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의 역사적 배경과 교재의 유형 분석
김철한 국제기독교언어문화연구원 후원대표 오목천교회 담임목사
Dr. Chul Han Kim. 1999. Historical Background of Bible Studies and Typical Analysis of Bible Teaching Materials. Collected Papers on Christian Language Culture. Bible studies can be found to have played an important role in recognizing the God's plan and guidance toward man and taking a living attitude according to the will of God for man in Jesus Christ.
And this paper is to analyze the historical process of Christian education through inquiring into historical background of Bible studies on the basis of periodic typical analysis of Bible teaching materials. (Paster of Omok-Chun Church in Soo-won)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경공부는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을 발견하고 그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삶을 반응시키는데 절대적인 표준이 되어 왔다. 성경공부의 도구로 쓰여지는 교재의 유형분석에 앞서 성경공부의 역사적 배경을 시기별로 고찰하므로 신앙교육의 흐름을 이해하기로 한다.
성경공부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할 때 왜 이스라엘 민족의 성경공부- 유대 공동체로부터 시작하는가? 루이스 쉐릴은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을 중심한 교육을 히브리인의 교육과 유대인의 교육으로 구별하였다1) . 그는 구약시대의 시대구분을 통상 바벨론 포로를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데 기독교 교육학자들은 모두 이 시대를 구분법으로 따르고 있다2) . 이와 같은 구분에 대해 알아야 할 사항은 토라를 중심한 매를 말한다는 점이다.
구약학자들은 유대이즘이 형성된 것은 에스라 때라고 보며, 토라3) 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포로 후기라 하여 의견을 제시한다. 즉, 토라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포로기가 끝나면서 돌아온 에스라로 본다. 전승에 따르면 서기관들이 에스라의 뒤를 이어 토라를 해석하고 가르쳤다. 매주 사람을 모아 도시와 농촌에서 토라를 읽고 설명했다.
주전 27O년 서기관의 영향도 종언을 고하고 주로 평신도들이 모여 독자적으로 196년까지 토라를 가르쳤다. 그 이유는 이 때에 산헤드린이란 조직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토라는 점점 귀중한 책이 되었다. 정치적인 여러 이유로 성전제사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주전 4세기경 토라가 완성된 때로부터 주전 167년 마카비 폭동이 일어나기 중간 어느 시기에 사람들의 관심은 성전에서 토라로 옮겨졌다 마카비 운동의 성공, 회당의 발전, 그리고 예루살렘과 디아스포라에 있는 학교의 설립으로 인해 토라는 더욱 더 많이 읽혀졌다. 회당에서의 토라 공부는 성전예배가 줄 수 없는 그 무엇을 주었다. 그래서 문서가 예배행위를 대신해서 관심을 가지게 하는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 사실이 성전 파괴 이후 (주후 70년)에도 유대교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
토라 경외사상이 성전예배를 대신했다. 제사장은 랍비에게 자리를 양보하게 되었고 회당은 성전을 보완하는 역할을 했다. 유대 공동체는 책(성경)의 종교가 되었다4) .
여기서 기독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유대인의 교육이다5) .
기독교의 창설자는 유대인의 가정 안에서 자랐으며, 유대인의 학교를 다녔다. 기독교는 유대적인 전통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거기서 영감을 받아 왔고 기독교 세계를 이끌어 온 것이다6) .
히브리인의 교육은 비형식적인 교육으로 생활의 적용을 위한 것이었고, 유대인의 교육은 형식적 교육이 시작되었고 회당제도가 출현하였다. 전자의 교육기에서는 생활의 한 복판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특정한 교사가 없었다. 초기 히브리인의 교육은 가정 안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위하여 교사의 역할을 하였고, 가정 밖에서는 예언자와 제사장들이 장년교육을 담당하였다7) . 확실히 성경공부가 대체로 민족적인 관심으로 강조된 것은 유대인의 교육기이다. 따라서 기독교 성경공부의 기원은 유대공동체의 성경공부에서 시작하게 된다8) .
유대공동체를 시작한 사람들인 율법 수여자들, 제사장들, 예언자들은 성경의 사람들이었다 포로기간 중 유대인들은 재앙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의 말씀을 수집하고 진지한 마음으로 뉘우치고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정했다. 모든 불신과 이방사상을 끊어 버리기로 작정하고 율법으로 돌아서게 하였다. 민족적 위기 속에서 신앙을 끝까지 고수하려는 고난의 종들이 토라 혹은 율법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율법을 중심으로 모이는 집단인 유대공동체는 경전ㆍ회당 랍비라는 세 기둥으로 성장하고 유지되었다. 이 세 기둥은 모두 다 성경공부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경전 - 성경공부의 자료
회당 - 성경공부의 장
랍비 - 성경공부의 인도자(교사)
회당에서의 성경공부는 6-10세 사이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초등학교 BETH HASEPHER(성경의 집)이 있고, 10세 이상의 소년과 장년을 대상으로 하는 중등학교 BETH TALMULD(설명의 집)과 고등학교 과정의 BETH HAMIDRASH(연구의 집)이 있다. 이상의 세 학교에서 가르친 교사들은 최상의 교사를 향해 현자(Haakma), 그 다음의 교사를 학자서기관(Sopher), 아래 교사를 선생(Hathan)이라고 불렀다. 이들을 통틀어 마을에서 랍비라고 부르기도 하였다(요 3:2). 사실 랍비란 말은 선생님이란 뜻인데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에는 랍비란 말이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랍비들은 바리새파에 해당되는 사람들이다9) .
회당에서의 성경공부는 질의문답식과 요리문답식을 병행하였고, 이러한 방법으로 그들의 생활 내용에 파고들었으며 일정한 방법으로 율법을 반복ㆍ암송ㆍ실천하였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율법통독, 율법강해, 요절암송, 율법교독, 문답법의 류법(類法)이 사용되었다10) .
