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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웨슬리 신학

[스크랩] 존 웨슬리의 생애와 윤리 3부

우순(愚巡) 2006. 4. 17. 23:09

오랫만에 웨슬리의 생애와 윤리 3부를 올립니다. 이번에는 저도 이 글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그저 요약만 하기에는 만족할 수 없어서 이리 저리 생각을 하다보니 그렇게 되었고, 글도 길어졌습니다. 읽는 분들이 어떻게 느낄지 몰라서 글을 올리면서도 불안합니다 - 사실은 제대로 검토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읽어 보실 분들이 계시면 읽으신 후에 의견을 말씀해 주시면 나중에라도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번 3부를 올리는 것도 꽤 시간이 지체되었었기 때문에, 4부는 언제 올리게 될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4부로 넘어가기 전에 제가 생각해 보니 웨슬리의 생애와 윤리를 다룬다고 하고선, 생애 부분은 너무 안 다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음 글에서는 순서를 좀 바꿔서 생애 부분을 먼저 간단하게나마 다룰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후에 웨슬리의 윤리사상의 나머지 부분들을 차례대로 다룰까 합니다. 혹시라도 다른 의견들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요.  별다른 의견이 없으면, 제 생각대로 글을 순서를 바꿔서 진행할까 합니다. 많은 양해 바랍니다. 그럼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김충환 전도사 올림

 

 

존 웨슬리의 생애와 윤리 3부: 사회 윤리의 기준들 (사랑과 법)


존 웨슬리는 믿음과 능동적인 윤리적 삶의 실행 사이에 질적인 차이나 심각한 긴장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윤리적 삶의 유기적인 통합을 오히려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기적인 통합에 대한 강조는 웨슬리가 믿음을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로만 아니라 동시에 의무”1)로 이해한 것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믿음을 선물과 의무로 이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을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이해하여 개인적인 윤리와 도덕성만을 강조하는 것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인이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기독교 신앙의 사회 윤리적 차원이 형성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 장에서는 웨슬리의 사회 윤리를 형성하게 한 동기들과 척도들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1.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기독교 사회 윤리의 동기와 기준이라는 주제들을 다룰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빠짐없이 주장하는 것은 바로 모든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웨슬리 역시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을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가장 근본적인 윤리적 동인 - 윤리적 동인이라는 용어의 뜻은 쉽게 말하면 윤리적 행위자가 윤리적 행위를 하게 만드는 능력 또는 원인이라 할 수 있다 - 으로 삼고 있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의 결과라고 믿는다.


여기서 우리는 웨슬리가 자신의 윤리의 기준으로 삼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과 그 결과로서의 이웃 사랑에 대한 강조는 믿음(faith)의 중요성에 대한 웨슬리의 남다른 인식과 강조에서부터 시작하였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웨슬리는 1738년 5월 24일 오후 8시 45분 올더스게이트(Aldersgate) 거리의 소집회에서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을 경험한 이후2), 믿음과 구원에 대한 확신(assurance)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 속에서 얼마만큼 중요한가를 더욱 크게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웨슬리는 믿음만이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 채워주고, 각각의 그리스도인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동기가 된다고 믿었다. 웨슬리는 오직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칭의론(justification by faith)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의롭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웨슬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기쁜 확신에 대한 응답”3)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믿음 안에서만 웨슬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고, 믿음만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로 이끄는 통로가 된다. 웨슬리의 생애와 그의 신학과 윤리 안에서 믿음과 사랑은 각각의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을 닮아가도록 이끄는 동기가 되었고, 이 둘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관계로 남아있게 된다.


