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성경본문 : 사도행전 2장 14절-21절
비전
성경본문 : 사도행전 2장 14절-21절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로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가라사대 말세에 내가 내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으로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저희가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와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오늘도 생기가 충만한 좋은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는 방송설교를 준비할 때 마다 기독교 방송을 들으시는 모든 애청자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 드리곤 합니다. 복지교회에서 보내드리는 이른 아침의 말씀이 생기를 불어넣는 말씀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오늘은 “비전”에 대하여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먼저 성경 본문 사도행전 2장 14절로 21절의 말씀을 봉독하겠습니다.
비전!
비전은 야망과 다릅니다. 야망이 소유욕에서 나오는 꿈이라면 비전은 소명은 존재성의 실현입니다. 야망은 성공과 목표를 추구하지만 비전은 성취와 목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야망은 인간의 의지로부터 나오지만 비전은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나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종종 비전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상과 환상을 영어성경은 모두가 비전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선지자들은 예외 없이 이 비전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도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전을 보았습니다. 호렙산에 올랐던 모세도 출애굽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다메섹에서 회심을 경험한 바울은 아나니아에게 안수를 받은 후에 눈이 떠져서 다시 보게 되었고 비전을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사도행전의 말씀은 오순절 성령강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했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기도하던 다락방 온 집에 가득했으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기도하던 사람들에게 보였습니다(행2:2-3)
성경은 이 일이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요엘서 2장 28절로 32절의 사건이 성취된 것이라고 선포합니다(행2:16)
선지자 요엘은 주전830년경에 활동했습니다. 요아스왕때 요엘은 830년후에 일어날 성령강림을 예언한 것입니다.
이 예언의 핵심은 성령강림의 결과입니다.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젊은이들은 환상(비전)을 볼 것이며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행2:17) 자녀들의 예언, 젊은이의 환상, 늙은이의 꿈은 다른 표현이지만 같은 맥락입니다. 모두가 미래를 말하고 있습니다. 장래일도 미래요, 환상도 미래이며, 꿈도 미래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겐 미래가 있습니다. 미래의 비전을 갖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생기가 충만한 삶을 살게 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을 받은 사람들이 비전을 갖고 살았던 이야기를 기록한 비전북입니다. 비전의 책입니다.
이 성령의 비전으로 살았던 사도행전의 주인공들에게는 공통된 점이 있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방언의 은사입니다. 방언의 은사는 바벨탑의 사건과 좋은 대조가 됩니다. 바벨탑은 사람들의 이름을 드러내려고 하다가 서로 언어가 혼란스러워진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순절날 사건은 예수의 이름을 앞세우다가 언어가 소통된 사건입니다. 바벨탑은 언어단절의 사건이지만 오순절은 언어 소통의 사건입니다. 성령의 비전으로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언어의 일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거룩하고 경건하여 복음전도의 열정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과 일치를 경험하게 됩니다. 서로 경쟁하던 제자들, 서로가 크다고 키재기를 하던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기도할 때에 성령을 받게 되고 방언의 은사를 체험하면서 일치를 경험했습니다. 오늘은 누구와 만나십니까? 오늘도 영적인 비전을 갖고 사는 사람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가꾸는 경건한 사람들과 일치를 경험하며 은혜가운데 승리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 다음 또 하나의 공통점은 동역자를 만났습니다. 성령의 비전을 갖고 산 사람들은 복음전도의 동역자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로를 환상(비전)가운데 만났습니다. 바울은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사람을 잘 만나는 것이 인생의 축복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삶이 풍요로워 집니다. 어려서는 부모님을 잘 만나야 되고, 젊어서는 친구를 잘 만나야 됩니다. 중년이 되면 배우자와 동업자를 잘 만나야 되고 늙어서는 자녀를 잘 만나야 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복음전도의 동역자를 잘 만나야 됩니다.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삶은 영혼구원이며 영생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의롭다 칭함을 받고 영화롭게 됩니다. 의로워짐과 영화로워짐! 의롭다고 칭함을 얻는 것과 영화로운 면류관을 얻게 되는 것! 이 두 가지가 가장 소중합니다. 동역자는 우리들의 믿음을 서로 격려하게 지켜줍니다. 동역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합니다. 동역자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도록 섬기게 합니다. 동역자를 만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크게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하루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절망가운데서 일어나십시오.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나와 빛 가운데로 날아 오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비전을 갖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비전을 가졌기에 사막의 외로움을 이기고 헤브라이즘의 신문명을 만들어 냈습니다. 모세는 비전으로 출애굽의 서사시를 이루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은 비전을 갖고 유럽을 기독교 문명지대로 바꾸었습니다. 숫자가 적을 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능력이 적을 지라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브라함과 모세는 소수였지만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극복했습니다. 베드로와 바울도 따르는 이가 적었지만 결국은 기독교 국가를 세웠습니다. 에스겔은 그발강가에서 비전을 보고는 해방과 통일을 선포했습니다. 마른 뼈가 큰 군대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때로 능력이 적어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도 칭찬만 들었습니다.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지극히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큰 일을 맡기리라고 했습니다. 비전을 갖고 살면 미래가 보입니다.
비전을 갖고 살면 적은 능력일지라도 큰 역사를 만들어 냅니다. 아무도 할 수 없는 일일지라도 비전을 주시는 하나님은 그 일을 가능케 하십니다. 오늘도 믿음 안에서 비전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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