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열린 문을 가진 교회(계3:7~13) 2013-0127 주일

우순(愚巡) 2013. 1. 26. 18:03

열린 문을 가진 교회

 

  <계3:7~13>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현절 후 세 번 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오늘의 말씀은 " 열린 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1.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사도 요한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열린 문을 가진 교회"로 소개합니다.

 

<계3:7~8>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열린 문은 영생의 문이고 선교의 문입니다. 열린 문의 축복을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하여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열린 문은 닫을 사람이 없다! 열린 문이 무슨 문이냐 하는 것을 상세하게 설명하기 전에 열린 문은 본문의 맥락에서 우리 예수님이 주신 축복입니다. 상급입니다.

 

<계3:8상>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좋은 교회는 열린 문을 얻습니다. 열린 문은 영생의 문이요 천국의 문이요 선교의 문입니다. 빌라델비아엔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고, 우대인들은 그리스도교인들을 회당에서 쫓아냈으며(살전2:15)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하여 회당의 문을 닫았습니다. 그들은 회당 출입의 열쇠(권한)를 절대적으로 장악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열린 문의 열쇠가 예수님에게 있다고 말씀합니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우리 교회에 출석하시는 협성대학교 신동욱 교수님이 쓰신 요한계시록 주석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열린 문은) 현실속에서 종말을 경험하는 통로와, 고통 당하는 현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열린 통로를 의미한다"(참고, 계4:1, 행14:27, 요10:7,9) -신동욱 요한계시록 주석 62쪽

열린 문은 연결 통로입니다. 신학자의 말을 빌리면 현실 속에서 경험하는 미래의 통로입니다. 현재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미래를 경험하는 열린 통로입니다. 좀 어려우신가요? 좀 더 쉽게 표현하면 현세에서 내세를 경험하고, 지금 여기서 종말론적인 주님의 재힘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살아서 천국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살아서 우리 주님,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런 열린 문을 얻은 교회입니다. 연구 성경의 대가인 톰슨은 천국문이라고 합니다. 독일 성서공회의 성경은 '영생으로 가는 문'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문,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문, 천국을 경험할 수 있는 문이 열린 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문, 이 열린 문을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셨습니다.

 

2. 열린 문을 가진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들었던 좋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은 작았지만 좋은 교회였습니다. 성경은 서머나 교회와 함께 빌라델비아 교회를 예수님이 칭찬한 교회로 설명합니다. 좋은 교회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는 교회의 모델입니다. 일곱 교회 중에 두 교회는 칭찬만 들었고, 두 교회는 책망만 들었으며, 세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반반 들었습니다. 사데 교회와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만 들었고, 에베소, 두아디라, 버가모 세 교회는 칭찬과 책망을 반반 들었으며,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들었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만 들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칭찬만 듣는 교회는 얼마나 좋은 교회입니까? 빌라델비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이 우리 교회에도 들려지기를 사모합니다. 교회는 주님이 보시기게 칭찬할 만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지난 2000년동안 해볼 것을 다 해보았습니다. 전쟁도 했습니다. 교리 논쟁도 했습니다. 이단 정죄도 해보았고, 마녀 사냥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이방 종교와 혼합하여 성모 숭배도 했고, 예수님의 발톱, 예수님의 머리털을 숭배하기도 했습니다. 안 해 본 것이 없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해 아래 새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주님이 보시기게, 주님의 눈으로 바라보시기에, 칭찬 듣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얼마나 돈이 많은 교회이냐? 얼마나 교인이 많은 교회이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예배당이 있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칭찬하는 교회, 하나님의 소유권이 분명하게 선언되는 교회가 진정으로 좋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그런 좋은 교회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왜 빌라델비아 교회는 칭찬을 들었습니까?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인내의 말씀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지고도 예수의 이름을 지켰습니다.

