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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제사장 기독론”-히브리서의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상을 중심으로-
번호:6 글쓴이: 말씀강론가 서철 목사
조회:4 날짜:2003/04/02 21:20
..
서론
본 연구 보고서는 기독론 세미나중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다. 기독론 연구는 예수의 정체성을 분석하는 연구과정으로, 예수-그 주, 예수-그 선지자, 예수-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 구주 그리고 예수 하나님의 종등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정리해간다. 역사적 예수의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비신화화를 거쳐 daβ와 waβ의 상호 연관성을 논의하면서 발전해갔다. 참조) 오스카 쿨만,ꡔ신약의 기독론ꡕ김근수 옮김,(서울:도서출판 나단,1994),5-23. 이 책의 목차와 1장은 예수에 대한 호칭을 중심으로 기독론의 연구 역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기독론 가운데 ‘그 대제사장’ o` avrciereuς. 기독론은 히브리서의 기독론이기도 하다. 물론 복음서나 바울서신등에서도 대제상으로서의 예수를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대제상으로서의 에수상은 히브리서에 나타나는 예수상이 단연 두드러진다. 기독론 연구는 역사적 예수의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메시야 비밀을 이야기한 브레데 이후로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거친 다음 역사적 사실과 케리그마적 의미 그리고 초대교회의 공동체적 고백을 분석하는 데로 발전되어 왔다. 레이먼드 E. 브라운,ꡔ신약성서 그리스도론 입문ꡕ,김광식 역(왜관,분도출판사,1999),23-36. 그리스도론에 관한 다양한 접근들을 보여주고 있다. ;I 하워드 마샬,ꡔ신약 기독론의 기원ꡕ,(서울:기독교문서선교회,1999),3-39. Marshall은 리든에서부터 풀러에 이르기까지 예수의 역사적 연구의 흐름을 잘 정리해준다.
최근에는 사회학적 연구를 통해 예수를 민중운동의 시각에서 보려는 시도가 생겨났는데, 타이쎈 게르트 타이센, 아네트 메르츠 공저,ꡔ역사적 예수ꡕ,손성현 옮김,(천안:다산글방,2001),타이쎈은 인자외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예수를 민중운동의 대표자로 설명하고 있다.
과 크로싼 존 도미닉 크로싼,ꡔ역사적 예수ꡕ,김준우 옮김,(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2000), 크로싼은 예수를 견유학파적인 농부의 시각에서 브로커 없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했던 사람으로 이해하고 있다. ;존 도니닉 크로산,ꡔ예수는 누구인가ꡕ,한인철 옮김,(서울:한국기독교연구소,1998). 크로산은 2장에서 사실의 진술(a statement of fact)과 신앙의 진술(a statement of faith)을 구분하면서 문자적인 동정녀 탄생설을 부인하고, 8장의 부활장에서 부활의 현재적 의미만을 주장하면서 내세를 부정한다. 크로산의 예수이야기는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민중운동가적인 예수이다.
그리고 마커스 보그 마커스 J. 보그,ꡔ에수 새로 보기ꡕ,(서울:한국신학연구소,1997). 보그는 전통적인 예수상을 다시 보자고 제안하면서 영과 문화라는 주제 아래 제자됨의 모델로서의 예수를 이야기 한다. 보그에게 예수는 현재의 삶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현자요, 도전자요, 재활성화의 카리스마적인 모범이다.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기독론의 다양한 연구들은 불트만의 Daβ와 Waβ에 대한 물음과 문제 제기로부터 발전되었다. 불트만은 예수의 Daβ(Thatness)가 중요하지 Waβ(Whatness)는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Daβ(Thatness)는 “That Jesus was”로 예수의 역사적 존재자체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며, Waβ(Whatness)는 “What Jesus was”로 예수의 역사적 존재내용의 사실을 말한다. 상게서, 33.
