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부모공경과 생명장수(출20:12) 2013-0519 주일

우순(愚巡) 2013. 5. 11. 23:54

부모공경과 생명장수

 

<출애굽기20:12>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 한 주간도 평안하셨는지요? 아멘 하신 분들은 이번 주도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솔직히 한 번 대답해보세요? 나는 우리 교회에서 대예배를 드리는 동안 아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 들어보세요? 있는 것 같은데, 제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항상 근엄한 모습으로 예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멘을 잘 안하시지요^^ 사람이 참 우습죠? 제가 우리교회에 적응이 많이 된 것 같아요. 다른 교회에서 예배 할 때 너무 아멘 아멘 하면 좀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나 믿음은 말씀을 들을 때 아멘 아멘 하며 받아들일 때 생깁니다. 아멘을 잘 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을을 위한 기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많이 힘드셨지요? 한 주간 세상에서 사시느라 얼마나 힘드셨습니까? 오늘 하나님의 전에서 예배하시면서 깊은 위로를 받으시고 새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 우리 사회의 화제중 하나는 [을의 고통]이었습니다. 소위 갑을 관계라는 말 속에 담긴 을의 고통, 약자의 고통이 시중의 화제였습니다. 저도 을의 고통에 대해서 깊이 아파했습니다.

 

우유를 파는 한 대기업 사원이 대리점 점주에게 폭언을 한 게 문제가 돼서 사람들 사이에서 떠들썩했습니다. 소위 갑의 횡포로 인한 을의 비애이지요.  우유회사가 유제품을 생산하면 팔아야 하는데 잘 안 팔리잖아요? 그러면 대리점에다가 강제로 팔라고 갖다 주는 가 봐요. 그걸 밀어내기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대리점은 그걸 받아서 팔지를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받은 유제품은 내 버려야 되고 대금은 줘야하니까 대리점주는 적자를 보게 되는 거지요. 그래서 대리점주가 그걸 못 받겠다고 했더니 협박을 한 거예요. 한 번 들어봤더니 가관이 아니예요. 갑의 협박성 말을 들어보니 너무 심한 폭언이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폭언을 하면 안 됩니다. 국어사전에 없는 말들을 들으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못 들으신 분도 있겠지요? 협박성 폭언에 분노가 치밀고, 인격이 파괴되는 공황상태를 느끼게 됩니다. 삶의 의지가 파괴됩니다.

 

저는 목사라 그런지요? 갑자기 우리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 을의 삶을 살고 있는 교인들이 생각났습니다. 조그만 슈퍼를 하시는 권사님,  원청업체에서 일을 따다가 돈을 버시는 집사님들, 갑의 눈치를 보느라 전전긍긍하시는 성도님들이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대 기업의 횡포에 말 한 마디 못하고  술 한 잔 하면서 분노를 삭히고 있는 소상인들, 임대를 얻어서 일을 하다가 안 되서 보증금까지 다 날려버린 임차인들, 작은 가게를 경영하시는 분들, 분식점을 하시는 분들, 작은 식당을 하시는 분들, 도배하시는 분들, 우리 교회 교인들도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계신데, 그 분들이 눈 앞에 아른거려서 아픈 마음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분한테는 뜬금없이 전화를 걸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분에게는 민망하실까봐 저 혼자 속으로 기도하고서, 어제 밤에 설교준비를 마치고 고통당하는 을을 위로하는 기도문을 하나 올렸어요. 우리 교회 홈피에다 하나 올리고 제 페이스북에다 올렸더니, 인천에서 목회하는  친구 목사 절 보고 자기는 오늘 설교제목을 을을 위한 교회, 을을 위한 목회로 정했대요. 그러면서 교회는 이 땅의 을을 위해서  존재해야 된다. 그렇게 자기가 설교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저는 오늘 예배하러 오신 분들께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길 간절히 바라면서 주일을 준비했습니다. 교회는 여전히 희망이고 예배는 축복입니다. 우리는 아주 소박하고 순수하게 예배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얻고 새 힘을 얻어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서로 싸우고 죽이면서 의롭다고 자위했던 치부들이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는 황제를 동원에서 교리 논쟁을 하며 정적을 죽였습니다. 자기가 믿는 교리와 반대되는 사람들을 다 죽여 버렸습니다. 칼빈도 스위스에 가서 정적을 다 죽였습니다. 중세 가톨릭의 마녀사냥은 말할 것도 없지요. 모두 다 신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팔아서 죽인 겁니다. ? 그것이 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웨슬리가 위대했던 것은 단 한명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웨슬리는 교리논쟁이나 자신의 신앙관에 대한 논쟁보다 위대한 것이 사람을 사랑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리교회가 위대한 것은 바로 정적을 죽이지 않고도 자기 회심을 통해서 교회를 개혁하고 부흥시켜 갔기 때문입니다.

