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신학(神學)/실천신학

[스크랩] 생기신앙에 대한 시편 묵상

우순(愚巡) 2006. 4. 15. 19:35
 

한번 보구 싶은 철이형!


오늘 날자만 봐두(050505) 형한테 편지 안 쓰곤 못배겨^^

여긴 예수님 승천일이라서 국정공휴일이야. 휴일만 되면 죽은 도시같이 변하지. 한국같으면 어린이 날이라구 아우성에 난리두 아닐텐데


간만에 푸른 하늘에 밝게 내리쬐는 햇살을 만끽했지. 대낮엔 한 여름같은 느낌도 오구... 여기 사람들은 해만 나면 괜히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져. 얼마나 좋은지 훌떡훌떡 벗고 공원 잔디밭에 뒹굴질 않나 못이기는 척, 눈/요/기...^^


인터넷을 방에 가설하려 했는데, 너무 비싸서 포기했어. 대신에 내가 종일 죽치고 앉아있는 대학 도서관에는 영어로 인터넷을 할 수 있지. 한글로 편지를 써서 첨부화일하면 된다는 생각을 왜 이제야 하게 됐을까?^^ 번거롭더라도 다운받아서 읽어주시길 바래유~ 지난 주간에 몇번이고 한글파일 첨부해서 메일을 시도했는데 모두 실패했어~ 왜 형한테만 안되는지 모르겠어. ㅠ.ㅠ 이번만은 되길 바라구!

한글을 읽을 수는 있기 때문에 web-surfing은 할 수 있어. 더러 형 카페에도 들어가 보곤 해.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에, 모종의 강박관념처럼 자기를 몰아치는 형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더군. 조깅과 더불어 영어성경 필사하며 창세기를 다시 음미하는 모습과 함께, 도서관을 많이 들락거리는 것도 좋을텐데...


카페의 성경묵상시도는 너무 신선하고 좋아서 갈채를 보내.

'아현'에 관련하여 경험한 실존적 고백도 들어 있어서 많이 배워.

못 배우는 사람은 아무리 가르치려 해두 못 배우고, 배우는 사람은 가만 놔둬두 주어 들어가며 배우게 마련 아닐까? ^^


논문 이외에 이번 안식에 나를 강타하는 생각이 있어. 유럽에 오자마자 프랑스 남부의 Nice에 갔었다구 했지? 거기서 마크 샤갈의 성서주제그림 박물관도 좋았지만, 한 수도원의 프란시스칸 박물관에 갔다가 아시시의 성자 프란시스코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 프란시스코하면 자연과 벗삼아 새들에게도 설교를 했다는 것과 '평화의 기도'나 기억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생각을 떠올리게 됐어. 형이 늘 말하는 구도자의 삶과 생기목회에 관련해서 큰 도전을 받은 셈이야.


그의 시대상은 도시혁명이 일어나던 때였으므로, 산업혁명 때 웨슬리운동과 마찬가지로 유비쿼터스혁명을 만나는 오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구 봐. 제3의 물결을 말한 앨빈 토플러식 구분이 아니더라도, 대략 농업혁명> 도시혁명> 인문주의혁명> 산업혁명> 컴퓨터혁명(정보화혁명  유비쿼터스혁명)  뭐 이런 변화를 나열해 볼 수 있는데, 매 혁명이 무르익을 때 쯤이면 종교적 각성운동들이 일어나왔지. 오늘날도 변화하는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봐.


프란시스코가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아? 1182-1226이면 44세야. 난 거의 다 되가구 형은 이미 지났어. 교황의 권위가 사회를 가득 채우고, 통신도 교통도 변변치 않던 때, 어떻게 그런 영적 지진을 일으켰는지 몰라. 오랜만에 Sonnengesang을 음미하게 되었지. 더 좋은 번역들이 있지만, 니스에서 발견한 쪽지에 독일어로 번역한 게 있어서 다시 한글로 번역해보았지. 출처미상인 ‘평화의 기도’보다는 훨씬 더 프란시스코다운 찬송이라 개인적으로는 훨 맘에 들지. 쫌 오래된 글이지만 Fulbert Steffensky의프란시스코의 여담들 몇 가지도 재미있게 읽어서 번역 첨부해. 그는 44년 살면서 그렇게 엄청난 생명운동을 했는데, 나는 그만큼의 해를 넘기면서 후반전을 준비하고 있다니...


오늘은 다만 그의 운동과 함께 생기목회에 두 가지만 부언하고 싶어.

 

1. 생기목회가 창세기와 함께 전거로 삼는 에스겔말이야.

