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창세기 15:1-11
설교 제목 언약의 신비와 예수 그리스도
왜 예수 그리스도인가?
수많은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는 왜 우리의 유일한 구원의 길일까? 기독교에 처음 입교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설명해 주어야 되는 가장 중요한 신앙의 내용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우리의 구원을 이룰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요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 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행4:11-12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1.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려면 언약의 신비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언약의 신비를 알아야 합니다. 언약의 신비 속에 예수 그리스도만이 갖고 있는 구원의 유일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는 언약의 보증이 되시며 언약의 중보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히7:22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
히8:6 그러나 이제 그가 더 아름다운 직분을 얻으셨으니 이는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 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시라.
언약은 하나님과 인간이 맺는 약속을 말합니다. 이 약속을 맺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권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들 조상이었던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맺었던 언약을 기억 하사 그들의 고통에 깊은 관심을 가지시고 출애굽의 대역사를 일으켜 주었습니다.
출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지 약600여년이 지났음에도 그 약속을 기억하고 계시다가 아브라함 자손들의 고통을 돌아보시었습니다. (참고 : 아브라함은 대략 주전 2000-1900년대 사람이고 출애굽은 주전 1400여년경에 일어났음) 하나님과 맺은 약속은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시111:5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 언약을 영원히 기억 하시리로다.
하나님이 결코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맺게 하는 ‘언약’ 가운데 아브라함과 맺은 횃불 언약식이 본문 가운데 나옵니다. 창15장18절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더불어 언약을 맺었다고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수많은 언약을 통하여 크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백성이 되게 하셨고, 다른 하나는 땅이나 기업을 약속하시는 복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구원의 언약으로는 노아가 맺은 무지개 언약이 있습니다. 축복의 언약으로는 아브라함이 맺었던 횃불 언약이 있습니다. 언약은 인간에게 구원과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관계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언약의 보증으로 중보자로 오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려면 반드시 언약의 신비를 알아야 합니다.
2.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 위해서는 쪼갠 고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 쪼갠 고기를 언약 제물로 바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상중에 나타나시사 자신을 소개하셨습니다.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요 지극히 큰 상급이십니다. 우리를 마귀의 유혹으로부터 막아 주시는 방패요, 지극히 작은 일로도 크게 복을 주시는 큰 상급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땅을 약속하십니다.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라(창15:7)”
아브라함은 이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겠느냐고 반문을 합니다.(창15:8)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한가지 예식을 제안합니다. 그것은 짐승을 잡아 바치는 희생 제사였습니다.(창15:9)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는 희생 제사였습니다.(창15:9)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와 삼년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바치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말씀대로 순종하였고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이 희생제사 예식이 독특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짐승들을 죽여서 중간을 쪼개고 마주 대하여 보도록 놓고 제사를 드렸습니다.
창15:10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 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새를 제외한 모든 짐승을 둘로 쪼개어서 바칩니다. 이 쪼갠 고기는 언약 제물이었고 이 예식은 언약 예식이었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면서 맺는 언약식을 말해 줍니다.
렘34:18 송아지를 둘로 쪼개고 그 두 사이로 지나서 내 앞에 언약을 세우고 …
아브라함 시대에 언약을 맺는 예식은 언약을 맺는 당사자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면서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을 맺는 당사자는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면서 생명을 걸고 굳게 약속을 합니다. 약속을 지키면 살지만 만일 약속을 어기면 이 짐승이 쪼개어지듯이 반드시 죽게 됩니다.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면서 맺는 언약을 생명은 담보로 하는 굳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아브라함과 맺었습니다. 창세기 15장 17절은 하나님을 의미하는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며 언약식을 맺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창15: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 이로 지나더라
그래서 우리 한국말은 언약을 맺는다고 말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언약을 쪼갠다고 말합니다. 언약이란 말은 성경에서 298번이 사용됩니다. 성경에서 두 가지로 쓰였는데 신약에서는 ‘디아테케(Diatheke)’로 쓰여 약정, 서약 등의 의미로 쓰였고, 구약에서는 ‘베리트(Beriyth)’로 쓰여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 맺은 동맹, 굳은 약속을 의미합니다. 삼상18장 3절에 나오는 언약을 맺는다는 히브리어는 ‘카라트 베리트(Karath Beriyth)’입니다. 이 뜻은 언약을 자른다 입니다. 히브리어 카라트는 ‘자르다’의 뜻입니다. 히브리어의 언약은 자르는 사건입니다. 짐승을 쪼개어서 자르고 그 둘을 마주 세워 놓고 그 사이로 함께 지나감으로 언약이 성립됩니다. 아브라함은 삼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쪼개어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시고 지켜 주시고 인도하신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쪼갠 고기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백 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언약의 효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효력이 없습니다. 우리는 한국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아닙니다. 아무리 아브라함이 훌륭해도 우리에게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에게 단순한 영적 모델일 뿐입니다. 아파트를 분양할 때 모델하우스에 가보면 아파트의 형태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델 하우스에서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모델하우스는 그저 구경하는 집입니다. 아파트를 살 것인지 말 것인지 결심을 하는데 판단의 자료가 될 뿐입니다. 구약이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습니다. 구약도 아브라함도 모두 모델하우스와 같습니다. 구경할 집입니다. 살 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살 집은 율법이 아니라 은혜이며, 구약이 아니라 신약이고, 아브라함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도하고 있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27장 51절에서 놀라운 사실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습니다.