 

제 기도문 [을을 위한 기도]를 보고 어떤 사람은 혹시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부탁을 드립니다. 사심 없이 드린 기도니까요.  그냥 순수하게 을의 아픔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을의 고통을 당하는 우리 교인들을 생각하면서 을의 처지에 놓인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하나님께 진짜 드렸던 기도입니다. 그냥 들으시면서,  갑의 힘 앞에서 힘들게 살고 계시는 을의 처지에 있는 분들은 기도문을 통하여 하나님의 깊은 위로를 얻으시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을을 위한 기도]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특별히 약자인 을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갑의 강요와 강매와 강압과 강권으로부터 을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을 살아가는 힘없고 약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하나님,

약한 자들의 버팀목이 되시는 하나님,

삶의 근거가 빈약하여 고통당하는 약자들의 친구이신 하나님,

갑의 횡포에 눈물짓는 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이 땅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는 갑들의 힘 자랑에 숨죽여 살고 있는,

힘없고 연약한 을들을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주일을 기다리는 이 밤,

두려움과 근심으로 고통당하는 모든 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대기업의 자금 통제로 부도를 맞은 하청업자들에게,

빌딩주들의 고 임대료로 보증금마저도 잃는 임차인들에게,

군부독재의 무력통치로 생명을 빼앗기고 죽어가는 민중들에게,

악덕기억들의 밀어내기로 망해가는 대리점주들에게,

시급 단돈 몇 푼에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알바생들에게,

정년 교수들의 오만함에 설자리를 잃어가는 비 정년 교수들에게,

금권과 폭력과 결탁한 악덕 정치가들의 술수에 망가지는 선량들에게,

대의와 명분을 가장한 거짓 의인들의 선동과 모략에 망신당하는 진정한 의인들에게,

그리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시간과 공간에서 차마 알리지도 못하고 눈물 흘리며 가슴을 쓸어안고 사는 모든 힘없고 약한 우리 이웃들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주일을 준비하는 토요일 밤,

갑의 횡포에 눈물을 짓다 예배하러 오는 을들의 아픔을 생각하며,

사랑하는 우리 상동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또한 이 땅의 모든 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하시기를,