 

   형은 주로 1:1f.과 37장, 47장 뭐 이렇게 짚어 나가는데, 9장 4절을 함 들여다 봐 달라는 거지. 거기 이마에 하는 표가 무슨 표였을까? 프란시스칸들은 '표'(tawv)를 히브리어 마지막 알파벳인 'Tau'였으리라 보면서, 거기서부터 타우십자가를 읽어낸다.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십자가의 표식을 삼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와 연결하는 것이지. 다소 논리의 비약이 있을지 모르지만, 신약의 성취를 앞서 예시하는 좋은 근거가 될 수 있어. 조금은 억측스럽긴 하지만 Biblia Hebraica 뒤져보구 형의 그 부흥사기질 섞으면 생각 달라질 껄? 창세기와 더불어 생기목회의 한 축을 형성하는 에스겔에 십자가의 표식이 들어있다면, 한번쯤 연구해 봄직하지 않을까?^^ 구약의 창세기와 예수의 생기목회를 연결하는 인물을 들라면 ‘예수의 전형’인 요셉을 들 수 있을꺼야. 하지만 에스겔의 환상과 예수의 생기목회는 직접 연결하기가 어려운데, 마냥 '루아하'만 할 수도 없구... 그 Tau가 구원의 표징이요, 생명의 단초라면 참 좋은 연결이 되리라구 봐~. 이런 건 안식이나 해야 눈에 들어오니 원...


2. 구약의 '율법과 선지'에서 창세기와 에스겔 하나씩 찾아낸 건 참 알맞은 착상이야.

 

   그런데 문제는 지혜문학이 빠진 데 있어. 찬양운동(서철과 아이들^^)을 하자면서 시편을 넘어갈 수 있나? 그래서 시편 119편으로 가보구 싶은거야. 이왕이면 젤 긴 시편,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다윗의 시편이지. 생기목회의 아킬레스건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쟎아? 아시겠지만 알파벳답관체식 배열을 따라 8절씩 끊어서 히브리 알파벳 22을 다 사용한 176절이야. 그 십자가 표식을 생각하며 마지막 '타우'부분에 가 묵상해 보면 어떨까?


(169) 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 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달하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 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찬송을 발할지니이다

(172)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할지니이다

(173) 내가 주의 법도를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 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 내 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가 나를 돕게 하소서

(176) 잃은 양 같이 내가 유리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형의 생기 교회건축론에 생기와 빛에 관한 언급이 있었지? 스퍼젼은 119편을 강해하면서 Horace를 빌어 이렇게 말한 일이 있대: "이 시편은 다른 모든 시편들 가운데 유난히 빛을 발한다. 보다 약한 불빛 가운데서 현저한 빛을 발하는 달처럼."


에스겔 9:4와 시편 119:169f.라 안식년에 성 프란시스코가 내게 던져 준 화두야! 형님한테도 새 힘을 주시길 바래 몇 자 적어 봤어. 성서신학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이 됐는지 모르지만, 언제부턴지 생기목회연구소 연구위원이라기에 용기를 내서 사족달았으니 소화는 형님이 알아서 하시기 바래유.


6월 말경에는 일단 한국에 갔다가, 10월 경에 다시 나올 계획으로 있어. 뭐라도 정해지면 연락드리리다. 형은 언제쯤 돌아갈 계획이야? 형수님과 좋은 안식 되시길...




Karl Marx가 태어났다는 어린이 날,

바젤에서 아우 영찬이 드림


추신: 카페에 형수님이랑 찍은 사진 참 보기 좋더라. ㅎㅎㅎ

 

Der Sonnengesang


Du hchsterm mchtigster und gtiger Herr,

Dir gilt das Lob, die Herrlichkeit,

die Ehr' und jeder Segen.

All dies gebhrt nur Dir, Du Allerhchster,

Kein Mensch ist auch nur wrdig, Dich zu nennen.


Gelobt seist Du, mein Herr,

samt allen Deinen Werken,

Doch in besonderm Mass durch Schwester Sonne,

Auf uns herab lsst Du sie tglich scheinen.

Wie schn ist sie; sie strahlt mit grossem Glanze.

Vor Dir, o Hchster, hat sie ihren Sinn.


Gelobt seist Du, Herr,

auch wegen Mond und Sternen,

Die glanzvoll, schn und kostbar Du geschaffen.


Gelobt seist Du, o Herr, durch Bruder Wind,

Durch Lfte, Wolken und jedwedes Wetter

Das die Geschpfe Deiner Hand erhlt.


Gelobt seist Du, mein Herr,

durch Schwester Wasser,

Die ntzlich-schlichte, kstliche und reine.