 

<계3:8하~11>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중략.....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이 작은 교회였습니다. 그래도 주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능력을 말합니다. 세상의 능력을 말합니다. 능력이 많으면 좋지요. 목사는 설교를 잘하고, 장로님들은 돈이 많아서 헌금도 많이 하시고, 권사님들은 열심이 있어서 행정적으로 완벽하게 교회를 섬기시면 좋지요. 게다가 그런 사람들이 고학력자이고 사회적으로 명망가라면 더 좋겠지요. 그러나 아닙니다. 고학력도, 일류대 출신도, 높은 사회적 지위도, 모두가 다 소중한 가치들입니다마는 아닙니다.  주님은 그런 것들이 부족했던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신 것은 아주 역설적입니다. 능력이 작음에도 내 말을 지켰다.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3. 열린 문을 가진 교회는 기둥 같은 교회입니다.

 

열린 문을 가진 교회는 기둥같은 교회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상급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신다고 하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또 그 기둥에 예루살렘의 이름과 하나님의 새 이름을 기록하는 상급을 받았습니다.

 

  <계3:11~12>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 성전에 기둥 같은 교회입니다. 여러분! 교회가 참 많습니다. 모든 교회가 다 좋은 교회입니다. 모든 교회가 다 좋은 교회여야 합니다. 그래서 각각의 교회들은 희망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가 하나님이 칭찬하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성전에 기둥 같은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새 이름이 기록된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랑문화를 아시지요? 헬레니즘 문화에서 신전의 큰 기둥 같은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유럽을 여행하시다 보면 건물의 기둥에 라틴어나 헬라어로 된 이름들을 보신적 있으시지요? 소유권을 알리는 표시입니다. 내가 빌라델비아 교회에 새 이름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 교회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상동교회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가끔 잊어버립니다.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립니다.

 

우리가 주인이라는 착각을 갖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열심을 갖고 있으니까, 내가 낸 헌금을 많이 냈으니까, 우리 가문이 큰 공적을 쌓았으니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열심, 우리의 헌신, 우리의 수고가 많았을지라도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목사들에게도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것이 '공적주의'입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이렇게 대우하나? 억울한 것입니다. 서운한 것입니다. 아닙니다.  목사도 장로도 어떤 교인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할 때만 교회는 힘이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4. 열린 문을 가진 교회는 면류관을 받습니다.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3: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여러분 주님은 지금 빌라델비아 교회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우리가 잘 알듯이 형제가 사랑한 도시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라델비아는 미국의 필라델피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빌라델비아는 부드러운 표기이지요. 사랑한다는 헬라어 필레오와 형제자매를 뜻하는 아데르포스가 합해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도시에는 훈훈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우애가 깊은 형제가 있었는데 왕과 동생이었습니다. 그런데 형은 무능하고 동생은 유능했다고 합니다. 간신들이 동생에게 와서 형이 무능하니 형을 몰아내고 당신이 왕이 되라고 반란을 획책했을 때, 동생이 나는 형을 사랑하기에 그렇 수 었다고 간신들을 척결하고 무능한 형을 보호했답니다. 그래서 형제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불러졌답니다.

 

형제가 사랑하는 도시, 형제를 사랑하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 이 교회에 우리 주님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준 면류관을 빼앗지 않게 하라! 우리 상동교회는 우리 하나님이 위대한 면류관을 주신 교회입니다. 앞으로 하나님이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미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상동교회에 면류관을 주셔서 지나간 124년간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오시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이제 그 면류관을 빼앗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면류관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함께 하나님이 주신 면류관을 지키면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면류관을 지키시는 일에 함께 동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5. 열린 문은 능력이 작아도 말씀을 지키면 얻습니다.

 

능력이 작아도 말씀을 지키는 교회가 열린 문을 얻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능력은 작았지만 인내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지금도 믿음의 생명을 이어 오고 있습니다. 능력은 작았지만 생명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작은 능력의 교회가 인내의 말씀을 지킨 것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우리는 자주 능력에 대하여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도 영적 능력도 아닌 세속의 능력을 말합니다. 세상의 능력은 금력, 권력, 학력, 외모 등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그런 능력들이 작았습니다. 지진으로 무너진 도시의 빈민들이 주로 빌라델비아 교회의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작은 능력으로도 인내의 말씀을 지킴으로 열린 문의 상급을 받았으며 면류관을 얻었습니다.