예정론과 계몽주의적 인본주의에 반대하여

마르쿠바르트에 의하면 웨슬리는 두 가지 견해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를 했다고 한다. 첫 번째, 웨슬리는 칼빈주의적 “예정론”을 강하게 반대한다. 존 칼빈(John Calvin, 1509-64)은 프랑스 출신의 종교 개혁자로서 여러 가지 정치?종교적인 이유로 인해서 프랑스가 아니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자신의 종교 개혁 사상과 의지를 펼쳤던 사람이다. 그의 핵심적인 신학 사상 중의 하나인 “예정론”은 많은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칼빈의 “예정론”을 간단하게 말한다면 이 세상에는 구원 받을 사람과 구원 받지 못할 사람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미 정해졌다는 것이다. 구원 받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미리 정해졌다고 해서 “이중예정론”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견해를 따르게 될 때,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우선, 만약에 하나님에 의해서 구원 받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미리 정해져 있다면, 구원에 관계된 기독교의 교리들이나 설교 또는 선포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지게 된다. 다르게 말하면, 사람들은 교회에 나와서 설교를 듣거나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고, 선한 일을 하기 위해서 애를 쓸 필요가 전혀 없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원 받을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미리 정해진 상황에서는 그런 것들이 개개의 사람들의 구원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는 칼빈의 “이중예정론”이 “모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부정하고, 결과적으로 사랑의 아버지[하나님]를 강력한 폭군으로 만드는 것”4)으로 보였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과 은혜의 행위와는 전혀 일치되지 않은 것”5)으로 여겨졌다. 모든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완전함에 대한 어떤 의심도 갖지 않았던 웨슬리에게 칼빈의 이중예정론은 “하나님의 사랑을 왜곡시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함으로 주어진 그리스도인의 행복을 또한 파괴하는 것”6)으로 보았다. 이런 칼빈주의적 이중예정론을 강하게 반대하는 듯이 웨슬리는 “폐기물과 같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보라! 인간의 어리석음으로까지 낮아지신 하나님의 사랑에 가득찬 겸손을 보라!”7)라고 외치기까지 했다.


두 번째, 웨슬리는 계몽주의적 인본주의[Enlightenment humanism]를 반대한다. 웨슬리는 주로 루소, 볼테르, 흄 등의 작품 속에서 계몽주의적 인본주의를 알게 되었다. 웨슬리가 계몽주의적 인본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계몽주의적 인본주의가 하나님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에 대한 의무 불이행 또는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불복종을 야기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리는 “사람들은 이것을 인간성, 덕, 도덕 혹은 달리 좋을대로 부른다. 그러나 이는 무신론보다 더 좋은 것도 아니고 더 나쁜 것도 아니다. 인간들은 의도적으로 그리고 심사숙고하여 하나님과 결합되어 있는 것 - 첫 번째 계명 판과 두 번째 판의 의무들을 분리시킨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이웃사랑을 하나님 사랑에서 분리해 낸다.”8)라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한층 더 강한 어조로 “모든 자연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교와 모든 행복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음을 우리는 안다: 하나님 없는 행복을 추구하도록 가르치는 사람들은 사회를 좀먹는 해충들이라는 것도 우리는 알고 있다.”9)라고 주장했다. 웨슬리에게 모든 선과 행복의 근원은 바로 하나님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도덕적 행위 능력에 근거해서 선이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웨슬리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우리가 웨슬리를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계몽주의가 무엇이가에 대해서 아주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계몽주의(Enlightenment)는 18세기에 나타난 서양의 사상적 조류로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784년 『계몽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용기를 내어 알고자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10) 계몽주의는 서양의 각 나라에서 각기 다른 특성들로 표현되었지만, 각각의 다양성 속에 공동적으로 존재하는 중요한 요소들이 있었다. 지식의 생산과 소비가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과학정신은 “자연에 대한 실험으로 종교의 미신을 하나하나 타파해 나가는 중요한 도구”11)로서 계몽주의 정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경험과 분석적인 귀납법은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개인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정치, 사회, 경제의 모든 분야에서 절대군주제의 개혁이나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의 해소 등의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활발한 움직임도 생겨났다.