불트만을 따르는 사람들은 Daβ(Thatness) -Waβ(Whatness)의 불일치를 주장하고, 불트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Daβ(Thatness) -Waβ(Whatness)의 일치를 주장하며, 제 3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은 Daβ(Thatness) -Waβ(Whatness)의 연속적 불일치를 주장한다.레이먼드 E. 브라운,ꡔ신약성서 그리스도론 입문ꡕ,김광식 역(왜관,분도출판사,1999)238-58. 레이먼은 이 책의 부록 Ⅳ에서 양자의 변증법적인 조화를 시도한다. 즉 Daβ(Thatness)와 -Waβ(Whatness)를 다 인정하면서 단순한 일치를 말하지 않고 차이를 이야기 한다. 분명히 Daβ(Thatness)와 -Waβ(Whatness)는 분명한 실체이지만 Daβ(Thatness)기 공동체의 언어로 고백되고 표현됨으로써 Waβ(Whatness)는 Daβ(Thatness)와는 다른 복음서 기자의 언어로 채색되어 표현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기독론은 다양한 방법으로 연구되었는데 오스카 쿨만은 보다 효율적인 접근 방법을 보여 주었다. 즉 기독론을 예수의 칭호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것이다. 오스카 쿨만,ꡔ신약의 기독론ꡕ김근수 옮김,(서울:도서출판 나단,1994). 5-7. 쿨만은 예수의 칭호들을 중심으로 기독론을 정링하였다. 이 책의 목차는 이를 분명히 보여 준다. 지상사역의 칭호(그 선지자, 그 고난의 종, 그 대제사장), 미래사역의 칭호(그 메시야, 그 인자), 현재사역의 칭호(그 주, 그 구주) 그리고 선재칭호(그 말씀, 그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 지칭)등으로 구분하여 분석했다.
칭호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쿨만의 연구 방법은 예수의 역사성을 논하는 진부한 논쟁의 허점을 보완하고 보다 명확한 예수알기를 보여 주었다. 이 연구 보고서가 주제로 삼은 대제사장 기독론도 칭호기독론 연구의 한 틀거리이다. 본 연구 보고서는 에수를 대제사장으로 부르는 호칭을 중심으로 기독론을 정리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대제사장 기독론이 뚜렷이 보이는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중심으로 연구하였다. 대제사장이라는 헬라어 o` avrciereuς. 또는 avrciereuς.는 신약성경에서 사도행전의 한 곳을 제외하고는 두 가지 용법으로 주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유대교의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에게 적용되었는데 예수님을 지칭하는 o` avrciereuς. 또는 avrciereuς.는 히브리서에만 나온다. 개역한글 신약성경에서는 115회가 사용되었는데 유대교의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99회가 사용되었고 예수님을 지칭하는 용어로는 16회가 사용되었다. 이 16회의 사용은 모두 히브리서에서 사용되었다. 히브리서 2:17,3:1,4:14,4:15,5:1,5:5,5:10,6:20,7:26,7:27,8:1,8:3,9:7,9:11,9:25,13:11에서 사용되었다.
이것은 신약성경 가운데 히브리서가 가지고 있는 유대교적 성향과도 연관이 있다. 히브리서는 제목부터가 PROS EBRAIOS 즉 ‘히브리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유대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연구 방법은 o` avrciereuς. 의 어원적 의미를 살핀 다음 ‘그 대제사장’의 구약-유대교적 배경과 신약--기독교적 배경을 분석한 뒤에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정리하였다. 즉 히브리서와의 연관성 측면에서의 대제사장 기독론,과 삼직무론중의 측면에서의 대제사장 기독론 그리고 삼위일체론의 측면에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을 설명한다.
