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사람을 낚는 어부(2012-0205) 주일

우순(愚巡) 2012. 2. 4. 22:48

사람을 낚는 어부

 

   <마가복음1:16~20> 어부들을 부르시다(4:18-22; 5:1-11) 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20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 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서 시편 131편을 읽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면서 부르는 다윗의 노래입니다.

 

 

 

   <시편131, 다윗의 시 곧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1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노래를 하였습니다

 

  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예배에 성공하라!

 

    올 해 우리의 가장 중요한 영성은 예배의 성공입니다. 예배가 가장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믿음의 승리가 있다면, 그것은 예배의 성공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의 마음을 사단이 흔들어서 예배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방해합니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가면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오며,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오며, 그는 또 자신의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들어서, 젖 뗀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있음같이 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바란다고 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하러 오실 때에 이 시편 131편의 말씀을 묵상하시면서, 마음의 준비를 하시고 영혼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을 바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교만하지 않고, 오만하지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최고의 마음을 준비하고 예배에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여러분이 자신의 영혼을 고요한 영혼으로 평온한 영혼으로 스스로 잘 다스리시면서 예배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을 다른 사람이 함부로 훼손할 수 있고, 상처낼 수 있지만, 자기의 영혼을 자기가 다스릴 수 있는 노래를 다윗이 불렀습니다.

 

 

 

     다윗은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과 같게 하였다. 자신의 영혼을 젖 뗀 아이와 같은 영혼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갔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에 성공하려면, 예배에 나오실 때 우리들의 영혼을 어머니 품에 있는 젖 뗀 아이와 같이 고요한 영혼으로, 평온한 영혼으로 다스려서, 예배하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131:3)

 

   하나님을 바라는 마음이 다윗에게 간절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예배당에 오실 때 오늘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되겠다. 내가 오늘 하나님을 바라보고 와야 되겠다. 내가 오늘 십자가 앞에서 눈물로 기도해야 되겠다.’ 그런 마음으로 이 성전을 찾아오셔서 예배하시면, 반드시 예배에 성공하시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상동교회의 모든 교우들이 매 주일 예배 때마다, 이 다윗의 시편 131편처럼 마음을 준비하시고 영혼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을 바라보시면서 나오시면서, 예배에 성공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람을 얻는 교회

 

    제가 오늘 준비한 말씀은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금년도에 우리 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라는 주제를 내걸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 교회, 사람을 만나는 교회, 사람을 얻는 교회, 사람을 세우는 교회입니다. 오늘은 사람을 얻는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것에 가장 전형적인 성경의 표현이 사람을 낚는 어부이기 때문에, 그 말씀을 설교제목으로 삼았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 이야기는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면서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1: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에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부르신 사건입니다. "나를 따라 오라!" 이 한마디를 듣고 시몬과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을 따라 갔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사람을 선택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17)

 

   이 말은 기독교의 아주 전형적인 성경구절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를 부르셔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조금 더 나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부르시고, 또한 그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라”(1:17)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2천년동안 세계 역사의 축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제일 먼저 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을 선택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나시고,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예정론의 택자구원이라는 교리가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사역에 있어서는 사람을 선택하신다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15:16)

 

 

 

    오늘 은혜의 주권, 선택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몫이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저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겸양을 넘어서, 사양을 표현했습니다. 아모스는 뽕밭에서 불렀고, 요나는 도망을 갔습니다. 또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6:8)하는 구인광고를 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때로는 겸양을 넘어서, 사양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도망을 가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이 하나님의 안타까운 사람 선택 앞에 같이 고뇌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습니다. 또 엘리야처럼 선택을 받았다가, 로뎀나무 앞에서 죽기를 바라는 엉뚱한 모습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입니다.

 

 

 

     히브리어의 이름은 존재 자체입니다. 요한복음 112절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한다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입니다. 이름을 믿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 내 이름으로 기도하라. 하나님이 성전을 지을 때에 뭐라고 했는가하니, 내 이름을 택한 곳에 두어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솔로몬에게 다시 권고할 때, ‘성전은 하나님의 이름을 두신 곳이다’. 히브리인들의 뇌의 구조 속에, 사상의 체계 속에는 이름은 존재와 동일 시 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그렇게 중요했고, 이름을 바꾸는 것이 축복이었고, 이름을 바꿀 때 최고의 계명의 축복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네 글자 가운데, ‘헤이라고 하는 글자를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름과 존재를 동일 시 했던 그들, 그들의 사고구조 속에서 만군의 이름을 아담에게 짖게 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신권을 다 남겨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얻고 택하셔서, 사람과 함께 이 세상을 이끌어 가신다고 할 때에 하나님의 마음이 어느 정도 열려졌는가 하니, 하나님이라는 존재만 인정하면 그 나머지의 무한한 권력을 우리에게 주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세워가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을 선택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 사람을 얻었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라고 하는 사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미지가 뭘까요? 예수님의 공생애는 사람을 얻는 일이었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평범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대단히 소중한 진리입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한 가지가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던 시몬과 안드레를 얻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을 또 얻었습니다. 그리고 8명을 더 얻어서 12제자를 얻으셨습니다. 물론 그 중에 한 사람은 불량품이 나와서 끝까지 따라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 가운데 어떤 사람은 떡만 먹고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아쉬움도 표현했습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6:26) 예수님이 나누어주는 떡 때문에 나왔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조차 사랑하시고, 그들을 끝까지 붙드시려고 노력했습니다.

