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고민과 순종
<마태복음 26장 36절~39절> 3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 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42 다시 두 번째 나아가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고 43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피곤함일러라 44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사순절 네 번 째 주일입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사랑으로 축복합니다. 2016년도 사순절은 2월 10일부터 3월 26일 까지 46일간입니다. 올 사순절에는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상동의 부활>을 바라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말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말씀은 <예수님의 고민과 순종>입니다.
1. 예수님의 고민
예수님에게도 고민이 있으셨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예수님에게도 고민이 있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고민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고민으로 슬퍼하셨고 죽게 되었다고 토로하셨습니다.
<마26:37~38>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 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왜 예수님은 고민하셨을까요?
예수님의 고민은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 잔 –십자가의 죽음의 잔>을 옮겨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이 잔>은 십자가의 잔입니다. 죽음의 잔입니다. 인간 예수님의 고민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잔>을 받을 것인가 말 것인가? 예수님은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에게 <십자가의 잔, 죽음의 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44절)
고민은 왜 할까요?
고민은 결정을 하지 못해서 고민합니다. 두 가지 마음 때문에 고민합니다.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두 가지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만 하는 것>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가고 싶은 길>과 <가야만 하는 길>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그냥 하고 싶은 대로, 그냥 가고 싶은 대로 결정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그래서는 안 되는 그 무엇인가 때문에 고민합니다. 그것은 때로 양심의 소리이기도 하고, 진리의 가르침이기도 하고, 사람의 도리이기도 합니다. 또 우리를 마음대로 살지 않도록 붙들고 있는 정의감이기도 하고, 올곧음이기도 하며, 바름이기도 합니다.
고민하는 인간은 비참한 사람!
고민하는 인간을 잘 설명한 말씀은 로마서 7장의 인간상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바울은 <고민하는 인간>을 잘 설명합니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는 <신앙적인 마음의 인간>과 죄의 법을 따르려는 <불신앙적인 육신의 인간>사이에서 고민하고 있음을 고백합니다.
<롬7:21~25>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 속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고,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에다 나를 사로잡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은 고민하지만, 인간은 두 가지 법 사이에서 아파하기에 <비참한 사람>이지만(롬7:24),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 법을 피하고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는 길을 갑니다. (롬7:25) 어떻게 그렇게 하나님의 법을 따르게 됩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릅니다. 바울의 결론은 바로 이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법을 따릅니다.
<롬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에 복종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순종
결론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아 , 고민을 해결합니다. 고민의 슬픔과 고민의 죽게 됨에서 벗어나 결정하고 결단을 내립니다. 신앙이란 결정이고 결단이고 행동입니다. 관행과 악습에 길들여졌던 익숙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불편하고 낯설더라도 <올곧고 바른 길>을 결단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길을 선택하신 분이고, 우리들이 그런 선택을 하도록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본 받아 삽니다. 참 신앙은 예수님을 대속자로 고백하는 <예수 믿기>와 함께 예수님을 모범이며 스승으로 고백하는 <예수 살기>가 함께 어우러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고민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마26:39> 예수께서는 조금 더 나아가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기도하셨다.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예수님은 자기의 뜻을 매려 놓았습니다.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라십니까? 진심으로 참 신앙의 길을 가시기 원하십니까? 쉽습니다. <자기의 뜻>을 내려놓으십시오. 믿음으로 행복하게 신앙생활 하시는 분들의 공통점은 교회 안에서 자기의 뜻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습니다.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한 예수님의 기도는 <순종의 기도>입니다. 신앙이란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라고 가르치셨었습니다.
<마6:9~10>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오며, 10 나라가 임하게 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죽음의 잔>을 받아야 할 때에 자신이 가르치신 대로 아버지의 뜻, 하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십자가의 잔>, <죽음의 잔>을 받아들였습니다.
일어나서 가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알면서도 십자가를 향하여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자신이 가르치셨던 그대로, 자신이 기도하셨던 그대로, 자신의 뜻을 포기하시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마26:45~46>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시간을 자고 쉬어라. 보아라, 때가 가까이 왔다. 인자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6 일어나서 가자. 보아라, 나를 넘겨 줄 자가 가까이 왔다.
한 사람의 순종하심
바울은 예수님의 순종이 인류의 구원을 가져왔다고 선포합니다. 아담 한 사람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었지만, 예수님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순종으로 우리들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롬5:19>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아.
예수님의 고민과 순종 속에 우리가 걸어가야 할 우리의 삶의 방향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본 받아야 할 신앙의 모델입니다. 스승입니다.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은 예수님을 따라 살기 바라지만 <나는 아직> 이라고 유예하기도 하고, <나는 아니야>라고 피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너나 할 것 없이 우리들의 마지막 결단은 예수님을 본 받아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와 함께 <예수 살기>가 신앙심을 결정합니다. 예수님의 고민은 죽음의 잔을 피하고 싶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죽음의 잔>을 기꺼이 받으신 것입니다. <십자가의 잔>을 기꺼이 받으신 것입니다. 순종이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 십자가의 잔>을 받는 것입니다.
3. 순종의 신앙
순종으로 부름을 받으라!