Auch Bruder Feuer lobe Dich, o Herr,

Er leuchtet uns in nchtgem Dunkel;

Lustig ist er und schn: krfting und khn.


Es lob' Dich unsre Mutter Erde, Herr,

Die uns erhlt und leitet.

Sie schenkt uns viele Frchte,

Kruter, bunte Blumen.


Gelobt seist Du, o Herr, durch all' diejenigen,

Die Dir zulieb' Verzeihung ben,

Die Kranke und Bedrngte pflegen;

Selig sind, die geduldig leiden,

Denn Du wirst ihnen einst die Krone geben.


Gelobt seist Du, mein Herr,

durch unsren Bruder Tod,

Dem kein Lebend'ger kann entrinnen:

Weh' denen, die in Todessnden sterben,

Doch selig, die sich Deinem

Heiligen Willen fgen:

Leicht ist ihr Tod und ohne jeden Schmerz.


Lobet und preiset mienen Herrn, und danket

Und dienet ihm in Demut ohne Zagen.


Hl. Franziskus von Assisi



태양의 찬송 -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전능하고 자비로우신 주여,

찬양과 영광과 존경과 모든 축복이 당신의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장 높으신 당신에게만 마땅합니다.

어떤 인간도 당신을 부를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나의 주여,

당신의 모든 작품들이 모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특별히 자매 태양을 인해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서 매일 우리 위에 그 태양을 비추어 주십니다.

밝게 비취는 태양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가장 높으신 당신 앞에서 태양은 그 의미를 갖습니다.


주여,

달과 별들로 인해 당신을 찬양합니다.

당신께서 빛나고 아름답고 귀하게 만드셨습니다.


오 주여,

형제 바람을 인해 당신을 찬양합니다.

공기와 구름과 모든 기후는

당신 손으로 만드신 피조물들을 보존합니다.


나의 주여,

자매 물을 인해 당신을 찬양합니다.

물은 유익하고-순박하며 소중하고 순수합니다.


오 주여,

형제 불도 당신을 찬양합니다.

불은 밤의 어두움 속에서 우리를 비추고

활활 타오르며 아름답고: 강하며 용감합니다.


주여,

우리의 어머니 땅이 당신을 찬양합니다.

땅은 우리를 보존하고 주재합니다.

땅은 우리에게 많은 과일과 풀과 가지각색의 꽃을 선사합니다.


오 주여,

당신을 위해 용서하는 모든 사람들을 인하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병자들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는 사람들 말입니다.

인내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을 복이 있습니다.

당신께서 언젠가는 그들에게 면류관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주여,

우리의 형제인 죽음을 인하여 당신을 찬양합니다.

살아있는 어떤 것도 죽음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사망의 죄 가운데 죽는 자들은 화가 있으리라.

그러나 당신의 거룩한 뜻을 따르는 자들은 복이 있으리라:

그들의 죽음은 가볍고 어떤 통증도 없으리라.


나의 주를 찬양하고 찬송하며 감사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히 그분을 섬기라.

 

    Geschichten von Franziskus

erzhlt von Fulbert Steffensky: Feier des Lebens. Spriritualitt im Alltag. Kreuz Verlag Stuttgart 1964, S. 21 - 23

 

Bruder Wacholder - von dem Franziskus sagte, er wnsche sich einen ganzen Wald solcher Wacholderbume - sollte in der Weihnachtszeit auf die Kirche aufpassen. Sie war fr das Fest geschmckt. Da kam eine arme Frau und bettelte um Almosen. Da er kein Geld hatte, rumte er den Altarschmuck ab und schenkte ihn der Frau. Dem emprten Sakristan antwortete er: "rgere dich nicht ber den Tand. Ich habe den Schmuck einer armen Frau geschenkt, die ihn gut gebrauchen kann. Hier war er ohnehin zu nichts ntze!" Der Generalobere, der von der Geschichte hrte, wurde zornig, hielt Wacholder eine Strafpredigt, schrie immer lauter und wurde schlielich heiser. Bruder Wacholder hrte seinem Geschrei kaum zu. Erst als der Obere vor Heiserkeit nicht mehr weiterreden konnte, wurde er aufmerksam, ging weg und erbettelte sich im Dorf eine Schssel Mehlsuppe. Er brachte sie dem Oberen und sagte: "Als ihr mich ausgeschimpft habt, Vater, wurde eure Stimme wegen der groen Anstrengun ganz heiser. Ich habe ein Mittel dagegen gefunden und euch diese Suppe bereiten lassen. Wenn ihr sie esst, wird sie euch Brust und Kehle befreien." Der Obere rgerte sich und merkte, dass er verspottet wurde, und wollte die Suppe nicht essen. Darauf Bruder Wacholder: "Vater, wen du schon die Suppe nicht essen willst, halte mir die Kerze! Ich will sie dann selber aufessen." Wir haben hier zwei Motive, die in den Franziskus-Geschichten immer wieder vorkommen: zum einen die Kritik an Autoritten und Herrschaft und zum anderen das Motiv der Profanisierung von Sakralitt. Das Heilige wird verfgbar fr den Menschen. Die Frau kann den Altarschmuck verkaufen und davon Brot kaufen.

