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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神學)/웨슬리 신학

“웨슬리의 성령론”

우순(愚巡) 2022. 3. 11. 21:49

 

웨슬리의 성령론

-구원론과 성령의 독자적 인격성을 중심으로-

 

서철(동대문교회 담임목사)

 

 

서론

 

이 연구 보고서는 존 웨슬리의 성령론을 구원론적인 측면과 성령의 독자적 인격성의 측면에서 연구한 보고서이다. 구원론적인 측면에서 성령을 이해하려는 것은 구원사건이 성부와 성자 중심이나 혹은 그들만의 사건이 아니라 성부와 성자와 함께 성령이 함께 관계하는 삼위일체론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며, 그렇게 되면 자연히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 종속된 하위의 존재가 아니라 독자적인 인격성을 가지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성령을 구원사건의 성취자와 독자적 인격성을 가지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이해하였고, 성령을 성부와 성자와 대등하게 이해함으로 교회사에 성령의 존재를 부각시킨 인물이다. 성령론에 있어 웨슬리의 위치는 아주 중요하다. 21세기에 이르러 새로운 조명을 받고 있는 근대의 오순절 성령운동은 존 웨슬리의 회심과 성결 사상에서 유래하는 성령론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W. 데이턴,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뿌리, 조종남 옮김 (서울:대한기독교서회, 2000). 37-64. 데이턴은 존 웨슬리의 성결 사상이 근대 성령 운동의 뿌리가 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특히 제 2장은 오순절운동의 메서디스트적 뿌리라는 주제 아래 철저한 분석을 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는 웨슬리의 성령론을 구원론과 독자적 인격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있는 소고이다.

 

 

1. 성령론의 역사

 

그동안 성령론 논쟁은 창조론적인 성부론이나 구속론적인 기독론 또는 성례전적인 교회론에 밀려 변방의 위치에 있었다. 이종성, 성령론,(서울:대한기독교출판사, 2000),13-52. 성령론의 역사를 잘 설명하면서 성령에 대한 무관심 시대, 성령의 위격이 문제 된 시대, 성령의 출원 문제 시대들의 분석과 함께 개혁자들, 정통주의자들, 경건주의자들 그리고 현대신학자들의 성령론 주장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이종성은 오래 동안 교회와 신학이 성령론에 대해 무관심했었음을 보여준다. 물론 초대 교회나 중세 시대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신학사에서 성령론이 언급되기는 했지만 교회론이나 기독론에 종속되어 취급되었다. 김균진,기독교조직신학(서울:연세대학교출판부, 1999),,7-8. 중세기에는 성령론을 삼위일체론과 구원론에 결부시켜서 논의했고 종교개혁시대에는 칭의론이나 기독론에 결부시켜서 성령론을 취급했었다. 그러나 현대 신학에서는 일부가 아직도 성령론을 소외시키고는 있지만, 헨리 디이슨, 조직신학개론,권혁봉 역(서울:생명의 말씀사,2001). 223-7. 디이슨의 조직신학은 삼위일체를 설명할 때 잠깐 언급할 뿐 별도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체로 종말론의 빛 아래에서 또는 독자적인 오순절 운동의 시각에서 성령론을 중요한 신학의 테마로 삼고 있다. 김균진, ;더 필드,밴 클리브 공저, 오순절신학, 임열수 역,(서울:성광문화사,1994)14-5. 이 책의 서문은 성령 운동의 신학적 중요성을 언급하고 있다. 신학의 논의에서 변방으로 소외되었던 성령론이 이처럼 새로운 조명을 받게된 것은 오순절 성령운동 때문이다. 황승룡,성령론,(서울:한국장로교출판사,1999), 282. 하비 콕스는 1965년도에 출간한 세속도시에서 종교의 몰락을 예견하였지만 30년 후에 내놓은 새로운 책 하늘로부터의 불에서 성령운동을 통한 원초적 영성의 부활을 강조하였다. Harvey Cox, 영성,음악,여성 유지황 옮김,(서울:도서출판동연,1996)129-30. 원제는 “Fire from the Heaven(하늘로 부터의 불)”이다.

현대의 오순절 성령운동은 1900년의 캔자스 주의 토페카에 있는 베델 성경학교에서 일어난 성령운동으로부터 시작한다. 도널드 W. 데이턴,.15-6. 어떤 사람들은 토페카가 아니라 1906년도의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의 흑인 집회를 현대 오순절 운동의 시발점으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토페카의 성령운동과 아주사의 성려운동은 6년의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20세기의 오순절 성령운동시대를 연 동시대적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오순절 운동의 뿌리는 웨슬리의 성결론 사상에서 출발한 것이다. 도널드W. 데이턴,37-62. 이 책의 제 2장은 오순절 운동의 웨슬리적 뿌리를 잘 정리해놓고 있다. 오순절 운동의 뿌리를 카톨릭의 견진성사나 종교개혁파의 청교도운동 또는 경건주의 운동에서 찾으려고 하기도 하지만 진정한 뿌리는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있다.

