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체험(體險)

[스크랩] 생기묵상원 개원

우순(愚巡) 2006. 4. 15. 19:05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기나라가 생기묵상원으로 새롭게 출발합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새롭게 출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은 삶의 제일 순위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저도 전적으로 그런 분들과 뜻을 같이 하는 기독교 목사이며, 그런 뜻을 앞서 추구하셨던 웨슬리 목사의 후예인 감리회의 목사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아끼지 않았던 민중목회자 전덕기 목사님을 사랑하는 후학입니다. 저는 제가 섬기든 모든 일들이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 옛날 카페였던 '생기와 비전'과 '생기나라'나 새로운 섬김인 '생기묵상원'도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일 뿐 개인의 이름도 개인의 취향도 하나님의 영광보다 결코 우선할 수 없습니다. 우리 믿음의 동역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고, 모든 일을 사랑과 축복으로 섬길 뿐입니다.

 

 '생기묵상원"은 말씀묵상과 성령체험에 중점적으로 헌신하려고 합니다.

 

  생기묵상원은 생기나라의 순수한 비전을 계승하며 본래의 비전이었던 말씀묵상과 성령체험을 중점적으로 섬기려고 합니다. 말씀묵상과 성령체험은 웨슬리 신학의 핵심입니다. 생기나라도 생기묵상원과 같은 비전을 가졌던 이름이지만 전임지였던 복지교회 목사 시절에 만든 것이라 일부에서는 복지교회의 조직인 것 같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좀더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기묵상원으로 이름을 바꾸고 본래의 비전인 웨슬리 복음주의 신학을 구현하는 말씀공동체로 헌신할 것입니다.

 

  사실 생기나라도 웨슬리 복음주의 신학에 근거한 말씀공동체입니다.  생기나라는 "생기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를 일컫는 말로 제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보내는 동안 기도 중에 깨달음을 얻고 생기와 비전을 리모델링한 말씀공동체입니다. 이 모임은 저와 뜻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을 운영진으로 모시고 시작한 말씀묵상과 중보기도의 모입니다. 저는 16년 전 복지교회에 부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사도행전 6장 4절의 말씀을 읽고 큰 은혜를 받았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사도들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에 전무했습니다. 저는 그 때 부터 성경을 다시 정확하게 읽는 정독에 들어 갔고 말씀의 깊이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기갈이 들려 있던 저는 말씀중심의 목회 틀거리를 찾아 다니다가 김선도 감독님, 곽선희 목사님, 석원태 목사님, 옥한흠 목사님, 하용조 목사님, 홍정길 목사님들을 책을 통하여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트리니티 성경공부도 해보고, 일대일 제자 양육 성경공부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와 제 아내가 함께 감명을 받았던 성경공부는 남서울 교회에서 김경섭 목사님의 지도아래 배웠던 '프리셉트' 성경공부였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한 목사로서 구속사에 관심이 많아 '언약' 을 공부했는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학의 전제 아래 연역법적으로 읽었던 성경을 관찰과 묵상을 통해 귀납법적으로 읽어 갈 때 성경은 전혀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으로 제게 다가 왔습니다. 아내도 구원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후 저희 부부는 말씀묵상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성경의 깊은 은혜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와 뜻을 같이하는 좋은 동역자님들과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는 영성을 같이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의 마음은 이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비전입니다.

 

 말씀묵상원은 정경신학에 근거한 창조신앙의 기반위에 서 있습니다.

 

  생기묵상원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으며 세상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분명한 신앙고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말씀묵상을 통해 깊은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교회의 머슴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 즐겁고 교회를 섬기는 일이 기쁩니다. 복지교회를 섬길 때도 그랬고 앞으로 상동교회를 섬길 때도 그럴 것입니다.  제가 복지교회를 섬길 때 제 관심은 오직 복음전도와 교회성장이었습니다. 앞으로 상동교회를 섬길 때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제일 우선 순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상업주의적인 교회팽창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온 세상이 말씀묵상과 성령체험을 통하여 생기가 충만한 하나님의 나라로 세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창조신앙은 생기나라를 세워 가는 중요한 신앙고백입니다. 저는 복지교회에서 전도를 하다가 30대와 40대의 젊은 남성들에게 창조신앙을 전파하는 것이 전도의 좋은 도구가 되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상업주의적인 경품위주의 전도보다는 팽창이 늦지만 천천히 가더라도 바르게 가는 길에 하나님의 깊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창조신앙은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창조신화나 창조설화로 보지 않고 성경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로 바라 보는 시각입니다. 그런 시각은 창조과학회의 창조론으로 부터 더 분명한 확증을 얻었습니다. 저는 문서설을 배우면서 한 편으로는 반문서설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면서 학문적으로는 폭 넓은 연구를 하도록 마음을 열었지만 제 신앙고백은 아주 분명한 입장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 저는 성경의 표제어 같은 첫 말씀을 믿습니다. 생기묵상원은 창세기 1장 1절에 대한 믿음과 확신위에 서 있습니다.