그들은 율법이란 것으로 그들의 혼을 묶어서 교육을 통해 그것을 다음 세대로 전하면서 고난과 박해를 이기는 힘을 길렀던 것이다11) . 로빈슨(Robinson)은 「구약의 종교적 이상」이라는 책 속에서 토라의 위치를 보여준다. "율법은 유대교의 헌장이요 유대교를 지탱해 준 힘의 근원이 였다. 주후 70년경 유대교의 제도는 거의 다 파괴되고 말았다. 그러나 율법은 새로운 유대교를 창조해 내는 위력을 보여 주었으며 국가ㆍ도시ㆍ성전이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각각의 회당에서 예언서가 덧붙여진 율법서를 읽음으로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맺은 계약이 모든 유대인들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새겨졌다" 말씀에 대한 교육이 있는 한, 그들은 살아남는 민족이 되었고, 유대교의 각 종파 역시 공동의 적과 싸움에 있어서 오직 한 지를 중심하고 결속하였다. 그것은 바로 토라와의 계약이었다12) .
회당뿐만 아니라 가정에서의 교육은 일찍부터 부모의 책임이었다. 자녀의 교육을 책임 맡은 교사로서의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의 행동에 대한 책임까지 맡고 있었다. 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책임이 맡겨진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부여된 것이었다. 쉐마는 부모들에게 있어 교육의 현장이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로 시작되는 쉐마의 내용은 신명기 6:4-9이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이든지, 길에 행할 때이든지, 누웠을 때이든지, 일어날 때이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초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부모는 신앙교육에 있어서 하나님의 대리자였다. 아버지는 가정에서 그의 자녀들을 즐거이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가르치는 쉐마 교육의 상징 물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것을 기억시키는 기억의 틀이었다.
① 지지트(Zizit) - 옷술을 의미하는데, 신명기 22:12- '옷의 4귀에 술을 만들지니라'에서 기원을 찾는다. 술은 말씀을 의미하고 술을 옷에 단 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지키기 위하여 그 말씀 속에서 산다는 것이다.
② 테피린(Tefillin) - 신명기 6:4-9절을 이마와 팔뚝에 매었다. 이것은 작은 양피지 가죽으로 만들었고, 말씀을 넣어 두었다. 네 개의 성경구절 출애굽기 13:1-10, 출애굽기 13:11-16, 신명기 6:4-9, 신명기 11:13-21을 가죽통에 4부문으로 나눠 부쳤다. 이것을 하나는 이마에 하나는 왼손에 매었다.
③ 메주자(Mezuzah), 즉 문설주 문간을 의미하는데 나무와 금속으로 만든 작은 통에 신 6:4-9 등을 기록하여 넣고 그것을 문지방에 달았다. 누구든지 나갈 때와 집안으로 들어올 때 메주자를 손가락으로 만지고 축복을 기원한다. 이는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언제 어디에서든지 강론하며 말씀과 동행하라는 교육적 실천이었다.
④ 타리트(Tallit)라는 기도용 쇼올을 걸치는데, 이는 율법에 대한 의무를 기억시키는데 목적이 있다13) . 히브리 대학의 타드모어(Tadmore) 교수에 의하면 지금도 이스라엘 가정에서는 역사적인 기억을 한다고 한다. 단순히 그들에게 성경구절만 암송시키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암송시키는 이유는 3,500년 전에 출애굽의 감격을 오늘의 삶 속에 그들의 역사적 운명 속에 기억하게 하고, 다시 그들의 미래신앙 속에서 되새기게 하는 신앙적 차원에서 역사적인 회고를 하는 것이다. 즉, 단순한 암기가 아니라 그들의 민족의 구원사적 과거를 다시 기억하므로 그 빛을 따라 내일의 미래를 결정짓게 하는 역사적인 교육으로 지금까지 똑 같은 교육을 하고 있는 것이다14) .
제2장기독교회사에 있어서의 성경공부
2. 1초대 기독교에 있어서의 성경공부
처음 기독교는 단지 유대교의 여러 분파들 중의 하나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다른 새 신앙의 공동체였다. 그런데 기독교는 유대공동체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천년 동안을 지배하여 오는 나사렛 예수의 교훈과 생애에 나타난 사상과 규범과 이상은 다름 아닌 고대 히브리인의 영적 경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15) . 즉, 예수를 비롯한 모든 사도들이 유대공동체의 전통과 교육방법을 따라 율법을 비롯한 성경공부에 뿌리를 둔 이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교에 뿌리를 둔 기독교가 유대공동체의 이념을 뛰어넘어 새로운 공동체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출애굽 사건이 이스라엘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게 하고, 유대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 응답으로 나타났다고 보며, 교회공동체를 이루는 존재론적 사건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경험한 구원의 감격으로부터 왔다고 본다16) . 그리고 처음 기독교의 형성과 확장을 말해 주는 사도행전을 참고하면 교회의 성장은 성령의 권능과 성경공부의 결과이다.
초대 교회는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하나로 합쳐진 교육의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상 이들을 구별해서 생각하는 것은 실제적인 면에서 편리하다고 생각한 것뿐이다초대 교회의 성경공부는 구약 성경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었다. 교회는 날마다 전도하고, 날마다 쉬지 않고 가르쳤다(행전 5:42). 오순절 성령갈림 이후, 유대교에 뿌리를 두었던 베드로가 외친 설교(행전 2:14-36), 스데반의 설교(행전 7:1-53), 빌립의 가르침(행 8:26-39), 그리고 바울의 케리그마(행전 13:13-41)는 구약성경에 대한 새로운 디다케였다.
사도들이 한 일을 묘사하려면, 한 마디로 부족하다. 그들은 설교자요 동시에 교사였다. 물론, 설교는 설교요 교육은 교육이다. 그러나 훌륭한 설교는 역시 교육이요 훌륭한 교육에서는 설교자의 선포의 소리가 들린다. 이 두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봉사인 점에서 마찬가지이다. 가르치는 내용이나 설교하는 내용이 다 예수 그리스도이어야 하므로 설교와 교육은 그 내용을 같이 한다17) .