 

이처럼 20세기에 이르러 오순절운동이 강력하게 일어나고 감성문화의 시대와 더불어 성령운동의 시대가 열리면서 성령론은 신학주제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다. 이러한 성령론이 근대 신학사에서 본격적으로 중요시 된 것은 존 웨슬리 때문이었다. 김영선,존웨슬리와 감리교 신학,(서울:대한기독교서회,2002).262. 웨슬리는 회심을 통하여 성령을 체험했고, 성령과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에 대하여 설교하면서 성결 운동을 펼쳤는데, 이계준, 새로운 탄생,(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1999),211-236. 웨슬리의 표준설교집을 번역한 새로운 탄생35장은 웨슬리가 했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설교이다. 이 표준설교에서 웨슬리는 새 영을 받은 아들의 자유를 말하면서 완전한 삶을 이루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성령운동으로 발전되었으며 후대에 이르러 오순절운동을 일으키는 뿌리가 되었다. 노로 요시오, 존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1998),551-68. 웨슬리의 신학을 성령신학으로 정의하면서 베르자예프의 주객분리 구조를 가지고 근대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경건주의를 거쳐 후대의 성령운동에 미친 웨슬리의 신학적 영향력을 잘 분석하고 있다.

웨슬리는 카톨릭시즘, 청교도 사상 그리고 경건주의의 토양위에 새로운 신앙운동 곧 성결 운동을 부르짖었다. 도널드W.데이턴,41-42.

이 성결 운동이 현대의 오순절 성령운동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성결 운동가들과 오순절 및 카리스마 운동을 따르는 사람들은 웨슬리를 성령의 신학자라고 부른다.상게서,47.

 

 

웨슬리의 성령론이 현대 신학의 주제로서 자리를 잡게 된 것은 구원론적인 의의 때문이다. 이종성,34. 이종성은 웨슬리의 성령론은 구원의 확신 중심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종성은 여전히 구원의 확증자로만 머물므로 성부와 성자에 대하여 종속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보통 성령론은 성부론의 창조나 성자론의 구속과 달리 선교나 은사중심의 이해를 하게 되었다. 더 필드, 밴 클리브 공저, 467-719. 이 책의 제 6장 성령론은 은사 중심의 이론으로 되어 있으며, 7장은 신유론으로 성령의 은사중에서도 신유의 은사를 오순절 신학의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다.;데니텐,91-154, 데니텐의 분석도 성령세례론 곧 구원의 확증과 선교 그리고 신유중심의 오순절 성령운동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성령의 이해를 단순한 선교나 은사 중심이 아닌 구원의 시각에서 중요시하였다. 김영선, 265-6. 웨슬리는 구원의 전 역사를 성령의 사역으로 보았으며, 성령을 구원의 성취자로 이해하였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 종속되어 구원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구원을 이루고 완성하시며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구원론의 시각에서 성령론을 이야기하는 것은 두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 하나는 삼위일체 신관의 정립을 이룬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성령의 독자적 인격성을 설명한다는 점이다. 성령론이 부차적인 신학의 주제가 되었던 것은 초대 교회 시절부터 교부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성령을 구원사역의 독립적이고 자발적인 참여자 곧 독자적 인격성을 가진 하나님으로 이해하지 못한데 있다. 성령론을 본격적으로 신학의 주제로 삼기 시작한 성령신학자들 또는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을 독자적인 인격성을 가지고 구원사역을 성취하신 분으로 이해한다.

 

2.웨슬리의 성령론의 배경

 

웨슬리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시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1725년도의 옥스퍼드 회심이고 다른 하나는 1738년도의 올더스케잍 회심이다. 김홍기(),존 웨슬리의 역사신학적 조명,17-9.;노로 요시오,85-8. 웨슬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1725년도의 사건을 첫 번째 회심이라고 부르고, 1738년도의 회심을 두 번째 회심이라고 부른다.

 

1725년도는 영국 성공회의 서리 사제(또는 집사 사제)로 서품을 받은 시기인데 경건주의 계통의 서적을 많이 읽고 사제로 서품받기를 결정한 시기이다. 웨슬리는 1725년도부터 1728년까지 하나님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경건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계통의 신앙서적들을 읽고 사제로 서품 받을 것을 결정한다. 제레미 테일러의 거룩한 삶과 거룩한 죽음”, 토마스 아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그리고 윌리암 로우의 그리스도인의 완전경건한 부름등을 읽고 엄격한 생활을 하기 시작하였다. 노로 요시오,86-87, 웨슬리는 이후에 일기를 쓰면서 성경을 진리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김홍기(),19.

 

 

이처럼 1725년에서 1728년에 이르는 옥스퍼드 회심기간은 웨슬리에게 인생의 전환점을 가져온 사건이었다. 그러나 웨슬리의 본격적인 회심은 1738년도에 일어났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 번 째 회심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회심을 말하자면 1738년도의 회심이 유일한 회심이라고 말할 수 있다. 웨슬리의 후예들인 감리교 신자들은 1725년도의 사건은 기념하지 않지만 1738년도의 사건은 매년 회심일로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1725년도의 사건은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수행의 의미가 있지만, 1738년도는 모든 우울함과 두려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케 되는 전적인 자유와 해방의 사건이었기에 진정한 회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하나만 택하라면 1738년도의 회심을 선택한다. 노로 요시오, 130-32. 요시오는 두 가지 회심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와 단절이 있으며 진정한 복음적 회심은 올더스켙의 회심이라고 말한다.

