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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성경신학

[스크랩] 열심당(4)-예수는 열심당이었는가

우순(愚巡) 2006. 4. 17. 13:24
 

열심당(4)-예수는 열심당이었는가


*누가복음 22장 36b절-“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

*마태복음 10장 34절-“내가 세상에 …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는 열심당이었는가?  일군의 사가(史家)들은 나사렛 예수가 열심당(Kautsky; Eisler 등) 또는 열심당에 우호적인 사람(Brandon)이었다고 전제해 왔다. 이러한 견해는, 평화의 화신으로서의 예수상은 복음서가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며, 예수는 혁명가였다는 이유로 로마인들에 의해 처형당했다는 주장에 토대를 둔다. 또한 그 외에도 열심당원인 시몬이 열두 제자 중의 하나였다는 것(눅 6.15)과 예수가 제자들에게 검을 사라고 권고한 것(눅 22.36; 참조. 12.51)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의 예수는 혁명가였다는 주장에 기초한다.


        반면 다른 일군의 사가들은 예수는 자신의 사상 속에서는 혁명가였지만, 열심당에 대해서는 반대하였다고 주장한다(Hengel; Edwards). 이는 그가 폭력을 거절하는 대목(마 26.52), 로마를 위해 세금 징수에 종사하는 유대인들을 받아들인 부분(막 2.15-17),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 부분(마 5.44; 눅 6.27-31, 35) 등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사가들은 예수가 열심당원이냐 아니냐의 관점에서 예수를 보려 함으로써 시대착오의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반면 유대교가 매우 다양한 종교현상이고, 로마에 대한 저항 유형도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으며, 예수를 다양한 집단들, 곧 바리새인들, 행위예언자들, 열심당, 제4의 철학 및 기타 다른 집단들 등과 비교, 대조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해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열심당원이냐 아니냐라든가 또는 정치적이냐 아니냐라는 식의 질문보다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을 위한 그의 보다 큰 비전과 이를 위한 그의 전술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수와 동시대 사람들의 시대가 끝날 무렵에야 로마와 유대간의 전쟁이 절정에 이르렀다는 관점에서 예수에 관해 물어야 할 것이다.


        말을 바꾸면, 예수는 부의 불균형과 당국자들의 권력 남용에 반대하는 다른 혁명가들과 견해를 같이하였으며, 부와 권력의 평등한 분배 모델에 기반한 민족 생활의 모든 차원에서의 갱신을 부르짖었다(Horsley). 그러나 예수의 혁신 프로그램은 민족의 정서를 전쟁을 향해 고양시키는 이데올로기, 부정한 것으로부터의 민족의 분리주의를 조장하는 이른바 정결성의 이데올로기를 지향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예수의 이데올로기는 자비를 통해서 정결성을 확장시키는 데 목적으로 둔 것이었다. 따라서 그것은 억압과 배제를 통해서가 아닌 치유와 용서 그리고 성전과 토라의 갱신을 통해 부정한 것을 변혁시킴으로 이 땅 위에 정결함을 불러들이는 데에 목적을 둔 것이었다(Borg). 예수에게 있어 율법 해석의 근본 원리를 살펴보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며, 더 나아가 원수를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에 있다(막 12.28-34 등).


        열심당의 중심되는 이론은 하나님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서 신인(神人) 상호 협동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비록 예수가 하나님 나라에 대해 언급하셨지만, 그는 은밀하게 자라나는 씨앗의 비유(막 4.26-29)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이 없이 그의 나라를 실현하실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열심당이 결성된 계기가 된 사건은 CE 6년에 있었던 인구조사였다. 그러나 막 12장 14절의 질문에 대해 예수는 17절에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고 대답하셨다. 이러한 예수의 대답은 열심당의 세금불납운동을 거절하신 것과 다름아니다. 열심당은 그들이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은 누구나 엄히 멸절시켜야만 한다고 믿었지만, 예수는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을 요구하셨다(마 5.43-48; 눅 6.27-28, 32-36).  


        비록 예수의 사후(死後)에 이르러서야 그를 추종하던 몇몇 유대인들이 율법에 열정적이었고(행 21.20), 대 로마 전쟁에 참여했을지라도 초기 크리스천들 대다수는 예수처럼 폭력에 반대했고 유대-로마 전쟁에도 불참했다. 복음서 기자들, 바울, 묵시록의 기자를 비롯한, 현존하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어떤 문서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헌신의 표시로 무장혁명을 주장하는 내용은 없다.


        이와 같이 예수의 가르침과 열심당의 비전과의 간극을 잇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예수는 열심당이었는가?”의 질문에 대한 답은, “예”보다는 “아니오”가 더 타당할 것 같다.     

출처 : 검단복지교회
글쓴이 : 김영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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