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끝까지 견디는 자(2010-0425 주일 )

우순(愚巡) 2010. 5. 8. 23:01

<끝까지 견디는 자>

 

 

(마태복음 24:1∼14)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할렐루야!

 

지난 주간에 저는 마태복음 24장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됐습니다.

 

몇 분이 제게 세상이 너무 어지럽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서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신앙적으로 깊이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교인들의 마음이 그러 할진데 어떤 말씀을 전하면 좋을까 여쭈어 보았습니다. 천안함의 침몰이라든가 또는 아이슬란드의 화산폭발이라든가 칠레 아이티로 이어지는 지진의 소식들... 그 외에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경재앙과 난리에 소문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많은 근심을 가져오게 합니다.

 

저는 두란노 서원에서 나온 심리학자들의 상담시리즈 책을 읽다가 집단 공황증세라고 하는 것을 읽게 되었습니다. 한 사회가 어떤 사건을 통해서 우울함이 널리 퍼지게 되면 모든 사람들이 함께 겪는 집단 공황상태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다시 한번 죽음에 대해서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종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면서 집단 공황증세를 보일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다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는 이 말씀을 오늘 설교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 마태복음 24장은 25장과 함께 소 묵시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축소판 같은 느낌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정오예배에 요한계시록 해설을 하게 됐습니다. 구약부터 신약까지 매주 한권씩 성경을 해설하다 보니까 지난주가 성경 마지막 부분을 해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같이 예배하고 있는 신동욱 목사님의 요한계시록 주석을 읽어보면서 휘카오라고 하는 희랍어로 이기는 자를 중심으로 투쟁문서 또 전쟁 교범처럼 되어져있는 요한계시록이 역사 속에서 이기는 자 이기는 교회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또 예배시간에 이 문서가 읽혀져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기 위해서였다고 하는 글들을 읽었습니다.

 

오늘 마태복음 24장도 종말론적인 미래와 역사적인 현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종말론적 미래는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세상 끝 날에 이루어질 이야기들이 열거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사적 현재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얼마 안돼서 주후 70년경을 전후로 하는 예루살렘에 파괴가 이곳에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어쩌면 역사가들이 말하는 것처럼 시간이라고 하는 것은 순환적인 구조 속에서 반복되어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과 낮이 매일 반복이 되면서 날이 달이 되고 달이 해가 돼서 결국 시간이라고 하는 것이 흐르고 있듯이 우리에게는 역사적인 현재가 순환적인 반복을 통해서 동일한 이야기들이 다시 언급이 되고 있다고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의 내용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세상 끝에 징조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 예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선 나는 그리스도라 하는 많은 자칭 선지자들이 등장할 것이다.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것이다. 또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겠고, 기근과 지진의 소식들이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또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 넘겨주었으며(?), 기독교신자들을 환란가운데 넘겨줄 것이며,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우리들은 가끔 교회가 세상에 칭찬을 받아야 된다고 하는 것을 생각합니다. 옳은 이야기죠. 근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보면 예수를 잘 믿으면 세상에서 칭찬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한 면만 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빛이 어둠과 함께 있을 수 없는 것처럼 기독교인들이 신앙생활을 잘 하면 세상이 다 박수를 보내는 것만이 아니라 영적인 반대자들은 오히려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니까 사람들은 실족하게 되고, 서로 잡아주고 서로 미워한다... 이런 외부의 일 때문에 결국 사람들은 실족하게 됩니다.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고, 서로 잡아주게 되고, 서로 밀고해서 죽음에 이르게 하고, 그리고 서로를 미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오늘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용 가운데 지진의 소식은 지금도 우리가 듣고 있습니다. 기근의 소식은 수단과 이디오피아와 같은 나라에서는 우리가 이제는 안 먹으려고 하는 쌀이 너무 귀해서 양식이 모자라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의 전쟁 소식은 지난 (?)년 동안 이 지구상에 끊어진 적이 없습니다. 자칭 선지자와 자칭 그리스도는 한국에만도 엄청 많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32단계의 신의 위상이 있는데 구약의 창조자는 제일 밑바탕에 해당되는 하위신이기 때문에 실패한 신이고 모자란 신이라고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문선명과 박태선은 예수가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계룡산 밑에 있는 신도안에는 자칭 선지자와 그리스도를 자임하는 수많은 거짓선지자들이 이루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한국만 이럴진 데 세계적으로 보면 자칭 그리스도는 도처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건은 마치 지금을 말한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역사비평학자들은 이런 이야기가 주후 70년경을 전후해서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던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결국 그 말 속에는 주후 70년경에 2000년 전 사건과 2000년이 지난 지금의 사건이 혼재되어 있다는 이야깁니다. 그리고 그것은 순환적 반복을 통해서 결국 늘 있어오는 이야기로 우리에게 들려집니다. 이럴 때에 어떻게 해야 되겠냐는 겁니다. 제가 읽은 두란노서원의 상담학 시리즈 속에는 심리학자들의 견해를 빌려서 이런 경우에 집단 공황증세가 나타나면 자포자기해서 자살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허무주의에 빠져서 향락에 빠지는 사람도 생겨나고 그리고 삶의 의미를 잃어버려서 집단적인 우울증 증세를 앓기도 하고 사람들이 신경질적으로 변모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세속사람들의 아주 비속어처럼 악만 남았다 그것처럼 악만 남아서 서로를 질시하고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것 같습니다.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지구의 종말이 올지라도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는 마음은 쉽지 않은 마음일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종말이 온다고 하면 어떤 모양을 보여줄까? 작년에 유행을 했던 2012년이라고 하는 영화는 종말이 온다고 하니까 중국에 숨겨놓은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타기 위해서 사람들이 그곳으로 몰려드는 인간의 진실된 모습들을 연출해 냈습니다. 다른 사람이야 죽든 말든 살려고 하는 사람, 그래서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자포자기하는 사람, 어차피 죽을 건데 남은 시간 해피하게 살자고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 사람들은 이 끝이라고 하는 말 속에서 자신들의 삶을 여러 가지로 결정을 하게 되는데 한마디로 파괴적인 결정들을 많이 내린다는 것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렇게 되는 사건이 일어날 때에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어떤 성도들이 저에게 목사님 이럴 때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라고 질문을 하는 것을 듣고는 기도하다가 제가 드릴 말씀은 없고 성경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들려주기로 했습니다.