1738년도의 회심이란 미국 선교에서 돌아온 웨슬리가 자신의 구원문제로 고민하다가 1738524일 오후 845분 경에 영국 런던의 올더스케잍 거리에서 자신의 구원을 경험한 사건을 말한다. Robert G.Tuttle, Jr, "John Wesley"(Exeeter:The paternoster press,1978),193-201. 웨슬리의 생애와 사상을 이야기할 때는 회심을 경험한 이 날을 강조한다.

 

웨슬리는 이날의 경험을 이렇게 적고 있다.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저녁에는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은 채 올더스케잍 가에 있는 어느 회에 갔는데...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믿는다고 나는 느꼈다. 뿐만 아니라 주께서 내 모든 죄를 씻으시고 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구원하셨다는 확신이 생겼다. 존 웨슬리,일기 ,김영운 역(존 웨슬리 총서,4,서울:한국교육도서출판사,1976).81-2. 이하 웨슬리총서로 통일하여 표기

 

 

이 이상한 뜨거워짐 이후로 웨슬리는 체험을 중시하게 되었다. 웨슬리는 성공회의 전통, 종교개혁파의 성경 그리고 계몽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은 이성과 함께 체험을 그의 신학적 기초로 삼았다. 성서,전통,이성,체험은 감리교 신학의 네 기둥이기도 하다. 이것은 웨슬리가 그의 인식론의 근거를 추상적인 관념이나 교리의 정통성에 근거하지 않고 실재(The Reality)에 대한 바른 체험을 강조하는 실천성에 두게 되는 계기가 된다. 때문에 웨슬리의 인식론은 경험주의(아리스토텔레스 전통)나 직관주의(풀라톤 주의 전통)를 넘어 성령의 초월적인 체험주의로 나아간다. 김홍기(),, 이후정,“존 웨슬리의 성령론” 209. 회심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는 인식론의 전환점을 가져왔다. 이것은 단순한 확증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성령의 역사로 뜨거워진 사건이 웨슬리에게 구원을 확증시켰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예수를 구주로 고백케 하는 신앙고백적 사건이 되었다. 그럼으로 웨슬리에게 있어서 1738년도의 회심은 구원을 성취하는 시건이었다. 웨슬리는 1738년의 올더스케잍 회심이 있은 후에 그의 일기에서 이전의 자기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노로 요시오, 141. 회심이 있고나서야 자신이 비로소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였다.

 

웨슬리의 일기는 173627일 자에서 독일인 교회 목사 슈팡엔베르크와의 대담을 적고 있는데 하나님의 성령에 대한 질문을 받고 두려워했음을 적었다 웨슬리총서, 7. 49. 17381월 한 달의 이야기는 항해 도중에 겪었던 두려움을 전해주고 있다 상게서,67-70. 웨슬리의 두려움과 슬픔은 계속되어 고민하다가 독일인 목사 Peter B&ouml;hler를 만나 두어 달 동안 권면을 받고 어느 정도 진정을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무겁고 슬펐다. 상게서72-80. 그러나 1738524일 올더스케잍의 회심 이후로 그는 자신의 일기에서 자신은 날마다 승리한다고 적었다 상게 서82. 그리고 그 다음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게 되고 모든 염려를 다 버리게 된다. 이때부터 웨슬리의 전도가 시작되게 되고 야외 대중집회가 시작된다. 그리고 설교속에 성령에 관한 증거들이 나타난다. 173942일에는 삼 천명 앞에서 요엘서의 성령이야기를 설교했고, 48일에는 천 명 앞에서 설교하였으며, 58일에는 Bath에서 천명을 상대로 설교하였고, 108일 브래드포트에는 10,000여명이나 모였다..17391023일에는 마귀를 내쫓기도 하였다. 상게서 103.

웨슬리는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던 회심을 체험한 후에 예수님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고 대중집회를 인도하게 되었으며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였다. 성령의 초월적인 체험이 그이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2. 웨슬리의 구원론과 성령론

 

웨슬리의 성령론은 구원론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것은 웨슬리의 성령론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1738년도의 회심이 구원론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구원의 확증이든 아니면 구원의 성취이든간에 회심은 성령의 사건이었고 구원의 사건이었다. 회심을 구원의 확증으로 보는 사람은 이미 구원받았는데 회심을 통하여 확신을 얻게 되었다는 것이고, 구원의 성취로 보는 사람들은 그 이전에는 구원을 얻지 못하였는데 회심을 통하여 구원이 비로소 성취되었다고 보는 견해이다. 구원론에 있어서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이신득의에서는 루터와 칼빈과 같이 하지만 극단적인 신앙 지상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선행을 강조한다. 그러나 웨슬리는 동시에 카톨릭의 이행득의에 빠지는 공로주의를 경계함으로 중용을 취한다. 김영선, 210. 웨슬리는 “:이신득의와 이행득의의 극단화를 피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선행적 은총과 자유의지의 응답을 구원사건의 새로운 틀거리로 제시한다. 웨슬리의 선행적 은총과 자유의지론은 어거스틴의 선재적 은총과 은총의 양면성으로부터 연유했다. 김홍기(),129-130.

