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묵상원

<시84:5> 주님께 힘을 얻고, 마음이 이미 시온의 순례길에 오른 사람들은 복이 있습니다.

강론(講論)/주일 예배와 수요 예배 강론

간절함(막7:24~30) 2015-0517 주일

우순(愚巡) 2015. 5. 27. 21:05

간절함

 

 

<마가복음 7:24~30> 24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 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거룩한 주일 아침입니다.

오늘도 예배할 수 있도록 부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지혜로운 현자가 대답했습니다. 행복한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사합니다. 분명한 것은 감사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습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깊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 보면 언제나 십자가 앞에서 깨닫습니다. 지금 하나님이 내게 주신 은혜가 감사하다다는 것을.......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족합니다.

 

 

너는 간절하냐?

 

오늘 아침 제가 준비한 말씀은 <간절함>입니다. 저는 한 달 가까이 <간절함>을 깊이 묵상하고 있습니다. 한 부부를 위해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제 마음에 주신 <회개의 마음> 때문입니다. 교회의 예배에 잘 나오시라고 한 부부에게 권면을 하려고 기도하다가 하나님이 제 마음에 회개의 마음을 주셨습니다. 저는 제가 사랑하는 그 젊은 부부에게 제 진심을 이야기 하고, 제 기다림을 이야기했습니다. 얼마나 제가 그들 부부를 사랑하는 지 제 사랑의 진정성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약간은 그렇게도 제가 사랑하는 데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점에 대하여 하나님께 답답한 마음을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마음은 뜻 밖에도 <회개의 마음>이었습니다. “너는 그들 부부의 마음처럼 간절하냐? 너는 그렇지 못하다저는 하나님께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부족합니다. 하나님! 제가 모자랍니다. 하나님! 제 사랑이 진심이고 제 기도가 진정성을 가졌지만 그 부부의 마음처럼 간절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 부부를 나오라고 해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제가 부족했음을 고백하고 앞으로 더 간절히 기도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나님은 제게 좀 더 간절함을 가지고 성도를 섬기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 자녀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가정의 달을 지나고 있습니다. 어린이 주일을 지나고 어버이 주일을 지났습니다. 5월 셋째 주일을 맞이하여 저는 자녀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님들에게 <간절함>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자녀의 구원을 위하여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정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자녀들이 구원을 받고 치유를 받으시기를 원하시는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문제는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이 기적을 만듭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는 간절함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귀신 들렸습니다.(7:25) 수로보니게는 수리아에 있는 페니키아라는 뜻으로 리비아에 있는 페니키아와 구별해서 부르는 말입니다. 수리아에 있는 페니키아는 이스라엘과 수리아(지금의 시리아) 사이의 접경지대로 유대인과 이방인들의 피가 섞이는 다문화 지역입니다. 순혈주의를 고집하던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혼인을 해서 피가 섞이는 이 지역 사람들을 경멸하면서 <>라고 불렀습니다. 쉽게 말하면 배타적인 지역감정입니다. 특정 지역을 홀대하고 경멸하는 나쁜 지역감정입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 단어는 바로 이 <>입니다. 개 취급을 받는 여인은 자기 딸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이 개 취급을 받았지만 개의치 않고 간절함으로 자녀의 치유를 간구합니다. 이 간절함이 딸을 살렸습니다.

 

성경을 정독해서 읽어 봅니다. 귀신 들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게 자기 딸을 고쳐달라고 청원을 합니다.

 

<7:26>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님은 수로보니게 사람인 줄 아시고 개 취급을 하십니다.

 

<7:27>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수로보니게 여인과 예수님 사이에는 <>라는 경멸적인 표현을 두고 긴장감이 돕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정말 자녀의 질병을 고치고 싶은 지 <간절함>을 테스트 하셨습니다. 저는 35년간 목회를 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대목에서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순간적인 기분을 조절하지 못해서, 대사를 그르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신앙도 팔아먹습니다. 사역도 팽개치고, 직분도 팽개쳐버리는 사람들을 수 없이 보았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자녀의 문제로 힘들어 할 때 담임목사가 여러분의 출신 지역을 들먹이면서 무시하는 말을 하면 얼마나 참고 끝까지 기도하실 수 있으십니까? 아마 대부분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대답합니다. 옳습니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습니다.