 

 

 

    누가복음 101절과 5절에 보면

 

   그 후에 주께서 따로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둘씩 앞서 보내시며,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예수께서는 70명의 제자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이 땅에 있는 사람을 얻어서, 이 땅을 완전히 구원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얻는 대상은 아주 다양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지 않아도 예수께서는 세리와 죄인과 창기와 함께한 것을 보게 됩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하인들을 얻으셨습니다.

 

 

 

   요한복음과 요한서신과 요한계시록에 아주 중요한 단어가 안다고 하는 단어입니다. 가나에 혼인잔치에 나오는 연회장은 당시에 포도주를 감별하던 지중해 연안의 최고의 감별사였습니다. 그는 더 좋은 포도주가 어디서 왔는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물을 떠온 하인들은 알았습니다.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만나서 예수님께서 얻은 사람들, 세속적인 가치로는 아무것도 모를 것 같았는데, 그들은 더 좋은 포도주를 아는 자요, 예수의 말씀을 들은 자요,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자였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알아야 됩니다. 연회장은 어디서 포도주가 온지를 몰랐지만, 물 떠온 하인은 알았습니다. 이 서로의 비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얻었던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지혜, 영적인 안목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얻었던 사람들 중에는 다마스커스에서 얻었던 사울도 있습니다. 그는 주께서 얻은 다음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까, 그는 만삭되지 못한 자요, 죄인중의 괴수라고 고백합니다. 예수께서는 만삭되지 못한 자에게도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핍박하던 자도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를 바울로 만들고, 그로 하여금 세상을 변화시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뭐냐, 하나님의 나라는 구체적으로 사람을 얻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마음을 잘 대변하면서, 이 세상에 구원을 이루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속에 나타난 사람 얻기를 통해서, 그 사람들이 모였던 공동체를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고, 그 공동체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와 약한 자를 치유했습니다. 귀신들린 자를 치유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냈습니다.

 

 

 

    때로는 수가성 사마리아의 여인처럼 평생 물동이를 지고 살아가는 그 여인에게 물동이를 던져 버릴 수 있는 결단을 내리게 했습니다. 이 여자는 너무나 지식이 탁월했습니다. 나는 이방인, 예수님은 유대인, 나는 여자, 당신은 남자, 내가 먹는 우물은 사마리아가 마시는 우물, 당신은 예루살렘의 우물입니다. 나는 당신에게 물을 줄 수 없고, 만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4:10)

 

 

 

    이 말을 듣는 순간, 이 여인은 메시야를 만났고, 물동이를 던져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얻었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의 머리에 있던 물동이를 던지듯이, 오랫동안 고질병처럼 가지고 있던 짐 덩어리를 던져 버리는 과감한 결단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하는 자기만의 아픔과 상처가 있고 고통이 있습니다. 아주 큰 물동이를 짊어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를 정말 만난 사람들은 물동이를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사마리아 여인에게 그러한 은혜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약속하시기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1:17) 성경은 아주 미묘한 언어의 차이를 통해서 우리에게 아주 귀한 교훈을 줍니다. “되게 하리라고 하는 이 표현 속에 담긴 의미는 당위성의 표현도 아닙니다. “당신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야 합니다.”라고 하는 당위성의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1:17) 예수님이 아주 주도권을 잡고 예수님이 얻은 사람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한다는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이 예수님의 약속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는 의무감이나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얻으신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멘하고 순종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예수께서 우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면, 사람을 낚기 위해서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교회가 발전하면서 교인들이 때때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것은 교회가 만나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가치가 뛰어나서 사회에서 대단한 입장을 가지고, 그들이 교회에 올때에 대단한 큰 고기가 왔다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건강한 자를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위해서 오셨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만났던 사람들은 세리와 창기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지식인들과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명예스런 분들은 교회를 나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예수님의 시각에서는 인간의 영혼 자체가 소중한 것이지, 세속적인 가치에 비교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시면, 아멘하고 순종하고 주니께서 나를 만드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두에 시편 말씀처럼, 항상 예배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 마음을 잘 준비하십쇼. 그리고 여러분의 영혼을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드십쇼. 그리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쇼. 그러면,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만나시고 선택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단계씩 올려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에 우리가 사람을 만나는 어부가 되게 하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다 소중히 여기면 됩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큰 고기, 작은 고기 없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고귀한 존재이고, 소중한 영혼이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리면서까지 사랑한 자들입니다.