 

 

웨슬리의 구원론은 단계론적이다. 루터는 단순히 죄인이지만 의인이고 의인이지만 죄인인 인간론을 이야기했다. 즉 인간은 용서받은 죄인이며 의로워진 죄인이지만 늘 죄지을 가능성이 있는 죄인이다. 상게서,106-7. 그러나 웨슬리는 의롭다고 법적인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의로워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구원은 믿음에서 시작하지만 선행과 성결에서 완성된다고 보았고, 그것은 성령의 열매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상게서,108-10. 여기에서 성령은 구원의 성취자이며 완성자이시다. 구원을 온전히 이루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후에 성결론과 성화론을 거쳐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을 이루며 오순절 성령운동으로 발전되어 갔다.

 

웨슬리는 칼빈의 구원론과도 같으면서 다르다. 같은 것은 칼빈주의적 청교도의 영향을 어머니로부터 받아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사상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것은 칼빈의 구원론이 너무 하나님 혼자만의 독백처럼 되어 버렸고 그래서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예정론을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 선행적 은총을 주장하며 반박하였다. 웨슬리의 선행적 은총은 자유의지의 회복사상이다. 이 자유의지는 펠라기우스가 발하는 본래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얻게된 자유의지이다. 상게서, 115-120. 김홍기 교수는 웨슬리의 칼빈주의 비판을 잘 정리해 놓고 있다. 그리고 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구원사건에 응답하는 인간의 구원사건은 성령의 전적인 역사이다. 김영선,265-6.

 

칼빈의 구원론은 하나님 혼자만의 사건인데 웨슬리의 구원론은 하나님과 인간의 합주곡이다. 그런데 합주곡이라고 해서 단순한 신인협력설의 입장처럼 어느 정도의 인간의 공로를 인정하는 공로주의의 구원론이 아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절대주권의 은총아래에서 얻는 구원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들로 구원하시기에 강제하시지 않고 감동하심으로 구원하신다. 이때 이 감동을 이루시는 분이 성령님이다 . 그럼으로 칼빈의 구원론이 성부론적인 기독론의 구원론이라면 웨슬리의 구원론은 성령론적인 기독론의 구원론이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의 구원론은 이신득의를 따르는 종교개혁의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단순한 신앙지상주의에 머물지 않고 선행과 성결을 통해 성화를 이룸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이르는 궁극구원론이다. Lindstorm,웨슬레와 성화,전종옥 역,(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1992),217-37. 린드스톰은 구원이 궁극적으로는 성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 성화를 이루는 사건은 인간의 행위인데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공로주의 행위가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아래 있는 행위이다. 성령은 그 궁극구원을 이루는 성화의 행위를 가능케 하는 하나님이시다.

 

결국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본 성령론은 구원을 성취하시고 완성시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러기에 성령은 구원에 있어 성부와 성자에 종속되는 부차적인 존재가 아니라 성부와 성자의 구원사건을 성취하시고 완성시키시는 주도적인 존재이시다. 그리고 이 주도성은 말 그대로 주도적이기에 성부와 성자에 의존하여 있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독자적이며 자발적으로 역사하시는 주도성이다. 따라서 웨슬리의 구원론에서 보면 성령은 구원을 성취하시며 완성시키시는 독립적이고 자발적이신 하나님이시다.

 

3.웨슬리의 성령론의 특징

 

위에서 보듯이 웨슬리의 성령론은 구원의 성취자로서 독자적인 인격성을 가지신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성령론은 성령을 내주하시는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김영선,264. 웨슬리의 회심은 구원의 확신을 느끼는 내적 확증이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성령의 증거에 의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성령의 증거는 영혼의 내적 표현으로서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과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셨음을 확증하는 것이다. 존 웨슬리 총서,120. 웨슬리에게는 이 확증이 계속 그의 신학을 이끄는 주제가 된다.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구원의 확증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김진두,웨슬리의 실천신학(서울:도서출판 진흥,2000),48-9. 웨슬리는 그의 아버지 사무엘에게서 구원의 내심의 증거를 배웠으며 회심이전에 이미 성령의 내적 증거확신의 교리를 알고 있었다. 상게서. 웨슬리는 성령의 증거라는 설교를 통하여 성령의 증거는 하나님의 직접 증거이며 양심으로서 우리 영의 증거는 간접 증거인데 하나님의 직접증거인 성령의 증거가 인간의 간접증거에 선행한다고 보았다. 상게서.50-1.