 

 

생기묵상원은 말씀묵상을 삶 가운데서 실천하기 위하여 생기하우스를 섬깁니다

 

   생기묵상원은 말씀을 실천하는 공동체입니다. 산 믿음은 행함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생기하우스는 말씀묵상을 실처하는 행동하는 믿음의 섬김입니다. 생기하우스 사역은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고 싶어 신학교에 입학했던 저 개인의 소명입니다. 저는 애시당초 큰 교회나 멋진 교회를 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성장 주의자는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단지 신학을 하면서 갈등을 겪는 가운데 웨슬리 복음주의 신학이 가장 성경적이라는 확신을 체험했기에 말씀묵상과 성령체험을 강조하게 되었고 복음전도와 교회섬김에 전적으로 헌신했을 뿐입니다. 그 결과 일시적으로 복지교회에서 성장을 경험한 것 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의 전부가 아닙니다. 믿음은 말씀묵상에 기초하여 행동하는 삶의 실천입니다. 이는 교회의 거룩한 본질인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전덕기 목사님도 모두 '하나님의 나라' 를 섬기기 위해 검소하게 살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는 삶을 사셨습니다. 생기하우스는 말씀을 실천하는 작은 섬김입니다.

 

  본래 생기하우스는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는 섬김 가운데 상처 받은 청소년들과 청소녀들을 위한 쉼터를 세우려는 비전에서 출발한 Homeless People Center입니다. 웨슬리 목사님도 전덕기 목사님도 가난한 자들의 친구로 사셨기 때문에 그 분들의 목회사역이 복음주의적이면서도 민중지향적인 조화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체험은 그 둘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섬기는 능력과 힘을 늘 제공했습니다. 그래서 생기묵상원은 단순한 학자들의 연구나 목회자들의 이론논쟁을 지양하고,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말씀을 묵상한 후에 묵상한 말씀을 실천하는 행동하는 믿음을 지향합니다. 그것은 또 다른 헌신이며 거룩한 섬김입니다. 저는 생기하우스를 통하여 기독교의 이미지를 새롭게 고양시키고 안티 기독교 세력들이 발호하는 이 시대에 전도의 문이 조금이나마 열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축복을 나누며 사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아울러 저는 수목장을 선호합니다. 수목장이란 시신을 화장한 후에 나무  밑에 뿌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죽으면시신을 대학병원에 실험용으로 기증했다가 실험이 끝나면 화장하여 수목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만을 의지하여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축복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말씀을 묵상하며 사니 매일이 새롭고 행복하며, 성령님과 동행하며 사니 그 어찌 아니 즐겁겠습니까? 또한 주님께서 주신 축복들을 아픔과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나누어 살며 함께 즐거워 한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다가 죽으면 후손을 위하여 의학발전용으로 시신을 기증하고 한 그루 나무가 되어 그늘을 찾는 이들에게 쉼을 제공하는 아낌 없이 주는 나무가 된다면 그 잎이 푸르러 아름다우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영혼과 신령한 몸은 하나님의 보좌에 들림 받아 주님과 영생복락을 누리리니 날마다 찬송과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생기묵상원은 생기나라의 선교사역을 평신도들에게 환원합니다.

 

  생기묵상원은 선교사역 부분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하여 본래의 사역자들에게 돌려줍니다. 생기나라 선교회는 좋은 나눔 선교회를 섬기던 평신도들의 사역을 효과적으로 더 잘 섬기도록 생기나라 사역을 섬기던 목회자들이 초교파적으로 지원하고 격려한 것인데  본래의 취지가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아 오히려 효과를 감소시켰습니다. 그래서 선교사역이 잘 되도록 본래의 모습으로 환원시키려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한 개인이나 특정한 집단들의 이름이나 주도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교 자체만 이루어지면 됩니다. 그리고 그 선교사역 자체를 위하여 수 많은 사역자들이 배출되고 섬길 수 있으면 됩니다. 개임 보다 동역자가 중요하고, 개인의 자리 보다 선교사역이 소중합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들이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섬기도록 짐을 나누어 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각양각색의 섬김 틀거리가 있습니다. 제가 평신도 사역자들의 선교사역을 도우려고 하다가 오히려 선교사역을 좁히는 어리석음을 범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살다 보면 종종 깨닫는 것이 고난도 유익이요, 시련도 유익이며, 환난도 영광임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에는 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우리들에게 순순한 선교비전을 심어 주셨으며 반드시 그 일을 하나님이 직접 이루실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기나라의 사역 중에 선교사역을 맡았던 생기나라 선교회를 본래의 비전이었던 평신도 선교사역으로 전문화하여 효과적으로 섬기게 하려고 합니다.

 

  

 

생기묵상원은  올곧은 믿음의 길을 걷고 싶은 동역자들의 모입니다.

 

     생기묵상원은 말씀을 그대로 믿으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구원을 받고, 성령을 체험하기를 원하는 동역자들의 모임입니다. 저는 평신도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로 성도를 나누는 이분법은 상당히 가톨릭적인 분위기가 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다 한 가지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고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수직적인 계급 사회의 이분법이 아닌 믿음의 동역자들로서 함께 기도하고 함께 말씀을 묵상하며 성령안에서 일치를 이루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것입니다. 생기묵상원은 웨슬리 목사님처럼 '한 책의 사람'이 되어 성경을 소중하게 여기고, 뜨겁게 기도하면서, 묵상한 말씀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만나는 거룩한 쉼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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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생기묵상원
글쓴이 : 생기머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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