 

1. 우선 끝까지 견뎌야 됩니다.

 

우리의 삶은 참 아름답고 행복한 삶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태어난 것 자체가 고해의 바다에 떨어져서 108번뇌를 짊어지고 가는 삶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뎌야 됩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의 위대한 점이 예수님의 이 종말론적 메시지가 종말론적 미래를 말하면서도 역사적 현재 속에서 언제나 이기는 자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아주 강한 메시지의 힘이 여기 있다고 확신합니다.

그것은 자포자기하지 않고 허무감에 쩔어서 쾌락을 추구하지 않고 자기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 건물에 벽돌들이 모래로 되어있지만 시멘트를 발라서 붙이고 기둥을 세울 때 그 안에 철근을 넣어서 이 건물이 유지가 될 수 있도록 힘을 받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은 모래와 같고 진흙과 같아서 부서지기 쉽고 깨지기 쉽고 그리고 오늘 다 내려놓고 싶을 만큼 처절하게 고통스럽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 인생의 철근이 되어서 우리의 모래와 같은 삶을 콘크리트가 되게 우리의 삶을 견딜 수 있게 한다고 하는 것 이것이 오늘 신앙이 주는 힘인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여러분의 인생에 철근으로 삼아서 끝까지 견디시고 결코 포기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는 미혹하지 말아야 됩니다.

 

