복음 기자는 예수를 이틀 간이나 묶어 둔다 “.to,pw| du,o h`me,raj 이틀을 지나서” 라자로를 살리러 가신다. 이틀이라는 수치 속에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바라보게 된다.. 죽음의 철저성이 드러난다. 이 죽음의 철저성은 분명한 부활에 이르는 필수 부가결의 전제 조건이다. 이것은 하나님앞에서 다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요청되는 믿음의 고백이기도 하다. 철저한 죽음이 분명한 부활로 나아간다
불트만은 본문을 부활과 생명의 주인되시는 예수님의 승리의 사건으로 분석한다. 그러나 불트만은 부활을 이야기하면서도 부활에 이르는 수난사화의 논리적인 배열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어서 8장 30절-40절과 6장 60절-71절까지의 본문들을 12장에 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적인 덧붙임이 아니고서도 우리는 본문이 가지고 있는 부활을 향한 여정을 본다. 불트만에게 있어서는 부활사건을 신화적인 표현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보다 비신화적인 수난사화에 집착한다.
이렇게 불트만은 수난사화에 집착하므로 표적은 계시담론으로 이어지고 계시담론은 다시 수난사화에 이어지며 그 모든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철저하게 부정하도록 요청받고 있는 인간들의 결단을 요청하는 신화적 표현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상당 부분 그의 논리적인 분석 작업이 가치를 드러내주면서도 한계를 느끼는 점은 바로 두 가지 점 때문이다. 하나는 전제된 논리에 따라 본문을 바꾸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자기 부정이라는 실존론적인 자각에로 성경을 이끌어 감으로 성경과 예수를 신화적으로만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23. 부활신앙의 충돌
본문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충돌을 통해 전개된다. 라자로의 소생사건을 보고 믿는 자들이 나타난 반면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나타난다. 믿지 않을 뿐만 아니라 죽이려고 살해모의를 하고 명령을 내린다. 이런 두 종류의 집단들간에 형성된 충돌의 긴장감이 본문에 강하게 나타난다.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kai. evpi,steusan polloi. evkei/ eivj auvto.n”(10:42) 많은 사람이 믿었다.
Nai, ku,rie evgw. pepi,steuka(( (11:27) 마르다가 믿었다
Polloi. ou=n evk tw/n VIoudai,wn oi` evlqo,ntej pro.j th.n Mari,an kai. qeasa,menoi a] evpoi,hsen o` VIhsou/.j( evpi,steusan eivj auvto, (11:45) 마리아에게 왔던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
o[ti polloi. di auvto.n u`ph/gon tw/n VIoudai,wn (12:11) 라자로의 사건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믿었다
? Hsan de. tinej {Ellhne,j evk tw/n avnabaino,ntwn i[na proskunh,swsin evn th/| e`orth/|\ (12:20)명절에 예배하러온 헬라인들도 믿었다
evk tw/n avrco,ntwn polloi. evpi,steusan eivj auvto,n (12:42)유대의 관리들 가운데서도 믿는 자가 있었다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도 있었다
tine.j de. evx auvtw/n (11:46) 유대인 중의 몇몇 사람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예수를 밀고하였다
avp evkei,nhj ou=n th/j h`me,raj sunebouleu,santo i[na avpoktei,nwsin auvto,n (11:53)그 말을 들은 대제사장 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Tosau/ta de. auvtou/ shmei/a pepoihko,toj e;mprosqen auvtw/n ouvk evpi,steuon eivj auvto,n (12:37) 많은 표적을 보았어도 믿지 않는 자도 있었다
이 두 그룹간에 긴장감이 본문을 지배한다. 예수를 믿거나 따르는 사람들은 호산나 찬양을 하며 예수를 영접한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아니하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그들은 표적을 보았어도 믿지 아니했다. 심지어 죽이려는데 가담한다. 이 둘 사이의 긴장감 가운데로 예수가 통과하고 있다.
라자로를 살리러 가는 길에 죽음에 이르는 메타포어가 있다. 라자로는 철저하게 죽었다. 철저하게 죽은 라자로를 향해 가는 예수의 여행에 대하여 도마는 죽으러 가자고 선동한다.((11:16)“ ei=pen ou=n Qwma/j o` lego,menoj Di,dumoj toi/j summaqhtai/j :Agwmen kai. h`mei/j i[na avpoqa,nwmen met auvtou/ ” 도마의 이 짧은 고백적 선동문에는 라자로를 살리러 가는 길이 죽음에 이르는 길임을 보여 주고 있으며, 역으로 죽음에 이르는 길을 통하여 부활로 나아감을 보여 주고 있다. 불트만은 이런 철저한 죽음을 향한 여정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부정하는 인간의 구원을 보고 있다. 불트만의 입장은 “신앞의 실존적인 자기부정”이다.
24. 부활신앙의 거리낌 거리낌은 불트만이 실존적 자각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 하는 극복의 개념으로 사용한 용어이다
충돌은 거리낌의 극복을 통해 나타난다. 불트만, 489-491쪽. 불트만은 계시가 충돌할 때 거리낌이 일어나며 충돌을 자극하는 것은 계시의 본질이라고 설명한다
불트만은 8장 30-40절에서는 어떻게 충돌이 일어났으며, 6장 60-71절에서는 그 충돌의 결과로 어떻게 가름(Scheidung)이 나타나는 지 보여 준다고 주장한다. 불트만,489쪽.
불트만은 수난사화에 이르는 논리적 통일성에 착안하여 8장 30절-40절까지와 6장 60절부터 71절까지를 12장에 연결시키고 있다. 불트만은 6장 60-71절을 결문의 형태로 이해하고 두 번째로 넘어가는 가교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불트만, 462쪽.
