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W. Anderson,
Contours of Old Testament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9), + ??? pp.
최 종 진*
목 차
서론적 전제로서 고려 사항들
1. 기독교 성서에서 구약
2. 구약의 상대적인 독립성
3. 20세기의 구약신학
4. 경험에 근거한 구약 신학에 접근
제 1부 이스라엘의 거룩자, 야웨
5. 거룩의 경험
6. 하나님의 이름
7. 야웨의 특징
8. 야웨와 다른 신들
9. 하나님의 백성
제 2 부 야웨와 백성과의 계약
A. 아브라함 계약
10. 하나님 계약의 역사
11. 창조와 노아 계약
12., 아브라함과의 약속 계약
13. 성막의 임재
14. 희생과 속죄의 제사 신학
15. 거룩의 삶
16. 제사 전승에서의 예언
B. 모세 계약
17. 하나님의 산에서
18. 구원과 의무
19. 계약과 율법
20. 신명기적 관점으로 본 역사
21. 하나님과 전쟁
22. 모세 전승에서의 예언
C. 다윗 계약
23. 다윗과의 은총 약속
24. 시온에서 야웨의 우주적인 규칙
25. 다윗 관점으로 본 역사
26. 시온 전승에서의 예언
제 3 부 믿음의 시련과 희망의 지평선
27. 계약 신학의 위기
A. 토라에서 지혜로
28. 토라에서의 기쁨
29. 지혜의 길
30. 하나님의 창조에서의 지혜
31. 하나님의 공의
B. 예언에서 묵시로
32. 새로운 어법의 예언
33. 하나님의 지배와 악의 지배의 대결
34. 삶, 죽음, 그리고 부활
결론: 구약에서 신약으로
35.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적 승리
36. 예언자, 제사장, 왕으로서의 예수
부록 1 : 구약 성서 신학: 요약
부록 2 : 성서 고고학과 성서 신학의 관련성
죠지 어네스트 라이트를 기리며
이 책은 현재 프린스톤 신학교 명예교수이며, 『구약성서의 이해』(Understanding the Old Testament)라는 책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버나드 W. 앤더슨이 (G.E. Wright 교수를 기리면서) 저술한 것이다. 이 책은 그가 서론에서 밝혔듯이, 자신의 40년이 넘는 연구의 집대성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저자의 성숙함과 완성도가 엿보이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앤더슨은 “구약”이라는 의미를 신약과의 관계 속에서 설정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지만, 구약의 “상대적인 독립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신앙 공동체 안에 기독교인과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다. 이런 면에서, 주의를 끄는 것은 앤더슨이 이 책에서 차일즈의 정경 비평을 절충한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앞으로의 구약 성서 신학의 방향을 설정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차일즈의 정경비평적 접근방식은 다시 한번 구약신학의 대상을 신앙으로 해석된 역사(Geschichte)로 보는 폰 라트와 재구성된 과학적 역사(Histroie)로 보는 헤세(Hesse)를 비롯한 자들과의 논쟁의 첨예한 양극화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다. 이 접근방식은 이스라엘이 실제적인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증언하였음에도 통상적인 역사적 기록의 범주들을 훨씬 뛰어넘는 복합적이고 다충적 방식을 통해 본문에 이 증언을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중요시한다.
구약신학 방향 설정을 노력한 앤더슨의 새로운 방법론은 지난 30년간 전승비평에서 정경비평으로의 변화과정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한 방법론이다. 차일즈의 정경비평이 과거 역사적 비평의 한계를 넘었지만, 단지 마지막 형태의 신학적 주제에 대한 연구로 그 최종 형태를 지배하는 상징의 유형, 즉 정경이 본문 형태와 분리된 전승사적 궤적(행적)에 대하여 신학적 가치를 부여하는 데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앤더슨은 언어 해석학을 도입하여 최종 형태의 문학적인 단위인 계약의 상징적인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Preliminary Considerations를 요약 소개하고 이 책의 목차를 소개한다.
