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기도회 강론

십자가의 원수(빌3:18) 사순절기도16(2009-04-09)

우순(愚巡) 2009. 4. 9. 20:04

<십자가의 원수>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빌3:18)

 

   할렐루야!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도 주님 은혜 가운데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십자가의 원수'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나누는 말씀은 조심스럽습니다. 일시 메일을 보낼 때 금칙어가 있습니다. 음란성 언어, 폭력성 언어, 상행위 등이지요. 목사들에게는 설교할 때 금칙어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탄이라는 말입니다. 사탄이라는 말을 하면 성도중에 오해를 해서 상처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성경을 순서대로 설교하는 강해설교를 좋아합니다. 성경을 순서대로 설교하면 상처받을 일도 없고 시험들 일도 없습니다. 만약 제가 개척교회를 한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목회 시스템을 가동할 것입니다. 지금 저는 제 본래의 모습이 아닌 상동교회식의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안정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상동교회식이나 제 식이나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니 좋고 나쁨은 없습니다. 그냥 그렇다는 것입니다.

 

  성도들 중에는 다른 교회에 가면 은혜를 받는 일을 가끔 경험합니다. 저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들도 다룬 교회 성도들을 보면 늘 평안합니다. 왜 그러냐면 서로 책임이 없고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편안할 뿐이지 서로 함께 살수는 없습니다. 교역자와 성도는 부부 같습니다. 서로 토닥거려도 부부가 함께 사는 것입니다. 자기 교회 목사가 제일입니다. 자기 교회 성도가 제일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면서 늘 부부처럼 서로에 대한 기대를 유지시켜 갈 때 행복이 있습니다.

 

   오늘 나눌 말씀은 '십자가의 원수'인데 시험드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여러분들은 이 설교가 누구를 가리키는 설교인가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긴장 관계를 갖고 들으시면 은혜가 됩니다. 나를 겨냥한 설교가 아니라는 생각과 바로 나를 향한 말씀이라는 생각을 동시에 가져야 은혜가 됩니다. 나를 겨냥한 설교가 아니라는 생각은 목사가 나를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은 모든 말씀을 들을 때마다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은혜받으라는 말씀입니다.

 

   바울은 울면서 부탁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여러번 말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십자가의 원수로 행합니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이며 땅의 일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빌3:19)  우리는 이 말을 들으면서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선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두말할 것 없이 우리는 십자가의 원수가 안되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아주 역설적인 생각을 동시에 갖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원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입니다. 십자가의 원수! 십자가의 원수가 안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원수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십자가의 원수들은 모두 다 예수님의 측근이거나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무죄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이브는 어머니 뱃속에서 안나오고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존재입니다. 한 마디로 아직 죄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범했습니다. (창3장) 사탄의 역할은 예수님의 최측근이었던 가룟 유다가 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식사를 하시면서 가룟유다를 마귀하고 지칭했습니다(요6:70-71). 가룟 유다는 재정을 맡았던 최측근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베드로도 사탄의 역할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를 구원하시려 하실 때 기을 막았다가 예수님께로 부터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막8:33)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나 사탄의 시험에 빠져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습니다.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겼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가로막아 나섰다가 졸지에 사탄이 되었습니다. 무엇인 문제입니까? 측근이라는 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넘어질까 조심하는 신앙입니다. 넘어질 거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오히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조심하기 때문입니다. 무병단명 하고 일병장수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병이 없던 사람은 태만하다가 돌연사나 급사를 하기 때문에 단명하고, 한 가지라도 병이 있으면 건강을 조심하다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장수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믿음이 그렇습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는 사람은 오히려 안넘어집니다. 방심하다가 큰 곤욕을 치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십시요!

 

  제일 먼저 나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 다음은 내가 사탄의 짓거리를 놀아날 수 있다고 생각하십시요.그리고나면 조심하게 됩니다. 방어하게 됩니다. 면역력을 기르게 됩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하라!"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사탄이라는 말 자체를 금칙어로 받아들입니다. 더더욱 자기를 사탄으로 몰아세우면 그 좋던 믿음도 성격도 다 떄려 칩니다. 당연합니다. 사탄은 기독교 신앙의 금칙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그 우리가 그토록 싫어하고, 우리를 사탄으로 몰면, 아니 사탄으로 안 모는 데도 사탄으로 몰았다고 분노하는 그 역할을 아담과 이브가 했습니다. 그리고 수제자 베드로가 했고, 최측근 가룟 유다가 했습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를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에배소서 4장 2절의 말씀은 의미가 깊습니다. 마귀는 뱀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옛 뱀이라고 합니다.(계12:9). 뱀의 속성이 있습니다. 뱀은 틈을 찾습니다. 틈으로 들어가면 역발산기개세 [力拔山氣蓋世] 의 항우 장사라도 빼낼 수가 없습니다. 뱀은 일단 들어가면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꼬리를 잡고 뺄 수가 없습니다. 비늘을 세운 뱀은 꼬리가 잘릴지언정 빠지지 않습니다. 마귀가 그렇습니다. 일단 틈을 비집고 들어 오면 안나갑니다. 나갈 수 있는 경우는 단 한가지 마귀의 머리를 붙들 수 있도록 파괴를 해야 합니다. 건강을 파괴하든, 재물을 파괴하든, 행복을 파괴하든, 마귀가 들어 온 틈의 몸체를 파괴해야만 마귀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일단 들어 오면 잡을 수는 있지만 파괴해야 하기 때문에 아예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십자가의 원수와 하늘의 시민권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할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내가 그런 사탄의 짓거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하고 틈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늘의 시만권자이기 때문입니다.(빌3:20) 우리는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들입니다.(빌3:20).  주님은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입니다.(빌3:2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의 은혜 가운데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십자가의 원수로 살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승리하시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권자입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가 아니라 하늘의 일을 생각하는 자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