Es wird berichtet, dass einmal eine alte Frau zu den Brdern kam und um Untersttzung bat. Die Brder hatten aber nichts mehr, was sie ihr geben konnten, auer dem einzigen Neuen Testament in der Kapelle. Franziskus sprach: "Gebt der Frau das Neue Testament, damit sie es verkaufen kann! Steht nicht in diesem Buch, dass wir den Armen zu Hilfe kommensollen? Ich glaube, dass Gott mehr Freude haben wird, wenn wir das Buch verschenken, als wenn wir daraus lesen."

Nichts ist in sich heilig. ... Der Altarschmuck kann verkauft werden, das Neue Testament kann verschenkt werden. Der Mensch wird zum Herrn des Sabbats. Alles wird geheiligt durch den sinnvollen Gebrauch. Franziskus ist ... kein gutmtiger Einfaltspinsel. Er inszeniert das, was eigentlich gelten soll: Zrtlichkeit, Verbundenheit, berwinden von Grenzen.

Franziskus ist in Rom. Ein Kardinal bittet ihn, bei ihm zu wohnen. Da es schlechtes Wetter ist und unangenehm zu wandern, nimmt er die Gastfreundschaft an. Der Kardinal bringt ihn in einem groen und bequemen Turmzimmer unter. Aber nachts plagen Franz die Dmonen. Er zittert am ganzen Krper wie im Fieber. "Kann es sein", fragt er, 'dass Gott mir seine Schergen geschickt hat, weil ich die Gastfreundschaft eines Kardinals angenommen habe?" Die Gastfreundschaft eines Kirchenfrsten anzunehmen, sich mit den Mchtigen einzulassen, das heit schon, dem Bereich der Dmonen zu verfallen. Es gibt bei allen franziskanischen Bewegungen ein selbstverstndliches Misstrauen gegen jede Form der Herrschaft: gegen kirchliche Obere, gegen Kardinale und Ppste, gegen Frsten und gegen die Reichen.

Als Franziskus einmal vor dem Papst predigen soll, kann er sich an seine vorbereitete Rede nicht mehr erinnern. Er schlgt sein Gebetbuch auf und st秤t auf das Psalmwort (5, 7): "Immerfort ist vor mir meine Schmach, Schamrte bedeckt mein Gesicht." Und so spricht er gegen den Hochmut der Prlaten.

Von seinen anarchistischen Interessen her ist auch sein Verhltnis zur Armut zu sehen. Franziskus vermhlt sich mit der edlen Frau Armut. Aber Franziskus will keine ziellose und sich selbst genieende Askese. Er frchtet Besitz, weil dieser korrumpiert. Dies erzhlt uns eine der schnsten Franziskusgeschichten: Ein Novize wollte unbedingt ein Psalterium fr sich allein haben und bat Franz immer wieder darum. Franz antwortete ihm: "Wenn du erst einmal ein Psalterium besitzt, dannwirst du auch bald auf dem Katheter sitzen wie ein gelehrter Mann, und dann dauert es nicht mehr lange und du sagst zu einem deiner Genossen: Bruder, komm her und reiche mir das Psalterium." Besitz wird abgelehnt, weil er die Geschwisterlichkeit der Gruppe zerstrt. Besitz korrumpiert. Man hat nur, was man dringend braucht.

프란시스코 이야기: 생명의 불꽃, 일상 속의 영성

by Fulbert Steffensky(Kreuz Verlag, Stuttgart, 1964, pp. 21  23)

 

 