첫째로, 앤더슨은 성서신학의 과제에 대해 정의함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있다. 신학이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이라는 판단 하에 그는 성서신학자는 단순히 교리의 조직이 아닌, “교리의 겉껍질 속에 숨은 이유를 껍질을 깨고 캐어내” 신앙을 생동적으로 표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정경으로서의 구약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피력한다. 유대인과 기독교인 두 신앙공동체의 정경의 차이를 인정하지만 조화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유대인을 위한 책이라는 점에서 히브리 성서로 재명명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구약 전부가 이스라엘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기록되지 않았고, 70인역과의 차이점, 더욱 중요한 것은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의 분리를 초래했다는 점에서 반대하고 있다. 차일즈도 구약에 대한 신학적 성찰은 예수가 기원하였고 설교대상으로 삼았으며 거기로부터 초대 교회가 형성된 바 있는 유대민족에 대한 히브리 성경의 효과를 해명함으로써 신약에 대한 보다 정확한 경청을 가능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둘째로, 로마서 5: 14의 말씀을 근거로, 초대 교회는 구약을 배타적인 유대 공동체의 것이 아니고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을 위한 “위대한 이야기의 연속"으로 보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구약과 신약과의 관계 속에서만 구약을 조명하지 않는다. 문제는 기독교 성서에서 구약이 “상대적인 독립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새 것”과 “옛 것”의 대조가 아니라 구약 스스로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구약이 약속이고 신약이 성취이긴 하지만, 구약은 “교회의 성서로서 기독교 성서의 배경 내에서 자신의 수직적 실존적 차원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구약 자체의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도 쉽지는 않다.
이러한 구약과 신약 -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특별성과 기독교 공동체의 보편적 성취와 상치될 필요가 없는 공존적인 것이다. 이 두 공동체간의 관계는 바울의 고뇌에 찬 논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롬 11: 26)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온 유대인이 기독교화 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이스라엘”(갈6: 16)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둘 다 포함하는 하나님 선택의 “신비(비밀)”(롬 11: 25)와 씨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조들과 맺은 언약에 대하여 신실하시며, 믿음을 가진 모든 이, 즉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녀들인 자에게 한 약속들의 의미와 권세를 확장시켜 나가신다. 이것이 두 언약간의 관계가 갖는 신비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과 기독교 공동체는 “하나님의 창조적 목적의 자궁 안에 있는 쌍둥이”처럼 서로에게 속한다.
셋째로, 앤더슨은 이어서 그는 20세기 주요 신학자의 주장들을 살펴본다. 그는 먼저 자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발터 아히로트와 게르하르트 폰 라트의 신학을 개진해 본다. 이히로트는 구약 성서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구약 성서 신앙의 영역을 그 구조적인 통일성에서 이해하고 한편으로는 그것의 종교적인 환경을, 다른 한편으로는 신약 성서와의 근본적인 일관성을 연구하면서 그것의 심오한 의미를 밝혀 내는 것이다.”이 같은 정의 속에서 아히로트의 관심 사항은; 첫째는 구약성서를 고대 근동의 문화적인 환경 내에서 이해하려고 했으며, 둘째는 신약과의 필수적인 일관성을 이해하려고 했다. 신약 성서와의 일관성은 구원사라는 데에서 분명하며, 구약 성서의 믿음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주변 환경의 종교들 속에 보존된 것을 인식하려면, 신학자는 역사의 어떤 시점에서든지 나무의 나이테와 같은“단면도를 그릴 수 있다". 이스라엘 신앙은 발달이나 성장에 의한 것이 아니라 모든 역사적인 단계에서 근본적으로 같은 구조적 통일성이나 신학적 보존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단면도에서 보여지는 구조는 계약(하나님과의 관계)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앤더슨은“구조적인 통일성”을 발견하려는 그의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보면서, 그것을 허용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화와 다양성이 있어, 전 구약성서를 “계약의 한 틀로 집어넣을 수 없다"고 비판한다.
