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묵상(默想)/거룩한 묵상

[스크랩] “깊은 예수 만나기”

우순(愚巡) 2006. 4. 15. 20:52

“깊은 예수 만나기”

-예수님을 깊게 만나는 감격-


담임목사 서철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3:1)


    저는 ‘깊은 예수 만나기’ 의 설교자로 초청을 받은 복지교회 담임목사 서철입니다. 저는 이 자리를 통해 단순한 설교 보다는 제목처럼 ‘깊은 예수 만나기’를 위한 작은 마당을 펼치려고 합니다. 그전에 우선 ‘깊은 예수 만나기’라는 말을  정확하게 정리하고 가야겠습니다. ‘깊은 예수’를 만나는 것인지, ‘예수 만나기’를 깊이 한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말은 할 수 있겠지만 의미상으로 보면 예수님 자신이 이미 깊이 있는 분이니까 ‘깊은 에수 만나기’는 예수님을 깊이 만난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을 깊게 만난다는 것은 신앙생활의 중심입니다. 히브리서는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브리서 3:1)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많습니다. 복음서에만 보더라도 대제사장들도 예수님을 만났고 장로들도 예수님을 만났으며 군인들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외에 떡을 먹은 5000여명과 4000여명의 군중, 귀신들린 사람, 회당장과 그의 집 사람들, 쟁애우들, 어린아이, 남자, 성전의 그리고 환치기상 등등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예수님을 만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다양한 역할극을 벌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인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총독, 군인, 그리고 군중이 있었습니다. 그런가하면 그 예수님의 죽음의 자리까지 따라갔던 여인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장례식을 담당한 아리마대 요셉이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주시는 표적의 떡을 먹었던 5000여명과 4000여명의 무리가 있었는가 하면 산상수훈을 들었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과 만난 이유가 다양합니다만,  예수님을 만난 이후의 길은 아주 다른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만나되 깊이 만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깊은 만남은 깊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히브리서의 성경말씀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선포합니다. ‘깊은 만남’은 ‘깊은 생각’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인들의 깊은 생각은 묵상이고, 묵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히브리인들의 깊은 생각을 의미하는 묵상은 의성어 즉 소리 말입니다. 히브리인들의 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묵상을 뜻하는 히브리어 '하가(HAGA)'는 숨을 쉬지 않을 정도로 깊이 생각하다가 숨이 막히기 직전에 자동적으로 터져 나오는 숨소리에서 나온 말입니다. 그러니까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숨쉬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잔을 받지만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영광의 잔도 받으며, 주님의 날에 그리스도와 잔치를 베풀  것이며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에 들림 받을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8:17)”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1)”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는 첫 걸음은 예수님의 출생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시작만 좋으면 반을 했다는 말입니다. 또 “첫 단추를 잘 꿰야 모든 게 순조롭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일도 시작이 중요하고 첫 단추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시작은 예수님의 출생의 선포입니다. 많은 선포 기자 가운데 누가 복음의 선포는 아주 의미심장합니다.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중략).....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누가복음 2:11-14)


예수님을 깊이 생각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시며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위해 오셨다는 것을 믿는 데 까지 생각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스쳐 지나가며 만나는 사람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되 떡만 먹고 돌아가는 사람과 병만 고침 받고 돌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경만 하고 가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사람은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나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요묘 하심은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한 몸에서 이루셨다는 것입니다. 종교란 마루(宗) 가르침(敎)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르침 중의 으뜸인 마루 가르침을 설파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가르침들은 크게 두 가지 형태를 가집니다. 하나는 하늘로부터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땅으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전자는 하나님이 인간을 향해 내려오는 것이고, 후자는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에게서는 이 둘이 하나로 만납니다.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시고,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며 사람에게는 평화가 되십니다. 혹자는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거나 초월하고 하나님처럼 되면 최고인줄을 압니다. 반대로 혹자는 사람은 사람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에게서는 하늘과 땅이 만나고, 하나님과 사람이 만납니다. 예수님을 깊이 만난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되고 있는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을 체험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를 동시에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과 인간의 대립이 아니고. 하늘과 땅의 대치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됨을 경험하는 신비한 사건입니다. 앞으로 우리는 이 자리를 통해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이 놀라운 신비를 함께 체험하면서 하나님의 영광과 땅의 평화. 그리고 인간을 향해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해 다가서는 인간의 사랑을 체험해 나갑니다. 우리의 구주가 되시는 그리스도안에서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생기목자 원글보기
메모 :

'묵상(默想) > 거룩한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예수님의 본질  (0) 2006.04.15
[스크랩] 반 다빈치 코드...  (0) 2006.04.15
[스크랩] 예수전 묵상  (0) 2006.04.15
[스크랩] 예수님의 십자가  (0) 2006.04.15
[스크랩] 예수님 이야기  (0) 2006.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