교회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견고해 갔다. 베뢰아 인은 날마다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을 상고했고(행 17:11), 두란노 서원에서도 성경을 가르쳤고(행 19:9-10), 성경을 가르치는 일 또한 바울이 차세대 신앙계승자인 디모데에게 부탁하였다(딤후 4:2).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는 역사를 따라 성경 말씀 속에서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고 거기서 역사하는 구원의 복음을 대면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죽어있는 문자나 의문이 아니었다. 케리그마와 디다케는 언제나 신앙공동체인 교회의 본질이었다. 스마트는 말하기를 '오늘의 완전한 교역에는 반드시 설교와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18) 이는 초대교회가 얼마나 케리그마와 디다케가 합쳐진 내용을 가지고 설교하고 가르쳤는지를 떠오르게 한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은 세 가지 종류의 모임을 가능하게 하였다.
첫째는 기도, 시편 낭독, 찬송, 영적 노래들이 담긴 모임으로, 때로는 사도들의 편지들이 가르쳐졌고 읽혀지는 모임이 되기도 하였다.
둘째는 주의 만찬에 참여하여 공동의 식사를 하는 모임이었다.
셋째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은 서로 함께 일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는 신앙의 전파 수단으로 교육을 강조하였다. 초대교회에 있어서 교육은 설교와 전도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다19) . 그러나 후기 초대교회(2세기 말)로 넘어가면서 교회의 카데키시스(Catechisis) 교리문답 교육이 자리를 잡았다20) . 당시의 카데키시스의 내용은 12사도의 교훈을 비롯해 사도신경, 그리고 이레네시우스 안디옥의 데오비오스 닛사의 그레고리어스, 큐리어스, 크리소스톰, 어거스틴 등의 교리문답 강의들이 있다21) . 이는 처음 교회의 디다케를 분해하여 버리는 변질이었다22) . 초신자 세례학교23) 는 2세기말과 3세기 어간에 교리문답학교(Catechetical School)24) 로 발전하고, 후에 감독학교(Cathedral School)와 성당학교(Episcopal School)로 발전하여 기독교 학자, 지성인 교육, 성직자 교육기관으로 되었다. 이러한 학교들은 초기교회 혹은 4세기 반경까지 규범과 정경화된 성서의 원칙에 따라서 고도로 제도화되었다25) . 결국 교회의 성경공부는 개종자들을 위한 교회교육의 방법으로 사용되었고, 공동체 전체를 포괄하는 성경공부는 되지 못했다. 그리고 헬라 학문의 영향으로 성서를 영해방법과 문자주의26) 로 해석하는 경향을 낳게 되었다27) .
영해방법의 해석은 오리겐 이후로 사실 오늘날까지 교회 안에서 꾸준히 사용되는 방법이기도 하지만, 본문의 본래적 의미를 상실할 수 있으므로 잘못된 결론에 이를 수 있는 위험이 있다. 영해는 성경에서 하늘의 의미를 찾는 것으로 본문으로부터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해석이 아니라(exegesis) 오히려 본문 안으로 의미를 부여해 넣은 해석(eisegesis)이다28) . 성경해석은 문자적 의미를 벗어나지 못했고 오히려 영해해석의 방법이 더 큰 영향을 발휘했다. 헌터는 이를 가리켜 역사의 불행이라고 지적한다29) .
여기서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감정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알렉산드리아의 해석방법이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게 되고 교회는 역으로 교권주의와 형식주의가 진리를 대치하게 되었다.
2. 2중세 기독교에서의 성경공부
공식적으로 중세기의 출발은 476년 서방 로마제국이 야만족의 침입에 의하여 멸망된 것을 기점으로 그 기원을 삼는다. 다른 말로 어거스틴 이후 종교개혁까지를 일컫는 말로 이 시기를 '암흑기'(Dark Age)라고 부른다. 제도로서의 교회를 의미하기도 하는 이 시기는 교회가 성경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교회가 성경을 번역하고 성경연구를 많이 시행하였으나 그것은 오직 성직자에게만 제한되었다. 그것도 교회의 교리를 증거로 삼는 목적(Proof Text)으로 연구되었다30) . 대중들에게는 언어에 의한 가르침이 사라지고(성경공부ㆍ교리교육), 예배의식 또는 연극ㆍ건축 등으로서의 신앙교육이 이어지게 되었다. 대중은 성경에 대해 전적으로 무지하게 되었다.
중세는 수도원 운동이 활발했다. 수도원 운동은 사회적 계급의 차이, 교회의 변질, 문맹화되는 성직자, 사회적 불안, 국가종교가 되어버린데서 오는 신앙가치의 전환 등을 배경으로 일어났다31) . 수도원 운동은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여 구원의 방주역할을 하였고, 후일에도 사상적 근원지로서의 중간역할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중세의 수도원 교육의 방법은 청빈ㆍ정결ㆍ순종을 목적으로 도제제도ㆍ기술교육, 명상과 묵상, 상징주의를 사용했다. 수도원은 학자의 배출과 성직자를 양성하는데 온 힘을 기울였으므로 사회의 지도층을 배출할 수 있었다32) .