 

 

웨슬리의 성령론은 성령의 내적 증거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내주를 체험하는 것이고 이것은 영원한 시간이 순간의 시간 속으로 돌입해 오시는 절대 타자와의 만남을 의한다. 순간 속으로 돌입해 오셔서 영원을 경험하게 하시는 성령의 내적 증거는 구원의 확증을 가져오기에 구원의 성취를 얻게 하신다. 성령은 구원의 성취자이다. 김영선,265. 이 때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구원사역을 함께 이루시는 분이시기에 성부와 성자에 종속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역사하시는 독자성을 지니신 다. 상게서.266. 또한 성령은 인간을 구원하신 후에는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하는 성화를 이루게 하시는 분이시기에 성화의 근거가 되신다. 상게서.267-8.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완전한 성화를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김진두,55-7. 웨슬리의 성화론적 성령론은 카톨릭의 "거룩한 삶(holy living)"과 개신교회의 오직 믿음(sola fide)"을 결합시킨 종합과 조화의 신학이었다. 상게서,56. 그러나 웨슬리는 이 둘을 단순히 병렬시키지 않았고 선후를 두었다. 즉 오직 믿음으로 의인이 된 후에 거룩한 삶으로 나아가는 성화가 가능하다고 봄으로 개신교 신학의 전통에 서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은 당시에 복음주의적 회심이란 카톨릭이나 성공회에서 칼빈의 예정론으로 넘어가는 것을 의하던 신학적 견해와는 다른 새 길이었다.

 

그러면 성령은 단순히 성화에만 관여하시는가? 아니다. 성화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이들에게 찾아오는 후속 프로그램이다. 성령은 이 구원을 이루는 믿음을 주시는 영이시다. 김영선,269-70. 웨슬리는 신앙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전적으로 귀의하는 것이며, 이것은 믿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건인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제하시지 않고 설득하심으로 성취하신다. 웨슬리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제하시는 하나님을 이야기했던 루터와 칼빈의 구원론을 마술적인 구원으로 이해했다. 상게서,270-1. 하나님은 혼자만의 독백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인 아들과의 사랑의 관계를 통하여 구원을 성취하신다. 이때 성령은 인간을 강제하시지 않고 설득하시는 하나님을 체험케 하시는 영이시다. 그리고 성령은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믿음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성화를 이루시는 성령은 인간에게 능력을 주신다. 웨슬리는 사도행전 18절의 선교적 성령론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 자신이 17381231일 새벽 3시에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억제할 수 없는 마음으로 간증하였다. 성령은 믿음의 능력’(고후4:13), ‘자유의 능력’(딤후1:17), ‘진리의 능력’(요일4:6,5:6), ‘지혜의 능력’(1:17), ‘사랑의 능력’(딤후1:17) 그리고 위로와 희망의 능력’(살후2:16,고후1:3,15:13)이시다.

 

 

이러한 웨슬리의 성령론을 보통의 성령론 전개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인격성, 성령의 신격성, 성령의 증거, 성령의 은사 그리고 성령의 사역등을 주제로 언급할 수 있지만 이 연구 보고서는 다른 신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성령론과 비슷한 내용들에 관하여는 언급을 생략하고 논쟁이 되는 다섯 가지 주제만을 다루도록 하겠다. 성령의 독자성과 삼위일체론, 성령의 확증과 인식론, 성령세례와 반복성, 성령의 성화와 완전론, 성령의 은사와 선교론이다.

 

1)성령의 독자성과 삼위일체론

 

성령의 독자성은 두 가지 점 때문에 성령론의 핵심이다. 하나는 삼위일체론의 기둥이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구원의 서정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령의 신격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만약 아리안파나 사벨리안 또는 소시니안파처럼 성령을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힘으로만 간주한다면 성령은 신격성은 상실되고 삼위일체 신관이 붕괴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성령의 신성을 거부하는 Airanism이나 uniterianism을 반대하고 성령의 신성을 변증하였던 아타나시우스를 따르는 철저한 삼위일체론자였다.이장식,기독교사상사(서울:CLSK,1978),1,135-9, 192-4. 아리우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장로였는데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인성만을 강조하였던 단일신론적 양자론을 주장하여 예수의 신성을 강조하였던 아타나시우스와 논쟁을 벌이다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수의 로고스 이론을 반박하여 로고스가 사람에게 들어간 것이 아니고 사람이 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325년의 니케아 회의는 아타나시우스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이후에 이 논쟁은 서로 승패를 번갈아 하며 유사본질성 또는 닮은 꼴이라는 "homoios(like)"를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결국은 동일본질 "‘homoiousios"을 이야기하는 아타나시우스의 주장을 정설로 받아들였다. 이런 성자의 유사본질설을 주장한 아리우스는 성자뿐만이 아니라 성령의 신격성도 부정하였다.

 

성령의 동일본질설을 주장한 것은 Capadocia학파의 공헌이었다 성령의 신성은 니케아회의와 콘스탄티노플 회의를 거쳐 어거스틴에 이르러 완성된다. 이종성,16. 어거스틴은 성령은 성부와 성자가 나신 분이 아니라 동일본질을 가지신 동등한 분이시며 참 하나님으로 불사하시는 분이심을 변증하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삼위일체론,김종흡 옮김.(서울:크리스챤다이제스트,2001),38-50. 웨슬리는 사도행전을 설교하면서 성령의 삼위일체론을 이야기했다 웨슬리 총서,5,291. 신적 인격으로서의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구분은 되지만 동일본질"‘homoiousios"를 가지고 있다. 한영태,웨슬리의 조직신학,(서울:성광문화사,1999), 57. 웨슬리의 성령론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무엇을 하시는 가만 물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무엇을 하시는 가를 물었다. 상게서.58-9.