1. ‘그 대제사장’ o` avrciereu.ς. 의 어원적 의미
대제사장은 헬라어 o` avrciereuς.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에게 적용되던 단어였다. 신약성경에서 115회가 사용되었는데 그 중에 히브리서를 제외한 99회가운데 한 곳만을 제외한 98군데는 모두 다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을 지칭한다. 마태복음에 24회, 마가복음에 21회, 누가복음에15회, 요한복음에 20회 그리고 사도행전에 19회가 나온다. 그래서 도합 99회이다. 흥미로운 것은 바울서신에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바울의 기독론은 ‘그 주’와 ‘그 그리스도’ 그리고 ‘그 하나님의 아들’에 집중되고 있다. 바울이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를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은 그가 이방인의 사도였기 때문이다.(참조, 사도행전 15장의 사도총회는 바울을 이방인의 시도로 인정했다)
avrciereuς는 iereuς 즉 제사를 지내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사도행전 14:13에서는 이방신인 제우스에게 드리는 제사를 주관하는 자로, 마태복음 8:4에서는 유대교의 제사장으로, 요한계시록 1장6절에서는 믿는 사람들에 대한 용어로,. 원래 이스라엘은 제사장의 나라로 계획되어졌으며(출19:6),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의무를 저버림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져 갔다(출20:19)
히브리서서 5장 6절에서는 예수를 지칭하는 말로 그리고 히브리서 7장1절에서는 멜기세덱에 대하여 사용되어졌다.
이런 단순히 제사장을 지칭하는 용어가 avrc와 결합되면 대제사장을 지칭하는 용어로 바뀐다.. avrc는 시작, 처음, 기원, 원천, 권위 또는 통치를 나타내는 avrch에서 왔다.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에’ 라는 표현이 아주 유명한 구절이다 en arch epoihsen o qeoj ton ouranon kai thn ghn LXX역 창세기 1장 1절에서도 사용되었다. En avrch/| h=n o` lo,goj kai. o` lo,goj h=n pro.j to.n qeo,n kai. qeo.j h=n o` lo,goj .
avrch가 agw와 만나면 군주나 왕을 의미하는 avrchΥos가 되고 천사를 의미하는 aggelos와 만나면 천사장을 의미하는 arcaggelos가 된다. 그래서 avrc와 iereuς가 만나서 이루어진 avrciereuς는 제사장을 통치하는 대제사장의 사용되어진다. 신약성경에서는 안나와 가야바를 부르는 용어이기도 하였으며(눅3:2), 히브리서에서는 주로 예수님을 부르는 용어였다. 이 말은 BC 150 년경에서 AD 50 년경 사이에 유대인들에게 받아들여졌다.Gehard Kittel(ed),"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tr&ed by Geoffery W. Bromiley,(Grand Rapids:WM B Eerdmans Publshing Company,1974), Vol Ⅲ,265. 이하 TDNT로 표기.
외경에도 나타난다. 외경중에 마카비 상하나 에스드르1서등에 나타난다. 참조) TDNT 제3권,266.
2. ‘그 대제사장’의 구약-유대교적 배경
‘그 대제사장’이라는 개념은 신약성경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이미 구약과 유대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호칭 중심의 기독론 연구에 있어서 대제사장 기독론은 다른 연구와 달리 이방이나 헬라적인 배경보다는 유대교적인 배경에 집중하여 연구할 수 있다.오스카 쿨만,135.
히브리어로 제사장은 kōhen으로 불리워졌다. 이 말은 구약성서에 741회 나오는데 삼분의 일 이상이 모세오경에 나오며 레위기에만 185회가 나온다. 그래서 레위기를 제사장들의 편람이라고 부른다. 벧엘성서간행사 편, ꡔ원어연구해설ꡕ,(서울:벧엘성서간행사,1986), 제 6권 252-3.이하ꡔ원어연구해설ꡕ로 표기.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 어근이 명확하게 나오지는 않지만 초기의 비종교적 용법으로 보면 행정관으로 봉사하는 직책을 설명해주고 있다. R.레어드 해리스, 글리슨 L. 아쳐 2세 & 브루스 K. 월트케 편집,ꡔ구약원어신학사전ꡕ,번역위원회 번역,(서울:요단출판사,1986),532-3. 이하 ꡔ구약원어신학사전ꡕ으로 표기.
