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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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默想)/행복한 묵상

세 개의 성전<디럭스 바이블 참고>

우순(愚巡) 2007. 3. 25. 09:12

예루살렘에는, 성서시대를 통틀어하여, 모두 세 개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제1은 솔로몬의 성전(Solomon's Temple)으로서, 이른바 [제1성전] (First Temple)이구요,

 

제2는 스룹바벨의 성전(Zerubbable's Temple)으로서, [제2성전](Second Temple)으로 불립니다.

 

제3은 헤롯의 성전(Herod's Temple)으로서, 헤롯 대왕으로 불렸던 헤롯 1세가

 

제2성전을 증수(增修)한 성전입니다.

 

이들은 모두 같은 장소에 세워졌습다.

 

 

 

 

 


1. 솔로몬 성전(제1성전)(Solomon's Temple, First Temple).

 

성경에 의하면, 솔로몬의 성전은 먼저 다윗이 건설을 하고자 했지만

(삼하 7장, 왕상5:3-5, 8:17, 대상 22:14),

 

하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결국 솔로몬의 손에 의해 건축이 되었습니다.

 

그는 7년에 걸쳐 예루살렘의 모리아산 위에 성전을 건축했습니다.(왕상 6:37,38,952년 완성)

 

솔로몬은 두로왕 히람에게서 베니게(페니키아)의 기술의 원조를 받고,

 

또한 계약에 의해 레바논산의 목재의 공급을 히람에게서 받아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일반 노무자로서 징용되었는데, 기술 담당자는 베니게 사람이었습니다(대하 2:7-14).

 

건축재료의 상당 부분은 이미 다윗이 준비해 둔 것이었습니다.(대상 22장).

 

성전의 전체 구조는

 

장방형의 구조로서, 현관, 성소, 지성소의 3부로 되어 있었고

 

넓이 10.5m, 길이 31.5m, 높이 15.8m로, 그 앞에 낭실이 있었습니다(왕상 6:3,7:19,21).

 

지성소에는 [언약궤], [제단], [두 그룹]이 있었고,

 

안뜰에는 놋바다, 물구멍, 대제단이 놓여있었습니다.

 

성전의 정면, 현관의 좌우에는 야긴과 보아스로 불리우는 두 개 청동제의 놋기둥이 서 있었습니다(왕상 7:15-22).

 

그것은 높이 각각 18규빗(약 8.2m), 주위 각각 12규빗(약 5.5m), 기둥머리를 만들어 기둥꼭대기에 둔 것의 높이 5규빗(약 2.3m), 기둥머리에는 구상(球狀)의 부문을 만들어 바둑판 모양의 조각을 하고, 그 상부는 백합화 꽃을 피운 모양으로 되어 있었죠.

 

이것과 유사한 모양의 기둥머리는 므깃도에서 출토되기도 했습니다.

 

 

 

 

 

이 제1성전은 B.C. 587(6)년, 예루살렘이 함락됨과 함께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놋 바다, 물두멍의 받침 및 성전내의 집기는, 모두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왕하 25:13-17,렘52:13,17-23).

 

 

 

 

 

 

 

2. 스룹바벨의 성전(제2성전)(Zerubbabel's Temple, Second Temple)

 

바사왕 고레스는 바벨론을 점령한 후,

 

유대인에게 예루살렘의 파괴된 성전 재축을 허락해 주었습니다(전 538).

 

이때 포로에서 귀환하여 스룹바벨의 지휘하에 재건된 성전이 제2성전인데,

 

곤란한 상황중에서 선지자 학개, 스가랴의 격려에 의해 B.C. 515년 완성되었는데,


그것은 제1성전에 비하면 규모도 적고, 볼품없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팔레스티나 및 디아스포라에 있어서의 전유대인의 종교적 중심이 되었다는 의미에 있어서

 

유대인들에게 중대한 위치를 차지했고, 세계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순례를 했습니다.