하지만 수도원 운동으로 인해 학교와 도서관이 설립되었다. 그러나 성경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특히, 신플라토주의와 아리스토틀 철학은 지적성장의 문을 열게 하므로 르네상스의 탄생을 가능케하였다. 르네상스는 신앙에 대한 이성의 도전을 부추겼고, 봉건제도에 대한 민주주의의 도전을 부추겼다. 따라서 성경을 새로운 안목으로 보게 하였다. 이것은 후에 종교개혁을 초래하였다33) .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를 반대하면서 1517년 10월 31일에 빗턴 베르크 교회 게시판에 95개항의 논제를 붙임으로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항의문의 핵심은 제36조 "어떠한 크리스찬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해서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였다34) . 은총이란 신과 죄인과의 인격적인 재결합이다. 인간이 얻어야 할 어떠한 공적도 필요하지 않다. 인간은 다만 은총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신관계는 객관적 관계가 아니고 인격적 관계이다. 루터는 이것을 '믿음'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받아들여졌다는 메시지, 성서의 메시지를 전적 수용하는 것으로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한 양적 상대적 요소에 대항한 것이다35) .
이러한 종교개혁의 능력과 용기의 근거는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얻는 구원의 확신을 받은 결과였다. 중세 1000년 동안 대학과 수도원학교와 본당학교 등 모든 교육기관들이 획일적으로 교권에 의한, 교권을 위한 교육제도로 굳혀졌을 때, 성경공부를 통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는다", "만인 제사론"의 신앙의 확신 속에서 종교개혁운동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확신은 1513년 시편연구로 시작된 성경공부로부터 1514년 가을 탁상체험에서 되어진 성경공부의 결과였다.
루터는 중세기 성경해석의 방법(문자적ㆍ도덕적ㆍ영적ㆍ신비적) 4가지를 떠나 문법적이며 역사적인 본문공부를 통해 분명히 나타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역점을 두었다. 그리고 영해적인 해석을 원숭이 장난이라고 일축했다. "알레고리적으로가 아니라 문법적으로!" 이것이 루터의 원리였다.
다른 한편 루터의 성서해석은 "기독론적"이었다36) . 루터는 "만일 우리가 성경을 바르게 취급하려면 우리의 전노력을 확실한 어의를 찾는 일에 경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루터가 이론에 관해서는 건전했으나 실제로는 늘 그의 이론에 일치되지 못했다.
종교개혁운동은 루터의 성경번역으로 더욱 힘을 얻었다. 이 종교 개혁운동은 쯔빙글리 (1484-1531), 볼링거 (1504-1575), 칼빈(1509-1564) 등에 의해서 전 유럽에 확산되었다. 칼빈은 그의 치밀한 학문과 정치적 조직력과 과감한 실천력으로 제네바를 종교개혁의 표본과 중심지로 삼고 개혁운동을 이끌었다37) .
칼빈사상의 중심은 예정의 교리보다 신론에 있다. 칼빈에 따르면 사랑의 신은 선택을 받은 사람에 게만이 자기를 계시한다. 선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처음부터 신의 사랑 밖에 놓여 있다. 여기에서 우리가 잘 아는 섭리와 예정에 관한 교설이 나오게 된다. 칼빈은 이 부분에서 선택을 강조하게 되고 구원의 확실성을 갖는 신앙을 얻게 하였다38) . 이 모든 것의 대표적인 저서 「기독교 강요」는 성경공부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성서론 1권 6-10장까지 다룬다. 성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영접하고자 하는 이에게 지침서와 선생님 구실을 한다(6장). 성서는 성령의 증거로 확인되어야만 한다(7장). 인간의 이성이 허락되는 한도에서 확실한 증거가 성서의 신빙도를 가까운 장래에 확실히 해 줄 것이다(8장). 성서를 팽개치고 계시만 바라보는 광신자는 모든 신앙의 원칙을 져버린다(9장). 모든 미신을 바로 잡는 성서가 모든 이교도 신을 누르고 진실하신 하나님만을 정립하게 한다. 칼빈의 성서론을 정리해 보면 성서는 신학과 신앙을 위한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성경의 권위는 성령의 내적 증거에 의한 것이며, 성경은 성령의 조명으로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칼빈의 성경공부의 방법이 드러나는데, 그는 성경을 문법적으로 역사적으로 공부하였으나, 성령의 내적 조명에 의지하였던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만사를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해서 처리해 나가기를 원했던 사람이다.
종교개혁자들이 그들의 운동을 진행시키면서 만든 많은 신앙고백서ㆍ교회문답서 신학논문 등은 한결같이 성경공부의 결실이었다. 다시 말하면, 개혁자들은 성경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한 것이지, 신조 등으로 개혁한 것이 아니다39) . 분명히 개혁자들이 수 많은 난관을 뛰어 넘으면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은 성경공부의 결과였다. 또한 종교개혁은 근대로 내려오면서 경직된 개신교회의 변화를 위해 경건주의와 대각성 운동을 낳았다. 이 두 주요운동이 공동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성경공부였다.
2. 3종교개혁기 이후의 성경공부 -웨슬리를 중심으로-
18세기 영국의 시대적 상황은 3가지로 표현된다. 첫째는 이성의 시대이고, 둘째는 산업혁명의 시대, 셋째는 종교적 부흥의 시대이다40) .
웨슬리가 영국에서 일으킨 부흥운동은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경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종교개혁 이후, 17세기 개신교 전통주의가 스클라주의적ㆍ교리적 경직성을 띄게 되자, 스페너는 가슴으로 뜨겁게 체험하는 신앙의 열정을 사모하게 되었다. 그는 본격적 경건주의 운동이 된 1605년도 판 「경건의 열망」이란 책 속에서 6가지 교회개혁 방법론을 제시했는데, 모든 신자들이 성서전체를 열심히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을 강조했다41) . 스페너의 경건 운동은 다시 프랑케에 의해 꽃을 피우게 되고, 영적 경험과 경건ㆍ선교를 강조하게 되었다42) .
웨슬리에게 영향을 준 경건주의는 모라비안 운동이었다. 그러나 그 영향에도 불구하고 웨슬리의 경건주의는 스페너, 프랑케, 진젠돌프 등의 루터신학적 경건주의와는 다르게 발전했다. 교회사가 데이비스는 웨슬리의 감리교 탄생을 3단계로 해석한다.