아히로트의 구조적이고 조직적인 방법에 비해 폰 라트는 새로운 방법인 양식 비평과 전승사를 사용한다. 그는 구약의 역사를 초기의 신앙고백(신 26: 5-10)을 해석하고 재해석한 전승사로 보았다. 그의 방법은 통시적으로 구약성서는 야웨와 그의 백성과의 역사를 매우 다양하게 증언한 전반적인 역사책이며, 이 역사는 평범한 역사가 아닌 초기 이스라엘 신앙고백이 새로운 상황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어 온 전승사다. 그러므로 구약성서 학자의 일은 이스라엘이 그것을 말하고 재진술한 것처럼 "이 이야기를 다시 말하는 것이다. 성서에는 조직적인 통일성은 없고 성서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움직임만 있을 뿐이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실제의 역사”와 “신앙의 이야기”를 확실히 구분지어, 역사에 일어난 사건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양식비평에 의해 재 구성된 전승에 관심을 가짐으로 이스라엘의 독특한 신학적인 통합과 정체감을 주는 것에 분명하지 못했다고 앤더슨은 말한다.
반면, 브르그만(Walter Brueggemann)은 아히로트와 폰 라트의 기념비적인 저작에서 시도되었던 것처럼, “모든 것을 포함하고 설명할 수 있는 웅대한 설계를 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서 그는 사회학적인 기준: “문화적인 수용”과 "문화적인 비평”을 제안한다. 이러한 “양극성”신학에 영향을 미친 것은 수사비평과 사회학이다. 수사비평은 성서 본문에서 발견되는 표현된 언어의 기교에 집중하는 방법이다. 언어가 하나님이 제시된 세상을 만들므로 언어는 구약성서 신학자에게 연구되어야 할 실체이다. 또한 인간의 언어를 마르크스와 유사한 변증법으로 보아 권력을 잡은 자들과 억압받는 자들의 갈등을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그는 신학적 주해 조직을 위해 제2이사야(사41:1-2)의 열방 앞의 법정재판의 은유를 주로 사용한다. 이 재판에 세가지 요소로 1)노예로부터 해방시킨 출애굽의 하나님에 근거한 핵심에 대한 이스라엘의 증언, 2) 질서 유지와 비옥함을 허락하신 하나님에 관한 이스라엘과 열방들의 상반된 증언 3) 이런 변증은 야웨의 주창자인 이스라엘로 하여금 새로운 신학적 증언을 하도록 촉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주장에는 1) 구약성서의 "다양한 세상"의 맥락에서 어떻게 "핵심 증언"을 확신할 수 있는가? 질문을 하게 하고, 2) "사실성"과 "역사성"을 하나로 묶었으며, 3) 그는 구약성서 신학이 기독교 학문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고, 4) 계시의 문제로 그는 성서의 증언이 하나님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그 증언이 진실 된 것으로 판단되어 계시로서 인정받은 것이라고 말한 것에 논란의 여지가 있다. 증언이 계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지난 30년간, 전승 비평에서 차일즈의 정경비평으로의 변화를 하나의 개혁으로 진단한다. 그러나 성서의 최종 형태에 관심을 갖게 하는 정경 비평도 “구약 성서의 분리된 증거”에 대해서 충분한 신학적인 관심을 주지 못하며, 최종 형태의 문학적인 단위들을 지배하는 상징의 유형에는 더욱 그러하다고 주장하면서 참다운 성서 해석은 이러한 최종의 단위들을 주도하는 상징화의 계약 형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서의 맥락에서 고려되는 각각의 계약은 이스라엘 백성과 특별한 관계를 맺은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상징적인 용어로 뉘앙스를 준다고 앤더슨은 보고 있다. 저자가 구약의 독립성을 주장하면서도 신약으로 자연스럽게 연속시켜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자, 제사장 그리고 왕으로 돋보이게 하는 구약신학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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