마27:50-51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되고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고…
이 큰 휘장이 저절로 둘로 쪼개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지성소와 성소가 하나가 되었으니 강단과 회중석이 하나가 되고 목사와 평신도의 권위가 하나가 되는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휘장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가름막’으로서 속죄일에 제사장이 정복을 입고 속죄제를 드리러 갈 때 통과하는 문입니다. 이 휘장을 히브리서는 놀랍게도 ‘예수의 육체’라고 선언합니다.
히10: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 은 곧 저의 육체니라
휘장은 예수님의 육체이고 예수님의 육체가 죽음과 함께 쪼개어져 둘이 되는 사건이 휘장이 찢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짐승을 쪼개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지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쪼갠 고기 곧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갑니다.(히10:19) 오직 예수의 피를 힘입어 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위해 죽으신 언약의 제물이요 쪼갠 고기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우리를 위하여 열어 놓은 새롭고 산 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은 예수님이 유일한 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개역성경 ‘곧 길이요’는 희랍어 ‘헤 호도스’의 번역입니다. 희랍어 정관사 ‘헤’는 영어의 ‘The’로 오직 유일한 외길이라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게 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히12:2)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언약의 길입니다. 자기의 몸을 쪼개어 언약의 제물이 되사 만드신 길입니다. 이 길은 우리를 위하여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삼년된 암소와 암염소와 수양을 잡아 쪼개어 만든 길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길이지만 예수님의 죽음으로 만든 길은 우리 한국 사람을 위한 길입니다. 또 그 길은 새로운 길입니다. 아브라함이 잡아 쪼갠 짐승 사이로 만든 길은 옛 길이요 폐쇄된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죽여서 만든 길은 새로운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산 길입니다. 구약시대에 짐승 사이로 난 길은 이미 효력이 중지된 죽은 도로입니다. 통행이 금지되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만든 길만이 새로운 길입니다. 신도로입니다. 생명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얻게 된 언약의 길은 은혜의 길이며 복음의 길입니다. 율법시대에 살던 아브라함은 언약의 제물을 자신이 만들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을 받고 복을 얻지만 언약의 제물을 준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언약의 제물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제물도 하나님이 준비하시고 언약의 축복도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의 시대가 아니고 복음의 시대에 사는 것입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인가?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구원하고 축복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열어 놓으신 언약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쪼갠 고기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찬시에 보면 성찬용 떡인 면병을 두조각으로 쪼개어서 먹는 성찬 예법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언약을 맺습니다. 한번 언약을 맺으면 하나님은 결코 그 언약을 잊지 않습니다. 수백 년이 지나도 기억하십니다. 그 언약을 기억 하사 언약을 맺은 자손까지도 권념하시어 돌보십니다. 권념은 돌아보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를 비췸 받습니다. 애굽의 통치 아래 팔레스타인과 북아프리카 전지역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주셨습니다. 그들은 언약 백성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그들에게만 집중되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지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 하나님의 권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하나님이 언약 백성의 고통을 들으시고 응답하시사 어둠의 질곡으로부터 탈출하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을 특권을 가진 거룩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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