제 1기 - 옥스포드에서 일어난 운동(1725-1735) -성경을 열심히 읽는 모임
제 2기 - 북미 죠지아주 선교시대(1735-1738)
제 3기 - 런던에서의 회심(1738-1740) -옥외 설교의 시작
웨슬리는 전통적 의미에 있어서 전통주의자였다 웨슬리는 자신을 '한 책의 사람'이라 지칭했고 신앙체험을 중요시했다. 웨슬리는 성서가 그의 신학적인 글이나 교리적 글의 원천적 자료였다43) . 그는 그의 일기 속에서 말하기를 "나의 근거는 성서이다. 그렇다 나는 성서 고집쟁이(Bible-bigot)이다. 나는 모든 일에 있어서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성서를 따른다"고 하였다44) .
웨슬리는 성서를 ①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서 ② 구원의 도구로서의 성서 ③ 성서를 통한 하나님의 계시로서의 성서로 보았다.
월리엄 아네트는 웨슬리 성서해석의 중요한 원리를 다음과 같이 집약하였다. ① 성서의 문자적 의미가 강조되어야 한다. ② 문맥과 연관시켜 해석한다. ③ 성서는 성서와 비교하면서 해석하되 성서전체에 흐르고 있는 중요한 진리에 대해 해석한다. ④ 체험과 전통에 비추어서 해석한다. ⑤ 성서가 말하는 것을 이해하고 전달하기 위해서는 이성을 활용해야 한다. ⑥ 성서해설은 쉽고 복잡한 추리나 철학적 사변을 피하고 실제적이라야 한다. 웨슬리는 성서를 상고한 다음에는 그 뜻을 이성과 체험과 전통에 의해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로버트 터틀은 웨슬리의 운동을 초기성장기, 초기교역기, 얼더스 케이트 체험기, 부흥운동 기 등 4기로 나누었는데, 이 4기가 모두 성경공부와 철저히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45) . 그 결과 웨슬리는 16세기 이후에 기독교의 실용적인 면에서 큰 영향을 준 인물이 되었으며, 그의 개혁운동은 실제적으로 전세계에 파급되었다46) . 이 파급은 근대선교의 시작을 가져왔다.
영국에서 대각성운동으로 생긴 복음주의자들은 경건주의적 신앙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이들의 신앙은 사회참여를 주장하는 사람들 이상으로 사회개혁과 활동 및 선교사업에 헌신적으로 봉사하여 역사적인 변혁을 가져왔고, 선교지역에서도 교육과 의료 등 온갖 문화ㆍ사회면에서 눈부신 업적을 남겼다. 그것은 성경공부에서 복음을 재발견하고 복음의 능력 안에서 교회의 사명을 발견하고, 그것을 수행함으로써 사회를 개혁한 것을 의미한다. 성경공부의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경건주의 운동이 일어났던 시대와는 또 다른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상황에서 일어났던 대 각성운동은 성경공부를 중심한 운동이었는데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키고, 그 여파로 해외선교의 황금기를 이루게 되었다. 한국에 정식 선교사로 입국한 아펜셀러나 언더우드는 무디 말년에 심혈을 기울인 Student Volunteer Movement for Foreign Mission의 영향을 받은 인물인 것을 볼 때, 저들은 자연스럽게 성경공부에 친근해 있었고, 그것에 의해 한국 교회는 성경공부를 열심히 할 수 밖에 없는 뿌리를 찾을 수 있다47) .
제3장성경공부 교재의 유형과 분석
3. 1교재 유형분류
교재의 유형분류는 간단하지가 않다. 형식면에서 개인용ㆍ그룹용이 있고 또는 대상에 따라 계층별 단계별로 쓰여진 것도 있다. 한편 세분화되지 않은 것들이 있다. 목적에 따라서도 교재유형이 다르고 각 권별 또는 주제별 성경전체를 구속사적 관점에서 전개하는 통전적인 교재들이 있다48) .
박종순 목사는 교재유형의 분류를 접근방법으로 분류하는데, ① 방법론적인 교재들- 지도방법을 말하는 교재 ② 조직신학적인 접근 방법의 교재들 ③ 성서본문중심의 방법의 교재들 ④ 역사신학적 접근방법의 교재들 ⑤ 심리학적인 접근방법의 교재들로 그 유형을 언급한다49) .
이 분류방법과는 다르게 민영진은 세가지로 교재의 성격을 분류하여 유형을 나눈다.
첫째는 성서가 해답집으로서 사용되는 교재이다. 이 부류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교재들은 아가페 선교회의 아가페 7단계 성서과정과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생활연구 전 10권과 그리고 한국대학생선교회의 신앙생활의 성장을 위한 10단계 성서교재를 든다.
둘째는 성서 자체이해를 위한 교재로서 한국루터교회의 베델성서 연구, 가톨릭성서모임의 성서 40주간 시리즈, 대학생 성경읽기선교회의 평신도를 위한 자율적 성서연구문제집 시리즈, 아가페선교회의 젠센 40시리즈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셋째는 교회의 신앙고백적 유산과 독자의 역사적 경험을 대면시키는 교재로서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를 들었다50) .
