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7:37∼39)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삼위일체주일)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교회력을 따라 삼위일체주일을 섬기면서 지난주와 연결해서 성령론적인 삼위일체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저는 가끔 시국설교와 상황설교의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에게 성경말씀을 강론하는 복음주의 설교에 대한 확신을 주셨습니다. 시국설교나 상황설교도 장점이 있지만, 성경말씀 자체를 묵상하고 강론하는 것만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의 설교는 성경말씀을 신뢰하는 정통신학, 복음주의, 웨슬리신학을 지향합니다. 제가 가진 한계인 줄은 잘 알지만 동시에 제가 받은 하나님의 소명입니다. 저는 약하고, 부족한 목사입니다.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확신합니다. 저를 부르신 하나님이 제게 맡겨 주신 소명은 바로 복음의 능력을 전하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은 성경말씀의 능력을 신뢰하는 정통 복음주의 신학과 웨슬리신학의 도구를 사용하여 복음의 능력을 전하게 하심을 확신합니다. 루터는 오직 성경으로 권위의 근거를 삼았으며, 웨슬리는 한 책의 사람으로 불리워졌습니다.
오늘 저는 "생수의 강(성령)이 흘러나오리라"는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삼위일체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정통신학이며 웨슬리 신학입니다. 복음주의자들은 언제나 신학과 신앙의 기반을 성삼위일체 하나님께 둡니다. 그러나 요즘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기묘한 언어의 수사를 통하여 삼위일체신앙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유대교처럼 예수님을 부정하는 신앙을 말하고, 성령체험을 심리적인 환상정도로 치부합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조차 바벨론의 신화나 팔레스타인의 군신숭배사상으로 전락시킵니다. 참으로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대속자 예수님과 보혜사 성령님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습니다. 개신교의 삼대 스승인 루터와 깔뱅과 웨슬리는 이 점에 있어서 아주 분명하게 일치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오직 성경말씀의 권위에 근거합니다.
다만 개신교의 삼대 스승인 루터와 깔뱅과 웨슬리 세 사람에게는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를 믿을 것인가를 강조한 루터는 성자 예수님을 강조했습니다. 누가 믿을 것인가를 강조한 깔뱅은 성부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믿을 것인가를 강조한 웨슬리는 성령 하나님을 강조했습니다. 독일의 루터나 프랑스-스위스의 깔뱅과 달리 경험을 강조하는 영국사람 웨슬리는 체험과 확신을 강조했기 때문에 자연히 성령체험을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해갈의 생수)
오늘 읽은 말씀은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를 뒤이어 나오는 생수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 두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참 의미심장한 질문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선물과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너는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철학과 지성의 복음서입니다. 로고스라는 희랍의 철학적 용어와 유출설에 근거한 충만이라는 말을 빌려서 기독교의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철학과 지성의 사람들에게 사마리아 여인을 등장시켜 정말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선포합니다.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은 모른다는 말입니다.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은 하나님의 선물을 몰랐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사람 곧 예수님이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목이 말랐습니다. 우선 이 문제를 진지하게 짚고 넘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선물을 아십니까? 여러분 앞에 서 계신 예수님을 아십니까?
재미있는 셈이 있습니다. 곱셈을 하면 수를 증가할수록 결과 값이 커져 종국에는 무량대수가 됩니다.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가장 큰 수 무량대수가 됩니다. 그리고 그 무량대수에 무량대수를 곱하면 그 결과 값은 아주 큰 무량대수가 됩니다. 그러나 최고의 무량대수도 0을 곱하면 여지없이 0이 됩니다. 수가 성 사마리아 여인은 다른 것은 다 알고 있지만(요한복음의 철학과 지성을 상징하는 인물), 결정적인 두 가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선물과 자기 앞에 서 있는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결국은 아무것도 모르는 0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목이 말랐습니다.
혹시 여러분도 그런 경험을 느끼신 적이 있으신가요?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목이 마른 느낌, 교회 사정이나 세상 지식에 능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는데도 목이 마른 느낌은 없었나요? 만약 그런 적이 없으시다면 둘 중 하나입니다. 성령님이신 생수의 강물을 마신 분이시거나 반대로 전혀 영적인 감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어느 쪽에 속하셨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혹시 목이 마르신 분이 계십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빨리 여러분 앞에 오신 예수님께 하나님의 선물이신 성령님을 달라고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물은 성령이십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해갈의 생수입니다. 우리들의 목마름을 시원하게 해갈시켜 주시는 생수의 강물이십니다.