 

<7:28>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이 대답은 실로 놀라운 대답입니다. 헬라인입니다. 당시에 헬라인들은 이미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여인들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이고 헬레니즘의 문명을 알고 있는 지성적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순혈주의의 입장에서 보면 혼혈주의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국제적인 감각을 가진 열린 여성입니다. 어쩌면 이 여성은 지성적인 귀부인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은 자신을 경멸하는 <>라는 용어를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네 옳습니다이 말은 예 저는 개입니다” “ 예 제 딸도 개입니다그런 뜻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왜 이랬습니까?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귀신 들린 딸을 치유하려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7:29~30>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우리들에게 이 여인 같은 <간절함>이 있을까요? 자기 딸을 치유하려고 개 취급을 받는 멸시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간절함>이 있을까요? 우리들은 혹시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만 있지 정말 우리 예수님이 우리 자녀를 치유해주시기를 바라는 간절함은 없는 것은 아닐까요? 심지어 내가 조금만 마음이 상하면, 내가 조금만 기분이 상하면, 그대로 믿음도 직분도 다 때려치는 것은 아닐까요? 그 순간 우리들의 자녀는 여전히 귀신 들린 채로 아파합니다. 치유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7장의 수로보니게 여인 이야기 다음에 나오는 청각장애인 치유기사도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위하여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고 에바다 하시면서 치유해주셨습니다.(7:31~35) 예수님은 탄식하셨습니다. 귀가 들리지 않고 말을 하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을 바라보시면서 가슴이 아프셨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 서두에 하나님이 주신 <회개의 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책망하시면서 질책하신 마음은 바로 이 예수님의 간절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이 간절함을 제대로 갖지 못한 것을 회개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를 위하여 이런 간절함을 가지고 계십니까?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자신의 자녀들을 치유하기 위하여 자신의 체면이 손상되고 자신의 감정이 상처를 받을 지라도 우리 예수님에게 매달리는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예수님의 탄식 같은 간절함이 있으십니까? 우리는 너무 쉽게 우리 자신의 체면이나, 우리 자신의 이해관계나, 우리 자신의 감정처리를 위하여 우리 자녀들을 여전히 귀신 들린 채로 마귀의 종노릇하도록 방치하고 계신 것은 아니십니까? 수로보니게 여인 같은 간절함이 필요합니다.

 

 

3. 간절함이 기적을 만듭니다.

 

성경에는 간절함으로 기적을 만든 거룩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1) 한나도 간절함으로 사무엘을 얻었고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장에 나오는 한나의 이야기는 또 하나의 <간절함>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한나는 엘가나의 부인인데 자식이 없었습니다.(삼상1:2) 그런데 한나의 남편인 엘가나의 또 다른 부인인 브닌나에게는 자식이 있어서 자식이 없는 한나를 격분시키고 괴롭혔습니다.(삼상1:6) 이 일로 한나는 하나님께 기도를 시작합니다.(삼상1:10~11) 한나의 기도는 통곡의 기도였습니다.(삼상1:10) 한나의 기도는 서원의 기도였습니다.(삼상1:11) 한나의 통곡과 서원은 간절함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한나의 간절함이 통곡의 기도를 드리게 하였고, 그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합니다. 얼마나 간절했겠습니까?

 

그런데 진짜 한나의 간절함이 드러나는 것은 엘리와의 관계입니다. 한나가 기도할 때 성전을 지키던 제사장은 엘리입니다. 엘리는 저주를 받은 제사장입니다.