3. 2성서가 해답집으로 사용되는 교재
성서가 해답집으로 사용되는 교재 중 아가페 7단계 성서과정은 무디대학의 성서교재의 한국적 변형이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학적 입장을 견지하면서 내용을 전개한다. 이 교재는 단순히 성서 각 권의 내용을 소상하게 주입시키려는 것보다는 성서 66권의 통일성을 찾고 구약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와 신약이 기억하는 그리스도를, 그리고 그의 구속사업과 우리 자신의 발견과 변화를 촉진시키려는데 역점을 두고 있다51) .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의 성장을 위한 10단계 성서교재라고 불리는 한국대학생선교회 교재는 암송할 요절과 함께 본문성구 찾기, 메시지 적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그룹별로 진행하도록 짜여 있다52) . 무디교재나 C. C. C 교재의 장점은 기독교 신자들이 자기들의 믿는 바 신조에 대하여 성서적 근거를 확인하게 해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 교재는 성서가 기독교인들에게 생활과 믿음의 규범이 된다는 것을 은연 중 인식시킨다. 또한 자기의 믿는 바를 체계적으로 증언할 수 있게 한다. 따라서 지적인 호교론을 배울 수 있으므로 반기독교적 지성사회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논증의 기틀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 교재의 단점은 무시간성에 있다. 영원불변하는 일반적 진리만을 말한다. 이런 류의 교재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혹은 독자나 장소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다시 쓰여져야 할 필요가 없다는 교재이다. 교재가 성서일 수는 없음을 간과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성경교재라 하면서 교리적ㆍ신조적 맥락에서 교재의 주제와 내용을 전개시켜 나간다는데 있다. 그 결과 성서란 신조공부에 자료를 제공하는 해답집에 불과하다는 인상마저 줄 수 있는 지경까지 갈 수 있다. 또 한편 문제되는 것은 성서에 대한 소박한 이해이다. 현대의 과학적 사고와 역사적 사고로 두뇌가 훈련된 현대인들에게 아무런 비평적 설명도 없이 성서에 사용된 수 천년의 개념과 표현방식 마저 그대로 믿도록 밀고 간다.53) 이 말은 성서의 본문과 인간의 역사, 그리고 그 역사 속에 관련되었던 사건적인 해석도 배제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무역사성이라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보는 비판이다54) .
은준관은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이들은 학습자들로 하여금 성서의 말씀과 직접 만나게 하는 총체적인 접근이 아니라, 주제설정에 따라 선택된 본문들을 여기저기서 발레하여 구조화하였기 때문에 학습자들을 성서전체의 본문으로부터 단절시켜 놓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길이 없을 것이다. "라고 말한다55) .
덧붙여 비판을 한다면, 이 유형의 교재는 학습자의 발달단계, 학습자의 경험과 요구를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세대간의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교회의 일방적 대입 및 사용은 분명히 문제를 남겨두고 있다.
3. 3성서 자체의 이해를 위한 교재로 사용되는 교재
성서 자체를 위한 교재로 사용되는 교재 중 대표적인 베델성서연구 시리즈는 교인들로 하여금 성서의 메시지를 깊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다. 제일차적인 목적은 성서를 연구하는 이로 하여금 성서전체를 개관할 수 있도록 하고, 거기에 근거하여 성서의 세계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는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56) . 구약 20과 신약 20과를 그림을 통해 효과적으로 기억시키는 기억하는 공부이다57) . 베델성서연구는 아직도 한국 교회 안에 많이 사용되는 교재로 사랑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현대의 학문적 성서연구의 결과들을 최대로 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높은 곳에 있는 줄만 알았던 성서학의 연구결과를 지상으로 내려놓아 평신도들의 것이 되게 하였다.
베델성서연구는 양식사 연구가 적용된 형식(독자들이 문자주의에 고착되지 않도록), 히브리적 사고형식(희랍적 사고와 질문을 가지고 성서를 대하지 않도록), 본문의 시대적ㆍ역사적 해석, 그리고 성서로 하여금 성서를 해석케 한다는 점이다58) . 학습방법은 예습ㆍ복습ㆍ읽기ㆍ문제 풀이 등을 학습자들이 담당한다. 베델의 장점은 이런 점에서 성경의 많은 지식을 가지게 한다. 그리고 베델 시리즈는 신앙고백적 유산들을 "구속사"라고 하는 교리로 연결시켜 계속 새로워지는 하나님의 행동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점이다. 인간의 모든 반항적 시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역사를 감지케한다. 더 나아가 교회공동체를 새 이스라엘로 자각시키며 교인 각자로 하여금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새 이스라엘로서의 자기이해에 도달케 한다. 민영진은 베델 시리즈 교재 속에 지혜 전승자료들, 찬양 전승자료들이 제외되었음을 흠으로 지적할 뿐 단점을 지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흠이 라기보다 교재의 성격 때문에 생긴 일이다. 이런 것이 제외된 이유는 거기에 하나님의 구속사가 담겨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은준관은 베델성서연구는 우주사와의 무연관이 문제이지만 더 나아가 성서본문과 학습자가 만나고, 그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만나게 하는 경험은 소홀히 하고 있음은 피할 수 없는 약점이라59) 고 한다. 이는 본 교재가 많은 이해를 주는 만큼 삶의 생활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이 유형의 교재의 대표적인 것은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이다. 평신도 교육과 관련되는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 전문가들의 주석적 강의도 아니고, 종교체험의 교환도 아닌 하나님 신앙에로 인도하는 과정으로서 해석한다. 실험적 성격을 강조하는 한스 웨버 성경연구는 성서 자체로부터 출발하여 우리의 상황과 삶에 연관시키는 해석과 함께 때로는 우리의 삶과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출발하여 성서적 해석에서 그 의미를 찾으려는 방법도 사용하는 것이 그 특징이기도 하다. "종이", "그림 도구", "미술 작업" 등의 시청각적인 매체와 강의, 그리고 그룹 토의와 같은 다양한 교육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장점이다. 한스 웨버의 성경연구 방법은 본문 중심만도, 상황적 경험 중심만도 아닌 3차원적 접근방법이라 해석할 수 있다.
문학적ㆍ역사적 연구방법
신학적ㆍ명상적 연구방법
위기의식과 회개를 가져오게 하는 연구가 바로 그것이다60) .
문학적ㆍ역사적 연구는 독자를 무시하고 성서의 객관적 지식을 준다.
신학적ㆍ명상적 연구는 일반적인 진리탐구가 되어버릴 염려가 있다.