우리 안에서행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이시다. 웨슬리는 오순절 이전에도 성령이 계셨다고 말함으로 성령의 발원도 창세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영선,277. 웨슬리는 동방교회의 이론을 반박하고 서방교회의 삼위일체론을 받아들인다. 이종성,17. 1054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단일출원설과 이중 출현설로 의견이 나누어져 분열한다. 동방교회는 성령은 성부로부터 나왔다고 주장하고 서방교회는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발현되었다고 주장함으로 삼위일체론을 정립하면서 니케아회의, 콘스탄티노플회의,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카파도기아의 교부들을 지지하게 된다.

 

 

이런 점 때문에 웨슬리의 성령론은 삼위일체론적이며 성부와 성자와 동등한 하나님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 종속되신 분이 아니시고 성부와 성자와 동등하신 동일본질을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따라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합쳐도 어느 한 분 이상을 넘어 설 수 없는 동일본질을 가지시게 되고 자연히 독자성을 지니게 된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8권을 보라 이 주제를 잘 정리해주고 있다. 웨슬리는 그런 점에서 성령의 독자성을 긍정하고 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성령은 우리의 행복을 위하여 성부와 동등하게 충분하시다. 상게서.45.

 

2) 성령의 확증과 인식론

 

그다음 주제는 자연히 해결된다. 성령이 독자적으로 활동하신다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성령을 체험한다는 단순 도식은 부정된다. 웨슬리는 이미 예수를 영접했다고 말하였지만 구원의 확증이 없었다. 이는 마치 예수님의 제자들이 3년 반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으면서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지 못하였던 것과 같다. 제자들도 성령을 받고 나서야 예수를 주로 고백하였다. 누가 먼저인가? 성령을 체험하고 나서야 예수를 주로 고백하였다는 것은 예수를 주로 인식하는 힘이 성령님에게 있다는 말이다. 웨슬리는 이미 회심사건을 통하여 이를 경험한 적이 있다. 그러면 성령이 성자보다 먼저인가? 아니다. 성부와 성자는 하나이시기에 선후를 따질 수가 없다. 어거스틴도 성령의 파견은 성자의 자기 파견이라고 말함으로 성령과 성자의 동시 사역을 말하였다. 상게서,76-77.

 

 

그러나 확증이라는 인식론의 측면에서는 기능적으로 성령의 역할이 성자에 대한 고백을 이끌어낸다. 이 체험의 신학은 확증의 교리를 만들었다. 웨슬리에게는 네 가지의 모든 사람교리가 있다. 김진두,36-65. 간리교회 교리는 웨슬리가 말하고 있는 네 가지의 모든 사람 교리 즉 “Methodist For All”로 요약된다.

 

1)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필요가 있다(All need to be saved).

2)모든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다(All can be saved)

3)모든 사람이 구원의 확증을 얻을 수 있다(All can be asured)

4)모든 사람은 완전한 성화를 얻을 수 있다.(All can be santified to the ultermost)

 

이 네 가지 가운데 세 번째 모든 사람의 교리인 구원의 확증은 철저하게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얻을 수 있다. 김진두,49-52. 웨슬리에게 있어서 신학은 실천적이고 체험적인 것이다. 이 체험은 구원을 확증하는 것이며 예수를 주로 고백케 하는 예수에 대한 바른 인식을 제공하는 것이다. 김홍기(), 208. 웨슬리의 성령론은 인식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웨슬리총서, 661. 고린도 전서 2장의 주해를 하면서 성령을 통해서만 예수를 주로 인식하고 고백할 수 있으며 따라서 믿는다는 것은 성령을 통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다.

 

 

3) 성령세례와 반복성

 

웨슬리는 사도행전의 오순절 성령세례를 반복적으로 보고 있다. 그의 사도행전 238절 주해는 성령의 역사가 오늘도 계속 나타나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라고 말한다. 상게서. 291. 217절의 주해에서도 반복성을 강조하고 있다. 상게서,289.

 

흔히 메시야 시대를 마지막 날이라고 하는 데 이 마지막 은총의 시대를 복음이라

고 한다. {모든사람에게} 즉 남녀 노소 계급의 차별 없다.. {나의 성령을 부어 주리니}

- 오순절 날 날 뿐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지 계속 나타나실 것이다

 

웨슬리는 성령의 세례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에 반복해서 이어질 것임을 주장하였다. 이런 반복성은 오순절 운동의 늦은 비 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늦은 비 운동은 오순절 사건이 교회를 시작한 이른 비의 성령세례에 이어 교회를 연합시키고 완전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케 하는 이 시대의 오순절 사건을 말한다. 도널드W 데이턴,31-2. 그러나 오순절 운동과 웨슬리의 견해는 달라진다. 웨슬리의 성령세례는 중생과 함께 일어나는 사건이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엄격하게 구별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오순절 운동가들은 성령세례를 중생 이후에 일어나는 2차적인 사건으로 보고 있으며 성령세례와 성령충만을 엄격하게 구별하려고 한다. 김영선,295-7.