계몽주의가 전파한 주제는 “이성의 우월성”이었다. 계몽주의의 정신을 간략하게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다: “이성을 잘 활용하면, 사람은 타고난 권리로서 자유와 평등을 알게 되고, 결국 이제까지 그릇된 사회생활을 청산하여, 행복한 삶을 보장해줄 새로운 사회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제까지 과학의 발달과 사람의 정신의 발달에서 보기를 찾을 수 있듯이 사람에게는 진보가 있을 것이다.”12) 18세기의 계몽주의는 모든 종류의 인간의 자유의 문제를 다뤘다 -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종교적 자유까지. 이런 자유를 강조한 사람들의 대부분이 이신론(理神論者)들이나 무신론자들이었다. 이신론이란 우주를 설계한 신적인 존재가 있다는 주장으로서, 이신론자들은 신이 우주를 설계하고 창조하였지만, 창조한 이후에는 초연한 자리로 물러앉아 이 세상이 합리적인 자연법에 따라 움직이도록 내버려 두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신론의 신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상당한 충돌을 하게 된다.


이성의 우월성과 더불어,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의 행복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인간이 가진 이성이 인간에게 자유와 평등을 되찾아주어 행복한 존재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계몽사상가들은 “자연”이라는 주제를 발전시켰는데,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자기완성능력”이었다.  이와 관련해서 주명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은 본성상(자연스럽게) 이 능력을 가지는데, 이러한 능력은 바람직한 형태의 사회 속에서 더욱 완전히 발휘될 것이다. 계몽사상가들에게 ‘자연’은 현실과 이상을 함께 설명하고, 경험과 규범을 함께 지향하는 개념으로서, 새로운 도덕을 세우는데 바탕을 이루는 개념이었다. 이러한 ‘자연도덕’ (morale maturelle)의 목적은 바로 사람의 행복이었다. 디드로는 “사람의 의무가 단 하나뿐인데, 그것은 행복해지는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볼테르는 “행복은 자연이 우리에게 판 재산”이라고 말하였다.13)


웨슬리는 이런 사상적 흐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웨슬리는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에 적절한 신학적 숙고와 결단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의 유직적인 통합을 추구했던 사람이다. 계몽주의가 인간 이성의 우월성과 그것에 기초한 행복을 추구했다면, 웨슬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우선성과 하나님만이 그리스도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행복의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은 신앙인이 어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가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인가? 사람인가?...나는 웨슬리에게 이 문제가 가장 중요했었다고 생각한다.


신앙과 이성

웨슬리의 윤리사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주의해서 보아야 할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웨슬리의 신학 사상과 삶 속에서 나타난 신앙과 이성과의 관계이다. 웨슬리는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삶에 있어서 네 가지 중요한 것을 강조했다: 성경, 전통, 체험, 그리고 이성. 이것을 웨슬리의 4대 원리들 (the Wesleyan Quadrilateral)이라고 부른다. 성서는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원리이다. 성서는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들과 모범들을 제공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방향을 지시하는 아주 중요한 원천자료인 것이다. 웨슬리에게 전통은 성서 해석과 신학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초대 교회의 교부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온 성서 해석과 신학의 전통이 특히 중요했다. 과거의 신학 전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서 쌓여온 기독교의 전통을 자신이 살 던 시대에도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 웨슬리의 태도는 온고지신(溫故知新: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을 배운다)의 정신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중요한 원칙은 체험이다. 웨슬리 자신이 회심의 경험을 통해서 구원과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 원칙에 대한 강조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신비스러운 경험에만 기대어 경험을 강조하기 보다는 공동체의 체험을 신학적인 해석을 할 때 더욱 중요하게 여겼다는 것은 기억해야 한다.


