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1-08 주일 "강하고 담대하라(수1:9)"
날 짜 : 2009년 1월 18일 설 교 자 : 서 철 담임목사
제 목 : 강하고 담대하라 본문말씀 : 여호수아 1:9
할렐루야 !
우리 속담에 ‘급할수록 돌아가라’라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이 급하면 빠르게 행동을 하려다가 실수를 하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천천히 가라고 하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지금 대단히 급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앞에 여러 가지 일들이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때일수록 돌아가는 심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본적인 말씀의 묵상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의 지혜
마틴 루터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성경에 관한 책 100권을 읽는 것보다, 성경 한권을 읽는 것이 더 낫다.” 존 웨슬리 목사님은 그의 삶을 다 살고 난 후에 별명을 얻었는데, ‘한 책의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옥스퍼드 대학 출신의 지식인이었던 그가 철학과 수사학을 몰랐겠습니까? 그가 보낸 일기와 서한들을 보면, 문학적인 소양까지 엿보이는 글쟁이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많은 글들을 읽고 알고 썼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이 사람들에게 비춰졌을 때 ‘한 책의 사람’이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가 급할수록 돌아가게 해 주는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
오늘 여호수아서의 말씀을 택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정하면서,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하는 하나님의 의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버락 오바마의 정치적인 구호라든가, 로버트 슐러 목사의 적극적 사고방식을 제가 오늘 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어떤 심리학자나 심리치료사가 말하는 마인드컨트롤이나 명상을 하면서, 우리 마음의 두려움을 몰아내라고 하는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왜 강하고 담대해야 합니까? 왜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아야 합니까?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뢰의 고백이며, 확신에 찬 행동이며, 기반이 튼튼한 신앙의 결실입니다. 하나님이 분명한 의지를 가지셨고 직접 명령하셨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
저는 마태복음 14장의 말씀도 같이 묵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다를 건너게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밤에 물에 빠진 제자들에게 다가오셔서 건져 주셨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의 믿음이 좀 더 커졌으면 하는 메시지를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메시지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하는 손 내미심에 대한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물에 빠진 제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은 아주 적극적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적극적인 사랑,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이 우리를 강하고 담대하게 합니다.
가나안 입성의 지도자 여호수아
오늘 이 여호수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모세라고 하는 사람과 비교를 해 보게 됩니다. 모세는 다윗과 엘리야와 함께 구약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변화되었을 때 엘리야와 함께 모세도 나타났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이 다섯 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서양에서 이름을 지을 때도 여호수아라고 하는 이름보다는 모세라고 하는 이름을 선호합니다. 모세는 카리스마가 있는 리더였습니다. 모세는 출애굽의 기적을 연출한 리더였습니다. 세상 사람도 여호수아는 몰라도 모세는 아주 많이 압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수아가 이어받아서 가나안에 가게 되었습니다. 모세와 함께 홍해바다를 건넜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는 모세의 영상이 아주 짙게 남아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와 함께 홍해바다를 건넜던 민족인데도 불구하고 요단강 앞에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강한 사람에게 강하라고 말합니까? 마음에 담대한 사람에게 담대하라고 말합니까? 뭔가 두려워하고 떨고 있는 사람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하는 것 아닙니까? 여호수아에게 너는 지금 강하고 담대하라고 말할 때에는 여호수아 자신도 걱정이 되는데, 그러니 백성들이 볼 때는 어떻겠습니까? 아주 쉽게 말하면, 모세와 함께라면 홍해바다라도 건널 수 있지만, 여호수아와는 요단강도 못 건널 것 같은 생각이 그들에게 지배적이었습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보면, 모세가 베풀었던 10가지 드라마틱한 역사적인 사건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했던 말은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수 3:5) 모세처럼, 지팡이로 물을 갈라놓고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결하라는 것입니다. 