위기와 회개의식을 가져오는 성서연구방법은 본문의 메시지와 문맥에 대한 관찰을 등한히 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이 세가지 방법을 적절히 서로 보완함으로써 개별적인 방법들이 지닌 단점을 보완하는 것이다. 우리는 웨버에게서 성서연구는 신앙고백적 유산과 우리의 역사적 경험을 대면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교훈을 배운다61) . 웨버 자신의 30년 걸친 성서연구 실험과정을 집대성한 것으로 그가 펴낸 교재 중에서 가장 방대한 것은 (실험 성서연구)이다62) .
그러면 웨버의 성서연구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그 단점은 무엇인가? 그것은 성서 66권을 통하여 전개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항시 단절되기 쉽다는 점이다. 또 단편적으로 끝날 위험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63) . 한스 웨버의 성서연구는 교육학적 방법론으로 최선의 시도이다. 다른 유형의 교재들이 정적이라면, 이 교재는 동적이고 독자들을 공격하고 도전해 온다. 하지만 시도적인 교재의 빈약문제, 많은 준비의 문제, 교육공간의 구조, 훈련받은 지도자가 더욱 요청되는 점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제4장결론 및 제안
한국 교회의 한국교회적인 교회성장 또는 신앙생성의 한 방편으로 실시되고 있는 성경공부 교재를 작성하기 위한 전반적인 내용을 살펴보았다. 성경공부사에서는 성경공부가 신앙의 새로운 개혁을 이루어 나가는 중요한 요인이었음을 보았다. 또 성경공부 교재의 유형과 분석에서는 그 장점과 단점의 문제가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새로운 교재작성의 틀이 제시되어야 할 것을 보았다. 무엇보다도 개체교회에서 필요한 교재작성 원리는 와이코프의 커리큘럼론에 근거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교재를 작성하는 일반적 원리로 보면 좋겠다. 교재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도 신학적으로 말씀과 학생과의 만남이 극대화되도록 해야 겠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발달심리 교육학적 원리를 응용해야 하겠다. 더 나아가 개체교회의 신앙과 전통을 반영하며, 그 지역수준에 맞는 교재를 작성하여 현장감이 있도록 해야 한다. 개체교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의 관심과 욕구에 맞춘 교재가 된다면, 그 교재는 신앙을 생활현장으로 옮기는 생활화의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본 논문을 결론 짓기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한다.
첫째, 성경공부시 성경공부 인도자는 본 교재의 과정을 이끌어가는 촉진자이다.
성경공부시의 각 단계를 인도하는 촉진자이므로 진리를 주입하는 자가 아니다. 오직 성경공부의 분위기와 전체적인 흐름을 유도하는 협조자임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촉진자는 어떻게 해야 대화하는 공동체를 이를 수 있을까에 관심이 있어야 한다. 가장 유능한 촉진자는 말을 적게 하고 참여자들로 하여금 말을 많이하게 하는데 있다. 따라서 학생들을 간섭하거나 지도하려 하지말고, 자기들의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 한다. 즉, 이야기가 토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피해야 한다.
둘째,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교사훈련이 필요로 한다.
즉,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잘 감당하기 위한 일반적 교사훈련이 교회적으로 있어야 한다. 교재를 잘 다룰 수 있는 교사를 훈련하되 교사가 교재에 매여서는 안된다. 교사훈련은 교사의 경험정도에 따라 과정을 단계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셋째, 성경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한다.
복잡한 삶의 환경 속에서 해답을 찾는 참된 삶의 길이 성경에 있고, 상경공부에 있음이 강조되는 교회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성경을 공부하는 교육현장의 다양화가 모색되어야 한다.
성경을 공부하기 위해 본 논문은 성경공부 특별반을 편성해서 공부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교회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여 개체교회에 맞는 성경공부 그룹을 정하여야 한다. 학습 그룹을 20명 안팎으로 정하기도 하고 또는 직분별 그룹, 직업별 그룹, 더 나아가 Task 그룹을 만들어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 그룹 형성만이 아니고 속회 또는 구역이란 조직을 이용한 공부도 중요하다. 주간 중의 시간을 적절히 활용하여야 한다.
참고문헌김철한. "개체교회 장년부 성경공부 교재작성에 관한 연구" 감리교신학교목회학박사원, 1997. 김홍기. 「죤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민영진. "성경공부 교재의 성격 분류", 「기독교사상」, 1981, 10. 민영진. "우리나라 교회에서 실시하는 평신도를 위한 성서연구의 이론과 실제", 「신학과 세계」, 서울: 감신대 출판부, 1982, 8호 박성환 외. 「베델 성서연구 교수용 교재」, 서울: 컨콜디아사, 1995. 박익수. "성서연구를 위한 새로운 교재에 대한 연구", 「신학과 세계」, 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0, 21호 박종순. 「성경공부가 교회성장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 아세아연합신학원, 1984. 반피득. 「기독교 교육」, 서울: 컨콜디아사, 1995. 은준관. 「한국교회 성서교육의 현황과 문제분석」, 서울: 유니온, 1989. 은준관. "신앙공동체와 교육 사이", 「기독교 교육」, 1995, 4. 오인탁. 「기독교 교육론」,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84. 장종철, 「기독교 교육역사」, 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3. 장종철, 「한국교회와 기독교 교육」, 서울: 감신대 출판부, 1991. 장종철, "A Teaching Ministry For The Korean Immigrant Church in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S M U, 1982. 정도량. 「성경공부 운동을 통한 한국 이민교회 성장에 관한 연구」, 서울: 규장문화사, 1988. 정웅섭. 「기독교 교육개설」,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78. 조종남. 「요한 웨슬리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3. Hener, I. C., 「폴 틸리히의 그리스도교 사상사」, 송기득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Russell, D. S., 「신 ·구약 중간 시대」, 임태수 역, 서울: 컨콜디아사, 1985. Smart, J. D., 「교회의 교육적 사명」, 장윤철 역,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60. Sherill, L. J., The Rise of Christian Education, New York The Macmillian Co, 1944. Sherill, L. J., The Rise of Christian Education, New York The Macmillian Co, 1944. Tuttle, R. G., John Wesley, His Life and Theology, Michigan: Zondervan, 1982.