마음 깊이 간절하게 사모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지난 주간에 제 마음 속에 아프게 살고 있는 우리 교인들의 모습들이 떠올라 하나님의 위로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렸습니다. 특별히 그들 중에도 을의 처지에 계신 성도님들을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저는 계급 투쟁론자도 아니고 좌파도 아닙니다. 저는 공산주의를 싫어하기 때문에 결코 무조건 갑을 정죄하거나 타도해야 한다고 강변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갑자기 그 폭언을 들으면서, "우리 교인들도 그렇게 세상에서 힘들게 살고 있겠구나. 다들 중년이 되셨을 텐데, 어엿한 가장이 되셨을 텐데, 공부도 많이 했을 텐데,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면서 괴로워하면서 살겠구나," 그런 생각에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아 내일 주일에 그들이 예배하러 오는구나. 을의 아픔을 안고 예배하러 오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여러분들에게 오늘 주일 예배가 위로가 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을의 아픔을 깊이 생각하면서 을의 처지에 있는 교인들을 생각했습니다.“목사님 기도해주세요. 보증금을 다 까먹었습니다. 쫓겨났습니다.” 이런 얘기들을 다시 마음속으로 들으면서 제게 기도 부탁드렸던 사람들의 슬픈 눈들을 떠올렸습니다. 오늘 우리가 왜 모였을까? 뭔가 제가 예배를 인도하는 목회자로서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되어야 될 텐데, 정말 저는 그런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가져 보았습니다. 사실 부끄럽습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고, 자신이 없습니다. 설교가 자신이 없는 건 이미 오래전이고요. 아마 피터뵐러가 웨슬리에게 했던 말이 아니면, 아마 저는 더 이상 설교를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믿음을 얻기 위하여 설교하라는 말을 의지해서 설교했던 웨슬리의 마음으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이 조금이라도 여러분에게 깊은 위로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2. 또 하나의 을인 부모님

 

오늘은 어버이주일이입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말씀을 나누는 주일입니다. 오늘 준비한 말씀은 부모공경과 생명장수입니다. 성경본문은 출애굽기 2012절이고요. 성경본문을 다시 읽겠습니다.

<출애굽기20:12>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말씀을 준비하면서 문득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또 하나의 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을이 되어버린 부모님들을 위로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준비했습니다. 우리들의 부모님들은 우리를 키우시면서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여지시면서 가정의 을, 가족관계의 을이 되었습니다. 자식을 사랑하시면서 한없는 사랑을 쏟아 부으셨는데, 늙어서는 용돈 한 번 받는 것이 미안해서 눈치를 보는, 가정의 을이 되었습니다. 어버이 주일을 맞아 저는 가정의 을이 되신 부모님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아마 우리들의 부모도 어느 사이에 을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식 앞에 당당했던 부모의 자리에서 재산을 자식에게 넘겨주고 돈 몇 푼 받아가며 사는, 그리고 부모가 자식을 기르고 가르칠 때에는 다 주었는데, 자식들은 부모님들에게 용돈을 좀 주면서 몇 천원 몇 만원 돈을 계산을 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 고독하고 외로운 또 하나의 을이 된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가져보았습니다. 오늘 행복하게 사시는 부모님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자신의 처지가 약자인 을의 삶처럼 힘들게 사는 노모와 노부들 그리고 어른들은 이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위로를 얻어 가시길 바랍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여러분 편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나이가 많으셔도 여러분의 찬양을 기뻐 받으십니다. 여러분이 말씀하고 싶은데 여러분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지요? 그래도 하나님은 여러분의 그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고, 세상 끝 날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부모님들의 사랑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지붕을 아시지요? 우리들은 중국 쓰촨성에서 2008년도에 지진이 났을 때, 한 여인의 이야기가 감동을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너지는 건물 잔여더미가 자기의 아이를 헤치지 못하도록 아이의 지붕이 되 주신 어머니의 이야기입니다. 건물이 무너지면서 벽돌과 부서진 건물 잔해들이 그 아기를 덮으려고 하니까 엄마가 지붕이 돼서 그 모든 벽돌 더미들 그리고 건물의 부스러지는 철근 더미들을 막았습니다. 어머니의 지붕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여인은 젖을 먹이고 있던 자신의 어린 아이를 살려냈습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척추 뼈가 부러져서 끝내는 죽게 됩니다. 이 아이를 구해낸 구조대가 들어갔을 때 이 어머니의 휴대폰 액정에는 이런 글이 남겨져 있었습니다.“너무나 사랑스러운 아가야. 네가 만약 산다면, 이것만은 기억해주길... 엄마는 너를 사랑한단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신의 척추 뼈가 부러지더라도 아이를 살려내기 위해서 그 쏟아지는 건물의 잔여들을 다 지탱하는 희생의 사랑이었습니다.