참 신앙을 갖기 원하시면 믿음으로 부름을 받을 뿐만 아니라 순종으로 부름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성도들은 다 믿음이 좋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가롯 유다일지도 모릅니다. 가롯 유다라고 해서 기분 나빠하지 마십시오. 성경의 행간 속에 담긴 가롯 유다의 문제점은 <자기 뜻>을 고집한 것입니다. 혹자들은 가롯 유다가 열심당원인 것에 주목합니다. 열심당원들은 자기들만의 목적이 있었고, 자기들만의 투쟁방식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자기 뜻>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예수님이 따라주지 않자 십자가의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성도들은 예수님을 자기 뜻에 맞추지 말고, 자기 뜻을 예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순종이 고민을 해결합니다.
예수님은 순종함으로 고민을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고민이 있었듯이 성도들도 이런 저런 일로 고민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 사이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자기의 명예 사이에서 고민합니다. 때로는 직장이나 사업현장에서 기독교인의 신앙심을 지키기 위하여 고민하기도 합니다. 누구나 고민하며 삽니다. 예수님도 고민하셨습니다. 만약 고민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특별한 사람이거나 인간이 아닐는지 도 모릅니다. 사람은 고민합니다. 성도는 더 고민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 사이에서 고민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십자가를 질지 말지 고민합니다. 신앙인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집사 권사 장로라는 직분 때문에, 목사라는 신분 때문에 손해를 감수하고 희생을 감수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어떤 때는 이유도 없이 비난을 받고, 근거도 없이 조롱을 당할 때도 고민을 합니다. 성도들은 직장에서, 사업을 하다가, 순간순간 고민을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 순간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처럼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이 고민을 해결합니다.
순종하도록 고독증후군에 벗어나라!
성도들이 믿음으로 순종하려면 고독증후군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이 고민으로 괴로워하시고 죽게 될 지경까지 가셨을 때 정말 힘들었던 것은 <십자가의 죽음>이기도 하지만 <홀로 남았다는 고독감>도 큰 문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자기와 함께 하지 않는 고독의 아픔을 토로하셨습니다.
<마26:40~41>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겟세마네 동산의 예수님처럼 아무도 함께 해주지 않는 고독한 순간에는 더 고민합니다. <누구를 위하여 희생한단 말인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십자가>이기기도 하지만 고독이 더 힘들 때가 많습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을 때, 심지어는 모두가 오해하고 비난만 할 때, 홀로 남았다고 생각되어질 때 우리는 정말 힘들어집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고독증후군에 사로잡혀 범죄를 하기도 하고 대사를 그르치기도 합니다.
고독증후군을 경험한 대표적인 사람이 엘리야입니다. 엘리야는 자기만 남았다는 고독감에 로뎀 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왕상19:3~4, 10> 3 엘리야는 두려워서 급히 일어나, 목숨을 살리려고 도망하여, 유다의 브엘세바로 갔다. 그 곳에 자기 시종을 남겨 두고, 4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10 엘리야가 대답하였다. "나는 이제까지 주 만군의 하나님만 열정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과 맺은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었으며, 주의 예언자들을 칼로 쳐서 죽였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그들은 내 목숨마저도 없애려고 찾고 있습니다."
<이제 나만 홀로 남아 있는데> 자기만 홀로 남아 있다는 고독감이 죽음의 기도를 드립니다. 죽기를 구하는 기도! 사람들은 종종 죽기를 구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혼자 있을 때, 홀로 남아 외로울 때, 조심하십시오. 마귀는 그 고독한 순간의 틈을 비집고 우리 영혼 속에 들어옵니다. 우리를 파괴하고,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포기하게 합니다. 고독감을 이기는 것이 순종하는 길입니다.
4.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선택을 요청하면서 던진 말씀입니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삼상 15장 22~23 > 22 사무엘이 나무랐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잘 들으십시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말씀을 따르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습니다. 23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순종이냐 제사냐 선택하라고 합니다. 사실 이 말씀의 배경 속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에 대한 사무엘의 책망이 있습니다. 사무엘은 불순종한 사울 왕을 꾸짖으면서 <순종의 가치>를 설명하고 제사보다 순종을 선택하라고 요청합니다. 사무엘은 불순종은 죄악이라고 가르칩니다. 거역의 불순종과 고집의 불순종을 지적합니다. 불순종하는 사람은 거역하고 자기 고집만 핍니다. 사무엘은 단언적으로 선포합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봐주는 점쟁이의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순종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합니다. 사무엘은 사울 왕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버리셨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불순종을 회개하면서 사무엘에게 간청합니다.
<삼상15:24~27> 24 사울이 사무엘에게 간청하였다. "내가 죄를 지었습니다. 주의 명령과 예언자께서 하신 말씀을 어겼습니다. 내가 군인들을 두려워하여,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였습니다. 25 제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나와 함께 가셔서, 내가 주께 경배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26 사무엘이 사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함께 돌아가지 않겠소. 그대가 주의 말씀을 버리셨기 때문에, 주께서도 이미 그대를 버리셔서, 그대가 더 이상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으로 있을 수 없도록 하셨소." 27 사무엘이 거기서 떠나려고 돌아설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니, 옷자락이 찢어졌다.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사무엘과 사울 왕의 이야기는 순종의 가치와 불순종의 대가를 잘 드러내줍니다. 사울은 이 불순종 때문에 나라를 뺏기고 왕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울이 불순종한 일로 사무엘은 마음이 상하였고 주님은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습니다. 사무엘의 상심과 주님의 후회! 결국 불순종으로 인하여 사울의 시대는 끝나게 됩니다.