코헨은 히브리인 제사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애굽의 제사장들(창41:50; 46:20; 47:26), 블레셋의 제사장들(삼상6:2), 다곤의 제사장들(왕하10:19), 그모스의 제사장들(렙48:7) 그리고 바알 및 아세라 목상을 섬기던 제사장들(대하34:5)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유대교의 제사장은 아론의 자손 중에서 나왔다. 그러나 아론의 자손이라고 다 제사장이 되지는않았다. 흠이 있는 자들은 제외되었다. 그리고 대제사장은 그들 제사장 가운데서 세워졌는데 lAdG"h; !heKoh;w (kōhen haggadōl)이라고 불렀다(출21:10) TDNT, Vol Ⅲ,266.
. 출애굽기 29장 1절로 37절은 이들의 정결예식을 보여 준다. 대제사장 lAdG"h; !heKoh;w은 가슴에 흉패를 붙이고 거룩한 겉옷을 입었으며머리에는 거룩한 관을 썼다 그리고 나서 기름부음을 받았다(출29:7, 참조. 시133:2). 유대교의 제사장직은 모세시대에 하나님께서 제정하셨다. 그러나 유대교의 제사장과 대제사장직이 생기기 이전부터 멜기세덱의 제사장과(창14:18) 미디안의 제사장들(출2:16;3:1;18:1)에 관한 기사를 읽을 수 있다.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들은 18,000명쯤 되었다. 기독교대백과사전편찬위원회 편,ꡔ기독교대백과사전ꡕ,(서울:기독교교문사,1987),제13권,1092-3.이하 ꡔ기독교대백과사전ꡕ으로 표기
이중에 멜기세덱이 중요한 인물이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서 십일조를 받은 대제사장인데 히브리서에서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히5:10). 멜기세덱의 반차는 레위 지파의 제사장직에 대한 예수님의 우월성을 설명해주고 있다. 레위 지파는 야곱에게 속하였고 야곱은 이삭에게 속하였으며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속하였으므로 레위 지파의 후손들인 아론의 자손들은 아브라함의 허리에 있는 자들인데 반해,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제물을 바쳤던 신비의 왕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 됨으로 유대교적 제사장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이고 있다.
구약에 나오는 제사장들은 제단과 제사 의식을 담당하였는데 주로 희생적, 제의적, 중개적인
직임을 수행하던 자들로 유대교의 중심을 이루고 있었다. 원어연구해설, 제 6권. 253-4.
이들 가운데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제사장이 대제사장이었다. 대제사장은 우주의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위임을 맡은 자로 나타난다. TDNT,제3권,269.
대제상들은 종신제였으며 산헤드린의 의장을 맡기도 했다. 에드워드.로제,ꡔ신약성서배경사ꡕ,박창건 역,(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1984),130-1. 기원전 2세기와 1세기에 정치적인 이유로 대제사장의 위치가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명망은 유지되었고 산헤드린의 의장이 되기도 하였다. 참조) TDNT,제3권270.
아론으로부터 반란에 의한 전쟁기간의 대제사장이었던 파나수스 때 까지만도 83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다. 요세푸스,ꡔ유대고대사Ⅳꡕ,성서자료연구원 번역,(서울:도서출판 달산,1991), 491-500. 요세푸스의 ꡔ유대고대사Ⅳꡕ 10장은 ‘대제사장들의 명단에 대하여’라는 주제로 잘 정리해놓고 있다. 이하 ꡔ유대고대사ꡕ로 표기.
이중 모세 시대로부터 솔로몬 성전 건축 때까지는 13명이 612년간 재임하였고, 솔로몬 때부터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의 침공때 까지는 18명이 466년간 재임했으며, 바벨론 포로 70년 후에 고국으로 귀향한 후의 대제사장은 여호사닥과 모두 15명의 후손들이 414년 동안 재임하였다. 상게서,492-3.