형제 Wacholder  프란시스코는 숲을 두송(杜松)나무(Wachholderbume)로 가득 채우고 싶다고 말한 일이 있다  는 성탄절에 교회를 지키고 있었다. 교회는 축제를 위해 장식되어 있었다. 그 때 한 가난한 여인이 다가와서 구걸했다. Wacholder는 돈이 없었으므로 제단의 장식을 정리해서 그녀에게 주었다. 그는 흥분하는 성물보관인에게 대답했다: “보잘 것 없는 것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 보물을 잘 사용할 수 있는 가난한 여인에게 선물했어요. 그 보물은 여기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었죠!” 그 이야기를 들은 총책임자는 화가 나서 Wacholder에게 훈계하는데 점점 더 큰 소리를 지르다가 결국은 목이 쉬게 되었다. 형제 Wacholder는 그의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책임자의 목이 쉬어 더 이상 말할 수 없게 되자 그는 정중하게 나가서 마을에 가서 밀가루수프 한 대접을 얻어 왔다. 그는 그 수프를 책임자에게 가져다주며 말했다: “신부님, 당신들이 내게 꾸짖을 때 당신들의 목소리는 너무 애를 써서 아주 쉬어버렸습니다. 제가 치료약을 찾아서 이 수프를 준비했습니다. 당신들이 이 수프를 드시면, 가슴과 목이 시원해 질 것입니다.” 책임자는 화를 내며 조롱받는 것을 알고 수프를 먹지 않으려 했다. 그러자 형제 Wacholder가 말한다: “신부님, 이 수프를 안 드시려면, 제게 양초 좀 비춰주시죠! 제가 수프를 다 먹어 버리게요.”

여기에는 프란시스코-이야기에 언제나 다시 나오는 두 가지 동기가 있다: 하나는 권위와 주관에 대한 비판(Kritik an Autoritt und Herrschaft)이요, 다른 하나는 거룩한 것의 세상화(Profanisierung von Sakralitt)이다. 거룩한 것은 인간들을 위해 사용되고 만다. 여인은 제단장식을 팔아서 빵을 살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한번은 한 노파가 형제들에게 와서 보조를 청한다. 그러나 형제들이 그녀에게 줄 수 있던 것은 예배당에 있는 신약성서 뿐이었다. 프란시스코는 말한다: "그 여인에게 신약성서를 주어 그녀가 성서를 팔 수 있게 해라!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이 책에 써있지 않는가? 우리가 이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선사해 버릴 때 하나님께서는 더 기뻐하시리라 믿는다."

스스로 거룩한 것은 없다.  제단 장식은 팔릴 수 있고, 신약성서는 선사될 수 있다. 인간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모든 것은 의미있게 사용될 때 거룩해 진다. 프란시스코는  마음씨 좋은 바보(Einfaltspinsel)가 아니다. 그는 원래 타당해야 할 것  연정, 자애, 한계의 극복  을 연출한다.

프란시스코는 로마에 있다. 한 추기경이 자기 집에 거하기를 청한다. 날씨가 나빠 걷기에 좋지 않자 후의를 받아들인다. 추기경은 그를 아주 크고 안락한 탑방(Turmzimmer)으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밤에 프란시스코는 악마들에게 시달린다. 그는 열병에 걸린 것처럼 온 몸을 떨었다. 그는 물었다: "내가 추기경의 후의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내게 포졸들(Schergen)을 보내셨을까?" 추기경의 후의를 받아들인 것, 권력가와 관계를 맺는 것은 이미 악마의 영역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프란시스칸 운동에 보면, 어떤 형태의 주권에 대해 불신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교회의 고위관리나 추기경 및 교황, 영주, 부자들에 대한 불신 말이다.

한번은 프란시스코가 교황 앞에서 설교하게 되었을 때, 그는 준비한 이야기를 기억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기도서를 펴자 시편말씀(5편 7절)에 부딪힌다: “내 앞에는 끊임없이 모욕이 있고, 내 얼굴은 붉어집니다.” 그는 고위성직자의 거만에 대항하여 이렇게 말했다.

가난에 대한 그의 관계도 그의 무정부주의적 관심으로부터 볼 수 있다. 프란시스코는 가난이라는 귀부인과 결혼했다. 그러나 프란시스코는 목적없이 자기만족적인 금욕을 원하지 않았다. 그가 소유를 두려워한 것은 소유가 부패시키기 때문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프란시스코 이야기들 중 하나가 이것을 설명해준다: 한 예비신부가 찬송가 한 권을 반드시 독점하기 원해서 프란시스코에게 언제나 다시 청했다. 프란시스코가 그에게 대답한다: “만일 당신이 찬송가 한 권을 소유한다면 당신은 곧바로 무슨 학자처럼 Katheter에 앉게 될 것이고, 머지않아 동료들 중 하나에게 말하게 될 것입니다: 형제여, 이리 와서 그 찬송가를 내게 건네주시오. 라고.” 소유는 그룹의 자매됨을 파괴하기 때문에 거부된다. 소유는 부패시킨다. 사람들은 긴급히 필요한 것만 가지면 된다.

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이영찬 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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