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론(講論)/부흥회와 세미나 강론

<2016년도 중구용산지방 목회자 세미나>

우순(愚巡) 2022. 3. 11. 02:02

<2016년도 중구용산지방 목회자 세미나>

 

중구지역자활센터 사역을 통한 지역교회의 회복

 

서 철 (상동교회 담임목사)

 

이 글은 2016년도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중구용산지방 목회자 세미나의 60대 목회자 그룹 토의를 위한 기조발제용입니다. 저는 서울특별시 중구지역자활센터 사역을 통한 지역교회의 회복을 중심으로 작은 느낌들을 정리하였습니다. 이는 2016년도 중구용산지방 목회자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교육부 총무님과 세 사람의 발제자들이 세미나의 방향을 <지역교회의 회복>으로 정하고 학문적인 이론보다는 현장목회자로서의 실제적인 느낌들을 나누기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1981년도에 전임사역을 시작해서 만 36년을 섬겨왔습니다. 크게 강화 양도제일교회(5), 인천 복지교회(16), 서울 상동교회(12)가 제 사역의 대부분입니다. 양도제일교회는 제가 개척을 했고 군목 후에 다시 부임하여 1대와 3대 담임자로 섬겼습니다. 인천 복지교회는 30대와 40대가 주를 이루는 젊은 교회로 제가 2대 담임목사였습니다. 그리고 서울 상동교회는 아시다시피 선교 132년 교회설립 129년이 된 역사적인 교회로 제가 25대 담임목사인데 학원선교 등 복합적인 사역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리움과 아쉬움

 

저는 이제 60대로 들어서서 37년 째 목회를 하면서 <그리움과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움은 아쉬움에서 나온 것이고도 합니다. 상동교회의 복합적인 사역을 하면서 큰 일들을 하는 것은 큰 의미와 보람이 있지만 <교회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아쉬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지역과 너무 유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냥 그 자리에서 자기들만의 리그를 하고 있는 것이지 자역의 동네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역의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방주인데 지역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자기들만의 독립된 제로섬에 갇힌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 상동교회의 가치는 남대문 시장 사람들의 친구였던 동네 교회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더 아쉬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스크랜턴이 양반들이 살던 정동에서 서민들이 살던 남대문으로 시병원과 시약소를 옮겨 와서 설립한 상동교회이기 때문에 더 그렇습니다.

 

지역과 유리된 상동교회의 현장이 제게는 아주 낯선 상황이었습니다. 양도제일교회와 복지교회는 지역과 밀접한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양도제일교회는 150여 호의 작은 시골동네이지만 교회는 동네의 구심점이었고 영적인 지도력을 가진 성소였습니다. 복지교회 역시 지역의 구심점이었습니다. 2,000여명의 교인들이 대부분(95%이상) 30대와 40대로 구성된 신도시의 주거자들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청장년들의 비전을 세워주는 성소였고 아이들의 영적인 교육을 담당하는 성소였습니다. 그런데 상동교회는 교인 대부분이 교회로부터 2시간 거리 안팎에 살면서 대부분 주일에만 예배하는 교회인지라 지역과는 거의 무관한 교회입니다. 아쉬움이 큽니다.

 

2. 지역 교회의 회복을 위한 작은 걸음....중구지역자활센터

 

인간의 우연 속에 하나님의 필연이 있다고 합니다. 우연한 기회에 한마음교회 최형근 목사님을 통하여 중구지역자활센터를 소개받았습니다. 당시 중구지역자활센터는 높은뜻숭의교회(김동호 목사)가 섬기고 있었는데 중구지역을 떠나면서 무주공산이 되었습니다. 당시 중구지역자활센터의 노춘월 센터장이 감리교신학대학교 출신이어서 최형근 목사님을 통하여 제게 연락을 해서 작은 발걸음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동교회는 그 후에 중구청과 협의하고 구역회의 의결을 거친 후에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 이사회의 승인을 받아 정식으로 위탁을 받았습니다.