<삼상15:35> 그 다음부터 사무엘은, 사울 때문에 마음이 상하여, 죽는 날까지 다시는 사울을 만나지 않았고, 주께서도 사울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을 후회하셨다.
순종에는 이유가 없다.
사무엘은 사울 왕의 변명을 일축했습니다. 순종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핑계가 없습니다. 사울 왕은 더 좋은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불순종했다고 변명합니다. 사무엘상 15장을 읽어보면 흥미로운 논쟁 장면이 나옵니다. <순종>을 두고 사무엘과 사울이 벌이는 논쟁입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왜 순종하지 않았느냐고 하니까 사울은 순종했다고 하면서 <제사>라는 거룩한 이유를 댑니다.
<삼상15:18~21> 18 주께서는 임금님을 전쟁터로 내보내시면서, 저 못된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고, 그들을 진멸할 때까지 그들과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19 그런데 어찌하여 주께 순종하지 아니하고, 약탈하는 데만 마음을 쏟으면서, 주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하셨습니까?" 20 사울이 사무엘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주께 순종하였습니다. 주께서 보내시는 대로 전쟁터로 나갔고, 아말렉 왕 아각도 잡아왔고, 아말렉 사람도 진멸하였습니다. 21 다만 우리 군인들이 전리품 가운데서 양 떼와 소 떼는 죽이지 않고 길갈로 끌어왔습니다만, 그것은 예언자께서 섬기시는 주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려고, 진멸할 짐승들 가운데서 가장 좋은 것으로 골라온 것입니다."
순종에는 다만이 없다
순종에는 다만이 없습니다. 서울 왕은 자신의 순종을 강변하면서 한 가지 이유를 댑니다. <다만> 제사를 잘 지내기 위하여 전리품을 가져 왔다고 핑계를 댑니다. 우리는 이 다만을 조심해야 합니다. <다만>이라는 이 말 속에 자기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만>이라는 이 틈새 사이로 자기 뜻을 슬그머니 집어넣고 하나님의 뜻을 변질시킵니다. 이 다만의 함정을 조심해야 합니다. 순종에는 다만이 없습니다. 순종은 전적인 복종이며 자발적인 복종입니다. 자기 뜻이 개입할 여지가 없이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따라는 절대적인 복종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던졌던 질문이 우리들에게도 늘 주어집니다.
“주께서 어느 것을 더 좋아하시겠습니까?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겠습니까? 아니면, 번제나 화목제를 드리는 것이겠습니까?”
주님이 좋아하시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순종입니다.
5. 순종을 배우라
예수님은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히브리서 5장의 말씀을 묵상하면 순종에 대하여 유익한 교훈을 얻습니다. 예수님이 고난을 받으시면서 순종을 배우셨다는 것입니다.
<히5:8~10>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표준새번역은 보다 쉽게 번역했습니다.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히5:8> 그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당하심으로써 복종을 배우셨습니다.
순종을 배우라!
우리는 고난을 받으면서 순종을 배웁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복종을 배웁니다. 믿음으로 사는 성도들이 고난을 받을 때 우리는 영적으로 연단을 받으며 순종의 사람으로 세워집니다. 정말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라시면 순종을 배우시기 바랍니다. 순종을 배운 성도만이 순종하신 예수님과 깊은 사귐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의 순종을 본받아 순종을 배우는 사람들입니다. 작은 것을 순종하면 큰 것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한 번 순종하면 그 다음은 쉽습니다. 한 번 참고 순종하면 영적으로 풍요로움을 경험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 의지, 자기 판단을 내려놓는 것을 연습하시면 순종하게 됩니다. 한 눈을 질끈 감고 용서하시면 순종을 배울 수가 없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성도는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어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벧전1:2> 2 하나님 아버지께서 당신의 미리 아심을 따라 여러분을 택하여 주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해주셨으므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었으며, 그의 피로 정결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가 가득하기를 빕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의 비밀을 받은 사람들로 순종의 삶을 살게 하는 것이라고 복음전도의 목적이고 결과라고 분명하게 말합니다.
<롬16:25~27> 25 [하나님께서는 내가 전하는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가르침을 통해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감추어 두셨던 비밀을 계시하심으로써, 여러분의 믿음을 굳세게 하여 주십니다. 26 그 비밀이 지금은 예언자들의 글로 밝히 공개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 알려져서, 그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27 오직 한 분이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영원무궁 하도록 있기를 빕니다. 아멘.]
<그들이 믿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이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에게 순종하는 삶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는 성도는 의에 이릅니다.
<롬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순종을 배우는 사순절
사순절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의 순종>을 배우는 은혜가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고민은 되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자기의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을 배우시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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