성서, 전통, 체험들과 더불어 이성은 웨슬 리가 강조한 마지막 원칙이기는 하지만, 아주 중요한 원칙이기도 하다. 나는 웨슬리가 이성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을 보인 것은 기독교 신앙이 비이성적이고 감정만의 종교로 빠지는 것을 일차적으로 경계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성이 결여된 믿음은 맹목적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기도 하다. 사실,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무수히 쌓여온 신학적 결과물들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신 이성적 능력을 사용한 결과이다. 실제로 웨슬리가 계몽주의적 인본주의의 맹점들을 맹렬히 비판할 때, 사용한 것이 바로 그 자신의 이성적 능력과 논리였던 것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웨슬리는 계몽주의적 휴머니즘이 인간 이성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옹호했던 면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웨슬리의 모습에 대해서 박충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웨슬리의 윤리사상은 보편적인 하나님의 은총의 선행성을 강조함으로써 “상대적인 교회의 권위와 교조적 주장” 밖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는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럽의 휴머니즘 전통 속에서 들려오는 “인간애”의 윤리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전통은 카톨릭 교회와 영국 성공회를 거쳐서 웨슬리에게 영향을 주었던 자연법 전통의 영향이기도 하다. 이는 복음과 율법, 자연법과 복음의 관계를 부정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긍정해온 종교개혁적 사상가들과는 달리 이성의 역할과 인간의 보편적인 인권과 존엄성을 주장하는 세속 자연법론자들의 소리를 웨슬리가 단순히 거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휴머니즘적 전통은 감리교회의 개방적 사유를 후원하였고, 사회윤리적 실천력을 다른 어떠한 교회들보다도 더 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동기가 되었던 것이다.14)


웨슬리가 계몽중의의 인본주의에서 반대했던 것은 계몽주의적 인본주의가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사랑에 대해서 지나치게 부정하고 인간에 대해서 지나치게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웨슬리는 계몽주의적 인본주의가 강조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천부적인 가치를 바람직한 사회 변화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여타 비그리스도인들과 협력할 수 있는 근거로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 교도소 제소자를 위한 환경 변화를 위한 노력, 노예제도 폐지를 위한 노력, 노동조합운동입법을 위한 노력이나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노력들15)은 사회 일반의 다른 사람들과의 공동의 노력과 협력 그리고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타협이 없다면 불가능했던 일이다.


사실, 이성에 대한 강조는 감리교회와 감리교인들을 독단적이고, 독선적이고, 무지 몽매한 종파와 교인들로 만들지 않는 중요한 요소이다. 웨슬리의 윤리를 다룰 때, 특히 이성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우선 이성은 성서의 올바른 해석과 적용을 돕는다. 성서의 올바른 해석은 문자적인 성서 해석과 적용의 위험성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한다. 성서 해석의 올바른 적용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보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만든다. 우리가 도덕(morality)이라고 할 때, 그것은 어떤 공동체에 의해서 - 그 공동체가 한 마을이든 한 국가이든 - 공통적으로 그리고 공공연히 받아들여진 공유되어진 일련의 행동 규칙들이나 가치들이나 기준들을 의미한다. 윤리(ethics)라고 하면 이런 도덕에 대한 비판적인 분석이라고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다. 윤리적 비판 분석에서 중요한 것은 일련의 가치들이나 행동 규칙들이 왜 옳은 것인가 아니면 틀린 것인가? 왜 좋은 또는 선한 것인가 아니면 나쁜 것인가? 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윤리적 사고를 하게 될 때, 기존의 도덕 가치나 행동은 항상 비판의 대상이 된다. 웨슬리 역시 자신이 속해 있던 영국 국교회의 폐쇄성에 대해서 비판을 서슴치 않았던 것은 이런 이성적이고 윤리적인 숙고의 결과였던 것이다 - 물론 웨슬리는 평생토록 자신이 속해 있던 영국 국교회를 떠나려고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성의 역할은 우리의 신앙 체험과 성서의 증언들을 교회라는 좁은 울타리에 가두어 두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서 열린 사고와 행동을 할 수 있는 폭 넓은 개방성을 갖게 해 준다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리의 모든 유산을 물려받은 감리교인들은 하나님의 은총과 계시 하에서 신앙과 감성과 이성의 통합을 이룬 신앙과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 하나님의 계명들