요단강을 들어갈 때에도 믿고 물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다를 갈라놓고 가라는 것인데, 여호수아는 강물도 못 가르면서, 그 강 속에 발을 담그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믿어지기는커녕, 불안감이 증폭되어지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주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위대한 모세도 여호수아에게 도저히 따라갈 수 없었던, 여호수아만의 특별한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세를 아주 위대한 지도자로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문턱에서 주저 않는 것으로 그의 삶을 정리하고는 끝냅니다. 가나안에 입성을 해서 가나안에 정착한 사람은 여호수아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부족국가의 형태로 공식적으로 국호를 선포하고 살았던 때는 여호수아의 때부터입니다. 그리고 사사시대가 지나고 사울 시대의 왕정시대가 열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의 입성을 했던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영토의 역사를 시작한 건국의 아버지입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모세의 잔영 때문에 도저히 빛이 나지 않는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실제 들어가 보면 이스라엘 현재의 역사적 출발점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영토를 획득한 것도 여호수아입니다. 그런데 그는 요단강조차도 건너기에는 마음이 약하고 두려움이 많았던 사람입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말씀합니다.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수 1:9) 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개인에게 준 말일 뿐만 아니라, 모세의 잔영 속에서 도저히 모세와 함께라면 홍해도 건널 수 있지만, 여호수아와 함께라면 요단강도 건널 수 없다는 요단강 앞에서 주저앉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여호수아보다 뛰어난 하나님의 명령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수 1:9) 하나님의 명령이 중요합니다. 모세가 위대하기 때문에 홍해를 건너고, 모세와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대하기 때문에 홍해를 건넌 것 맞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건널 수가 없습니다. 지금 밀려오고 있는 금융 위기, 우리에게 다가오는 실직 사태들, 그리고 감소하는 매출들, 곤두박질하는 주가들, 거기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이러저러한 일들까지 다 보게 되면, 우리 자신들 모두가 홍해바다를 건넜던 모세의 이야기를 알고 있지만, 요단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는 여호수아와 백성들처럼, 우리 모두가 거기에 주저하고 앉아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생각에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만 나타난다고 하면, 그가 나라에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될 것이고, 회사의 사장이 모세와 같은 사람이면, 회사가 잘될 것이고, 우리 교회의 목회자가 모세 같은 사람이면, 홍해바다도 건널 수 있다는 보이지 않는 생각이 있을 수 있지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도 중요하고 여호수아도 중요하지만, 내가 더 중요하다. 내가 명했다는 것입니다. 내가 모세에게 홍해바다를 건너라고 얘기했고, 내가 지금 너에게 요단강을 건너라고 명하니까, 이 강을 건너고 그 전에 바다를 건넌 것은 그 앞에 섰던 지도자와 백성들의 공로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명령한 나의 의지가 위대한 역사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동행과 그 약속
오늘 성경은 말합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여러분, 믿습니까? 급할수록 돌아가는 것입니다. 성경에 관한 책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한 구절이라도 그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만나면, 바로 그 순간 강력한 하나님의 힘을 얻어갈 수 있습니다. 모세의 입을 통해 이 말씀이 주어졌지만, 이 말씀에 흐르고 있는 강력한 암시는 바로, 하나님이 명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의 동행입니다. 하나님이 버리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원토록 함께한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이것이 요단강을 건너게 했습니다. 마음이 강해지고 드디어 담대해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위기를 이기는 믿음
여러분, 바다가 갈라진 다음에 지나간 모세의 행렬도 위대했지만, 아직 강물이 갈라지지도 않았는데, 그 강물 속에 물을 향하여서 발을 담그는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은 어쩌면 더 위대했습니다. 갈라진 바다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기적도 없는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함께하시니 이 강을 건널 수 있다고 믿고, 그 발을 담근 사람들이 진짜 위대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저는 이 한 주간 이 하나님과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시고 믿음의 길로 나아가실 때, 우리를 도우실 줄 믿습니다.