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감리교 목회자 대회 소감문
-대회는 성공했다-
전국 감리교 목회자 대회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나는 전국 감리교 목회자 대회(이하 전감목)가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전국 감리교 목회자 대회(이하 전감목)의 결과를 놓고 "성공인가 실패인가?"라는 논쟁도 있지만 나는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성공했다고 하는 측은 ""첫술에 배부를 리 있겠나?", 실패했다고 하는 측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를 내세운다. 맞다. 전감목은 보는 시각에 따라서 첫 술일 수 있고 첫 단추일 수 있기 때문에 성공일 수도 있고 실패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감히 성공한 대회라고 말한다. 나는 "천리 길도 한 걸음 부터 (A journey of a thousand miles must begin with the first step)"라고 말하고 싶다. 첫 술이기도 하고 첫 단추이기도 하지만 한 걸음이기도 하다. 첫 술과 첫 단추의 논쟁을 넘어 한 걸음이다. 우리는 이제 천리 길을 가는 한 걸음을 내딛었다.
전감목은 거시적인 안목에서 성공한 대회이다. 물론 성공과 실패의 요소가 혼재된 듯이 보이지만 분명 성공한 대회다. 대회 기획위원회에서 섬겼던 정연수 목사님은 "행복했었다고 자평했다". 발표를 맡았던 박철 목사님은 "깊은 감동의 시간이었다"며 감사의 글을 올렸다. 반대 의견도 있다. 애정을 가지고 비판한 방현섭 목사님은 버라이어티쇼로 전락하게 만든 이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분명 지엽적이고 부분적으로는 그런 요소들이 있다. 솔직히 말해 극단적으로 보면 이 대회는 한 편의 기획 작품일 뿐일 수도 있다. 분명 전감목은 성공적인 요소도 있었고 실패적인 요소도 있었다. 대회 경비의 문제, 드라마 예배의 신학적 입장차이, 숫자 세기, 선명성의 약화, 이념적 스펙트럼의 불일치 등이 실패의 요소로 지적되는데 충분히 이해한다. 비교적 온건한 내가 보아도 개혁의 기치가 희석된 것 같아서 실망스러울 정도니 개혁의 열망이 큰 목사들에게는 오죽 하겠는가? 그러나 이 대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대회다. 모인 사람들의 진정성, 시종여일한 참여성, 치밀한 준비, 감동적인 회개의 눈물, 개혁 세력의 확인과 연대 가능성 등을 생각하면 잃은 것 보다 얻은 게 훨씬 많기에 성공했다.
그럼 나는 이 대회를 왜 성공작이라고 자평하는가?
1. 개혁세력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전감목을 통하여 개혁세력의 실체를 확인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개혁세력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가 궁금했는데 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개혁세력은 이념적으로 소위 운동권만도 아니고 삼사십 대만도 아닌 건강한 목회자 그룹을 확인했다. 건강한 목회자 그룹이란 특정 계층이나 특정 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건강한 목회를 하고 있는 일반 목회자들을 말한다. 토론 때 보니 50대 이상의 목회자만도 족히 200여명은 넘어 보였다. 그렇다면 이는 차세대를 이끌어갈 중진 목회자 그룹이 개혁의 열망을 공유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니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이 개혁 세력을 잘 조직화하면 건강한 개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2. 개혁연대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감목은 개혁세력의 연대 가능성을 확인해주었다. 물론 차이도 느꼈고, 소통의 한계도 느꼈지만, 동시에 같은 마음도 확인했고, 함께 할 수 있는 가능성도 그 못지 않게 확인했다. 소위 운동권 계열이나 운동권 성향을 가진 목회자 그룹과 감사람 계열의 복음주의 혹은 보수적 마인드를 가진 목회자들이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점이 소중한 자산으로 남기에 성공했다. 물론 올감모나 감사람이 참석자를 다 아우를 수 있는 그룹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개혁의 단초는 감신 82학번이 제공하고, 개혁의 외연은 감사람의 목회자들이 넓혔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개혁의 주체로 참가한 사람들은 두 개의 범주로 획일화 할 수 없는 비 이념적이고 중도적인 건강한 목회자 그룹 일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다양한 스펙트럼의 목회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함께 개혁을 말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책임감을 공유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 때문에도 이 대회는 성공했다.