 

 

 

 

 

탈무드에 의하면 이 성전에는 솔로몬 성전에 있던 것이 여럿 부족했다고 하는데요

 

언약궤, 성화(聖火), 셰키나, 성령, 우림과 둠밈 등이 그것입니다.

 

때문에 지성소 안은 비어 있었습니다.

 

 

 

 

 

 

이 제2성전에 있어서는 예배는 의식화되었고, 회생 제사가 중시되었는데,

 

B.C. 169년시리아(수리아)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에 의해 약탈되었고,

 

심지어 우상예배로 성전을 더럽히기까지 했죠(I 마카 1:21 이하, 4:38, II 마카 6:2 이하).

 

마카비 가문의 유다 마카바이오스는 그리스인들의 지배에서 독립을 꾀했고, 마침내 성공을 했습니다.(I 마카4:36 이하)

 

그는 또한 장래의 공격에 대비하여 성전 외측의 방어공사를 했습니다(6:7).

 

후에 이 성전은 로마군에 3개월 동안 포위된 후,

 

대속죄일에 로마의 폼페이우스(Pompeius Magnus)에 의해

 

B.C. 63/62년 지성소까지 유린되었다.

 

 

 

 

 

 

 

3. 헤롯성전(Herod's Temple)

 

제2성전은 전1세기까지는 볼품 없는, 전쟁으로 상한 성소로서 남아 있었습니다.

 

이것을 한 시대의 가장 장려(壯麗)한 건축물의 하나로서 완성한 것은, 헤롯대왕이었습니다.

 

그의 성전수축계획은 제20년(헤롯의 치세의 제 17, 또는 18년)에 개시되었고


수축의 대부분은 10년 이내에 완성했지만, 추가 공사는 그 후도 오래 계속되었습니다다.

 

헤롯 성전은 높은 대지 위에 세워졌고, 주위는 원주와 아름다운 문으로써 둘러 싸였으며,

 

빛나는 대리석의 아름다움은 멀리 수 km의 땅에서도 바라볼 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헤롯은 성전의 본전의 크기는 그대로 해,

 

솔로몬 성전의 복원으로서 세워진 포로귀환 후의 성전을 따랐고,

 

또 그 전반적인 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 뜰의 남동의 사면(斜面)을 묻고(솔로몬 시대에도 이미 착수되어 있었는데),

 

튜로페온(Tyropoeon-valley of the cheesmaker)의 골짜기와 성전 구릉과의 사이를 메우고, 동과 서로 높은 돌담을 쌓아,

 

성전뜰의 넓이를 솔로몬시대의 2배로 확장했다.

 

이것은 지금의 하람에쉬 샤리프로서,

 

남북 500m, 동서 300m의 약간 남측의 좁은 불규칙한 장방형이었고,

 

면적은 14ha로, 이것은 예루살렘 구시가의 약 1/6의 면적을 차지했습니다.

 

 

 

 

 

 

 

이후 유대인들의 잦은 반란을 겪은 로마군은

 

불안요소의 제거하기 위해 성전을 점령하고, AD 70년 완전히 불살라 버렸습니다.

 

일곱가지의 촛대, 기타의 성스런 기물들은 승리품으로 로마에 옮겨졌고,

 

그것들은 디도(티투스 Titus, Flavius Vespasianus 39-81,로마황제, 79-81 재위)의 개선문의 부조(浮彫)로 되어있다.

 

헤홋 성전의 멸망일은 아빕월의 9일로서,

 

이것은 제1성전 멸망과 같은 날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이후, 이사건을 슬퍼하는 금식의날로서 각지의 유대인에 의해 지켜지고 있습니다.

 

 

 

 

 

이후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는

 

하드리아누스(Hadrianus, Publius Aelius 76-138, 로마황제, 117-138 재위)에 의해

 

로마식의 신전이 건설되었고,

 

아라비아 시대(기원 7세기)이래,

 

이슬람의 사원인 [암석의 돔]이 세워져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출처 : 디럭스 바이블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