미혹 당하지 말아야 됩니다. 자칭 선지자와 자칭 그리스도들은 이때를 이용해서 아주 기가 막힌 해석들을 내놓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아주 드라마틱하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종말에 대해서 아주 메시지를 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을 전율할 정도로 신비감에 젖어서 종말을 대비하게 하는 설교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만희의 신천지가 시작될 때에 의왕에서 그것은 작은 장막성전 이었습니다.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하는 교회의 메시지를 들은 성도들은 뭔가 마음에 콱 다가오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콜라를 마실 때처럼 위스키를 마실 때처럼 사람들이 느끼는 자극을 원하는 세대에게 생수를 공급하는 것은 밋밋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장막성전의 신천지의 교리는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문선명과 박태선은 예수가 실패한 자라고 규정을 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의 창조의 신은 모순덩어리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지난주에 또 하나 읽은 책이 미래에서 온 종교 기독교를 설명하는 정감길이라고 하는 사람의 책이었습니다. 그도 역시 신은 불완전하고 우리가 또다시 새로운 신관을 만들어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그분과 직접 통화도 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실패를 말합니다. 모순이 있기 때문에 창조주의 실패를 이야기하기도 합니다.그래서 내가 필요하다고 새로운 상위단계의 신을 이야기하고 예수 대신에 나를 믿어야 된다고 가르치고 기존 교회의 가르침은 밋밋하고 보잘 것 없으니 내게 와서 무료 성경신학원에 들어와서 말씀을 잘 쪼개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십만 명의 신자들이 기존 교회로부터 이탈 되서 신천지로 넘어갔습니다. 인천의 유명한 모 장로교회는 무려 2000여명이나 넘어갔다고 그래서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혹당하지 말라고 하는 이 말은 지나간 2000년 동안 여전히 유용한 메세집니다.

 

여러분 기근의 소식이 들리고, 지진의 소식이 들리고, 전쟁의 소식이 들리고 그래서 세상이 흉흉하게 될 때에 그 틈새를 비집고 이단과 사이비들이 일어나서 자기가 구세주라고 그러고 내가 와서 말씀을 들어야만 된다고 할 때에 미혹당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 상동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말을 하지만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상동교회는 건강한 교횝니다. 상동교회를 다니면 구원 받는 데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뭔가 아주 강력한 이벤트를 가진 어떤 교회에 비해서는 드라마틱한 면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000년의 역사는 이벤트와 프로그램과 드라마틱한 메시지를 통해 사람들을 현혹함으로서 일시적으로 사람들을 대중을 규합을 했지만은 영원한 진리를 지키는 데는 실패하기도 했습니다. 이단과 사이비에 경도가(?) 되기도 했습니다. 숫자, 숫자로 따지면 이만희의 신천지가 가장 위대할 수 있습니다. 조직, 통일교의 문선명을 능가하는 종교지도자가 있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들이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자칭 그리스도와 자칭 선지자가 나타나서 우리를 미혹할 때에 절대로 미혹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건강한 교회에서 콜라 맛은 없을지라도 위스키 맛은 없을지라도 여러분이 어떤 색소나 어떤 향을 첨가해서 우리에게 톡 쏘는 맛을 땡겨 가지고 맛깔스럽진 않더라도 매일 듣는 이야기가 그 이야기 같을지라도 생수를 가지고 밥을 짓는 음식만이 우리를 영원히 건강케 하는 것입니다. 미혹당하지 말고 흔들리지 마시고 끝까지 견디셔서 구원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세 번째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기 성경이 말합니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다. 자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언제 있을까? 역사비평학자들은 주후 70년을 그 기점으로 산정합니다. 아직 끝이 아니다. 그럼 언제나 끝일까? 모릅니다. 그 때와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까 서두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이 종말론적 미래와 역사적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이 말씀 속에서 지금을 말할 때에 2000년 동안 반복되어진 예수의 메세지는 아직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종말이면서 종말론적 미래가 눈앞에 와있습니다. 