전감목을 주류는 올감모계와 감사람계와 중도계의 연대로 분류할 수도 있다. 분류할 수도 있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꼭 그렇지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이든 사물이든 사건이든 쉽게 자신의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도 않고 사실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를 돕기 위해서는 가끔 그런 분석이 도움이 되는 것도 현실이다. 전감목은 그 안에 참여한 다양한 제 세력의 소통을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성공했다. 사실 이면에는 진지한 대화도 있었고, 좀 더 시간을 두고 다듬어야 할 시각차와 온도차가 있지만 합의를 이끌어내고 함께 대회를 섬겼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다.
이 번 대회에 임한 개혁 주체들은 감사람의 참여에 대해서 다양한 평가를 했다. 그러나 역으로 감사람도 참여를 결정하면서 올감모계의 개혁세력에 대하여 깊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과정과 결과를 볼 때 두 진영만이 아니라 건강한 중도 그룹이 함께 전감목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줌으로써 개혁비전의 성공을 희망적으로 기대하게 했다. 한 편에서는 성공과 실패의 혼란을 가져온 이념적 조화와 선명성의 강도 차이를 감사람(감리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수적 입장 때문으로 몰아세우려고 하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감사람의 입장이 반영된 것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대회를 준비하는 실무자들이 수위조절을 적절하게 했고, 치리와 숙정보다는 회개와 자정을 넘어 변화와 갱신을 도모함으로 책임과 비전을 성취하려는 미래지향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몇 가지 점이 이를 말해준다. 예를 들면 예배에 대한 지적은 올감모나 감사람 모두 지적했다. 대회 경비는 감사람이 더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대회 선언문을 감수한 나의 의견보다도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수정한 것이 더 온건했다. 오히려 초안을 작성한 윤여군 목사님에게 "너무 약하지 않습니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정책기획위원회는 그 보다 더 온건하게 초안을 대폭 수정했다. 서호석 목사님이 이끄는 정책기획팀은 아주 깊은 생각을 가지고 멀리 내다보는 심모원려(深謨遠慮)의 정책을 기획했다. 한 번의 대회가 아니라 후속 조처를 염두에 두고 멀리 가기 위해 워밍업을 한 것이다. 잘 하셨다고 생각한다. 나도 불만이니 개혁의 열정을 가진 젊은 목회자들의 불만은 당영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첫 단추가 아닌 한 걸음을 성공적으로 옮기기 위하여 깊은 생각을 갖고 행동했다.
물론 감사란 때문에 일정 부분 조정한 부분도 물론 있다. 상임대표제의 폐지, 예배 집례자의 교체, 대회 선언문의 복음주의적 입장 견지, 제도 개혁에 대한 발제자의 교체, 토론의 사회자 선정 등을 조정했다. 그러나 올감모의 입장을 받아들여 예배 집례자 (조경렬 목사, 최이우 목사)와 설교자(우병설 목사)와 축도자(김의중 목사)를 정했으니 아주 진지하게 서로 협력한 것이다. 기독교 타임즈의 광고는 철회하기로 했고, 사회적 책임과 사유화 금지 같은 것은 삽입하기로 조정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양 진영이 막판에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합의한 내용들이다. 헌금의 사용은 내가 추천한 농아인 대회에 기부하기로 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번 대회는 어느 한 쪽이 독주했다기 보다는 서로의 입장을 배려해가며 조화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 옳다. 이것도 멀리 내다 본 것이다. 모처럼 어렵게 만난 개혁연대의 씨앗을 잘 키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려고 한 것이다. 우리는 성공했다. 그리고 반드시 개혁을 이루어 낼 것이다.
3. 개혁방향의 공감대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감목의 토론회는 개혁의 방향을 공감하는 자리였다. 개혁의 방향성에 대하여 극단파도 있고, 선동파도 있지만, 시종일관 토론을 이끌어간 것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공유하는 건강한 목회자들의 신앙적인 개혁의 공감대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적어도 목회자로서 목회를 양심껏 하려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감독제도도, 선거제도도, 의회제도도, 교회 사유화도, 은급문제도, 연급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전감목은 지금 우리가 개혁해야 할 방향이 무엇인지를 공감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자신은 개인적으로 각론에 들어가면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도 있지만 개혁의 방향에 대해서는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4. 개혁의지의 열정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번 대회처럼 참가자들이 시종여일 진지하게 대회에 참여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는 감리교회에서 29년 째 목회를 하고 있다. 지방회는 물론이고, 연회와 총회도 참석했고, 감리사도 했으며, 총회 공천위원회 서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번 대회처럼 참가자들이 진지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나는 확신한다. 이런 참가 의지만 잘 엮을 수 있다면, 그래서 후속 조처를 잘 할 수만 있다면, 지금 까지 아무도 엄두를 못 내었던 개혁입법을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개혁 연대는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우리의 어머니 감리교회가 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이 아픔과 상처를 보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준비하기 위해 개혁 세력이 연대해서 분명한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함께 섬기면 개혁은 성공할 수 있다.