 

종종 어머니의 사랑은 굉장한 힘을 발휘합니다. 혹시 여러분 악어의 입을 연 인도네시아의 로이마라는 여자를 아십니까? 25살 된 토리스나라는 딸을 데리고 강변에 나갔던 이 중년 여인은 악어를 만나서 위기를 만납니다. 딸의 비명소리가 들려서 가보니까 거대한 악어가 딸을 삼키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이 여인은 이 악어에게 달려가서 악어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악어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가운데 턱의 힘을 재면 가장 큰 힘을 가진 동물이 악어인데, 로이마는 순간적으로 딸을 물고 있는 저 악어의 입을 벌려야겠다는 생각하고 다가가서 악어의 윗 턱과 아래턱을 잡고 힘껏 당겼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악어의 입이 벌려져서 딸을 토해냅니다. 딸을 살려낸 이 로이마는 훗날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어떻게 괴력을 발휘해서 딸을 살려낼 수 있었습니까?” 라고 기자가 묻자 아주 간단한 이야기를 합니다. “아무생각이 없었습니다. 단 하나 내 딸을 살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누군가가 이 여인에게 다시 악어에게 다가가라고 하면 무서워서 못 갈 것입니다. 그러나 아마도 악어가 또 다시 자신의 딸을 물면, 이 여자는 또 다시 악어의 입을 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난해에는 박찬석 총장의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총장까지 된 지식인 인보다 더 위대했던 사랑은 무식한 촌부인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꼴찌한 아들이 일등 했다고 속였지만, 일등 했다고 아버지를 속이는 아들을 격려하려고, 아들의 거짓말도 모른 채 아들을 격려했던 아버지가, 산청 시골 아이를 총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오늘 어느 사이에 우리들을 양육하고 길러내느라 우리의 부모들은 늙어가고 힘이 없어져 가고, 이 쓰촨성의 어머니처럼 척추 뼈가 부러지듯이 허리는 구부러져가면서 기력을 잃어갑니다. 하지만, 그분들은 우리들의 지붕이었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부모님의 사랑을 깊이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힘없고 약해지신 가정의 을, 가족관계의 을이 되신 약자에 대한 사랑의 돌봄과 배려가 됩니다.

 

3. 부모를 공경하면 생명이 길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을 성경이 말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생명이 길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잘 아는 것처럼 애굽을 탈출한 후에 가나안 땅에서 살게 될 삶을 준비하면서 들려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효도가 하나님에 관한  네 가지의 계명 다음에 오는 인간에 관한 계명가운데 첫 번 째요, 제일 크고 귀한 것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왜 그랬을까? 그들은 부모로부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지혜를 얻었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이 뻔한 이야기, 어버이주일이 되면 듣는 뻔한 이야기를 또 해야 되는데, 해마다 듣는 이 뻔한 이야기 속에는 뭐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성경을 읽다가 제가 묵상한 가운데 제 마음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인 것 같습니다. 그것은 네 생명이 길다고 하는 것이죠.

 

생명이 길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길게 사는 장수는 말할 것도 없고요. 생명이 길다라고 하는 말 속에 담겨져 있는 아주 중요한 메시지는 다양한 것 같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에게는 단순히 육신적으로 나이가 많도록 죽지 않고 산다는 그런 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지고 있는 행복의 생명도 길고, 그가 가지고 있는 정치가라면 정치의 생명도 길고, 뭐 대변인처럼 갑자기 관직에 올랐다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맡은 직분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지혜가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생명은 육신만이 아니라 영혼의 생명이 있고 가치의 생명이 있고, 내가 맡은 사명의 생명이 있고, 내가 맡은 내 삶의 목적의 생명이 있고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고 나눠줘야 되는 행복의 생명이 있는 것입니다. 또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창조의 에너지 생명도 있을 것입니다.

