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에스겔의 비전(겔1:1-5)주일(2009-10-18)

우순(愚巡) 2009. 10. 20. 08:17

<에스겔의 비전>

 

   





(에스겔1:1-5)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2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 가에서 부시 제사장의 아들 나 에스겔에게''>2)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4  그 때에 내가 바라보니, 북쪽에서 폭풍이 불어오는데, 큰 구름이 밀려오고, 불빛이 계속 번쩍이며, 그 구름 둘레에는 광채가 나고, 그 광채 한가운데서는 불 속에서 빛나는 금붙이의 광채와 같은 것이 반짝였다.  5  그러더니 그 광채 한가운데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습은 사람의 형상과 같았다.



(에스겔 47:1~5)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감사의 계절입니다. 곧 추수감사절입니다. 우리 상동교회는 매년 11월 첫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요즘도 저는 매일 아침 감사와 행복의 기도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매일 매일 삶이 힘들더라도 꼭 감사의 기도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매일 매일 자기가 행복함을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올 가을은 굳은 믿음과 넘치는 감사의 가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로새서 2:6-7)

 

  오늘 나눌 말씀은 에스겔의 비전입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흘러 나오는 물을 보았습니다. 한글은 환상이라고 번역했지만 영어는 Vision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의미는 거짓된 광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광경을 뜻하기에 영어번역이 더 원뜻을 잘 설명합니다. 에스겔은 착각에 의한 환각이나 환청 같은 것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을 본 것입니다. 에스겔은 성전에서 물이 흘러 나와 바다를 되살리고 강을 되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BC597년에 포로로 끌려 가서 5년 후인 BC593년 30세 부터 선지자의 삶을 살았던 에스겔은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포로들은 절망했습니다. 떠도는 유언비어에 뒤숭숭했습니다. 땅을 쳐다 보며 깊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모두가 절망했을 때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다수의 무리들이 만든 민중의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을 중심으로 만들어 가는 영웅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한 사람, 그는 선지자요 제자입니다. 그는 세상의 소욕을 좇는 사람이 아니라 영의 소욕을 좇는 사람입니다. 노아가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예수가 그랬습니다. 수 많은 선지자들이 그랬습니다. 사도들이 그랬습니다. 베드로가 그랬고 바울이 그랬습니다.

 

  우리 교회를 설립한 스크랜턴 선교사도 중요한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에 일본에 있는 스크랜턴 선교사의 묘지를 방문했습니다. 스크랜턴 목사님의 증손자인 Thomas Davies가 묘지 앞에서 시편 23편을 읽었습니다. Thomas는 목이 메어 울면서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옆에 있던 부인 Henrieta가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해주었습니다. 저도 Thomas를 옆으로 불러서 꼭 안아주면서 위로했습니다. "나와 우리 상동교회와 한국 교우들은 당신의 외증조부 스크랜턴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연신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자기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증손녀 Salley는 행사 내내 마태복음 5장 14절을 읽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그렇습니다. 123년전 아무도 아직 한국에 대해 희망을 보지 못할 떄 스크랜턴 목사님 가족은 한국에서 생수의 강물이 흐를 것을 보았습니다. 그 생수의 강물이 바다를 되살리고, 강물을 되살릴 것을 보았습니다. 서대문 밖, 동대문 밖, 그리고 우리 남대문 밖에 있는 가난한 민중을 살릴 것을 보았습니다. 그 스크랜턴 목사님 가족들 때문에 우리 상동교회가 생겨났고, 아현교회가 생겨났고, 동대문 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이화여자대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와 매향여중이 생겨났습니다. 우리가 경영하고 있는 삼일중고등학교와 협성대학교도 결국은 스크랜턴 목사님이 심으신 씨앗의 열매입니다. 스크랜턴 목사님은 수원 종로교회를 세우셨고, 수원 종로교회 교인들은 삼일학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우리가 그 학교를 인수하여 경영하면서 협성대학교를 세웠습니다. 한 사람이 한 알의 밀알이 되닌 많은 열매가 열렸습니다. 이처럼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의 비전을  볼 때 어둠의 역사에 밝은 빛이 환하게 켜집니다.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옵니다>

 

   에스겔의 시대에 성전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성전은 철저하게 무너졌습니다. 더구나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가서 느부갓네살의 식민통치 속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그발 강가의 작은 기도처에서 말씀을 나눌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그 와중에도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것이 신앙의 축복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성전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는 비전을 보십니까? 교회에 대한 세상의 비난,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근거 없는 헛 소문들 때문에 절망하신 적은 없습니까? 빌 하이벨스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하시면서 내걸었던 슬로건은 "교회가 희망입니다"였습니다. 저는 믿습니다. 누가 무어라 해도, 교회가 희망입니다, 예배가 축복입니다, 말씀이 생기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한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상동교회에 대한 비전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상동교회에서 생수의 강물이 흘러 나옵니다.

 

  생수의 강물은 성령이십니다. 구약의 할레는 세례 요한의 물 세례를 거쳐 예수님의 성령 세례에 이릅니다. 물 세례는 할례와 성령 세례를 잇는 다리입니다. 생수의 강물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약속 곧 성령세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다.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목마른 자는 예수님에게로 와서 생수의 강물 성령을 받아 마시라고 말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7-39)

 

  에스겔은 본 성전의 물은 성령의 생수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생수의 강물 곧 성령세례의 역사가 터져 나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실 때 당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 교회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중요합니다. 사람들은 곧잘 교회를 떠납니다. 이런 저런 이유가 있습니다. 합당합니다. 아주 논리적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사단의 미혹입니다. 예수님이 세우신 초대 교회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의 부인이 있었습니다. 요한의 알몸 스트리킹이 있었습니다. 도마의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몇 날만 참으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사도행전1:4-5)


 

 

  <하나님의 비전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영적 체험이 필요합니다.>

 

  에스겔의 이름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강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하나님이 주어가 되는 삶이 비전을 보게 만듭니다. 에스겔이 체험한 비전은 하나님에 대한 영적 체험에서 얻었습니다. 에스겔 1장 1절로 3절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갈대아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겔1:1-3)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여호와의 권능에 붙들렸습니다. 에스겔은 하늘을 보았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한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손에 붙들렸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엘로힘 야드"라는 히브리어의 번역입니다. 엘로힘 야드는 직역하면 하나님의 손입니다. 히브리인들은 하나님의 손에서 권능이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사람들는 땅만 보면서 절망하지 않습니다. 하늘을 보고 하나님의 희망을 봅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수근거리는 소문만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특별함 메시지를 듣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구걸과 거래의 손을 내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삽니다. 그런 사람, 하나님의 비전을 바라 볼 수 있는 그런 한 사람이 중요합니다.

 

 

   요즘 우리 상동교회는 두 가지 중요한 영적 행사를 하고 있습니다. 추수 감사절 새벽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2009 영성 축제를 하고 있습니다. '2009 영성 축제'는 10월 19일 부터 22일 까지 매일 저녁 전준구 목사님을 모시고 진행됩니다. '추수감사절 특별 새벽기도회'는 10월 11일 부터 11월 1일 까지 3주간 매일 새벽 5시 30분과 7시에 두 번 모입니다. 시간을 내서 꼭 참석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이 하늘을 볼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릴 때입니다. 지금이 하나님의 비전을 볼 때입니다. 지금이 성전에서 생수의 강물이 흘러 나오는 것을 볼 때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희망을 회복할 때입니다.

 

  2009년 10월 19일  담임목사 서철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