아마도 웨슬리가 자주 받았던 비난 중의 하나는 그가 율법주의자 - “율법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16) - 라는 것일 것이다. 이런 비난을 받게 된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웨슬리가 너무도 자주 십계명, 마태복음 5장에 나온 예수님의 산상설교, 사랑의 계명 및 황금률17) 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이런 계명들에 나타난 도덕법을 통해서 창조주 하나님이 자신의 뜻을 계시해주시고, 모든 사람들이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믿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을 받았지만, 하나님과 같아지고자 했던 욕망 때문에 타락한 인간은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를 향해서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웨슬리는 그런 인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기록된 즉, “거룩하며 정당하고 선한 (롬 7:12)” 도덕법을 주시게 되는데, 이것은 모세, 예언자들, 그리고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서 인간에게 전달되어졌다고 믿었다.18) 여기서 주의할 것은 웨슬리는 십계명만이 모든 사람들의 윤리적 삶을 위한 지침이라고 여기지 않았고, 십계명은 산상설교라든지 사랑의 계명이라든지 황금률과 함께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웨슬리가 하나님의 도덕법들을 강조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도덕폐기론(antinomianism)에 빠지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덕폐기론이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인들을 구약의 율법이 규정한 도덕법을 준수할 의무로부터 자유롭게 만든다고 하는 주장이다. 이 주장을 하는 사람은 바울 서신들, 특히, 로마서 3:20, 에베소서 2:9, 디모데후서 2:9, 디도서 3:5 등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행위가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영향을 주지 않다고 믿는다. 이럴 경우에 문제가 되는 것은 구약의 율법이 가진 긍정적인 모습을 무시하게 된다는 것에 있다. 예를 들면, 구약의 율법의 큰 목적들 중의 하나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 “너희는 하나님인 나 주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 (레위기 19:2).”  또 다른 목적이 있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서 완전해야 합니다 (신명기 19:13).” 또 다른 문제가 있다면, 믿음만을 강조하게 되면 도덕적 방종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 예를 들면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기 때문에 나는 모든 관습과 얽매임에서 벗어났어...그리고 나는 어떤 말과 행위를 해도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 상관없어”라는 태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말과 행동을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으로 상쇄시켜버리게 된다. 웨슬리는 이런 위험들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로날드 스톤 (Ronald H. Stone)은 이 도덕폐기론이 웨슬리가 평생 싸웠던 세 가지 중요한 신학적 논쟁 중의 첫 번째라고 강조한다.19)



하나님의 법의 효력


웨슬리는 율법이 가지는 효력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웨슬리는 율법, 그러니까 하나님의 법이 불신자나 신자 모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율법은 불신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죄악성과 죄책감을 확인시켜주고, 성령은 양심 속에 이런 확신을 불러일으킨다. 양심은 하나님의 선한 율법과 반대되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사악함을 깨닫게 되고 어떠한 율법의 위반도 죄악으로 만들어 버린다. 또한 웨슬리는 율법이 불신자들을 회개하도록 만들고 하나님 앞에서 어떤 행위의 업적으로도 의롭다고 여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훈육선생”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20)


신자들과 관련해서, 웨슬리는 율법이 1) 우리[신자 또는 그리스도인] 안에 남아 있는 죄를 밝혀내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하는 그리스도에게 매어 놓으며, 우리의 생각과 언행과 참된 본성과 성품을 우리의 양심으로 보게 한다.; 2)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생명, 능력 그리고 강인함”을 얻게 한다.; 3) 율법이 명하는 명령들을 그리스도인들이 온전하게 이루지 못했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이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의 것이 될 그 때까지 충만한 은혜를 받을 것”이라는 그리스도인들의 희망을 더욱 굳게 한다.21)


