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문"
<마태복음 7장 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늘도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을 믿으시는 분들은 아멘하십시다. 신앙은 아멘입니다. 믿음도 아멘입니다. 은혜도 아멘입니다. 아멘을 잘하는 사람이 믿음이 성장합니다. 아멘을 잘하는 사람이 은혜충만합니다. 아멘을 잘 하는 사람이 신앙심이 깊어집니다. 다신 한 번 다 같이 아멘합시다!
오늘은 "기독교의 문"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7장 13절 부터 14절입니다. 이 성구는 그 유명한 좁은 문의 성경구절입니다. 저는 이 문이 기독교의 문임을 확신하기게 오늘 함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독교의 진정한 문을 열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1. 기독교를 제대로 알려면 기독교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 되고 싶습니까? 기독교의 진정한 본질을 알고 싶숩니까? 기독교의 아름다운 세계를 보기 원하십니까? 기독교의 문으로 들어 가시면 됩니다. 마태복음은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치는 '교리복음서'입니다. 마태복음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비교를 통해 기독교의 진정한 실제가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기독교의 축복, 기독교의 신앙고백, 기독교의 영성등 기독교의 본질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7장은 기독교의 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아파트는 아파트의 문을 열고 들어 가야 합니다. 기독교는 기독교의 문을 열 때 기독교의 참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문을 연다는 것은 문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말이요, 문 안으로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문을 여는 사람이 문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 수 있고 문 안으로 들어가 문 안의 세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세계를 알려면 기독교의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합니다. 기독교의 문을 열지 않고 밖에만 있으면 기독교의 진정한 세계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의 안을 들여다 보지 않고 밖의 설명만 들으면 오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성경도 하나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한 것이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2장 2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성경을 모르면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면 오해합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장애우의 이야기는 더 교훈적입니다. 지체장애우가 성전 미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미문이라는 성전 문앞에 앉아 있었습니다.<사도행전3장2절> 그는 사십여세 쯤 된 중년의 사람이었습니다<행4:22> 사십년 동안 성전 문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는 성전 안에 들어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십여년이나 성잔 문 앞에 있었지만 정작 성전 안에는 들어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오늘 날에도 나면서 부터 성전에 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모태신앙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성전 문 앞에 있으면서도 성전 안에는 들어가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지체 장애우가 드디어 성전 안으로 들어갔습니다<행3:8> 지체장애우는 뛰어 서서 걸었습니다. 성전으로 들어 갔습니다. 뛰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그리고 이 모든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행4:21절> 기독교의 문 안으로 들어 오기 전까지는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안에 들어 오고 나니 하나님을 찬미하고 뛰어 다니며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기독교를 알고 싶습니까? 기독교의 문 안으로 들어 오십시요. 그독교의 문을 열고 기독교의 진정한 세계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2. 기독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 가라~~<중략>~~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기독교의 문은 좁은 문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세주이십니다. 마태복음은 교리 복음서이지만 요한복음은 생명복음입니다. 그래서 생명복음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24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2)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좁은 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좁은 문으로 우리를 들어 가게 하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요한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이 말씀의 희랍어 원문은 곧이라는 말을 희랍어 정관사 He로 표시합니다. Ego eimi he hodos kai he aletheia kai he soe! 이 때의 정관사 He는 여러 개의 길 가운데 한 길이 아니라 유일한 한 길 오직 한 길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은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가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좁은 문은 바로 예수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마7:14>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 크고 넓어서 들어 가는 자가 많은 것과는 다르게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습니다. 그래서 그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을 지라도 그리로 들어가야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아주 놀라운 기독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기독교는 만민을 구원하는 복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종교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사람의 사람도 멸망시키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1)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2:4절> 그러나 하나님의 이런 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구원 받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사람들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지 않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로 가기 때문이다. 노아 대홍수 때에도 오직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하나님께 은혜을 입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8>"
3. 기독교의 좁은 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들어 가는 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의 좁은 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들어 가는 문입니다. 다시 말해 행함의 문입니다. 마태복음의 기독교 정체성 논쟁은 거짓선지자와 지혜로운 자의 대비를 통해 극명하게 들어납니다. 여기서 거짓 선지자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가르킵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은근히 무리와 제자들로 암시가 되어 있습니다. 무리들은 듣기만 잘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상당히 미래 예시적인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좁은 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런데 그 문은 좁습니다. 찾는 이가 없습니다. 이 말은 결국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은 많으나<21절> 열매를 맺는 사람이 적다는 말입니다<20절> 또한 이 말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들은 미련한 자요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심지어 그들 중에는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22절> 하지만 그들은 모두 기독교의 문 안에 들어 오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은 그들이 문 밖으로 쫒겨 갈것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미련한 자들과 지혜로운 자들의 비유에서 미련한 자들에게게는 문이 닫힌다고 경고합니다<마25:10> 또 그런 미련한 자들의 한 종류인 무익한 종들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김을 당하고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게 됩니다<마25:30> 그들은 영벌에 처하게 됩니다<마25:46>
결국 기독교의 좁은 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들이 들어 가는 문인데 영생에 들어가는 문입니다.<마25:46> 이 문은 비록 좁고 찾는 이가 적어 좁은 문이지만 영생을 얻게 해주는 문입니다. 이 문으로 들어 가는 사람이 진정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주변에 있는 기독교인들 가운데는 좁은 문이 아닌 넓은 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편한 신앙생활을 하려고 합니다. 봉사하거나 사역하는 것을 회피합니다. 헌금도 하지 않고, 봉사도 하지 않고, 십자가도 지지 않습니다. 얼마나 편한 지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주여 주여 간구하는 뜨거운 기도를 잘 합니다. 심지어는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의 노릇도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기도 합니다.<마7:22>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나가라<마7:23>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 기독교의 신앙의 핵심이요 본질입니다. 기독교의 문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문은 말씀을 듣고 조용히 하나님 앞에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그런 삶을 살 때 영생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길은 찾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 갈 때 믿음의 외로움의 극복해야 합니다. 영성의 고독을 이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자는 고독합니다. 외롭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틈으로 마귀가 들어와 우리의 믿음을 훼방하고 우리의 믿음을 방해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의 위로 가운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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