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4절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그 빛(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 창조하신 빛을 보고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창조의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창세기 1장에는 "좋았더라" 라는 표현이 일곱 번 나옵니다. 4절, 10절,12절,18절,21절,25절 그리고 31절에 나옵니다. 특히 31절에서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1. [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2. [창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3.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4. [창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5. [창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6.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7.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좋음에 대한 감탄사입니다. 또 자기 평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 감탄의 자기표현은 하나님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알게 해줍니다
1.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해줍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이원론의 종교가 아닙니다. 후발적으로 이 세상의 이원론적인 구조가 보이지만 출발은 일원론입니다. 하나님이 출발이요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좋은 세상이었읍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 부터 좋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잘 믿지 못합니다.
시편기자는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영원하다고..
1 [시 100: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2.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시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시 109:21]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5. [시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시 118: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시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언제나 세상을 창조하실 때 완벽하고 좋은 세상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파괴가 될 때에도 그 창조세계를 지켜 나갑니다.
2.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사후 관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바라 봅니다. 그 출발점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평가입니다. 좋았더라는 하나님이 스스로 만든 세상을 바라 보시면서 만족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 보게 합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들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고는 반드시 점검을 한다고 합니다. 화가는 자기의 그림을 거저 줄 수 는 있어도 싼 값에 팔지는 않습니다. 도공은 자기의 작품이 흠이 있으면 돈 몇푼에 팔기 보다는 부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 작품속에 자기의 혼이 담기고 자기의 명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름이 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세계의 피조물을 통하여 자기를 알리셨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자기의 명에을 지키셨습니다.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완전성성을 선포해줍니다.
3. "좋았더라"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툭별한 섭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좋았더라는 말씀을 게속하시다가(둘 째날의 생략은 전체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두 가지 하나님의 섭리를 스테레오로 듣게 됩니다. 하나는 인간을 위한 창조세계의 완전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창조되고 나서야 최상급의 표현이 나올 수 있음을 듣습니다. 둘 다 인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에덴동산은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가 담긴 일터였습니다. 삶터였습니다. 쉼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터와 삶터와 쉼터에 인간이 창조됨으로 최상급의 심히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마스타풀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의 행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성취하셨습니다.
칼 막스의 말처럼 기독교는 마약과 같은 중독증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기독교는 가정을 파괴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되면 될 수록 삶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록 인간은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와 섭리로 인하여 인간이 행복해질 때 하나님은 비로소 영과을 얻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위해 지금도 에덴동산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의 창조신앙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광야를 지나던 출애굽 백성들에게 선포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엣날 아담과 이브를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드신 하나님이 또 다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언약의 선포엿습니다.그리고 그 세상이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할 수 있지만 인간때문에 심히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여기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의 위대한 미래가 잇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위대한 미래를 여는 사건입니다.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
그 빛(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우리는 하나님이 스스로 창조하신 빛을 보고 좋았더라고 감탄하신 말씀을 묵상하려고 합니다. 창조의 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창세기 1장에는 "좋았더라" 라는 표현이 일곱 번 나옵니다. 4절, 10절,12절,18절,21절,25절 그리고 31절에 나옵니다. 특히 31절에서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1. [창 1: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2. [창 1:10]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칭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3. [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4. [창 1:18]
주야를 주관하게 하시며 빛과 어두움을 나뉘게 하시니라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5. [창 1:21]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6. [창 1: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7. [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라보시면서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좋음에 대한 감탄사입니다. 또 자기 평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이 감탄의 자기표현은 하나님에 대하여 좀 더 분명하게 알게 해줍니다
1.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해줍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기독교는 이원론의 종교가 아닙니다. 후발적으로 이 세상의 이원론적인 구조가 보이지만 출발은 일원론입니다. 하나님이 출발이요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좋은 세상이었읍니다. 하나님은 좋은 세상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처음 부터 좋은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잘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잘 믿지 못합니다.
시편기자는 계속해서 노래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영원하다고..
1 [시 100:5]
대저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 성실하심이 대대에 미치리로다
2. [시 106: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3. [시 107: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4. [시 109:21]
주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인하여 나를 선대하시며 주의 인자하심이 선함을 인하여 나를 건지소서
5. [시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저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6. [시 118:29]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7. [시 136: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인자하시기에 언제나 세상을 창조하실 때 완벽하고 좋은 세상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죄로 인하여 파괴가 될 때에도 그 창조세계를 지켜 나갑니다.
2.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사후 관리를 드러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방치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시고 바라 봅니다. 그 출발점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대한 평가입니다. 좋았더라는 하나님이 스스로 만든 세상을 바라 보시면서 만족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엿 보게 합니다.
예술가들은 자기들의 예술 작품을 만들어 놓고는 반드시 점검을 한다고 합니다. 화가는 자기의 그림을 거저 줄 수 는 있어도 싼 값에 팔지는 않습니다. 도공은 자기의 작품이 흠이 있으면 돈 몇푼에 팔기 보다는 부수어 버린다고 합니다. 그 작품속에 자기의 혼이 담기고 자기의 명예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이름이 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창조세계의 피조물을 통하여 자기를 알리셨습니다. 자기를 드러내셨습니다. 자기의 명에을 지키셨습니다.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완전성성을 선포해줍니다.
3. "좋았더라"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툭별한 섭리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좋았더라는 말씀을 게속하시다가(둘 째날의 생략은 전체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날 인간을 창조하시고는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두 가지 하나님의 섭리를 스테레오로 듣게 됩니다. 하나는 인간을 위한 창조세계의 완전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창조되고 나서야 최상급의 표현이 나올 수 있음을 듣습니다. 둘 다 인간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인 에덴동산은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배려가 담긴 일터였습니다. 삶터였습니다. 쉼터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터와 삶터와 쉼터에 인간이 창조됨으로 최상급의 심히 좋은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철저하게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마스타풀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의 행복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성취하셨습니다.
칼 막스의 말처럼 기독교는 마약과 같은 중독증이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기독교는 가정을 파괴하고 삶을 무너뜨리는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되면 될 수록 삶이 풍성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록 인간은 행복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행복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배려와 섭리로 인하여 인간이 행복해질 때 하나님은 비로소 영과을 얻으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위해 지금도 에덴동산을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창세기의 창조신앙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광야를 지나던 출애굽 백성들에게 선포된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그 엣날 아담과 이브를 위하여 에덴동산을 만드신 하나님이 또 다시 보시기에 좋은 세상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언약의 선포엿습니다.그리고 그 세상이 그 자체만으로도 완전할 수 있지만 인간때문에 심히 좋은 세상이 될 수 있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여기 하나님을 만나는 인간의 위대한 미래가 잇습니다. 믿음이란 하나님과 위대한 미래를 여는 사건입니다.
출처 : 생기바다
글쓴이 : 서철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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