 

 

4.성령의 성화와 완전론

 

웨슬리 신학이 교회사에 공헌한 부분이 성령의 증거를 통한 성결론이다. 다른 말로 그리스도인의 완전이라고 말하고 있다. 웨슬리는 모든 사람이 완전한 성화에 이를 수가 있다고 하였다. 김진두,55-9. 웨슬리는 1777년도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평이한 해설이라는 논문에서 완전 성화의 의미를 일곱 가지로 설명하였다. 상게서57-8. 재인용

 

 

1) 그것은 의도의 단순성이고 사랑의 순수성이다

2) 그것은 삶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완전한 헌신이다

3)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가 걸으셨던 대로 걸어가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의 마음과 삶을 완전히 본받는 것이다.

4)그것은 우리의 마음속에 죄악의 세력이 완전히 소멸되고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회복되는 것이다

5)그것은 모든 생각과 말과 행위에서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는 것이다

6)사랑, 기쁨, 화평, 인내, 자비, 친절, 온유, 충성, 겸손, 절제등 성령의 열매로 가득찬 마음이다

7)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완전한 사랑이다.

 

그러므로 완전의 본질은

1)완전한 성결이다. 즉 모든 죄의 뿌리를 제거하고 모든 죄로부터 완전한 구원을 의미한다 흠과 티가 없는 마음의 성결과 생활의 성결을 이루는 것이다

2)완전한 사랑이다.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웨슬리 신학의 핵심이 되는 완전의 교리는 칼빈의 예정론 시각에서 비판이 되곤 한다. 그러나 웨슬리의 신학이 가지고 있는 배경을 보면 그 깊은 뜻을 알 수가 있다. 웨슬리는 칼빈과 달리 신학적 논쟁을 위하여 교리를 말한 것이 아니라 신앙적 실천을 위하여 말했으며, 그는 루터의 교리적 고뇌나 칼빈의 성경 연구적 고뇌로부터 신학을 창출한 것이 아니고 신앙적 삶의 실천적 고뇌로부터 신학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루터의 이신득의 교리나 칼빈의 예정론 교리가 아니었다. 웨슬리에게 중요한 것은 진정한 기독교의 정체성이었다. 그것은 당시의 영국 사회가 카톨릭-성공회의 예전과 루터-칼빈의 교리를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술과 도박 그리고 이신론의 이성주의로 타락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웨슬리는 기독교의 예전과 교리는 있으나 기독교의 삶과 문화가 없는 것을 통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의 체험에도 근거한다. 자기의 체험을 통하여 그 자신이 놀랍도록 변했고 날마다 승리하는 감격을 맛보았으며 죄와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자기를 자유케 하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런 자기의 경험이 웨슬리를 예전과 교리보다 체험과 실천을 강조하게 되었고 완전의 교리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웨슬리는 모든 웨슬리안 신자들에게 완전을 향해 전진하라고 외쳤으며 완전의 교리를 설교하지 않는 자들을 면직시켰다. 김진두,58-9. 웨슬리의 완전의 교리는 사랑의 교리이다. 루터는 이신득의를 칼빈은 예정론을 내세움으로 믿음과 하나님의 섭리를 강조했지만 웨슬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였다. B.,{은총과 책임,심광섭 옮김.(서울:기독교대한감리회 홍보출판국,1997),80-82. 웨슬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내면으로 채워지면 이웃을 향하여 외면으로 사랑이 나타남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웨슬리는 이런 완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현실에서의 완전성취라는 표현이 반대자들에게 빌미를 주곤 했다. 그러나 웨슬리의 현실에서의 성취개념은 인간의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한 것이며, 결과론적인 논리가 아니라 동기론적인 고백이고, 미래를 향한 꿈인 동시에 현재에 대한 책임의 표현이었다.

 

완전론의 교리는 네 가지 유형이 있다. 가톨릭형, 루터형, 칼빈형 그리고 웨슬리형이다. 김영선,252-256. 가톨릭형이란 인간의 공로주의에 근거한 선행주의의 완전론이다. 루터형은 가톨릭과는 정반대로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께로 향하는 신앙의 완전론이다. 칼빈형은 예정론에 근거하여 철저한 하나님의 주권에 근거한 섭리의 완전론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이 세 가지 유형을 종합했다. 하나님의 구원은 종의 구원이 아니라 아들의 구원인 고로 인간을 노예로 대접하시지 않고 아들로 대접하여 인간의 자유의지를 회복하시고 하나님의 섭리에 이르도록 새롭게 만드셨음을 인정한다. 구원과 성화의 주도권이 하나님에게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노예로 구원하시지도 않을뿐더러 자신의 구원과 멸망에 책임을 전혀 지지 않는 무책임한 자로 방치 하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을 아들로 그리고 책임 있는 존재로 구원하신다. 여기에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수용하면서도 인간의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조화의 완전론이 있다.

 

5. 성령의 은사와 선교론

 

웨슬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그를 신학자가 아니라고 말한다. 웨슬리는 이런 반론에 대하여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을 것이다. 웨슬리의 관심은 예전과 교리가 아니라 심지어 성서 연구까지도 관심의 우선순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웨슬리는 그의 신학의 4대 기둥으로 전통과 이성 그리고 성서와 경험을 이야기했고 성서와 갈등을 일으키는 경험과 전통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였던 것으로 보아 성서를 중요시한 게 틀림없다. 상게서,245-51. 그러나 그럼에도불구하고 웨슬리의 주된 관심은 실천이었고 그 실천은 내면적으로 완전에 이르는 자기 성화였으며 외면적으로 완전한 삶을 실천하는 사랑의 실천이었다. 여기서 웨슬리의 성령론은 선교로 이어진다. 또 그 자신이 전도자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평생을 전도에 힘썼다. 웨슬리는 수천명이 모이는 대중집회를 인도하였으며, 웨슬리 총서, 7.80-4. 마귀와 귀신들린 자들을 치유하기도 하였다. 상게서103-7.