<계3:8>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왜 능력이 작았을까요? 교인들의 사회적 환경 때문입니다. 빌라델비아 도시는 주후 17년 경에 있었던 지진으로 폐허가 된 도시였습니다. 주후 20년 경에 스트라보는 빌라델비아를 "지진들이 충만한 빌라델비아 시"라고 설명합니다. 그런 무너진 도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부자들은 목장이 있는 좋은 곳으로 이주하고, 도시에는 폐허가 된 건물과 건물 사이에서 도시 빈민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신분이나 지위나 자산 등에서 세상적으로 아주 미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학력도 낮았고 힘도 없었고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가진 능력은 작은 능력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로 나왔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에 비하면 사데 교회는 유력한 자들이 섬기던 교회였고,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한 자들의 교회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교회들은 무너졌고 엉겅퀴만 가득해졌습니다. 책망만 들었습니다.

 

교회의 힘은 학력이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권력도 재력도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세상적인 능력이 작을 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게 힘입니다. 교회는 환난이 오고 핍박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때 힘이 있습니다. 성경을 지킬 때 힘이 있습니다. 교인들의 학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저는 반지성주의자인가요? 아닙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합니다. 다만 기독교인은 세상처럼 공부해서 남주냐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공부해서 남주라고 가르칩니다. 그것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라고 말씀합니다. 공부잘하면 좋지요. 사회적으로 좋은 지위를 가지면 좋지요. 세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런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면 더할 나위 없이 좋지요. 금상첨화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나누는 빌라델비아 교회의 말씀은 능력이 작았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켰다는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능력이 많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더더욱 좋지요. 그러나 능력이 작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앞에 열린 문을 두면 면류관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능력이 작아도 말씀을 지키면 강한 교회요 힘있는 교회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장로님은 27세에 장로 장립을 받았는데 일본 제국주의 순사들이 와서  동방요배하고 장로장립을 받으라고 하자 단호히 거부하고 감옥에 들어 가셨습니다. 그런데 감옥 안에서 일본 순사가 "아무도 보지 않으니까 나 혼자만 알고 있을테니 여기서 동방 요배하라"고 하자, "하나님이 여기도 계시거늘 어떻게 그럴 수 있겠나"하시면서 고난의 길을 택하셨다고 합니다. 교회의 능력은 세상의 외모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힘은 능력은 작아도 인내의 말씀을 지킬 때 가장 강합니다.

 

 

6. 열린 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예수님이 주십니다.

 

빌라델비아 교회가 얻은 열린 문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부활의 주님이 주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라고 표현합니다.

 

<계3: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다윗의 열쇠는 히스기야 왕 때에 엘리아김이 셉나를 대신하여 받은 왕궁의 열쇠입니다. 하나님은 힐기야의 아들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열쇠를 맡기십니다.

 

<사22:20~22>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22 내가 또 다윗의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엘리아김은 히스기야 왕 시대의 왕실 사무장이었습니다(왕하18:18, 19:2) 엘리아김의 말 뜻은 "엘(하나님)이 세우시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엘리아김의 흔적이 '텔 베이드 미르심', '벧세메스', '라맛 라헬'등에서 출토된 인장 날인에서 발견됩니다. 하나님은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이 열쇠는 예루살렘에 있는 궁전의 방과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우리가 가진 열쇠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당시의 열쇠는 허리에 차거나 어깨에 걸고 다니는 큰 열쇠였습니다.(22절, 참조 삿3:25, 대상9:27)  하나님은 '내 종' 엘리아김에게 다윗의 열쇠를 주었습니다. 특별히 엘리아김은 셉나를 대신하여 이 열쇠를 받습니다.