5. 개혁추진의 동력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감목은 개혁추진의 동력을 보여 주었다. 개혁 세력을 하나로 엮어 낼 수 있는 추진 동력체가 눈에 보였다. 개혁은 혁명보다 어렵다. 감리교회 내에서 개혁하기 보다는 차라리 탈퇴해서 독립 교회를 하거나, 이념이 같은 사람들끼리 무 지역 지방회나 무 지역 연회를 구성하면 개혁은 훨씬 더 쉽다. 더구나 대안 연회를 띄워 자율성을 부여하면 개혁은 더욱 쉽다. 그러나 우리의 현 체제는 한 번 감리교회 목사가 되면 평생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채여진다. 연급제에 따른 신분체계, 행정조직에 따른 조직체계, 부담금제에 따른 경제체계 등 우리는 우리가 그토록 신봉하는 법과 원칙(?)에 매여 옴짝달싹 못한다. 거기에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와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진 평신도 그룹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목회자만의 리그를 할 수 없다. 한 마디로 개혁은 언제나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숱한 개혁세력이 명멸하고 정치세력화로 비극을 맞이했다. 하지만 이 번 전감목에서 보여준 개혁세력은 강력한 추진동력을 가졌다. 올감모 계열, 감사람 계열, 건강한 목회자 그룹 등의 구성원들이 강력한 추진 동력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희망적이다. 그래서 성공한 대회다.
6. 개혁시기의 적기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감목은 아주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졌다. 빠르지도 늦지도 않았다. 직무대행이 선임되고, 소송이 진행되는 와중에,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생각에 모두가 마음을 공유하고 있는 이때가 가장 좋은 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개혁을 위하여 하나님이 감리교회에 주신 아주 시의적절한 적기이다. 내 우둔한 생각에는, 그리고 내 나이로 볼 때 아마도 내 때를 고려해보면, 지금 아니면 감리교회는 당분간은 개혁할 호기를 다시 맞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는 이번이 개혁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선 개혁입법 후 재선거"와 "감독제 폐지 또는 혁신"은 감사람의 최대 이슈였다. 올감모나 제 세력등은 "교회 사유화 방지"와 "공교회성 회복"을 주요 주제로 내걸었다. 물론 그 밑바탕에는 연급제 폐지, 감리사 제도 개선, 은급제 수정, 신학적 입장 정리 등의 다양한 물밑 요구가 있지만 주요 이슈는 감독제 문제와 개혁입법과 공교회성 회복이다. 이 문제를 풀다 보면 고구마 줄기처럼 다른 문제들은 다 줄줄이 엮여 나올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한꺼번에 분출한 지금은 개혁을 할 수 있는 최적의 때이다.
7. 개혁신학의 일치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개혁세력의 다양성과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개혁연대를 이룰 개혁세력들이 신학적인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가능성이 구현됐다는 점에서 대회는 성공했다. 개혁 연대를 이끌어 갈 실무진들은 단순하게 두 부류로 구분했다. 올감모 계열의 운동권 성향과 감사람 계열의 복음적 성향. 그래서 신학적으로 두 부류만 생각하고 다른 부분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 그러나 이 번 대회의 논쟁거릴 중 하나인 예배 부분만 보더라도 철저하게 신학적인 입장이 진하게 깔려 있다. 삼위일체론적인 예배 구성(성경-십자가-촛불), 초대 교회 공동체적인 성경 읽기(율법서-예언서-성문서-복음서-서신서 읽기), 동방 교회적인 예전성, 개신교회의 특성을 살린 말씀의 예전, 하나님과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수평과 수직의 소통성 등은 예배위원장인 이천진 목사님의 예배학적 전문성을 반영하고 있다. 혹자는 머리에 재로 십자가를 긋는 일에 대하여도 문제를 삼는데, 이는 재의 수요일에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전통적으로 해 오던 회개의식이다. 이천진 목사님의 예배진행은 충분한 신학적 전문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개혁신학의 가능성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개혁신학은 운동권도 보수파도 아닌 웨슬리신학적 입장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케 했다.