<삼상2: 30~36>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지라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내리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원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33 내 제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네 사람이 네 눈을 쇠잔하게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서 출산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36 그리고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이르되 청하노니 내게 제사장의 직분 하나를 맡겨 내게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엘리 제사장이 저주를 받은 직접적인 원인은 자식 교육을 잘 못한 것입니다. 엘리는 자식 교육을 잘 못 시켰습니다.(삼상2:12~25)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삼상2:12) 엘리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제사를 멸시하였기 때문에 제물을 가로채서 도적질했습니다.(삼상2:16) 심지어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을 하기도 했습니다.(삼상2:22) 그 시대에는 하나님이 말씀해주시지 않아서 환상도 잘 보지 못하였습니다.(삼상3:1)

 

게다가 사무엘상 1장에 보면 엘리는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던 한나에게 술 취하였다고 막말을 합니다.

 

<삼상1:12~16> 12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13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14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1

 

여러분 상상해보십시오. 아들이 없어서 무시당하는 여인이 통곡하며 기도하고 있는데 제사장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하였느냐고 묻습니다. 요즘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아들을 위하여 기도하러 성전에 오신 여자 교인에게 목사님이 오셔서 자매님! 술 취하셨습니까?”,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경우에 무슨 생각이 드시겠습니까? 이러지 않을까요? 참 한심하네! 참 내 어이가 없다! 개념이 없는 목사네! 아니 이 양반아 은혜도 몰라, 지금 내가 술 취한 것으로 보여? 기도하는 거잖아? 내가 얼마나 힘들고 마음이 아픈데 그럴 수가 있어? 아마도 요즘 교인들 같으면 대부분이 다 목사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떠나가지 않을까요? 아들을 위한 기도도 포기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한나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한나는 차분하게 자기의 입장을 엘리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취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너무도 괴롭고 답답하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삼상1:15~16> 15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16 당신의 여종을 악한 여자로 여기지 마옵소서 내가 지금까지 말한 것은 나의 원통함과 격분됨이 많기 때문이니이다. 하는지라

 

엘리는 아차 싶었을 것입니다. 엘리는 한나의 이야기를 듣고는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1:17~18> 17 엘리가 대답하여 이르되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네가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18 이르되 당신의 여종이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근심 빛이 없더라

 

그리고 이어지는 기사는 사무엘의 출생(삼상1:18~26)과 사무엘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심상3)과 사무엘이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을 삼는 것(삼상10)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사울의 후계자를 삼는 것입니다.(삼상 16:13)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사 시대를 끝내고 왕정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그 사무엘, 바로 그 사무엘, 하나님이 부르시사 하나님의 백성들의 역사를 새로 쓰게 한 바로 그 사무엘이 태어나도록 축복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도록 인도한 제사장은 엘리였습니다. 부족함이 많고 허물이 많은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런 엘리를 통하여서도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고 축복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엘리 제사장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의 택한 제사장임을 인정하고 그 엘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리라고 믿고 기도한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무엇입니까? <한나의 간절함>입니다. 사람들이 무어라고 하더라도, 허물이 있고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역량이 부족하더라도, 기도하는 모습을 술 취했다고 오해하며 허튼 소리를 하더라도, 아들을 얻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기에 정말 말 그대로 간절히 매달려 기도한 한나의 간절한 기도가 기적을 만든 것입니다. 간절함이 기적을 체험하게 합니다. 한나의 간절함이 사무엘을 얻었고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꾸었습니다. 새로운 역사를 열었습니다.

4. 어머니의 간절함이 아들을 살립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자 가운데 대표적인 선지자는 엘리야와 엘리사입니다. 두 사람에게는 같은 유형의 기적이 있습니다. 아들을 살리는 기적입니다.

 

엘리야는 사르밧 여인의 아들을 살립니다. 엘리야는 먼저 기근으로 인하여 죽을 사르밧 여인과 아들에게 축복함으로 밀가루와 기름을 만들어 살게 합니다. (삼상17:8~24) 그리고 그 아들이 죽게 되자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살려 냅니다.