 

셉나는 하나님이 택하셨던 지도자였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에게 버림 받은 지도자였습니다. 셉나는 '국고를 맡고 왕궁을 맡은 자'(사22:15) 였으나 '수치를 끼치는 너'(사22:18)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셉나를 쫓아내고 셉나의 옷과 셉나의 띠와와 다윗의 열쇠를 엘리아김에게 주셨습니다.(사22:31)

 

<사22:15~21> "15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16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높은 곳에 자기를 위하여 묘실을 팠고 반석에 자기를 위하여 처소를 쪼아내었도다  17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18 반드시 너를 모질게 감싸서 공 같이 광막한 곳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에 있으리라  19 내가 너를 네 관직에서 쫓아내며 네 지위에서 낮추리니  20 그 날에 내가 힐기야의 아들 내 종 엘리아김을 불러  21 네 옷을 그에게 입히며 네 띠를 그에게 띠워 힘 있게 하고 네 정권을 그의 손에 맡기리니 그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의 집의 아버지가 될 것이며"


 

7. 예수님만이 열린 문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구원의 문인 열린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열쇠로 열어서 빌라델비아 교회에 주신 열린 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영생의 문이요 천국문이요 선교의 문입니다.

 

다윗의 열쇠가 가진 역사적인 유래를 알면 이것이 더욱 명확해집니다. 다윗의 열쇠는 권력의 상징이었습니다. 권세의 상징이었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왕궁의 열쇠였으며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능력의 열쇠였습니다. 이 다윗의 열쇠로 문을 열면 들어가 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왕을 만나는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 교회와 베드로의 이야기 속에 열쇠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주님이 열린 문을 두셨고, 베드로에게는 천국 열쇠가 주어졌습니다. (마16:18~19) 열쇠는 전권 위임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 통로를 만들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비로 이것입니다.  다윗의 열쇠는 왕궁의 문을 열어 왕을 만날 수 있는 통로를 여는 열쇠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다윗의 열쇠를 700여년이 지난 주후 1세기에 하늘의 왕궁을 여는 열쇠로 생각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를 여는 열쇠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문입니다. 그 열쇠로 여는 문은 하나님의 왕궁으로 가는 문이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문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성전과 회당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이 자신들의 성전과 회당에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빌라델비아 교회에 놀라운 묵시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는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두셨다!

 

다시 말하면 우리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에 열린 문을 두사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왕궁에 들어가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자신들의 회당에서 그리스도인들을 쫓아 내던 유대인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씀이요, 쫒겨 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위로와 축복의 말씀이었습니다. 성전과 회당을 통하여 다윗의 열쇠 신앙이 전해지고, 자신들만이 하나님을 만나는 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대인들에게 쫒겨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복음 중의 복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다. 우리 주님이 다윗의 열쇠로 열린 문을 두셨는데, 이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여신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구원의 문이 있는 는 것입니다.

 

 

8 우리 상동교회는 이미 열린 문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124년 전에 우리 교회에 열린 문을 주셨습니다. 일리엄 벤튼 스크랜턴은 성문 밖 사람들을 위하여 삼총사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남대문에 우리 상동교회와 동대문에 동대문교회와 서대문에 아현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표적인 우리 상동교회에 하나님은 이미 열린 문을 두셨습니다. 이 열린 문으로 남대문의 성문 밖 사람들은 하나님께로 나아가고, 이 문으로 혼돈과 공허와 흑암에 살던 어둠의 백성들이 빛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은 다시 세상을 향하여 활짝 열려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세상으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갔습니다. 우리 교회는 양반을 피해서 남대문 지역으로 왔습니다. 한국은행 자리에 시병원을 세웠고 달성궁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 교회의 대표적인 목사님이신 전덕기 목사님은 시체 처리 종결자이셨습니다. 마른 쑥과 나막신의 목회자이셨던 전덕기 목사님은 남대문 지역의 빈민들이 죽으면 시체에서 썩는 물이 나오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나막신을 신었고 악취를 막기 위해 코에 마른 쑥을 틀어 막으시고 시체를 치우셨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설립 취지 부터 가난한 자를 위한 교회로 시작하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사회에서 유력한 자가 아닌 남대문 지역의 빈민들이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우리 상동교회는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열린 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열린 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문으로 우리는 수 많은 빈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했고, 다시 그 열린 문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으로 나아가 이 민족의 빛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린 문을 두시자 하나님이 세우신 사역자들이 우리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열린 문을 가진 교회!