 

 

결론

 

웨슬리를 비판적 안목으로 보면 몇 가지의 문제 소지가 있다. 웨슬리의 신학은 잘 못 이해하면 개신교의 정통신학에서 이탈한 것처럼 보이는 개념상의 모호성이 있다. 예를 들면 만인 구원론이 풍기는 하나님의 주권 상실성, 완전론이 풍기는 영 열광주의와 신비주의성, 신인협력설이 풍기는 은혜의 불완전성, 그리고 성공회 예전 승계가 풍기는 종교개혁의 불철저성 등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말 그대로 풍기는것이다. 풍긴다는 말은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데 그렇게 보이는 착각이다. 물론 웨슬리가 루터나 칼빈과 동일한 사상을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루터나 칼빈이 예수와 동일하지 않고 성서의 해석권을 독점하지 않았으며 그들도 한 인간으로서의 신학자일뿐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미시적인 다른 점이 있을지라도 거시적인 같은 점 때문에 웨슬리의 신학은 개신교 신학의 한 기둥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만인구원론이 하나님의 주권을 상실케 한다거나 하나님의 예지능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만인을 구원하시기 원하신다는 또 다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다. 신인협력설은 하나님의 은혜가 불충분하여 인간의 공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을 이루시는 방법이 마술적이거나 인간의 노예화가 아닌 아들로서의 구원을 이루시도록 인간이 하나님의 구원에 참여할 수 있는 은혜를 하나님이 주셨다는 또 다른 하나님의 절대 주권의 표현이다. 완전론도 동일하다. 우리가 완전해지는 것은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요 성령의 내주하시는 축복이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간은 완전에 이르는 성화의 길과 성결의 삶을 성취한다. 또 예전 중심이라고 해서 웨슬리가 카톨릭의 형식주의를 따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근자에 비판되고 있는 종교개혁의 극단성 즉 예전의 상실을 지켰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이처럼 웨슬리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이었고 하나님을 노예의 주인이 아닌 아들의 아버지로서 사랑의 관점에서 이해하였을 뿐이다.

 

웨슬리의 신학은 루터와 칼빈의 신학사상을 이어받는다. 물론 웨슬리는 가톨릭과 성공회의 신학도 이어받는다. 이것은 그의 생애와 관련이 있다. 웨슬리는 성공회 목사였던 아버지의 영향과 그 자신이 성공회 목사였기에 전통을 중시하였고 예전을 강조하였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웨슬리는 청교도 신자였던 어머니의 영향 속에 칼빈주의를 알고 있었으며, 루터의 서문을 설교하는 자리에서 회심을 체험함으로 루터의 이신득의 교리도 중시하였다. 그러나 웨슬리는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이들의 사상을 종합하고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루터는 성경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칼빈은 성경을 해석한 사람이었고, 웨슬리는 성경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웨슬리에게는 실천이 중요했고 생활의 변화가 중요하였다. 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이다.

 

이 실천을 가능케 하는 근거가 성령 체험이었고 회심이었다. 그리고 이 성령 체험은 한순간의 정점에 머무른 일시적인 감흥으로만 끝나지 않고 영원히 지속된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의 완전론을 주장하였다. 이 완전론은 생활을 강조하는 성결론으로 발전되어 갔고 성결론의 사역자들을 통하여 오순절 운동으로 나타나면서 성령의 사역을 폭발시켰다. 그런 점에서 웨슬리의 성령론은 오순절 운동의 반복성을 지지하는 늦은 비 운동으로 발전되었으며 강력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었다. 성령은 오늘도 역사하시며 여전히 우리 안에서 내주하셔서 구원을 성취하시고 우리를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신다.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고 실천하게 한다. 내면적으로 하나님을 경험하여 예수를 주로 고백할 수 있도록 성령이 역사하시고,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자신을 성결케 하시기 때문에 그 결과로 완전에 이를수록 이웃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게 된다. 여기에 웨슬리의 성령론이 오순절운동의 흐름과 함께 사회구원의 흐름으로 발전되어 가는 또 하나의 갈래길이 있다.

 

결론적으로 웨슬리의 성령론은 구원을 성취하시고 완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독자적이며 자발적으로 사역하시는 분이시다. 그럼으로 이 성령의 구원론적 성취성과 독자적 자발성은 성령을 더 이상 성부와 성자에 종속된 존재로 보지 않게 한다. 따라서 진정으로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과 궁극적인 구원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 그리고 단순히 여전히 죄인인 의인에 머물지 않고 의로워진 의인 곧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이루기 원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빛 아래에서 그 궁극적인 구원을 완성해야 한다. 웨슬리의 성령론은 이 궁극구원과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으로서의 독자적 인격성을 가지신 성령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