이 대제사장들만이 대속죄일에 유대민족의 속죄를 위하여 공식적으로 사제임무를 수행하였다 상게서,131.
대제사장들의 대속죄일 사제 직무는 속죄제사의 주요한 직무였다. TDNT,제3권,269.
이 구약의 속죄직무가 히브리서의 예수님에게 적용되면서 개념적인 발전을 해왔다. 즉 유대의 속죄를 이루는 대제사장이 아니라 우주적인 속죄를 이루는 대제사장이 되었으며, 속죄 때마다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아니라 단 한번에 오고 오는 모든 죄를 속하는 대제사장이 된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대제사장이 가지고 있던 속죄의 의미를 계승하면서도 효력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3. ‘그 대제사장’의 신약-기독교적 배경
신약성경에서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히브리서에 나타난다. 신약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대제사장은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이다.(18-37 A.D.) 상게서,270.
신약성경에서는 avrcierei/j와 avrciereuς가 같이 사용되는데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전자는 62회 후자는 38회가 사용되었다. TDNT,제3권,271.
신약성경에서는 avrcierei/j 혼자 쓰이기도 한다. avrcierei/j는 주격 목적 복수형이다.
어떤 그룹에서는 산헤드린의 어떤 그룹들과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 상게서.
알렉산드리아의 필로에게 대제사장은 중보자의 의미가 있으며 죄가 없는 자이기도 하다 상게서273-4.
예수가 중보자가 된다는 사상은 인간과 하나님사이의 중재자로서 속죄의 매개자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히브리서에서 보여지는 예수의 모습은 대제사장의 모습 그대로이다. 타이쎈, 753-761. 타이쎈은 그의 책 16장에서 역사적 예수와 세 가지 기독론의 관계를 밝히고 있다. 세 가지 기독론이란 암묵적 기독론과 유발적 기독론 그리고 명시적 기독론을 말하는데 주오 인자사상과 메시야 사상을 중심으로 역사적 예수를 연구했기 때문에 대제사장직은 소홀히 취급하였다.
복종과 희생 그리고 헌신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하고 승귀되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대제사장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상게서 274-5.
예수님의 대속의 죽으심이 최하의 비하와 최고의 존엄간의 신약성경 최고의 변증법을 나타내주는 것은 대제사장의 빛 때문이다. 쿨만,149.
대제사장의 빛 아래에서 예수의 사건들은 하나의 분명한 연속성을 가지는 의미를 갖는다. 예수의 대제사장직은 선지자직과 고난의 종과 함께 지상사역에 해당한다. 쿨만, 5-9. 쿨만은 제 1부 예수님의 지상사역을 가리키는 칭호들로 그 선지자, 그 고난의 종, 그리고 그 대제사장직을 구별한다. 예수님의 미래사역의 칭호로는 그 메시야와 그 인자를, 현재사역의 칭호로는 그 주, 그 구주를, 선재사역의 칭호로는 그 말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등을 제시한다. 쿨만의 칭호연구는 정관사를 붙여서 말한다. ‘그-000’형태를 띄는 것이 특징이다.
쿨만은 이 세 가지 지상사역의 연관성도 제시했는데 ‘그 대제사장직’이 ‘그 고난의 종직’인 Ebed Yaweh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음을 밝혔다 상게서,148.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은 본질적으로 고난받는 종의 모습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Ebed Yaweh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예수님은 제물을 바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제물이신 유일하신 분이시다. 히브리서 9장 28절은 단번에 드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대제사장직은 왕과 선지자와 함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다. 상게서.754.
이 세 사람은 모두 다 예수님의 사역을 연결해주는 고리 역할을 하는데, 이 중에 대제사장직이 메시야와 연관되어지는 제사장적 메시야의 개념은 후기 문서에만 나타난다.(역대상29:22; 집회서45:15; 다니엘9:25-26; 마카비1:10) 상게서.