얼마큼 가까이 왔습니까? 예수님은 시작할 때부터 선포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종말이 가까이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아직은 아니란 겁니다. 왜 그랬을까? 이미 가까이 온 천국임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아니라고 하는 이 시간의 긴장 속에 예수의 메시지는 결단의 요청(?)입니다. 세상의 끝이라고 하는 시간의 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미 내 눈앞에까지 다가온 이 천국에 종말론적 사건이 아직은 아닌 역사적 현재의 사건 속에서 긴장을 가지면서 내가 해야 될 것은 뭐냐? 끝까지 견디는 것이고 미혹당하지 아니하는 것이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고 그리고 회개하면서 신앙생활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역사적 현재와 종말론적인 긴장 속에서 이미 와있지만 아직은 아닌 이 시간의 이 긴장 속에서 내가 해야 될 일이 뭡니까?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믿음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혹당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직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고 그러면 회개하라 그 말씀입니다. 여전히 종말론적 시간이 언제냐고 하는 이 시간의 기상과 시간의 끝이라고 하는 것을 산정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시간의 끝이 언제인지 그것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시간의 끝이 언제인지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산정할 뿐입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분명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시간 시간마다 회개하면서 내 삶을 돌이켜서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역사적 현재 속에서 하나님이 나의 삶을 지금까지 남겨두신 뜻을 성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에 많은 사람들이 실족하게 될 것이고... 많은 사람이 실족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잘 믿었더니 민족이 우리를 미워합니다. 여러분, 기독교 국가를 미워하는 민족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여러분, 지금도 예수를 믿으면 죽이는 민족이 얼마나 많은지 아십니까? 저희가 북한선교를 하면서 전해들은 이야기로는 함경도에서는 성경을 소유했다가 6명이 총살을 당했단 이야기를 CCC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제가 평양에 두 번 입국했을 때에 들어가면서 빼앗긴 품목들이 성경, 성경에 관한 책들이었습니다. 첫 번에 방문했을 때에 가서 평양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그 옆에 있는 신학대학에서 저희가 세미나를 했습니다. 두 번째 갔을 때에 봉수교회 예배를 드리고 이전에 갔던 신학대학이 그리워서 들어가려고 하니까 같은 건물 안에 같은 마당을 쓰고 있는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딱 제제를 합니다. 오늘은 못 들어갑니다. 첫 번째 갔을 때에는 서부연회를 통해서 갔을 때에 양쪽에 다 우리가 일정이 예약이 돼있어서 그래서 통과를 시켰는지는 모르지만, 두 번째는 굿 네이버스를 통해서 이일하 회장과 함께 그 어린아이들에게 분유를 사주고 병원에 아스피린을 사가지고 의사들과 함께 갔을 때에 예배는 드렸는데 예배당 옆에 있는 신학교에는 접근을 못하게 합니다. 여전히 지나간 2000년 동안 순환적인 반복을 통해서 예수를 잘 믿는다고 하는 것은 꼭 칭찬을 받고 박수만 받는 환호를 받는 일이 아니라 미움을 받는 일이고 때로는 죽임을 당하는 일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럴 때 우리들은 실족당할 수 있습니다. 이슬람의 선교정책 가운데 21세기에 최고의 선교대상국으로 지정된 것이 한국입니다. 이미 한국에는 이슬람의 성원들이 막 세워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들은 2000년 동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어떤 행태를 보여 왔는가 하니 실족했습니다. 교회를 떠났습니다. 2000년 동안 반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종말론적 미래와 역사적 현재 속에서 우리가 해야 될 일이 뭐냐면 종말론적 시간에 대한 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실족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견딜 수 있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실족할 때 이유를 많이 댑니다. 사람들은 아주 거창한 이유부터 시작해서 아주 작은 이유까지 실족하는 이유를 댑니다. 그러나 결국 실족하게 되는 배후에는 우리가 주님을 섬기지 못하고 떠나가게 하려고 하는 악한 영들의 계교가 있음을 알아야 됩니다.