 

이름을 밝히길 곤란한 어떤 천재소년이 있었죠. 그런데 그는 평범하게 사는 것을 원해서 충청북도에서 조용히 삽니다. 본인이 원해서 조용히 사는 것은 괜찮고요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천재로써 태어났던 자신의 그 우수한 두뇌를 유지할 수 있는 천재로써의 생명도 길어야 된다고 하면, 스스로 자원에서 다르게 사는 것은 말고요,  자신의 천재성의 생명도 길어질 수 있어야 된다면,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다양한 가치의 생명부터 행복의 생명, 자신의 천재성의 생명, 예술가의 영감의 생명 등등 할 것 없이, 프로선수로서의 생명, 등 다양한 생명들이 길게 연장됩니다. 추하게 연장되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오래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역동적인 삶의 에너지가 지속된다는 것입니다.  영향력이 오래 지속된다고 하면 좋은 것인데, 그런 것들이 어디서 올까?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올 수 있다고  출애굽기가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광야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크고 첫 째 되는 계명으로 주셨을까요? 믿음과 지혜 때문입니다. 출애굽기의 배경은 하나님에 대한 번제와 타향살이에 대한 지혜입니다.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번제를 드리러 가는 제사의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잠언과 같은 수많은 지혜가 그들을 통해서 전해졌다는 것입니다. 자식은 지식을 쌓아서 그 지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지만, 부모는 다 듣고 한마디 던지는 말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참 지혜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부모가 만난 하나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부모가 살아오면서 얻은 삶의 지혜를 전수받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그 생명이 깁니다.

 

 

4. 부모 공경의 길 : 감사, 용서, 경청

 

감사

 

어떻게 우리는 부모를 공경할까? 말할 것 없이 부모에 대한 공경의 첫 번째 길은 감사입니다.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신앙고백 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고백을 차용하면,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육신적으로는 부모님의 은혜를 고백하는 감사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육신적인 고백은 나의 나 된 것은 나 때문이 아니요. 부모의 은혜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은혜와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의 감사의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의 삶은 그 위에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매 순간이 희망이 있는 것이고, 매 순간의 삶이 행복한 것입니다.

 

한 장로님이 제게 재미난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모르는 게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하나는 중국과 일본이 무서운것을 세계 모든 나라가 다 아는데 우리나라 사람들만 안 무서워하고, 또 하나는 북한이 핵폭탄을 만든 것을 세계가 다 두려워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만 전혀 두려워 하지 않고, 마지막 하나는 우리가 세계에서 얼마나 잘 사는지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이 다 아는데 우리만 모른다고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잘 사게 되었는지 우리만 모르고 우리는 늘 불평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부모님들이 눈물로 이 나라를 세웠습니다. 공산주의를 몰아내고, 이 땅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를 세웠고요, 그 어려운 산업화와 민주화의 과정을 이끌어 냈습니다. 모순이 순간순간 있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잘 살게 했고 문화를 향유하게 했습니다. 그 중에는 중동 열사의 땅에 들어가서 중노동 막노동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국가적이고 집단적인 것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는 우리 부모가 우리 각자를 지금 이 자리에 서게 하기 까지 그 많은 세월을 아픔 가운데에서도 이겨냈는지 생각하면 감사밖에 없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첫 번 째 일은 감사하는 일입니다.

 

 

용서

 

그리고 용서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가장 소중한 일 하나는 부모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버이주일이 되면 매해 마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부모를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노아는 수치를 보였지만 하나님은 그 아버지의 수치를 가린 아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왜 부모를 용서해야 되는지 아십니까? 성경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그랬으니 우리의 부모도 의인이 아닙니다. 다른 집의 부모보다 상대적으로 의로울 수는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으로는 의로운 자는 아닙니다. 우리 부모도 죄인이고 죄인은 죄를 갖고 있고 허물을 갖고 있고 수치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한 것입니다.