대제사장직도 넓게 보면 메시야 사상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레위의 유언서인 18장은 종말론적인 대제사장은 낙원을 새롭게 한다. 상게서,757. 타이쎈은 왕적인 메시야 사상과 제사장적인 메시야 사상의 양두정치를 말하면서 왕의 직무와 제사장직을 하나로 결합하여 독식하였던 하스몬 왕가에 대한 저항정신을 이야기한다.
이런 구약과 유대교의 대제사장직은 신약시대에 이르러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될 때까지 축제와 제사를 집전하는 직무로 계승되었다. 에드워드.로제,134-5. 대제사장은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의 삼대 축제를 이끌어 갔으며 대속죄일에는 레위기 16장의 속죄의식을 집행하엿다.
대제사장직은 성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성전이 무너지고 회당중심으로 유대교의 축이 바뀌어질 때까지는 유대교의 중심에 서 있었다. 상게서,135.
그래서 필로는 대제사장직을 중보자이며 법관이고 온 의회이고 온 민족이라고 극찬하였다. 상게서131.; TDNT,272-4.
그러나 신약성경에 나오는 대제사장들은 기독론 측면에서 보면 두 가지의 큰 오류를 남기게 된다. 하나는 진정한 속죄를 이루러 오신 예수님을 죽임으로 속죄를 위하여 존재하는 자기 존재 목적을 위배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로서 다리놓는 자들이 되지 못하고 자기들의 기득권만 지키려다가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다리를 끊어 놓고 말았다. 예수님은 대제사장을 포함하는 기득권 세력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신약성경에서 대제사장은 예수를 처형하는 자들과 손을 잡았다.
이 역설적인 반대의 모습속에 구약의 대제사장직이 끝나고 신약의 대제사장직이 시작되는 새로운 길이 보인다.
4.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
1)히브리서와 시편 110편의 연관성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은 위에서 보듯이 구약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 중에도 학자들에 의하여 일반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견해가 시편 110편과의 연관성이다.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은 시편 110편 4절의 메시야에 관한 표상과 결합되어 있다. 오토 미헬, ꡔ히브리서ꡕ, 강원돈 옮김, (서울:한국신학연구소:1988).228.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치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시110:4)
wmosen kurioj kai ou metamelhqhsetai su ei iereuj eij ton aiwna kata thn taxin melcisedek (LXX 시110:4)
또한 이와 같이 다른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히5:1)
kaqw.j kai. evn e`te,rw| le,gei Su. i`ereu.j eivj to.n aivw/na kata. th.n ta,xin Melcise,dek
(히5:1)
헬라어 구약성경 시편 110편 4절의 kata thn taxin melcisedek 가 히브리서 5장 1절에 그대로 사용되었다. 예수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영원한 제사장(iereuj eij ton aiwna )이다. 그러나 단순히 동일한 것이 아니고 히브리서의 대제사장은 시편의 대제사장과는 달리 후기 유대주의(묵시문학, 헬레니즘, 영지주의)적 전통들이 스며들어 와서 비의적 영지주의 색채를 띄게 되었다.상게서, 231.
예수의 죽음은 물질세계를 돌파하는 영지주의적 흔적을 가지고 있다. 상게서, 231.
이처럼 시편 110편은 대제사장 기독론을 말하는데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메시야성 때문에 초기 기독교의 모든 문서에서 자주 인용되곤 한다. 오스카 쿨만, 143.
시편 110편은 마가복음 12장 35절과 14장 62절에 인용되었다. 그리고 예수는 이 구절을 다니엘 7장과 결합시켜서 메시야성을 드러내신다. 상게서,144.
시편110편은 창세기 14장과 함께 히브리서 7장에도 인용된다. 창세기 14장과 히브리서 7장은 모형론적으로 연관이 있다. 상게서, 153-6.