그러나 꼭 그렇게 볼 것만은 아니다. 8장에 나오는 자유한 제자와 부자유한 불신자의 충돌은 12장에만 연속성을 갖는 것이 아니고 8장 자체에도 유대인과의 논쟁이 들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8장에 위치하는 것도 논리적으로 모순된 것만은 아니다. 또 6장 60절-71절을 첫 번째 결문으로 보고 두 번째로 넘어 가는 가교로 보는 것도 불트만식의 편견이다. 이미 요한복음은 1장부터 요한의 증언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자로 증거되면서 유대인들과 많은 갈등을 빚어 왔고 매 사건마다 충돌을 빚어 왔다. 따라서 6장의 오르내림과 열 두 제자 이야기를 12장에 덧 붙여야 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12장을 있는 그대로 읽어보면 12장 33절 이후에 8장이나 6장을 위치하지 않고 바로 12장 34절-43절을 이어서 읽어야 논쟁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불트만은 8장과 6장이 십자가에 이르는 수난사화로 내재적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34절에 나오는 무리의 반응도 자연스러운 이어짐이 된다.
avpekri,qh auvtw/| o` o;cloj ~Hmei/j hvkou,samen evk tou/ no,mou o[ti o` Cristo.j me,nei eivj to.n aivw/na kai. pw/j su. le,geij o[ti dei/ u`ywqh/nai to.n ui`o.n tou/ avnqrw,pou ti,j evstin ou-toj o` ui`o.j tou/ avnqrw,pou((12:34)
무리의 질문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그리스도는 영원한데 어찌 인자가 들려야 한다는 말인가라는 것( o[ti dei/ u`ywqh/nai to.n ui`o.n tou/ avnqrw,pou) 과 인자가 누구냐는 것이다.(ti,j evstin ou-toj o` ui`o.j tou/ avnqrw,pou )
12장 33절까지 이어 내려오는 일련의 기사는 라자로의 소생 표적을 일으키신 예수가 영광을 받는 일에 관한 기사이다. pa,ter do,xaso,n sou to. o;noma h=lqen ou=n fwnh. evk tou/ ouvranou/ Kai. evdo,xasa kai. pa,lin doxa,sw (28절) 아버지께서 예수를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고 앞으로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 영광스러움은 무엇인가? 인자가 들려야 하는 것이다. 인자가 들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로 이어지는 것이다. 불트만이 8장과 6장을 12장 33절에 덧붙이려고 하지만 12장 44절이 이어져 내려 와도 본문의 의미는 무리가 없다 오히려 수난사화에 집착하기보다는 부활신앙의 눈으로 볼 때 41절의 주의 영광 th.n do,xan auvtou/ 이 28절에 나오는 아들의 영광과 자연스럽게 연관된다. 그런 면에서 요한은 부활신앙을 강하게 전하려고 했다. 수난사화는 부활로 나오기 위해 죽어야 되는 구약적 대속의 이해를 담아 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거리낌이란 부활신앙으로 나아가는 길목의 십자가의 거리낌이다. 단순히 부활신앙은 신화적 표현이고, 신앙적 결단을 위한 관념론적 전제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자기 포기야 말로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르는 거리낌이라는 불트만의 견해는 수정되어야 한다. 거리낌은 십자가의 길을 통하여 부활로 나아가는 부활신앙에 대한 분명한 믿음의 고백이며, 죽은 것처럼 보이는 假現이 아니라 실제로 분명하게 죽은 라자로의 죽음 같은 철저한 예수의 죽음이 거리낌이다. 예수는 거리낌의 모델이 아니라 거리낌의 본질이다. 거리낌은 부활신앙이다
25. 부활신앙의 성별(Scheidung)
부활신앙은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와 믿지 아니하는 자를 가르고 있다 성별하고 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은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이다(11:9) 그러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은 그 사람 안에 빛이 없는 고로 실족하는 자이다(11:10) 믿는 자는 영광을 볼 것이며(11:40) 믿지 아니하는 자는 영광을 보지 못한다. 그 영광은 부활이다.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12:23) 아버지는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앞으로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28) 선지자 이사야도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예언하였다(12:41) 이것은 사람의 영광이 아닌 하나님의 영광이다(12:43)
그러므로 이제 선택하라! 나를 섬기라(12:26). 사람의 영광보다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사랑하라(12:43)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 가운데로 다니라(12:36) 죽음을 두려워 말라(12:24) 죽는 자가 산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11:25) 반드시 믿으라는 강한 경고요 요청이다.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성별된다.
결론
본문은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가는 부활신앙의 장엄한 서사시같은 표현을 담고 있다. 요한복음의 핵심인 부활신앙을 드러내기 위하여 라자로의 소생기사 표적을 채택함으로 표적의 극치를 이루며 20장의 결론부로 나아간다. 여섯 개의 표적들은 가나의 포도주 표적에 나오는 ‘물-동기’ 의 불완전성을 보완해주고 있다. 여섯 개의 물이 있었으나 새로운 물이 필요하다. 그 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 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수의 죽음을 통한 포도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새로운 포도주는 부활로 이어지는 축제의 회복이다. 더 좋은 포도주요 죽어가던 잔치의 회복이다. 이제 세례자 요한의 시대가 가고 계시자 예수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단순한 세례종파의 사건이 아니라 표적을 통한 부활신앙의 축제가 펼쳐진다. 수난과 죽음은 부활에 이르는 과정일 뿐이다. 다시 살아날 것을 믿어야 한다. 믿음이 요청된다. 충돌과 거리낌을 통하여 성별된 믿음의 사람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람의 영광보다 더 사랑한 자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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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생기바다
글쓴이 : 서 철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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