 

중구지역자활센터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이 보건복지부의 사업을 위탁받아 섬기는 것입니다. 위탁자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유지재단이며 운영자는 상동교회입니다. 담임목사인 저는 운영지원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본부에서는 유지재단 부장, 사회복지재단 부장, 사회복지재단 차장 등 세 사람이 운영지원위원으로 참여하고, 상동교회에서는 관리부장, 재무부장, 사회봉사부장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외 중구청 사회복지과장, 구의원, 중구 복지전문가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중구지역자활센터 직원은 총 8명으로 센터장(1), 실장(1), 팀장(5), 계약직(1) 이며 참여자는 약 170명이고 예산은 연 약 10억 원 입니다. 사역으로는 게이트웨이 사업단(인큐베이팅 과정, 적성에 맞는 일자리 안내), 그린플러스(청소), 푸른 세상(소독방역), 해피나름이(택배), 생기 넣는 가게(쇼핑 백 접기 등), 장애인 활동 지원 사업, 재가 장기 요양기관, 가사간병, 노인돌봄사업, 자활기업 하얀나라, 카페사업단(바리스타 사업단) 등이 있습니다. 중구지역자활세터의 사역은 국가와 중구청 등의 예산으로 집행하고 있으며 중구 지역 내의 자활 가능성이 있는 참여자들을 상대로 일거리를 제공해주고 스스로 살아가도록 돕고 있습니다.

 

중구지역자활센터를 통해 상동교회는 지역과 유대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상동교회의 설립 신앙인 가난한 자들의 친구가 되는 선한 사마리아인 정신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지역과 유리되었던 교회의 몸이 세상과 소통을 하게 되었습니다. 상동교회는 교회 예배당을 청소하시던 집사님이 사직하신 후에 중구지역자활센터의 참여자들에게 청소 일을 맡겼는데 청소하시던 자매님이 남편을 데리고 교회에 등록하시었습니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직원들이 예배에 참석하고 목요일 새벽에는 노숙인들 식사대접에도 참여하십니다. 센터장은 부부가 함께 찬양대에서 봉사하면서 선교회장과 중고등부 교사로도 봉사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들 중에서도 교회에 등록하신 분들이 계십니다.

 

상동교회는 학교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수원시와 화성시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법인 삼일학원을 통하여 수원시 청솔노인복지관과 화성시 진안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두 개의 사회복지시설은 제가 삼일학원 이사장 자격으로 수원시장과 화성시장과 MOU를 맺는 방식으로 위탁을 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규모가 제법 큽니다. 지역 교회의 회복을 위하여 작은 시도들을 해보고 있습니다.

 

3. 왜 지역교회의 회복을 생각하는 가?

 

한국 교회의 현 상황은 기독교 후기 시대라는 말과 함께 정체기 내지 쇠퇴기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의견은 다양할 수 있지만 모두가 위기의식을 느끼는 것은 공통된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장 목회자로서 그 원인 중의 하나를 <지역과의 유리>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더 이상 자기 지역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고 점차 교회는 사람들과 유리되어 고립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들은 결국 어느 시점에서 작은 교회부터 동력을 잃어버리다가 풀뿌리 교회들을 잃어버리고 궁극적으로는 대형 교회들도 잃어버릴 것입니다. 그 해답으로 저는 <지역교회의 회복>을 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현장 목회자로서 저는 <허브 광장> 같은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지역의 허브 광장 같은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지방 자치제도의 발전으로 지방 분권이 강화되면서 이전과는 사뭇 다른 지역 살리기 운동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경제 성장 후에 뒤따라오는 문화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기에 맞추어서 지역 상황에 맞는 소통의 성소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광야의 성막이 하나님께 제사하는 성소이면서 지파들이 모이는 회막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물론 어려움들이 있습니다. 탈 지역화 된 교회의 현장, 교회를 위한 교회성장에의 압박, 교인들의 원거리 거주, 교회 임원들의 수구적인 태도, 산업 구조의 변화, 사역의 확장으로 인한 새로운 이웃의 등장, 인터넷과 SNS를 통한 사이버 이웃의 등장으로 인한 기존의 지역과 이웃에 대한 개념의 변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도 무언가 저는 현장 목회자로서 느껴지는 감이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필히 공명할 것 같다는 위기감이 느껴집니다. 적어도 우리 60대는 자본주의의 수혜자로 적절한 행복 아닌 행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천박한 수혜자이지요. 그러나 다음 세대는, 그리고 먼 미래는, 그리고 우리의 후배들은 큰 아픔을 겪을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들부터라도 작은 씨앗을 뿌리는 마음을 가져야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그 생각의 끝줄에 매달린 작은 방울 하나가 <지역교회의 회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