시편 110편의 영원한 대제사장 사상은 다른 제사장들을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데 그 영원한 대제사장의 표상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보고 있는 히브리서는 후기 유대주의 사상을 넘어 율법준수와 제의전통을 무너뜨린다. 그런 점에서 오토 미헬이 주장하듯이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은 사제와 제물에 대한 후기 유다교의 관념을 극복하고 있다. 오토 미헬, 232.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시편110편과 연관을 맺고 있지만 단순한 동일성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중심의 왕적 메시야로서의 대제사장을 말하고 있다.
2) 히브리서와 요한문학의 연관성
히브리서의 대제사장 기독론이 요한문학에서도 엿보인다 오스카 쿨만, 170-173. 쿨만은 요한복음 17장이 히브리서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쿨만은 요한복음이 히브리서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히브리서가 요한복음에서 영향을 받았는지는 명확하지가 않다고 말한다.
. 우선 요한복음 17장의 대제사장의 기도와 고별강화가 그렇고, 다른 하나는 요한계시록의 1장 13절의 예수상이 그렇다. 우선 요한복음 17장을 보면 대제사장의 기도
히브리서의 기독론은 대제사장 기독론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물론 천사보다 더 높으신 그리스도(히1장)나 주로서의 그리스도(히12:2)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헥심은 대제상으로서의 예수님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히브리서는 대제사장직을 멜기세덱과 연관시켜서 이해하고 있다. 멜기세덱은 왕권과 제사장직을 겸한 의의 왕으로(창14:18;20) 후기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이 일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나눠주니라 그 이름을 번역한즉 첫째
의의 왕이요 또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
w-| kai. deka,thn avpo. pa,ntwn evme,risen VAbraa,m prw/ton me.n e`rmhneuo,menoj basileu.j
dikaiosu,nhj e;peita de. kai. basileu.j Salh,m o[ evstin basileu.j eivrh,nhj (히7:2)
히브리서는 5장-7장에서 집중적으로 예수님과 멜기세덱의 연관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며(시110:4;히5:6;10;6:20;7:17), 따라서 멜기세덱이 축복하였던 아브라함의 후손인 레위지파의 대제사장 보다 우위성을 가진다.(히7:10) 왜냐하면 레위 계통의 제사직분으로는 온전함을 얻을 수 없지만(백성이 그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론의 반차를 좇지 않고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을 통해서는 온전해질 수가 있다.(히7:11).
Eiv me.n ou=n telei,wsij dia. th/j Leuitikh/j i`erwsu,nhj h=n o` lao.j ga.r evp auvth/| nenomoqe,thto(
ti,j e;ti crei,a kata. th.n ta,xin Melcise,dek e[teron avni,stasqai i`ere,a kai. ouv kata. th.n ta,xin
VAarw.n le,gesqai(히7:11)
온전함은 teleioj를 가리킨다. 이 말은 기독론을 설명하는 키워드다. 왜냐하면 인자와 연관지어서 대제사장직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중보자이심을 드러내주는 것인데 중보자의 기능과 역할은 하나님 앞으로 인간을 온전하게 이끄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온전하게 이끄는 속죄의 책무를 이행하시는 예수님은 스스로 온전하신 분이시며 죄인도 온전하게 하시는 분이시다. 쿨만,149-51 온전함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을 설명하는 쿨만의 키워드이다..
예수님의 무죄성을 히브리서 기자는 처음부터 죄를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무죄한 것이 아니라 죄를 수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죄하셨기 때문에 변증법적으로 더 존귀하고 의미가 있다고 강변한다. 상게서, 152-3. 쿨만은 예수님의 무죄성과 인성사이에는 변증법적인 연결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은 게세마네 동산의 유혹을 빼고는 전혀 시험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시지만 히브리서의 예수님은 시험을 받을 수 있는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가 없으신 분이시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ouv ga.r e;comen avrciere,a mh. duna,menon sumpaqh/sai tai/j avsqenei,aij h`mw/n pepeirame,non de.
kata. pa,nta kaq o`moio,thta cwri.j a`marti,aj (히4:15)
예수님이 당하셨던 시험은 죽음에의 두려움이었고, 그 시험을 이기신 것은 전적인 순종이었다. 쿨만,156-9.