각 주1) L. J. Sherill, The Rise of Christian Education (New York: The Macmillian Co, 1944), pp. 5-30. 2) 오인탁 외, 「기독교 교육론」 (서울: 대한기독교 교육협회, 1984), p. 124. 3) D. S. Russell 「신구약 중간시대」, 임태수 역(서울: 컨콜디아사, 1985), 토라란 훈육 또는 교육이라는 말로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계시를 가리킨다. 이 말은 율법이라는 말보다 계시라는 의미가 더 가깝다. 그러나 계시가 오경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토라란 이름을 모세 오경에 붙이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토라에 보여 주었던 열심은 책에 대한 열심이라기보다 책에 나타난 계약에 대한 (선민)열심이었다. 4) Ibid., pp. 46-48. 5) 유대인의 교육이란 주전 586년(바벨론 포로부터) 주후 70년(예루살렘 멸망까지)의 시기에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있었던 율법(토라)을 중심으로 한 교육을 유대인의 교육(Jewish Education)이라 부른다. 장종철, 「기독교 교육역사」 (서울: 감신 출판부, 1993), 7. 48. 6) 장종철, (1993), p. 13. 7) Ibid., p. 46. 8) 박종순, 「성경공부가 교회 성장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 (서울: 아세아 연합 신학원, 1984), p. 5. 9) 장종철, (1983), p. 84. 10) 정웅섭, 「기독교 교육 개설」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78), pp. 20-21. 11) 반피득, 「기독교 교육」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70), p. 16. 12) D.S Russel, (1985), p. 52. 13) 장종철, (1983), pp. 67-70. 14) 은준관, 「한국 교회 성서 교육의 현황과 문제 분석」 (서울: 유니온, 1989), p. 362. 15) 장종철, (1983), p, 13. 16) 은준관, "신앙공동체와 교육사이", 「기독교 교육」 (4월, 1995), pp. 132-133. 17) J. D. Smart, 「교회의 교육적 사명」, 장윤철 역(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1960), p. 22. 케리그마(설교)와 디다케(교육)의 구별과 같은 점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을 보려면 위의 책 p. 9-28을 보라. 18) Ibid., p. 28. 19) 장종철, (1983), pp. 182-183. 20) 교리문답이란 말과 세례예비생(Catechumen)이란 말이 같은 어근 헬라어의 '가르친다'는 말에서 왔다. 이 말의 문자적 의미는 귀에서 반복해서 들려준다는 뜻이다. 21) 정웅섭, (1978), p. 29. 22) 은준관, (1995), p. 135. 23) 세례예비학교의 수학기간은 2-3년이다. 이 학교의 교육목표는 지식교육이 아니라 교리와 신앙생활의 훈련이었다. 24) 학교의 목적은 지성적인 훈련으로 무장한 성직자를 만드는 것이었다. 25) 장종철, (1993), p. 189. 26) 영해해석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성서해석이 특징이고 문자적 해석은 안디옥 학파의 특징이다. 27) 박종순, (1984), p. 12. 28)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서울: 컨콜디아사, 1992), p. 48. 29) 김득중, (1992), p. 49. 30) Ibid., p. 13. 31) 장종철, (1993), p. 210. 32) Ibid., pp. 223-226. 33) 정도량, 「성경공부 운동을 통한 한국 이민교회 성장에 관한 연구」 (서울: 규장문화사, 1988), pp. 60-61 34) Ibid., p. 61. 35) Ingeberg C. Henerr, 「폴틸리히의 그리스도 사상사」, 송기득 역(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p7. 287-289. 36) 김득중, (1992), p. 52. 37) 정도량, (1988), p.63. 38) Ingeberg C. Henerr, (1983), pp. 330-336. 39) 박종순, (1984), pp. 19-20. 40) 김흥기, 「죤 웨슬리 신학의 재발견」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3), p. 18. 41) Ibid., p. 15. 42) Ibid., p. 27. 43) 조종남, 「요한 웨슬리의 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출판사, 1993) p. 80. 44) Ibid., p. 85. 45) Robert, G. Tuttle, John Wesley, His Life and Theology (Michigan: Zondervan, 1982), pp. 12-14. 46) 박종순, (1984), p. 29. 47) Ibid., p. 33. 48) 박익수, "성서연구를 위한 새로운 교재에 대한 연구", 「신학과 세계 21호」 (서울: 감신출판부, 1990), p. 71. 49) 박종순, (1984), pp. 136-140. 50) 민영진, "성경공부 교재의 성격 분류", 「기독교사상」 (10월호, 1980), pp. 50-57. 51) Ibid., p. 51. 52) 은준관, (1983), p. 296. 53) 민영진, (1980), pp. 56-57. 54) 은준관, (1983), pp. 297-298. 55) Ibid., p. 298. 56) 말린 롤핑의 강의, 「베델성서 시리즈」 (강습회, 1987년) 57) 박성환, 김선희, 「베델성서연구 교수용 교재」 (서울: 컨콜디아사, 1995), p. 10. 58) 은준관, (1983), p. 297. 59) Ibid., p. 298. 이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베델 시리즈 속편(생활편)이 개발되었다. 60) Ibid., p. 298. 61) 민영진, "우리나라 교회에서 실시하는 평신도를 위한 성서연구의 이론과 실제",「신학과 세계 8월호」 (서울: 감신대 출판부, 1982), pp. 384-386. 62) 웨버의 실험연구 사례와 그 다양성을 탐구하려면, 같은 글 pp. 389-394를 참조하시오. 63) 은준관, (1983), p.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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