(사도행전2:38)"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요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해갈의 생수: 성령)
요한복음은 물의 복음서입니다. 물이 아주 중요합니다. 요단강 물(요1:28), 항아리의 물(요2:7), 애논 물(요3:23), 수가 성 야곱의 우물(요4:6), 베데스다 연못(요5:2), 디베랴 바다(요6:1), 바다(요6:16), 생수의 강(요7:39), 실로암 못(요9:7), 요단강(요10:40), 예수님의 눈물(요11:35), 마리아의 향유(요12:3), 대야의 물(요13:5), 예수님의 물(요19:34), 그리고 디베랴 바다(요21:1)입니다. 물이 언급될 때마다 중요한 말씀이 함께 선포되고 있습니다. 요한의 세례종파에서 예수님의 성령종파로 넘어 오는 물의 복음서입니다. 요한복음의 배경은 플라톤 철학과 영지주의와 동방의 신비주의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요한의 시례종파가 유대교의 개혁파로 등장합니다. 물은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재해석합니다. 물이 성령이다.(요7:37-39) 물은 성령이요 성령은 물입니다. 성령의 생수안에서 목마름이 해갈되면서 철학의 가치도, 영지주의의 지식도, 동방의 신비주의도 모두 다 해갈을 얻습니다.
목마름을 해갈하는 생수의 강이 성령이다! 이것은 에스겔의 예언이 성취된 것입니다. 성전 동편에서 흘러나오는 생수의 강을 예언한 에스겔 47장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에스겔47:1-12) "그가 나를 데리고 성전 문에 이르시니 성전의 앞면이 동쪽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 동쪽으로 흐르다가 성전 오른쪽 제단 남쪽으로 흘러 내리더라 그가 또 나를 데리고 북문으로 나가서 바깥 길로 꺾여 동쪽을 향한 바깥 문에 이르시기로 본즉 물이 그 오른쪽에서 스며 나오더라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쪽으로 나아가며 천 척을 측량한 후에 내게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고 내게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천 척을 측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가득하여 헤엄칠 만한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 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강 가로 돌아가게 하시기로 내가 돌아가니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이 물이 동쪽으로 향하여 흘러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에 이르리니 이 흘러 내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되살아나리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제 우리는 성전 동문에서 흐르는 생수의 강이 에스겔을 통하여 예언되고 예수님을 통하여 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생수의 강은 성령이며, 성령은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는 해갈의 생수이십니다. 우리는 오늘 이 해갈의 생수이신 성령님을 마셔야 합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요7:37-38).
(성령을 체험하는 길)
그럼 어떻게 성령님이신 해갈의 생수를 마실 수 있습니까? 지난주에는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오늘은 그 후속편입니다. 여러분은 믿을 때에 해갈의 생수를 마시고 목마름을 해갈하셨습니까? 다시는 목마르지 않으실 해갈의 생수를 마시셨습니까? 이 해갈의 생수를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다시는 교회 다니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다시는 주님의 일을 섬기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다시는 아픔과 상처 때문에 시험에 패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힘들지 않고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늘 무엇인가를 요구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교회, 내 마음에 맞는 교인, 내 마음에 맞는 가족, 내 마음에 맞는 목사, 내 마음에 맞는 설교, 내 마음에 맞는 프로그램 등 우리의 만족을 위한 요구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다 갖추어진다고 하더라도 성령을 받지 못하면 여전히 목마릅니다. 반대로 그 모든 것을 다 갖추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성령을 체험하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1. 구합니다.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2. 마십니다.
(요7:37-38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3. 예루살렘 곧 은혜의 자리를 지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1)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1)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4.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힘씁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행4: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5. 회개합니다.
(행2: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4)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5)성령의 선물을(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6. 순종합니다.
(행5:32) 우리는 이 5)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7. 안수를 받습니다.
(행8:15-17)그들이 내려가서 그들을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2)세례만 받을 뿐이더라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 (행19:6-7)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2)사람쯤 되니라
8. 말씀을 청종합니다.
(행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3)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9. 금식합니다.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10. 복음을 전합니다.
(행13:50-52)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시내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역에서 쫓아내니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하여 발의 티끌을 떨어 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삼위일체 신앙은 기독교의 정통신앙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의 기둥입니다. 웨슬리 신앙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성령론의 시각에서 삼위일체를 체험하는 것은 감리교회 신앙의 강점입니다.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우리 모두 성령을 사모하고, 성령을 체험해야 합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도록 해갈의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늘 목마른 갈증의 교인에 머무를 것입니다. 유관기관이 많은 우리 교회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성령을 체험해야만 다시는 목마르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충만해지는 것입니다.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해갈의 생수를 마시는 것입니다. 제가 다시 한 번 본문 말씀을 읽겠습니다.
(요7:37-39)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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