 

 

 

    교회가 위대한 점이 있다면, 인간의 가치를 평등하게 보는 것입니다. 교회가 위대한 점이 있다면, 인간의 영혼과 생명을 다 소중하게 여겨 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만들어 주실 때에 순종하면서, 주께서 우리 손을 이끌고 이 곳 저 곳 다니면서 사람을 만나게 할 때 우리가 만나는 사람을 아주 귀하게 여기면 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나오는 70명의 제자들에게 주께서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가고자 하시는 각처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이런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말하되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 하라 만일 평안을 받을 사람이 거기 있으면 너희의 평안이 그에게 머물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10:5-7) 예수님께서 우리를 이끄시고 사람을 만나러 갈 때, 어떤 사람들은 우리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영접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박해를 하기도 하고, 선지자의 비유처럼, 선지자를 보내고 보내는데, 주인이 보낸 종들을 농부들이 잡아 죽이듯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을 붙들고 그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복음이었습니다.

 

 

 

성도의 비전 : 사람을 얻는 영혼구원

 

 

 

     그러므로 이제 마지막 생각할 것은 성도의 비전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을 낚는 영혼 구원의 비전을 품어야 합니다. 교회가 어느 사이에 자기 관리에 집착하다가 교회의 기능을 잃어버렸다고 하는 이야기를 선교신학자들이 말하곤 합니다. 지구상에 공룡이 멸망한 이유에 대해서 많은 학설이 있습니다. 맘모스가 지구상에서 멸종한 많은 학설이 있습니다. 저는 생물학자도 아니고, 과학자도 아닙니다. 다만 이런 글을 읽었습니다. “이 지구상에 공룡을 해칠 자가 없었고, 이 지구상에 맘모스를 대항할 짐승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도 해칠 자가 없었지만, 스스로 자기 큰 등치를 관리하지 못하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어쩌면 교회가 좀 기동력있게 교회가 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만큼, 영혼 구원의 비전을 품고 구령열에 불타는 마음으로 사람을 얻어가는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될 텐데, 그렇지 못해서 교회를 크게 키웠는데, 혹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지 못한 채 공룡처럼 멸종을 당하지 않을까 많은 신학자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역사의 교훈이 대단히 중요하고, 전통의 가치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천년 기독교의 역사는 우리에게 수많은 일들을 보여 줍니다. 여러분, 이천년 동안 교회가 평안했을까요? 교회가 가장 생명력이 있었던 순간들은 카타콤의 지하 세계였습니다. 지하 속에 들어가서 박해를 피했을 때, 교회는 순결했고 힘이 있었습니다. 공산치하의 박해 속에서 사람의 숫자는 멸종당하면서 줄었지만, 그 중에서 믿음을 지킨 사람들, 순교자들은 끊임없이 위대한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로마의 제국이 박해할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에 내려갔다 나올 때에 페르시아에 둘러 쌓여있을 때에 그 뒤로 이어져 내려오면서 이슬람의 박해 속에 우상 숭배자들의 토속종교를 만났을 때에 기독교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그래도 기독교는 살아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또 다른 사람을 한 사람 한 사람씩 얻어 가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도록, 자신이 얻었던 사람들을 만들어 가면서, 세상을 바꿔갔습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천년 기독교 역사, 그 이전에 구약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해야 합니다. 전통은 위대합니다. 감리교회의 신앙의 4대 표준 가운데 하나인, 전통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줍니까? 무너지지 아니하는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거대한 항공모함과 같이 주의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는 흔들리는 것 같아도 흔들리지 아니하고 굳건히 서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 전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의 능력을 신뢰합니다.

 

 

 

     오늘 우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셔서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약속, 그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복음의 능력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능력은 두나미스라는 희랍어를 번역한 것인데, 영어의 다이너마이트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다이너마이트를 돌 속에 넣어 폭파시키면, 그 거대한 산이 날라가고, 그 속에 신도시가 세워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유혹의 구습을 쫓는 옛 사람에게 다이너마이트를 꽂고 성령의 불을 붙이면, 옛사람을 폭파시켜버리고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로 지음을 받은 새사람을 입는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 복음의 비전,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비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사람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우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마땅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어서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복음의 비전을 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여러분을 통해서 이 복음의 위대한 역사가 나타날 줄 믿습니다. 여러분을 통해서 누군가가 예수를 영접하는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