열린 문을 가진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의 대표자로서 강단에 상징적인 돌까지 박아 놓은 이준 열사는 우리 교인입니까? 아니면 장로교인입니까? 저는 이준 서거 사역을 하면서 어떤 분이 이준이 자기네 교회 교인었다는 애기를 들었습니다. 좀 알아보니 이준은 원래 장로교회를 찾아갔는데 뜻이 맞지를 않아서 전덕기 목사님을 찾아왔고 우리 교회의 열린 문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열린 문을 가진 교회입니다. 저는 우리 상동교회가 우리 주님이 우리 앞에 열어 놓으신 이 열린 문을 지켜 가기를 사모합니다.

 

 

9. 열린 문은 복음 전도를 위한 선교의 문이기도 합니다.

 

이제 저는 마지막으로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의 문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열린 문은 직역하면 천국문, 영생으로 가는 문입니다. 그러나 의역을 하면 이 문은 선교의 문이기도 합니다. 복음을 위한 선교의 문입니다. 교회는 선교를 위하여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우리 상동교회가 어떻게 이루어졌습니까? 우리의 옛 나라 우리 조선을 위하여 중년 부인 미레 플레처 스크랜턴이 선교의 문을 열기로 결단하여 세워졌습니다.

 

당시 52세였던 메리 플레처 스크랜턴은 조선을 위하여 자신의 젊음을 바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 윌리엄 벤튼 스크랜턴에게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의 문을 열자고 권면합니다. 더더욱 감동적인 것은 스크랜턴 목사님의 부인의 믿음입니다. 스크랜턴이 조선의 선교사로 헌신하고 사모님에게 물어보니 사모님은 기꺼이 수용하시면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기셨습니다. "가다마다요. 나는 결혼할 때 당신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간다고 서약했으니 조선으로 기꺼이 가갰습니다. " 서약 때문에 선교사인 남편을 따라 한국에 와서 선교의 문을 열었습니다. 국운이 쇠하여 기울어져 가는 어둠의 나라 조선을 위하여 한 중년 부인이셨던 메리가 결단하고, 그 아들이 결단하고, 그 아들의 부인이 결단하여 우리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옛 예배당 이름이 미드 메모리얼 처치입니다. 미드를 기념하는 교회입니다. 미드씨가 헌금을 했습니다. 왜 그랬습니까? 왜 스크랜턴 일가가 헌신하고, 왜 미드씨가 헌금을 했을까요? 그들은 돈이 남아 돌았나요? 그들은 할 일이 없었을까요? 윌리엄 벤튼 스크랜턴은 컬럼비아 의과 대학을 졸업한 엘리트 의사였습니다. 그가 왜 우리 나라에 왔을까요? 단 한가지 이유입니다.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의 문을 열고자 온 것입니다. 그들은 거기서 그냥 의술을 펼쳐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을 찾아 왔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이땅에 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문으로 수 많은 성문 밖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나왔습니다. 영생으로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의 왕궁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가 민족의 빛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되었습니다.