모든 사람에게 해당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이란 단어는 부정적인 선입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단어이다. 그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율법이 가진 억압적이고 위선적인 면에 대한 정보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정보들은 목회자들의 설교들이나 신앙 교육이나 여러 종류의 글들을 통해서 습득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원칙적인 것들만을 강조하고 실제 생활과 분리된 삶을 경험하거나 목도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주의에 대한 경계를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는 최소한 신앙과 자신의 삶이 심각하게 분리되지 않고, 그 자신이 완전한 통합을 이루려고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웨슬리는 율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관련해서 전개했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의 율법에 대한 주장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힘에 대한 그의 믿음이 없었다면 아무런 효용가치가 없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사랑은 율법의 마지막이며, 성취이며, 목표점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웨슬리에게 율법은 “믿는 사람들에게 대해서 강요, 억압 및 가두어두는 성격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며 오히려 행복의 근거, 감사와 기쁨의 동기”22)가 된다고 믿었다. 다시 말하면, 웨슬리는 성서에 나타난 율법의 긍정적인 면, 순기능을 높이 평가했고, 그런 긍정적인 면이 그리스도인들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삶을 이끌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여겼던 것이다.


1) M. 마르쿠바르트, 『존 웨슬리의 사회윤리: 그 실천과 원리들』 조경철 역 (서울: 보문출판사, 1992), 168.


 

2) 웨슬리는 당시의 경험을 다음과 같이 그의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In the evening I went very unwillingly to a society in Aldersgate Street, where one was reading Luther's Preface to the Epistle to the Romans. About a quarter before nine, while he was describing the change which God works in the heart through faith in Christ, 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I felt I did trust in Christ, Christ alone for salvation, and an assurance was given me that he had taken away my sins, even mine, and saved me from the law of sin and death (Journal and Diaries, 18: 249-50). Richard P. Heitzenrater, Wesley and the People Called Methodists (Nashville: Abingdon Press, 1995), 80에서 재인용.


 

3) Manfred Marguardt, John Wesley's Social Ethics: Praxis and Principles, translated by John E. Steely and W. Stephen Gunter (Nashville: Abingdon Press, 1992), 104. 조경철의 책, 171.


 

4) 마르쿠바르트의 책, 174; 원본 출처는 The Letters of John Wesley, vol. III, 387.


 

5) 위의 책, 174; 원본 출처는 The Journal of John Wesley, vol. V, 116.


 

6) 위의 책, 175; 원본 출처는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I, 272. 377.


 

7) 위의 책, 175; 원본 출처는 The Works of John Wesley, vol. VIII, 229.


 

8) Wesley, Works, VII. 271.; 마르쿠바르트, 176.


 

9) Wesley, Works, VII. 271-272.; 마르쿠바르트, 176.


 

10) 주명철, “계몽주의,” 『서양의 지적 운동 I: 르네상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김영한?임지현 편 (서울: 지식산업사, 1994), 374.


 

11) 위의 글, 390.


 

12) 위의 글, 396.


 

13) 위의 글, 398.


 

14) 박충구, 『기독교 윤리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4), 268


 

15) 박충구, 270.


 

16) 마르쿠바르트, 184. 마르쿠바르트는 웨슬리가 직접적으로 율법주의자로 비난을 받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마르쿠바르트의 표현은 웨슬리가 그 같은 비난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17) 여기서 사랑의 계명이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마가복음 12:31, 표준새번역)”를 말하고, 황금률은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여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다 (마태복음 7:12, 표준새번역)”을 말한다.


 

18) 마르쿠바르트, 184.


 

19) Ronald H. Stone, John Wesley's Life and Ethics (Nashville: Abingdon Press, 2001), 216.


 

20) 마르쿠바르트, 189.


 

21) 위의 책, 191.


 

22) 위의 책, 192.


 

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김충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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