 

끝까지 견디셔야 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끝까지 견디기 위해서 아니 이 종말론적 미래와 역사적 현재 속에서 우리의 삶이 어떻게 살아야 되냐고 할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끝까지 견뎌야 된다, 미혹당하지 말아야 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가 실족하지 말아라, 그리고 너희가 천국이 가까이 올수록 회개하면서 너희 자신을 돌이키기만 하면 된다,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지금 네 삶에 자신의 삶의 방식이 중요한 것이다.

 

4. 네 번째는 사랑해야 합니다.

 

그렇게 말씀하실 때에 주님께선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 하신 건 뭐냐... 사랑입니다. 많은 사람의 사랑의 식어지리라. 여러분, 왜 사랑이 필요한지 아십니까? 연세 드신 부모님들, 자식이 성장하면서 어느 날 자식들한테 서운한 감정이 드시는 적을 혹시 기억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30대 40대 막 들 때 까지만 해도 애가 아직 어리니까 그런 마음이 없을지 모르지만 이제 50이 넘어가고 아이가 장성을 해서 사회적으로 자리도 잡아가고 지도 결혼도 하고 뭔가 알 때가 됐는데 말 한마디 툭 던지면 서운할 때가 있다고 합니다. 혹시 그런거 느껴보셨습니까? 그래서 나이가 드시면 노여움을 탄다고 그러죠? 작은 것에도 잘 삐집니다. 그런데 그것은 연세 많으신 분이 결코 심리적으로 모자라거나 지식적으로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젊은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만 받으면서 살다가 보니까 잊고 있는 겁니다. 부모가 나에게 사랑을 주는 존재로만 생각을 했지, 내가 사랑해야 될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잊고 있는 겁니다. 언제 이 아이들이 철이 납니까? 자기 자식을 낳아보면 그때 철이 납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저 사람은 내가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장로님인데 어떻게 집사인 내가 장로를 사랑해... 장로님은 자기 혼자 예수 잘 믿고 우리 집사들 잘 다독 거려야지, 나는 이 교회 직분도 없는데 뭐...목사는 지가 알아서 잘 하는 거지, 우리 교회를 사랑해야지... 또 교인들은 지가 먼저 나왔으면서 지네 집은 다 예수 믿잖아, 우리 집은 나 혼자 예수 믿는데 네가 날 사랑해 줘야지... 사람들은 다 그렇게 자기는 사랑받아야 될 대상이라고 하는 것을 명확히 인지하면서 상대방에 대해서는 사랑 받을 사람과 사랑 안 받아도 될 사람을 쉽게 나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질문한 내용이 세 가지가 있는데 뭐라고 질문했습니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말이 됩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의 사랑이 필요한 존재입니까? 물론 해석을 또 하면서 뭐 이러저러 얘기할 수 있습니다 만은 그냥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십시오. 사랑은 사랑 받아야 될 존재와 사랑해야 될 존재가 구분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랑 안 받아도 되는 사람들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사랑은 나이가 많건 적건, 남자이건 여자이건, 교회에서 목사이건 장로이건 권사이건 집사이건 새신자이건 모두가 다 사랑을 받아야 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단 하나의 이윱니다. 끝까지 견디고 미혹당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회개하면서 이 마지막 때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모두가 다 영적으로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후배 목사가 아주 우스꽝스러운 얘기를 했습니다. 아버지를 이어서 교회를 맡았습니다.

젊은 목사의 마음속에 내가 한번 교회를 잘 해봐야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강대상에 이렇게 놓여져 있는데 위치가 교인들이 바라보는데 지금 저도 설교를 하면 이 성가대석은 사각지대가 됩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제가 여기만 보면 안 되겠구나... 찬양대도 커버를 해야지 이걸 조금 옆으로 옮긴 겁니다. 그리고 아무 일이 없었습니다. 근데 선교를 하러 외국을 선교지 방문을 하러 나갔다 왔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니 왜 이 강대상을 누가 옮겼냐고 물어보니 아무도 대답을 못해... 그래서 캐물어 봤더니 원로목사님이 옮기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아버지 그 강대상이 옆에 가야 찬양대가 보기 좋은데 왜 그러셨습니까 하니까.. 아무 말씀 안하시더니... 서운하다. 옮기려면 나한테 의논 좀 하지... 내가 40년 동안 거기서 설교를 했는데 아무 문제없었다...

 

아들은 몰랐어요. 강대상을 옆으로 조금 옮기는 그 속에서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가 원로 목산데 친아버지도 서운해 할 줄은 상상을 못했어요... 사람의 마음속에는 별것 아닌 것 같고도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 때문에 힘들어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끝까지 견뎌서 믿음을 지키고 난리와 난리 소문이 나고 기근의 소식이 들리고 지진의 소식이 들리고 집단적으로 공황증세가 올 정도로 우리의 삶을 매일매일 우울하게 하는 이때에 끝까지 신앙생활을 승리 하려면 믿는 자가 서로 사랑해야 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깊은 산속에 옹달샘처럼 약수터처럼 교회가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고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만 교회는 가장 건강한 교회입니다. 교인을 끌어오기 위해서 화려한 이벤트나 프로그램이 없어도... 우리 교회만 좋고 니네 교회는 나쁘니까 우리 교회만 오라고 그렇게 교인들을 끌어당기지 않아도... 오늘 교회가 사랑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러면 이 어지러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매 주일마다 얻어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힘을 내십시오. 그리고 끝까지 견디시길 바라고 미혹당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시고 상동교회와 더불어서 여러분의 신앙이 아주 굳건한 반석 위에서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