 

<왕상17:8~24> 17 이 일 후에 그 집 주인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18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와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19 엘리야가 그에게 그의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받아 안고 자기가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 20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또 내가 우거하는 집 과부에게 재앙을 내리사 그 아들이 죽게 하셨나이까 하고 21 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 아이의 혼으로 그의 몸에 돌아오게 하옵소서 하니 22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2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의 어머니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아났느니라 24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아들을 잉태하게 하고 그 아들을 살게 합니다. 열왕기 하 4장은 엘리사와 수넴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엘리야에게는 사르밧 여인이 있고, 엘리사에게는 수넴 여인이 있습니다. 엘리사는 수넴 여인을 축복하여 아들을 잉태하게 하고(왕하4:16~17),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자 간절함으로 기도하여 살려 냅니다.

 

<왕하4:32~38> 32 엘리사가 집에 들어가 보니 아이가 죽었는데 자기의 침상에 눕혔는지라 33 들어가서는 문을 닫으니 두 사람 뿐이라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34 아이 위에 올라 엎드려 자기 입을 그의 입에, 자기 눈을 그의 눈에, 자기 손을 그의 손에 대고 그의 몸에 엎드리니 아이의 살이 차차 따뜻하더라 35 엘리사가 내려서 집 안에서 한 번 이리 저리 다니고 다시 아이 위에 올라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 하고 눈을 뜨는지라 36 엘리사가 게하시를 불러 저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부르매 여인이 들어가니 엘리사가 이르되 네 아들을 데리고 가라 하니라 37 여인이 들어가서 엘리사의 발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고 아들을 안고 나가니라

 

엘리사는 아이의 입에 입을 맞추고, 눈에 눈을 맞추고, 손에 손을 대고, 아이의 몸에 엎드립니다. 엘리사의 이런 치유 안찰에는 수넴 여인의 아들을 살리려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어머니의 간절함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왕하4:21~25> 21 그의 어머니가 올라가서 아들을 하나님의 사람의 침상 위에 두고 문을 닫고 나와 22 그 남편을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사환 한 명과 나귀 한 마리를 내게로 보내소서 내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려갔다가 돌아오리이다 하니 23 그 남편이 이르되 초하루도 아니요 안식일도 아니거늘 그대가 오늘 어찌하여 그에게 나아가고자 하느냐 하는지라 여인이 이르되 평안을 비나이다 하니라 24 이에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몰고 가라 내가 말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위하여 달려가기를 멈추지 말라 하고 25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수넴 여인은 죽은 아들을 살리기 위하여 멈추지 않고 갈멜 산의 엘리사에게로 달려갑니다. 남편이 만류하는 데도 불구하고 쉬지 않고 엘리사에게로 갑니다. 수넴 여인의 간절함이 아들을 살려냈습니다. 간절함은 기적을 만들고, 간절함은 아들을 살려냅니다.

 

 

<결론>

 

간절함입니다. 간절함이 기적을 만들고, 간절함이 귀신 들린 딸을 살려내고, 간절함이 죽은 아들을 살려냅니다. 지금 여러분은 간절함을 갖고 계십니까? 무엇을 위한 간절함이 있습니까? 정말 간절하십니까? 정말 내 아들을 살리기 원하십니까? 정말 진정성을 가지시고 딸이 악한 영으로부터 자유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까? 정말이십니까? 진심으로 간절함을 갖고 자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까? 정말 간절함으로 간절히 간구하고 계십니까? 내 자녀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내 아들이 살아나고, 내 딸이 고침을 받고, 내 자녀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까? 간절함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간절함을 가지신 성도님들은 주님의 말씀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주님을 위하여 울고 있는 사람들에게 너희 자신과 너희의 자녀들을 위하여 울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꼭 기억하시시기를 바랍니다.

 

<23:27~28> 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우리는 우리의 자녀를 위하여 울어야 합니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하여 진정성을 가지고 간절함으로 울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자녀들을 구원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같은 간절함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 사르밧 여인처럼, 수넴 여인처럼, 아들을 살리기 위한 간절함이 있으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