이 순종은 단번에 이루어진 순종이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단번에 이루어진 한 순간의 순종이 영원한 사건이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 단번의 제사는 유대교의 반복적인 희생제사를 무력화시켰고, 카톨릭의 제사의 현재화인 미사를 부정한다 상게서, 160-1.
단번에 ‘evfa,pax’속에 기독교의 본질이 들어 있고 예수님의 특성이 나타나 있다. ‘evfa,pax’은 여러 번 나타난다. (히9:12; 9:26; 10:10) ‘evfa,pax’은 10장 14절의 “영원히 eivj to. dihneke.j ”와 대조를 이룬다. 단번에 이룬 영원한 구원이 예수님의 대제사장직이 보여주는 독특함이다. 예수님은 그런 점에서 “앞서가신 이 pro,dromojeivj ”이다. 이 앞선 가신 이로서의 예수님이 휘장 넘어 지성소로 들어가심으로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부활로 이끌어 가시는 것을 보게 된다. 또 앞서가신 이는 영원한 대제사장으로서 현재에도 사역을 하고 계신다(히7:25)
“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o` de. dia. to. me,nein auvto.n eivj to.n aivw/na avpara,baton e;cei th.n i`erwsu,nhn\ o[qen
kai. sw,|zein eivj to. pantele.j du,natai tou.j prosercome,nouj di auvtou/ tw/| qew/|
pa,ntote zw/n eivj to. evntugca,nein u`pe.r auvtw/n” (히7:24-25)
또 예수님은 구원을 완성시키기 위하여 두 번 째 다시 오신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 번째
나타나시리라
ou[twj o` Cristo,j a[pax prosenecqei.j eivj to. pollw/n avnenegkei/n a`marti,aj evk deute,rou
cwri.j a`marti,aj ovfqh,setai toi/j auvto.n avpekdecome,noij eivj swthri,an“(히9:28)
단번에 구원을 이루시고, 지금도 살아 계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시며, 미래에 다시 오시는 예수님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고 계신다. 단번에 ‘evfa,pax’는 과거를, 영원히 eivj to. pantele.j는 현재를, 그리고 두 번째 evk deute,rou는 미래를 말해준다. 대제사장직은 선재기독론이 약하지만 지상사역과 미래사역을 아우르고 있다. 쿨만, 166-8.
결론
신약성경의 대제사장 기독론의 핵심은 속죄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우위성을 설명해준다. 아론의 반차와 다른 멜기세덱의 반차가 그렇고, 반복제사가 아닌 단번제사가 그러하며, 불완전하지 않고 온전하게 해주시는 제사의 완전성이 그렇다. 이런 대제사장직은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로서의 예수님이 인간을 하나님앞으로 온전하게 이끄시는 사역을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제물을 드리는 구약의 제사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직접 제물로 드리는 새로운 대제사장이었으며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인간은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관계를 맺게 되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
이런 대제사장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왕직, 선지자직과 함께 삼직무론을 이루고 있다. 허호익,ꡔ그리스도의 삼직무론ꡕ,(서울:장로교출판사,1999). 허호익은 그이 연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에서 그리스도의 세 가지 직무를 잘 정리해놓고 있다.
또 대제사장직은 삼위일체 신관 가운데 성자의 역할을 가장 돋보이게 하고 있다. 다른 모든 칭호들이 예수를 고양시키고 위로부터의 기독론을 설명하고 있거나 아래로부터의 기독론을 설명하지만 대제사장 칭호처럼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오신 중보자로서의 중요성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는 인간을 위하여 오신 예수의 모든 생애를 가장 명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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