 

만약 우리 부모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나는 부모가 정말 예수의 십자가 보혈이 필요 없는 전혀 구원이 필요 없는 존재이거나 아니면 우리가 부모님의 허물을 보지 못한 채 세월을 지냈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우리 부모는 성경적으로 말하면 의인이 아니라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당연히 허물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구원받을 수 없는 죄인입니다. 이 전제 위에서 부모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해주셔야 됩니다.

 

부모를 용서하지 못해서 부모와의 갈등과,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부모에 대한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부모가 버린 사람들, 부모가 이혼하면서 내팽개쳐진 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원망이 있습니다. 어려서 부모에게 맞은 자식들은 커가면서도 부모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삽니다.   그러나 부모가 회개하고 돌아서야 될 것은 그 분의 몫이고 자식의 입장에서는 그런 연약함과 허물을 가진 부모, 수치를 가지고 치부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망신을 뻗친 부모일지라도, 그 부모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치유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용서하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용서은 가해자의 사과나 처벌이 아니라 피해자의 용서로 치유됩니다. 상처받은 자가 용서하면 치유자가 되지만, 용서를 하지 못하면 상처받았다고 말하는 순간 순간 가해자가 됩니다.

 

경청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경청입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가장 필요한 것은 옷이 아니고 밥이 아니고 말입니다. 배가 고픈 것이 아니고 말이 고픈 것입니다. 말이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시간이 없습니다. 나이든 부모는 어느 사이에 또 하나의 힘없는 약자 을이 되어서 말을 하지 못합니다. 부모님들이 하는 말들은 논리도 없고 잔소리만 늘어가고 앞뒤도 맞지 않습니다. 또 어쩌다 말을 하다가도 자식이 한마디 툭 하면 말을 못하고 쏙 들어가 혼자 이불 속에서 지나간 세월을 후회하며 울고 슬퍼합니다. 부모의 말을 경청해 주는 것이 진정한 공경입니다. 동시에 어설픈 언어를 구사하지만 부모님의 말은 우리들에게 믿음과 지혜를 전수해줍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경청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우리 자신의 유익을 얻는 일입니다.

 

여러분 지난주간에 SNS를 통해 돌았던 230초짜리 LG U플러스 노인의 엉뚱하고 생뚱맞은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배꼽 잡습니다. 한 할머니가 LG U플러스 상담센터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떻게 걸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거신 할머니가 엉뚱한 이야기를 계속하시는 바람에 상담원이 난처해진 상황이 많은 사람을 웃게 만들었습니다. 한 편의 코메디였습니다. 전화를 거신 할머니가 전화를 거시고는 거기 누구냐고 묻습니다. “누구여?”상담원이 대답합니다. “LG U플러스 상담센터입니다.” 이런 식으로 엇갈리는 대화가 이어집니다. “LG가 불났다고?” “아니오. 여기 LG U플러스 상담센터입니다.” “참 이상하네 누구세요?” “LG U플러스 상담센터라고요” “ 엘지가 불났어?” “아니요 엘쥐예요” “ 엘쥐가 불났다고? 거기 몇 번이야?” 본인이 전화를 걸어놓고도 230초동안 계속 엉뚱한 얘기를 합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 기억력도 쇠퇴하고, 논리도 빈약해지고, 한소리 또 하고, 말귀도 못 알아들으시면서, 또 하나의 힘없고 약한 을의 처지로 전락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주는 경청, 최고의 공경입니다.

 

어버이 주일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생명을 길게 해준다고 하셨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행복이 길어지고,  여러분의 천재성도 길어지고, 여러분의 가치도 길어지고, 여러분이 하나님께 받은 사명의 시간도 길어지고, 여러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에게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의 기간도 길어지시고, 여러분의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 간에 누릴 수 있는 축복도 길어지시는, 진정한 생명 장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