또한 기자회견문과 대회 선언문 그리고 토론 발제 수정안에서 보여주는 웨슬리 신학의 중용과 통합성도 충분히 신학적인 전문성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 복음의 구속 신학과 예수 행위의 성화 신학은 예수를 대속자로 보는 복음주의적 정통신학과 예수를 스승이요 모델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이 잘 어우러지는 웨슬리 신학의 요소를 담고 있다. 웨슬리 신학의 단점은 가톨릭 신학도 아니고 개혁신학도 아니기에 중심이 없는 듯 보이는 것이지만 중용과 통합이라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전감목에서는 이런 신학적 입장이 잘 정리되었다는 점에서도 성공적이다. 앞으로 각자의 신학적 입장 차이점 때문에 각론에 들어가면 다양한 논의가 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중용과 통합의 웨슬리입장위에서 예수복음과 예수 닮기를 잘 조화시킬 수 있는 조화와 일치의 가능성이 보여 졌기에 성공적이다.
8. 개혁실천의 연속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내가 전감목을 성공작이라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개혁실천의 연속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결과는 두고 봐야 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예민한 문제가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전 전감목의 행사는 일회성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 근거는 순수성과 응집력과 조직성이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거나 알고 있는 이전의 개혁세력은, 개혁 주체들의 정치적 입지를 강화해주는 일회적 혹은 단기적 개혁으로만 끝났으나 이번 전감목의 개혁주체들은 결코 어느 한 두 사람의 영웅화를 만들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단발마적으로 끝나지 않고 연속적으로 후속 조치를 실천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또한 이전의 조직은 주로 수평적인 동시대의 명망가들이 모여서 만든 상층의 조직화라면, 그리고 그 개혁 주체들이 정치적인 보스들에게 줄을 댄 상명하복의 Top down 방식이 아니라 하의상달의 Bottom up 방식으로 일을 추진하는 줄씨알들이기 때문이다. 줄씨알이란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민중이며 새로운 흐름의 주체들인 Net -root를 말한다. 이런 주체들은 일반 대중(Mass)도 아니지만, 흔히 말하는 풀뿌리 민중(grass-root)도 아니다. 오히려 앨빈 토플러의 코그니타리아트(cognitariat)에 가까운 새로운 집단으로, 전자 민주주의((teledemocracy)를 이끄는 신지식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코그니타리아트는 계급적 동질성을 전제하지 않으면서 더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21세기 민중이다. 21세기 정보화 시대에는 줄 안(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접속하고 소통하고 공론화하는, 시공간을 초월한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했다. 나는 전감목 대회에 참가했던 목회자들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가는 줄씨알들이라고 생각하기에 개혁실천이 단절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9. 개혁원군의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목회자들만의 대회였던 전감목은 좋은 원군을 얻을 거라는 느낌을 얻었기에 성공적이다. 전감목 대회는 목회자 대회였다. 그래서 목회자 줄씨알들이 모여 미래를 애기하고 비전을 애기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들려오는 평신도들의 애기와 청장년 선교회 연합회장의 격려사를 통하여 느낀 체감 온도는 개혁세력을 지원할 개혁원군이 평신도들 가운데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전에는 목사와 장로들만의 리그였는데 반해 이젠 젊은 층들이 성원을 보내고 필요에 따라서는 참여도 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열렸다는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물론 평가는 다를 수 있고, 아직까지도 실제적으로 법을 개정할 수 있는 입법의원들은 원로들이라 개혁입법의 가능성은 조심스럽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줄씨알들의 협력 가능성이 느껴지고 있다. 줄 안과 줄 밖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줄씨알들이 줄을 통하여 서로 소통하면서 개혁 작업을 함께 만들어 간다고 하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10. 개혁여론의 후원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전감목은 다양한 개혁여론의 후원을 받았다. 나는 나의 웨슬리 복음주의적 성향 때문에 친북 좌파적이거나 교회파괴적인 언론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의 이런 입장과는 관계없이 줄안팎은 물론이고 감리교회 안팎의 언론 가운데 개혁 언론들은 우리들의 개혁 작업을 후원했다. 우리는 이 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기자들에게 촌지를 주거나 접대를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개혁 언론들은 물론이고 개혁 세력 중에 일부가 반대하는 모 언론지도 개혁을 후원했다. 이는 언론지만의 후원이 아니라 개혁여론이 형성되가고 있다는 점을 반증한다. 명분이 세력화되고 실리를 얻어 개혁을 성공하기 위해서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고 여론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전감목은 그런 점에서 성공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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