 

제 연배되는 50대 사람들은 레드 콤플렉스의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는 반공교육을 받은 마지막 세대입니다. 우리는 세계 지도를 놓고 공부하면서 자유중국과 중공 이렇게 구분했습니다. 북괴, 북한 괴뢰도당, 이렇게 배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주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친북좌파는 반대합니다. 그래서 대선 때도 50대는 깜짝 놀라는 이변을 연출시켰습니다. 자 소련에 선교사가 갈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중공에 복음의 문이 열릴 것을 누가 알았습니까? 북한에 가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시베리아의 철의 장막이 무너지고, 중공의 죽의 장막이 무너지고, 북한 3.8선이 무너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기도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불가능하다고 비웃는 사람도 있었고, 심지어는 공산주의자냐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평가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삼자교회는 정당한 교회냐? 지하 교회가 진짜 좋은 교회 아니냐? 조선 그리스도교 연맹은 옳은 교회냐?  지하 교회의 성도들이 진짜 성도들이 아니냐? 분석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언어 분석적인 현란한 수사학을 버리고 쉽게 생각하겠습니다. 선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복음전도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하였던 선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삼자교회든 지하교회든, 조그련 소속 교회든, 비밀교회든, 한 가지 공통된 것이 있습니다. 적어도 예배할 때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송할 때도 오직 하나님께만 찬송합니다. 예배당 안 만큼은, 예배할 때 만큼은, 적어도 김일성 초상화를 걸어 놓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문이 열린 것입니다. 선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복음전도의 문, 선교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 문을 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와 땀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저는 하나님이 우리 상동교회 주신 열린 문을 잘 지켜 가기를 사모합니다.

 

이제 저는 선교의 문을 열었던 한 사람을 소개하면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인도에 선교의 문을 열었던 윌리엄 캐리의 이야기입니다. 인터넷 등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캐리는 1761년 햇볕이 따사로운 8월의 어느날 영국의 노스햄턴셔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납니다. 아버지의 압력으로 구두수선공이 캐리는 1779년 캐리가 19살 때, 한 기도 모임에서 히13:13 말씀을 심령으로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한 말씀을 통해 그동안의 세상과 타협하여 살던 뜻뜨미지근한 신앙을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과 능욕을 받고자하는 분명한 결단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전 생애를 그리스도께 헌신하겠다고 기도했습니다. 캐리는 당시 태평양 탐험가였던 제임스 쿡(James Cook)이 쓴 '마지막 항해' 라는 책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습니다. 쿡은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아무도 그들에게 기독교를 전해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명예도 유익도 뒤따르지 않기 때문이지요.’  캐리는 선교지도를 만들기 시작하였고 하나님께 헌신한 자신의 선교비전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는 늘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위대한 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위대한 일을 시도하라’

Expect great things from God, attempt great things for God! 

 

1793년 캐리는 인도로 가기로 결단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습니다. 아버지는 한 마디로 미친 놈이라고 했습니다. 공주병자였던 부인은 울면서 가정을 돌보라고 말렸습니다. 캐리가 섬기던 교회 성도들도 영국 교회만 잘 섬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캐리는 인도로 갔습니다. 하지만  벵갈에서 7년간 땀 흘렸지만, 단 한명의 인도인 개종자가 없었습니다. 큰 아픔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1800년, 19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캐리는 선교기지를 세람포르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18년 동안 약 600명이 세례를 받고 수 천명이 예배에 참석하게 됩니다. 특별히 캐리의 사역이 힘을 얻었던 것 중 하나는 합심동역이었습니다. 흔히 세람포르이 삼총사라고 불리운 캐리와 워드와 마쉬만은 23년간 긴밀하게 사랑하고 축복하며 믿음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희망은 비전을 꿈꾸는 자의 몫이며 화합의 나무에 열리는 열매입니다.

 

여러분! 빌라델비아 교회는 열린 문을 얻었습니다. 면류관을 얻었습니다. 시험의 때를 면제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 같은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임을 선포했습니다. 교회의 소유권이 하나님에게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우리 상동교회도 하나님이 활짝 열어 놓으신 열린 문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 희망을 선포합시다. 우리 모두 우리에게 열어 놓으신 우리 주님의 열린 문을 지킵시다. 하나님께로 가는 문, 영생으로 가는 천국 문, 현재에서 예수님의 미래 - 종말론적인 미래를 경험할 수 있는 통로, 그리고 복음전도를 위한 선교의 문으로서 열린 문을 지켜 갑시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게 하는 선교 공동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